88. 영지를 박살 내 봅시다
케이의 위튜브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운영되던 채널이었기에 초반에는 조회수가 10~20이었으나 100 조회수를 넘기는 순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하여 한 시간이 지난 지금 무려 10만 조회수를 넘기고 있었다.
-야… 와…….
-와…….
-허…….
-말이 안 나오네.
-케이 님 파킨한테 작업 당해서 방송 접고 집에서 술 푸고 있을 줄 알았더니…….
ㄴ베소 왕국에서 칼 갈고 있었네.
ㄴ이거 지금 군대랑 혼자 붙는 거 맞지?
ㄴ와… 씨… 칼질 한 방에 기사 방패가 종이처럼 썰리네. 베소 왕국 NPC 기사 수준이 저렇게 낮았나?
ㄴ그럴 리가… 그런데 그냥 기사도 아니고 기사단임. 아무리 NPC 기사라도 저 정도면 60레벨은 넘을 듯…….
ㄴ씨박… 나 기사 클래스 따려고 향사로 한 달째 구르고 있는데… ㅠㅠ 현타 씨게 오네.
ㄴ와… 마법사단… 단체로 썰려 나간다.
ㄴ세이온에 이런 것도 가능함?
ㄴ가능은 하지. 캐릭터에 10억 이상 쓰면…….
ㄴ지랄하고 있네. 내가 정확히 15억 썼는데 이런 거 절대 불가능하다.
-와아… 살다 살다 네임드급 전투 영상을 위튜브에서 볼 줄이야. 눈 호강하네.
ㄴ대단하기는 해도 네임드랑 비교는 쫌…….
ㄴ세린이 티 내냐.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이런 영상은 넷플렉스 프리미어 서비스에서 유료로만 볼 수 있는 거다. 케이가 진짜 하계인들 눈 정화하라고 위튜브에 풀어 주는 거임.
ㄴ그럼 케이가 네임드급이라는 거야?
ㄴ당근이지.
ㄴ케이 후빨 등판 ㅋㅋㅋ
ㄴ이게 후빨로 보이냐.
-케이 님 지금 레벨이 어느 정도임? 아시는 분 없음?
ㄴ모름. 하나 아는 건 케이 님이 방송이랑 세이온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건 암
ㄴ??? 세이온 시작한 지 얼마 안 됨?
-ㅇㅇ 이 채널 첫 영상 보면 튜토리얼 깨는 거부터 나옴. 그게 두 달 좀 더 됨.
ㄴ 주작질 작작 좀 하세요. 어떻게 이게 두 달 좀 된 인간임?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현웃 터짐ㅋㅋㅋㅋ 두 달… ㅋㅋㅋㅋㅋㅋ
ㄴ씨박… 내가 오베 때부터 달린 인간인데 아직도 옆에 평기사라도 지나가면 눈깔 바닥으로 처박고 벌벌 떤다. 근데 두 달 쩌리가 군대를 양민 학살 잼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 무지성 어서 오고.
ㄴ무과금 새끼들 졸라 많넼ㅋㅋㅋㅋ
-근데 이거 레알 진짜임. 나 케이 님 포디나 초보자 던전부터 봤던 시청자인데 그거 딱 84일 전 이야기.
ㄴ그럼 뭐야? …버그인가?
ㄴ…그게 말이 됨?
ㄴ그때도 버그 사용자라느니 말 많았는데, 케이 님 또 고통 받으시겠네.
-1:27:23 하이라이트-중국에 진무십천이라는 굇수들 나옴.
ㄴ어… 나 쟤들 아는데……. 근데 12분 컷?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52 컷.
ㄴ쟤들이 진무십천이라고? 웨이부 팬카페 전부 합치면 5억이 넘는다는? 미친;;;;;;
ㄴ짭이겠지;;;;;;;
ㄴ짭 아님;;;;;;;;;;;;;;;;;;;;;; 씨발… 나 지금 보고 왔는데 지려 버림;;;
ㄴ나도 지금 지려 버린 빤스 손빨래 중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케이를 건드린… 파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라면 절대 그냥 두지 않을 텐데…….
ㄴ…와. 상상했다가 또 지렸다.
ㄴ나도 상상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무릎 꿇고 있다.
ㄴ;;;;;;; 레알 재앙인데?
ㄴ아프리카 난리 났네.
삽시간에 삼백여 개를 돌파한 댓글들은 이제 파킨이 소속된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킨은 물론이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파킨을 감싼 플랫폼을 케이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복수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지독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NPC 병사들이 토악질을 할 정도로 말이다.
* * *
NPC 병사가 들고 있던 창두가 부들부들 떨린다. 영지를 지키는 병사로써 용기를 내야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는 차라리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병사는 토악질을 하며 속을 개워 내는 중이다.
“아, 죽었다.”
쌔비의 가랑이를 톱날검으로 썰어 올리던 케이가 나지막이 혀를 찼다. 팔다리 썰어 버릴 때는 숨통이 붙어 있더니 하반신의 급소를 세로로 가르는 건 치명상이었나 보다.
쌔비의 숨이 끊어지며 손등에 나타난 약탈자의 문신이 더욱 진해진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네.”
팔다리와 하반신을 톱으로 썰어 죽여 버렸다. 아마 고통과 트라우마로 한동안 고생하리라.
“다음은… 보자.”
화면 한쪽에 리스트를 띄웠다. 처리할 놈들의 숫자는 총 14명. 파킨이 놈이 일으킨 파도에 올라타 누나와 나를 신나게 씹어 삼킨 비제이 새끼들. 파킨이 놈 후장 빨아 주던 것들이라 전부 고만고만하기는 하지만 봐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게임 밖에서 상도 형이 짓밟았다면 게임 속에서는 내가 짓밟아 줄 것이다. 물론 작은 문제가 몇 가지 있긴 하다. 놈들이 이곳에 있는지 또 접속 중인지는 둘째치고 위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는다.
“쩝, 그냥 다 때려 부수다 보면 걸리겠지.”
“고, 공격해!”
NPC 기사가 소리치자 병사들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애들아. 처리해!”
“멍멍멍!”
“컹컹!”
내 외침에 내 뒤에 조용히 서 있던 구씨 삼 형제가 움직였다.
구씨 삼 형제는 이번에 정령력을 통해 진화를 하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놀라운 건 내가 가진 능력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신체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곧 오러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 가뜩이나 각종 업적으로 뻥튀기 된 내 오러를 가진 구씨 삼형제는 이제 어지간한 기사 따위가 막을 만한 스펙이 아니었다. 하물며 한 몸처럼 움직이는 세 마리의 공격은 거의 파죽지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력했다.
쫘아아악! 콰쾅! 파아악!
“우아아악!”
“감당할 수 없습니다!”
“도, 도망쳐야 돼!”
전면에 서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구씨 삼 형제의 공격에 찢겨 나가자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컹!”
“크릉크릉!”
구씨 삼 형제는 기사와 병사들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건 내가 사전에 명령한 것이었는데 AI가 보스급으로 변하면서 셋의 지능이 더 뛰어나졌다. 예전에도 꽤 똑똑하게 굴었지만 세세한 전투 설정까지는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셋은 사냥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전투 또한 훨씬 지능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 안 좋은 게 있다면 불명예 수치는 내게 전부 들어온다는 것인데, 덕분에 내가 그동안 쌓은 명예 수치는 이미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뭐 그런데 상관없다. 반대급부로 약탈자 관련 업적들이 차곡차곡 들어오는 중이니까.
[업적 거칠 것 악당 [고급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PVP 시 공격력 0.5% 상승
[업적 무법자 [고급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PVP 시 방어력 0.5% 상승
[업적 대량 학살 [희귀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민첩이 5 상승합니다.
모든 플레이 스타일을 지향하는 세이온인 만큼 약탈자와 관련된 업적도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굳이 평범한 플레이에 지치거나 해서 약탈자가 되는 것이 아닌 업적 수집을 위해 약탈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할 정도다. 물론 약탈자 페널티 또한 무시할 수는 없는 게 약탈자가 되면 죽었을 경우 장비가 대부분 드랍된다. 거기에 내가 지금 죽는다면? 이 도시의 부활터에서 살아나게 된다. 아주 엿 같은 상황이 펼쳐 질 수 있다는 소리.
그뿐인가. 평민일 경우 준법적인 상업 활동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한마디로 알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실력에 웬만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는 약탈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니면 약탈자를 풀 수 있는 아이템들을 구비한 상태에서 약탈자 업적만 챙기고 빠지거나. 어쨌건…….
“달달하네.”
소소하지만 업적도 쏟아지고 굳이 움직일 필요 없이 구씨 삼 형제가 알아서 경험치를 모아 주니 편하다.
그때였다.
“으아악!”
십여 명의 시민 NPC들이 내게 밀려왔고 그대로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하하하! 걸렸구나!”
광소와 함께 한 남자가 현장에 내려섰다.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의 큼지막한 너클을 낀 남자의 이름은 BJ지병건……. 파킨이 새끼의 지저분한 뒤처리를 하는 놈으로 이번 일을 꾸민 범인 중 하나였다.
“내 전설 등급 생체 폭탄은 무적이다!”
들어본 적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폭탄으로 만드는 스킬인데, 보통은 소환수를 자폭시키는 용도로 스킬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놈은 그걸 NPC에게 사용했다.
“더러운 짓이 생활화됐구나?”
껄껄 웃던 녀석의 입에서 미소가 지워진다.
뭐 대단한 위력이 있다고 착각한 것 같은데 놈은 내가 가진 진흙방패도 뚫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NPC라지만 기분이 더럽다. 놈이 사용한 생체 폭탄에는 노인과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삐삐이이이이익!
세이온에서 가장 빠른 공격 속도를 지닌 데스레이가 녀석의 다리를 관통해 버렸다. 참고로 레벨업 한 데스레이는 속도는 그대로지만 쿨타임과 위력이 월등히 강해져서 방비하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무기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녀석이 바닥을 뒹군다. 너도 없는 실력 쥐어 짠다고 통각 최대로 했구나?
삐이이익!
“아악!”
바닥을 버그적거리며 도망치려는 놈의 반대편 허벅지를 데스레이로 관통시킨 후 구씨 삼 형제에게 말했다.
“끌고 와.”
“멍멍!”
구씨 삼형제가 지병건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뭔가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발버둥치는 지병건. 웃기는 건 NPC 시민들이 도망치다 말고 그 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내가 기사나 병사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나 보다.
“이 개새끼들이!”
구씨 삼 형제를 공격하려는 지병건. 그러나 눈치 빠른 흑구가 그걸 먼저 알아챘다.
“크릉?”
“캬웅?”
“크르릉!”
퍼어억!
“어어억?”
따로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흑구, 백구, 황구가 마구잡이로 짓밟기 시작했다. 음… 소환수는 주인 닮아 가는 건가. 난 그 꼴을 감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흠, 슬슬 위치를 옮겨야겠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영주가 다스리는 도시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당장 기사나 병사들이 우스워 보이기는 하지만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뭉쳐서 대항하면 골치 아프다. 그뿐인가? 속세와 담을 쌓은 은거기인이나 대마법사 따위가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는 영지 고유의 특수능력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게 또 매우 위협적이다.
한마디로 완전히 망할 때까지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 줘야 한다는 소리다. 물론 그 전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지.
스르릉.
“히이익!”
내가 톱날도를 뽑아 들자 지병건이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눈을 부릅뜬다.
피와 살점이 엉겨 붙은 톱날도를 이용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이미 아는 눈치다.
뭐, 알고 있으면 편하겠네.
“흑구야. 백구야. 자르기 좋게 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