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절대 지지 않아
“끙, 죽겠네.”
어제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벌인 미친 짓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우리끼리 술자리가 펼쳐졌다. 마트에서 소주며 맥주며 한가득 사 왔는데 밤새도록 부어라마셔라 하다 보니 지금 뱃속이 완전 전쟁터다.
“양맥이라는 건 마시는 게 아니었어.”
술이 거의 떨어져 갈 때쯤 혜미 누나가 가져온 42도짜리 꼬냑으로 상도형이 양맥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맥주컵으로 세 잔 정도까지 마시고는 기억이 끊어졌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어제 우리가 벌였던 술자리의 흔적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깼냐?”
“어, 광수 형.”
커다란 덩치로 주방에서 큰 냄비에 뭔가를 끓이던 광수형이 나를 돌아보고는 피식 웃는다.
분명 나만큼 먹었던 거 같은데 저 형은 숙취도 없나.
“형 혼자 다 치운 거야?”
“뭘 대단한 거라고. 콩나물국 끓이고 있으니까 씻고 나와라.”
“왠 콩나물국?”
“혜미가 콩나물국 노래를 부르더라.”
워낙 곰 같은 덩치라 요리하고는 인연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광수형은 집안일도 잘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손맛을 자랑했다. 싸움도 잘하고 거기에 컴퓨터까지 잘 다루니 아마 상도형은 광수형 없었으면 흥신소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상도 형이랑 혜미 누나는?”
“혜미는 자기 집 올라갔고, 형은 어제 너 침대로 옮기고 둘이서 한잔 더 했더니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
광수 형의 말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 나도 거의 예닐곱 병은 마신 거 같은데 거기서 더 마셨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술고래들이다. 형의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한쪽에 쭈그리고 누워 끙끙거리며 자고 있다. 도저히 일어나라고 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이불을 덮어 주고는 욕실로 가서 간단한 세면을 하고는 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어디 보자.”
어제 협의를 마친 난 곧바로 영지 밖으로 물러났다. 미친놈처럼 공격하던 놈이 갑자기 도망쳤으니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물론 뭔가 대단한 뜻이 있어서 순순히 물러난 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뭔가 거창한 대화를 나누거나 하하호호할 상황이 아니라서 물러난 것이다.
아무튼, 국내에서 가장 큰 게임 커뮤니티를 열어 보니 역시나 1면의 기사는 나로 장식되어 있었다.
예전에도 몇 번 올라가기는 했지만 스크롤을 한참을 내려야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기사였는데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었는지 연관 기사도 몇 개 보인다. 위튜브쪽은 일부러 열지 않았다. 거긴 워낙 국뽕 채널이 많아 오히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드니까.
[[단독 특종] 금요일 한밤의 대량 학살극! 노편집본]
[짓밟힌 아프리카 길드… 그 이유는……?]
[케이! 그를 파헤친다!]
[황제와 케이 사이에는 무슨 일이……!]
말초신경 자극해 주는 기사를 볼 나이도 아니고 굳이 당사자인 내가 노편집본 따위를 볼 이유는 없기에 난 가장 추천수가 많은 기사를 클릭했다.
[어제 20시 30분경 시작된 위튜버 케이의… 아프리카 길드가 점유하고 있는 로렌츠 영지의 외성 세 개 블록을 초토화시키고… NPC 372명을 살해하고 아프리카 길드의 길드원 다수를 학살하여 길드 추산 5억 5천만 원 가량의 피해를… 이와 관련하여 아프리카 길드에서는…….]
“그렇게나 많이 죽였나.”
NPC는 영지의 재산이었다. 세이온에서 통용되는 골드가 가상화폐의 역할을 함께하니 게임에서의 영지수입은 곧 현실의 수입과 같다. 그러니 길드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영지를 먹으려고 발악하는 것이고 말이다. 물론 사냥을 통해 값비싼 아이템을 얻거나 골드를 벌 수도 있겠지만 세이온이라는 게임 자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안정적인 골드 수입처를 얻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사망 시 아이템 드랍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준비 수단으로도 많은 골드가 필요하다. 오죽했으면 길드원 100명 이상의 중견 길드가 레이드 실패 한 번으로 휘청 이는 일까지 벌어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제 내가 아프리카 길드에 안겨 준 피해는 절대로 적지 않은 것이었다.
-네임드다~ 대한민국 네 번째 네임드!
ㄴ네 번째 네임드는 개뿔ㅋㅋㅋㅋ 중소 영지 하나 개판 친 거 가지고.
ㄴㅋㅋㅋ네다븅. 넌 저거 흉내라도 낼 수 있냐?
ㄴ난 보는 내내 지렸다. 졸라 강하더라.
ㄴ나도… -_- 나랑은 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하고 있어. 하… 난 어떻게 하면 저렇게 게임하나…….
ㄴ아서라. 템빨+재능빨+레벨빨 안받쳐 주면 꿈도 못 꾼다.
-근데 NPC 300이상 죽였어? 영지 망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고작 300 죽었다고 망한 건 아니지. 대충 비유하면 팔 한짝 날아간 수준?ㅋㅋㅋㅋㅋ
ㄴ비제이 색히들 맨날 쌘 척 나대더니 유저 하나한테 개박살 나죠.ㅋㅋㅋㅋㅋㅋ
ㄴ바닥 드러난 거지 ㅋㅋㅋ병신들
ㄴ나 아프리카 길드의 루시퍼04이다. 길드 까고 싶으면 아이디 걸고 해라. 찾아서 죽여 버릴 테니까.
ㄴ아무것도 못했쥬?ㅋㅋㅋㅋㅋㅋ에라이 병신들아.
ㄴ씨발 미친놈들아. 전투능력 없는 NPC 학살한 놈이 뭐가 쌔!
-전부 아닥해라. 어제 올라온 전투 영상 전부 검토해 봤는데, 아프리카 병신들이 삽질하긴 했지만 그 케이라는 애가 강한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NPC 중에 전투 능력 없는 NPC가 많다지만 그것도 100단위 넘어가면 웬만한 고렙도 쌈싸 먹힌다.
ㄴ응 어쩔티비
ㄴ응 저쩔티비
-가뜩이나 레벨업하기도 힘든데 웬 개새끼가 나타나서…….
ㄴ웃기는 놈일세. 너 아프리카 길드냐? 케이가 너한테 뭔 짓이라도 했냐? 왜 욕질이야?
ㄴ아니, 왜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쪼렙 영지에 쳐들어가서 개판을 쳐놓냐고!
ㄴㅋㅋㅋ 이 새끼 아프리카에 꼬라박은 주갤 넘이다. 한강 수온이 뜨끈뜨끈하지?
ㄴ그런 거야? ㅋㅋㅋ 하긴 나라도 열받긴 하겠다. 장 열리자마자 지하실로 박히는 거 보면.
ㄴㅋㅋㅋㅋㅋ 인정
-근데 아프리카 길드는 왜 별 대응을 안 하지? 어제 영상 보면 황제가 한 따까리 할 것처럼 굴다가 얌전히 보내주기까지 하고.
ㄴ몰랐냐? 그거 다 파킨이 새끼가 저지른 일 때문이잖아. 그 븅신 놈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자 새끼를 몰라보고 깝치다가 그리된 거지.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파킨이 개새끼
ㄴ사고치고 잠수타고…….
ㄴ사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알고 있는 놈 없음?
-[링크http://bit.ly/2kEiv1n2] 세이온튜브가 알려 준다 <-여기 다 나와 있다.
ㄴ이 새끼 또 낚시질이네. 링크 누르지 마라. 팬티튜브 뜬다.
ㄴ아 개ㅐ끼들!
“난장판이네.”
기사의 연관 검색으로 댓글에 들어갔더니 어제 일에 시끄럽다.
불판이 들썩들썩하도록 뒤집어엎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더 봐 봤자 시간낭비일 거 같다.
룰러의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늘어난 구독자수나 좀 볼까 했지만 곧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콩나물국 냄새에 인터넷을 닫고 거실로 나섰다.
* * *
붉은 돌핀 팬츠 밑으로 매끄러운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꽉찬 D컵의 혜미 누나는 곰처럼 커다란 사내 셋이 사는 집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콩나물국을 들이켜고 있다.
“어허! 좋다! 광수 오빠 한 그릇 더!”
“오냐.”
누나의 요청에 광수 형은 그 울룩불룩한 근육 위로 귀염뽀짝한 앞치마를 두른 채 그릇을 받아든다. 아직 속이 덜 가라앉았다며 국을 깨작거리고 있던 상도 형이 내게 말했다.
“어제 후원 많이 받았더라.”
“얼마나 들어왔는데?”
“거의 육천.”
“와…….”
입이 벌어질 금액이다. 예전에 알바 할 때는 한 달 꼬박 해야 백만 원 넘겼는데… 얹혀 살고 있는 이 빌라가 전세 1억짜리라는데 그 절반을 하루 만에 번 것이다.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뿌리며 혜미 누나가 말했다.
“실력파들은 진짜 부러워. 리액션 안 해도 다 이해해 주니까. 난 만 원만 찍혀도 싸우다가 허리 부러져라 춤추는데…….”
과거 개인 방송인들은 후원이 들어오면 그에 대해 하나하나 전부 리액션을 했지만 세이온 같은 가상현실게임 방송의 경우에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리액션에 관해 매우 관대한 처지였다. 물론 큰 금액이야 따로 시야 한쪽에 띄워서 언급을 해 주기는 하지만 난 그것도 안 뜨도록 부탁했다.
가상현실이라 듀얼모니터도 안 되는데 한참 민감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 시야를 가리니 전투력이 반감되는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육천이면 위튜브 정산금과 세이온에서 번 돈까지 합쳐서 괜찮은 작업실 하나 꾸며도 될 거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의견을 꺼냈을 때 혜미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이야. 너 그동안 방송 쉬어서 큰손들이 반갑다고 쏜 게 절반! 그리고 제대로 된 방송실 꾸미려면 여기보다 좀 더 중심가 쪽으로 가야 하는데 거긴 못해도 80평 기준으로 월 육백만 원이 넘어. 거기에 지금은 가챠를 거의 안 해서 따로 드는 게 없다지만 고레벨 돼서 괜찮은 장비라도 하나 마련하려면 수억 금방 깨져. 그리고 후원이라는 건 불안전자산이야. 돈 많이 들어온다고 흥청망청 쓰다가 나중에 후원 줄어서 소비패턴 못 바꾸고 빚더미에 앉는 애들 많이 봤어.”
“그, 그런가?”
누나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에 뭔가 사고자 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뭐 그래도 광고나 이것저것 프로모션으로 따로 수입 챙기기도 있긴 하지만 전업으로 위튜브 하는 애들 중에 온전히 수입만으로 먹고사는 애들 별로 없어.”
“흠.”
“물론 네가 지금하는 것처럼 꾸준히 성장한다면 세이온 하면서 벌어들인 수익만으로 충분히 플렉스 가능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정현이를 서포트할 만한 역량이 안 된다는 거지. 안타깝게도.”
뜬금없이 상도 형과 광수 형을 턱짓하며 눈치를 주자 상도 형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가 정현이 관리해 주는 건 아직 이른가.”
“이른 건 아닌데… 지금은 어제 오퍼 들어온 굵직한 MCN 회사가 워낙 많아서 그중에 하나 붙잡고 케어 받는 게 더 낫다는 거야.”
“MCN이라… 근데 어중간한 MCN은 지금까지 다 쳐내지 않았어? 우리가 더 낫다며”
“원래라면 어중이떠중이 MCN보다야 우리들이 낫겠지만 정현이가 어제 너무 핫해져 버린 탓에 아침에 들어온 조건들이 전부 심상치 않다는 거야.”
“심상치 않다면?”
“뭐, 세계 탑10에서는 전부 오퍼가 왔고, 대우도 거의 준네임드급이랄까.”
MCN이라는 건 위튜버들에게 방송에 필요한 각종 유무형적 지원을 해 주면서 수익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회사를 말했다. 보통 6:4나 7:3 정도의 수익 배분을 하는데 근래에는 워낙 개인 방송을 지향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5:5 수익 배분 계약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막상 계약해 놓고 관리는 안 해 주면서 따박따박 수익 가져가는 놈들은 양반이고, 악덕 계약서로 순진한 위튜버들 뒤통수치는 3류 MCN 회사들도 난립한 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런 것들을 걸러 줄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
“정현이는 9:1 부른 회사만 헤아려도 한 트럭이야. 한 끗발 떨어지는 곳은 0.5:9.5도 불렀어. 굳이 우릴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지금 이대로 지원 받아서 꾸준히 성장하면 나중에는 10:0 계약도 가능한 게 현재 정현이 평가랄까?”
“흐음…….”
누나의 말에 두 형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나는 형들과 혜미 누나로 나를 케어하는 팀을 짜려고 했었다. 두 형이 초짜기는 하지만 둘 다 능력이 출중했고, 방송은 혜미 누나에게 차츰 배워 나가면 되었으니까. 당장에는 힘들지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나 말로는 전문 MCN이 이렇게 달려들어 준다면 당장에는 MCN 회사와 계약하는 게 수익창출에는 더 좋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누나 말이 틀린 건 없지만 내 의견을 말하자면 일단 싫어.”
“왜? 전문 MCN 회사가 케어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괜히 우리 때문에 네가 더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막말로 능력 있는 MCN 업체랑 계약하면 걔네가 가진 인맥도 활용할 수 있고, 광고 같은 것도 더 좋은 조건으로 받을 수 있고 말이야. 광수 오빠가 아무리 편집 잘한다고 해도 전문 편집자에 비할까. 내가 아무리 세이온 상식에 밝다고 해도 천상계에서 노는 애들 정보에는 접근하기 힘들어. 상도 오빠는? 도움 안 돼. 그냥 주먹만 잘 쓰지.”
“야, 나도 컴퓨터 할 줄 알거든?”
혜미 누나의 말에 상도형이 버럭하고 화냈다.
“네 다음 게임 설치 할 줄 몰라서 모바일 게임만 하는 컴맹.”
“…….”
“아무튼 잘 생각하라고. 우리야 우량주인 너 잡는 게 최선이지만 동생한테 빌붙어서 빨대 꽂고 살기는 싫다는 거야. 꼭 네가 아니더라도 우리도 나름 먹고살 만하니까. 내 말이 틀려?”
말을 마친 셋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마 내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셋이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그런 셋을 바라본 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누나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어.”
“그게 뭔데?”
“내가 같이 팀을 짜려는 이유는 셋이 빌붙거나 빨대 꽂는 게 아니라 나한테 필요하기 때문이야.”
“무슨 필요?”
“일단 내 주력 스킬이 뭔지는 전부다 알지?”
내 물음에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이터. 즉, 보스 몬스터를 단독 레이드 했을 때 보스의 스킬을 무작위로 흡수하는 신화급 스킬이다.
“다른 사람들을 엄두도 못 내는 보스의 스킬을 쓸 수 있으니 얼핏 보면 먼치킨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것도 알 거야.”
“높기만 해? 지랄맞지.”
누나가 긍정하듯 고갤 끄덕인다.
‘스킬이터.’
보스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를 단독 레이드를 해야 한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엄두도 못 낼 프로급 이상의 피지컬과 재능, 레벨과 장비가 뒷받침 되어야 도전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중저레벨의 보스 몬스터만 찾아 단독레이드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중저레벨의 보스 몬스터가 가진 스킬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개수의 제한도 존재했다. 어중이떠중이 스킬을 가진 보스도 다수고…….
예전 광역 매혹과 데스레이 스킬을 얻었던 레이드 보스 호문클루스도 운이 기가 막히게 따라 준 덕분에 퇴치한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당시 레벨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사 간 다음에 그 주소도 털리거나 혹은 내 스킬을 알고 날 방해하려 든다면?”
“그걸 누가 알아? 설마 또 개인 정보가 샌 거야?”
“그건 아니고 일단 만약이라고 만약…….”
“흠, 보스 단독 레이드는 많이 힘들어지겠지. 말마따나 주위에 있던 누군가가 눈먼 공격 하나만 날려도 단독레이드 타이틀은 날아가는 거니까.”
“맞아. 그리고 만약 내가 내 적이라면 내가 보스레이드를 할 때를 노릴 거야.”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게 MCN이랑 무슨 상관이야? 헤븐즈 게이트도 그렇지만 MCN도 고객 정보는 무조건 비밀인데?”
“누나는 그걸 믿어? 파킨이 그 새끼가 플렛폼에서 내 개인정보를 알아내서 그 개짓거리를 했는데?”
내 말에 혜미 누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얼마 전 습격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하긴 누나도 당시 사건의 당사자이니 내가 이렇게 정색하는 것도 이해가 가리라. 이건 절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에도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스토킹이나 현피를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세이온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해외에서는 살인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나름 국내 굴지의 플랫폼 개인정보도 그렇게 뚫렸어. 날 주목하는 놈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정보를 하나라도 더 캐내려고 혈안일 텐데, 내 주력 스킬이 안 밝혀진다고 자신할 수는 없잖아.”
물론 밝혀진다고 해도 대책은 있었다. 거대 길드에 들어가서 협력을 받아 길드원으로 사방 포위하고 보스를 혼자 레이드하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미개척지까지 혼자 뚫고서 보스를 사냥하던가. 그렇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스킬을 노출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우리밖에 없다? 잠재수익을 전부 포기하더라도?”
“가장 믿을 수 있는 것도 맞지만…….”
“맞지만?”
“우리 넷이 뭉치면 난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아.”
나는 누나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겠지만 난 그만큼 자신 있었다.
오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고아 출신이기에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만으로도 인생이 끝나는 게 대한민국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확실히 단언하는 건 정말 절대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