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유일신 헤븐
“파킨이 퍽치기 당해서 중환자실이라네… 헥헥…….”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열심히 런닝머신을 뛰던 혜미 누나가 말했다.
“퍽치기?”
“헥헥… 그렇다네.”
“언제? 어쩌다가?”
“헥… 일주일 전에… 헥… 술 먹고 골목에 뻗어 있다가 당했대.”
“저런… 그래서?”
“헥… 너무 오래 방치되어… 훅훅… 있어 가지고 아직 중환자실에서 못 내려오고… 헥… 있다더라고……. 쉬쉬하면서 사고를 숨겼는데 일주일째면 뭐…….”
“흠…….”
뜬금없이 들려온 파킨의 소식에 기분이 퍽 난감하다.
“네 탓… 헥… 아니야. 마음 쓰지 마.”
“그럴 리가 있나.”
난 그렇게 오지랖 넓은 사람이 아니다. 나나 내 주변 사람만 생각하기도 바쁜 세상. 굳이 적이었던 놈을 내가 왜 걱정할까.
단지 난감하다는 건 파킨은 앞으로 써먹을 구석이 많은 놈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나와 대립된 사이였고, 아직 내가 언더독인 입장이기에 녀석을 뜯어먹으며 채널을 좀 성장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한 방에 훅 가 버렸으니 향후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헥… 진짜 아무 상관… 헥… 없나 보네?”
“응. 깨어나거나 말거나.”
“하긴 그렇네. 하긴 그것도 그 새끼 업이지. 맨날 그렇게 술만 처먹고 다녔으니까. 넌 그러지 마라.”
“난 원래 술 안 좋아하거든?”
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원래 술 마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 처지라는 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안 마시게 된 거긴 하지만…….
“그래? 그럼 다행이고. 훅… 훅… 아이구… 좀 쉬자.”
“어.”
누나와 함께 런닝머신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는데 눈앞에 파란색의 음료수 병이 불쑥 들이밀어 진다. 시선을 들자 몸에 착 달라붙는 회색 타이츠에 스포츠 브라탑을 입은 여자가 내게 음료수를 수줍게 내밀고 있다.
“저기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네?”
“이, 이게 흡수도 더 빠르고, 맛도 있고…….”
뭔가 횡설수설하면서 자꾸 내미는데 왠지 받기가 부담스럽다. 그렇지 않은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음료를 내미는데 그걸 턱하니 받는다는 게. 내가 음료수와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니 누나가 내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야야!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어. 응.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내가 음료수를 받아들자 여자가 헤 하고 웃더니 자기 자리로 도도도도 뛰어간다.
고개를 갸웃하고는 음료수 뚜껑을 열려는데 뚜껑 윗부분에 검은 색으로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다.
“인기 좋네.”
“무슨 소리야.”
“쟤 이 건물주 딸이야. 너 옆에서 기웃거린 지 한 달도 넘었는데 몰랐어?”
“그래?”
“어휴, 눈치 없는 것아. 여기 트레이닝 센터 너 들어오고서 여자 회원 엄청 늘었어. 그게 왜일 거 같니?”
전혀 몰랐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사람이 늘긴 한 거 같은데…….
“몰라.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얘가 얼굴값 하네.”
“얼굴값은 무슨……. 지금 내가 여자 사귈 처지는 아니잖아. 개인 방송인으로 소문 안 좋게 날 수도 있고.”
이번에 파킨이 사건을 겪으며 느낀 게 있다. 남자는 아랫도리 간수는 정말 잘해야 한다는 것. 여캠이랑 엮여서 위튜브에 폭로 뜨고 연관 기사 몇 번 났더니 단방에 훅 가더라. 반쯤은 공인이나 마찬가지인 개인 방송인에게 사생활이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소문은 무슨……. 개인 방송인은 뭐 사람 아니니? 만년 솔로인 척 하는 애들도 사귈 거 사귀고, 놀 거 다 놀면서 하는 거야. 내가 아는 어떤 새끼는 모태솔로 찌질이 컨셉으로 떴는데 밤마다 여자 끼고 양주 빠는 게 취미더라고.”
“그건 걔들 사정이고, 아무튼 난 관심 없어.”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누나는 ‘어휴 고자 새끼’라며 한숨을 내쉬고는 내 하반신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마치 ‘써 보기는 했냐?’라고 묻는 거 같다. 쓰으… 보여 줄 수도 없고.
“흐흠. 그건 그렇고 ‘현자의 돌’은 어때?”
“말 돌리기는.”
“아, 얼른.”
일주일 전 난 알레그로에게 멸신검을 완벽하게 배우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현자의 돌’의 추적을 누나에게 부탁했었다.
“일단 현자의 돌은 지금까지 딱 두 번 나왔어. 유럽 쪽 쿨세드라라는 용족형 보스가 드랍했다는데 들어보니까 근처 상위 길드가 잡았다고 하더라고.”
“보스 드랍이라… 레벨은?”
“그건 안 밝혀졌어. 아마 숨기는 거겠지만… 추정치는 200레벨 이상?”
“으음…….”
내가 지금까지 잡았던 최고 난이도의 보스는 켈드리언이라는 50레벨짜리 보스가 다다. 알레그로도 보스기는 했지만 인간형과 용족형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건 그렇고 200레벨이라니… 감이 안 잡히네.
“설마 솔플로 도전해 보려고?”
“에이, 그럴 리가…….”
내가 아무리 실력에 자신 있다고 해도 굳이 개고생해 가며 휘발유를 끼얹고 불바다에 뛰어드는 취미는 없다. 보스의 레벨이라는 건 유저나 일반적인 몬스터의 레벨과는 그 척도의 가치가 다르다. 그 덩치가 크면 클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것. 그 강함에 대한 견적도 안 나오는데 솔플이라니……. 그래도 현자의 돌이 드랍되는 아이템이라는 걸 알아낸 것만도 큰 성과다.
“그럼 그 현자의 돌 용도가 뭐야?”
“신화급 연금술 재료템. 정확한 수치는 모르는데 능력치 영구 상승 비약 재료라고 하더라고”
“세이온에 그런 것도 있었어?”
“나도 몰랐는데 연금술 계열에 있데. 아무튼 경매장에 나왔는데 가격은 개당 150만 골드”
현금으로 따지면 무려 15억…….
그런데 확실히 능력치 영구 상승 비약이라면 모두가 탐낼 만하다.
“그거 살려면 유럽 가야 하나… 멀구나.”
유저 친화적이라는 게임 트랜드와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무척이나 불편한 세이온이다.
세이온의 세상은 실제 지구의 크기와 같다. 유럽과 아프리카라면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현대에서야 워낙 이동이 자유로워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몇 달은 소모해야 도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누나의 대답에 난 벙찐 표정이 되었다.
“멀다뿐이야? 못 가잖아. 아직 개척이 안 돼서.”
“못 가?”
“응, 이동 관련 스킬 만땅 찍은 여행 위튜버 몇이 도전하기는 했는데 몬스터한테 다 죽었다고 하더라고. 아마 전에 이용했던 포탈 같은 게 발견되면 모를까 지금은 어림도 없어.”
“끙, 자세히 좀 말해 줘.”
“일단 세이온이 미친 듯이 넓다는 거는 알지?”
“응. 지구 크기랑 비슷하다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구보다 더 넓어. 연결되지 않은 차원이라는 개념까지 있는 게 세이온이니까.”
이어진 누나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무리 세이온 유저 수가 많다지만 미치도록 넓은 주제에 이제 오픈한 지 일 년이 갓 되어 가는 시점이라 유저들도 간신히 정착을 완료한 형편이다. 슬슬 개척을 시작하여 가까운 국가들은 왕래를 시작했지만 대륙과 대륙 사이의 이동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 헤븐즈게이트사에서도 어떻게든 유저들의 방향을 개척으로 돌리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하고는 있지만 세계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된 입장이라 아직 미개척지가 80%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게임이 이래?”
“그거야. 뭐 세이온이라는 게임 자체의 시작점이 다른 여타 게임이랑 다르니까. 다른 게임이야 야금야금 맵 늘리지만 세이온은 처음부터 완성하고 오픈했잖아. 게임을 만든 헤븐즈 게이트 GM들도 못 넘어 다닌다는데 말 다 했지.”
“그럼 운영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야 각 나라별로 GM들을 두고 자체적으로 운영해. 근데 넌 게임 한 지 3달 됐는데 아직 이런 것도 몰랐어?”
“끙… 몰랐어.”
“신경 좀 써!”
“게임만 잘하면 되지 뭐.”
“게임만? 말은 정확히 해야지. 쌈질만 잘하는 거지.”
누나의 반박할 수 없는 팩트 폭행에 할 말이 없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누나 그 개척이라는 거 유럽까지 가능해?”
“아니, 당장은 불가능해. 완전 극과 극이라서. 그나마 중국 애들이 서쪽으로 좀 기웃거리고 있고. 우리나라 길드들도 있긴 한데 걔들은 폐쇄적이고 일본 쪽이랑 나눠먹을 땅이 널렸는데. 현자의 돌 때문에 그런 거면 굳이 유럽 쪽으로 갈 필요도 없어. 200레벨대 보스가 유럽 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레벨업 하면서 천천히 기회를 노리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런가. 레벨업이라…….”
“그렇지. 그런데 넌 그보다 명예 점수 복구가 먼저 아니니?”
“명예 점수?”
“응. 명예 점수가 심해급으로 떨어져서 준법 NPC들이 아는 채도 안 한다며. 그러면 레벨업이나 장비 모으기 힘들 텐데.”
“난 글쎄…….”
보통의 평범한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NPC들과의 관계를 통해 퀘스트를 얻고 그걸 해결하며 몬스터를 잡는다고 하는데 난 굳이 그럴 필요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난 몬스터보다 유저들이 더 잡기 편하니까.
강한 몬스터일수록 덩치가 크고 덩치가 크면 약점을 공략한다고 해도 쉬이 죽이지 못한다. 그런데 유저는?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치명타만 제대로 꽂으면 쉽게 죽일 수 있다. 그뿐인가? 골드는 둘째치고 아이템도 강화된 완제품을 드랍하고 쏟아붓는 노력에 비해 경험치도 짭짤하다.
물론 내가 PK에 미친놈도 아니기에 약탈자 한정이지만 명예 점수는 차츰 복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어진 누나의 말에 난 벙 찐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야, 멍청아. 너 그 레벨 되도록 성당 안 가 봤지?”
“성당이… 뭐야?”
“…….”
* * *
날개 잃은 초보자의 도시.
코리 왕국의 포디나는 초보자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500년의 역사를 지닌 서부 대도시였다. 유저들은 두메 산골의 이름 없는 화전민의 신분으로 시작하여 그럭저럭 쓸 만한 여관이나 대장간, 마구간 따위가 있는 마을을 거쳐 대도시인 포디나에 도착한다.
처음 포디나에 도착한 초보자들은 일단 그 크기와 복잡함에 질려 버린다. 외성의 그 용도에 따라 수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그 구역 하나하나가 웬만한 동 크기라는 건 둘째치고, 긴 시간에 걸쳐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도시이기에 지도는커녕 완벽한 지리를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할 만큼 복잡했다.
영지의 서쪽으로 이틀을 달리면 치나 제국의 국경지대가 있으며 북쪽과 동쪽으로는 긴 평원이 접해 있는 이 대도시의 남동쪽 외곽에는 꽤나 커다란 성당이 지어져 있었는데, 둥근 아치형의 커다란 문과 고대 그리스의 신전과 같은 거대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이 석조 건물은 세이온에서 가장 중요한 초보자 코스 중 하나였다. 나만 몰랐지만…….
‘헤븐 성당’.
세이온에서는 단 하나의 종교만이 존재했다. 세이온의 게임사가 헤븐즈게이트이기에 누군가는 ‘신 이름 참 성의 없이 지었네.’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 내막을 알게 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합당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게임사가 세이온 내의 NPC 통제를 바로 신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자율성을 지닌 AI들이기에 NPC들을 게임사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모두 통합할 만한 맹목적인 시스템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세이온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인 유일신 헤븐의 존재 이유였다.
“이럴 수가…….”
난 왜 누나가 그렇게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는지 성당에 와서야 알 수 있었다.
“헤븐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헤븐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디리링-
성당 한편의 공터에는 3m가량 될 법한 큼지막한 바위 돌상 아래 세린이(세이온 초보자)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고, 거대한 광장에는 작은 시장이 있어 많은 초보 유저들이 돌아다니며 서로 아이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코볼트 장갑 1실버요.”
“내구도가 쓰레기잖아요. 5쿠퍼에 주세요.”
“즐!”
“최하급 염색약 검은색 팔아요! 개당 4쿠퍼! 3개 사면 10쿠퍼에 팔아요!”
“레벨 20 보상 받았다!”
“뽑아 보자!”
“미쳤냐. 나 혼자 뽑을 거야.”
“축복 받았어?”
“이따가 렌들턴 잡화점에 가서 재정비하고 다시 가자. 내가 이번에는 절대 안 죽는다.”
“전설! 전설! 전설! 제발! 아아악!”
포디나에 이렇게 북적거리는 곳이 있었나.
누나의 말로는 성당에서 10레벨부터 30레벨까지 초보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대략 혜택을 보면 하루에 한 번씩 2시간짜리 축복을 내려주고, 10레벨이 오를 때마다 이곳에 오면 20장의 아이템 뽑기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초보자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라는 뜻. 그러나 난 몰랐다.
“환장하겠네.”
난 유저들의 사이를 걸어 돌상으로 걸어갔다.
헤븐이라는 신을 표현한 돌상인데 척 봐도 기독교 짭이다. 그나마 다른 거라곤 십자가를 가져다쓰기는 눈치 보였는지 그냥 십자 표시다. 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자 눈앞에 반투명한 파란 창이 나타났다.
초보자 이벤트.
-10레벨 스킬 뽑기권X10: 수령
-20레벨 아이템 뽑기권X20: 미수령 (기간 만료)
-30레벨 아이템 뽑기권X30: 미수령 (기간 만료)
-40레벨 아이템 뽑기권X30: 미수령 (기간 만료)
-40레벨 희귀 한정 뽑기권X5: 미수령(기간 만료)
축복
-헤븐의 축복
-모든 능력치+5, 생명력+200
-명예 점수 +5
2h (기간 만료)
퀘스트
-헤븐의 신상 (약탈자 불가)
-신이 된 남자 (약탈자 불가)
-성기사 고든 (약탈자 불가)
“썩을…….”
누나가 나를 멍청이라고 한 이유를 조금은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두 개의 단기 퀘스트와 한 개의 연결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데 연결 퀘스트의 마지막 보상이 능력치 포인트 10개란다. 문제는 이것이 10레벨부터 시작하여 40레벨에 끝나는 장기 퀘스트인데, 현재 내 상태로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것. 거기에 아이템 뽑기권 80장과 희귀 한정 뽑기권 5장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놓쳐 버렸다. 헤븐의 축복이라는 것도 엄청 좋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붓산아이의 파티와 함께했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냥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아, 젠장…….”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기분만 더러워졌다.
그렇게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돌아 걸어가려 할 때였다.
“멈춰라! 살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