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95화 (95/154)

95. 불가능의 퀘스트

“케이 님. 저… 팬인데요. 사인 좀…….”

큼지막한 방패와 펜이 수줍게 내밀어진다.

“이름이?”

“머리까기소녀요. 에헤헤.”

난 고개를 들어 머리까기소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빨간 문신으로 도배되어 그로데스크하게 보이는 얼굴로 수줍어하니까 영 적응이 안 된다. 문신의 모양은 랜덤인데 약탈자 중에 문신 잘 빠졌다고 일부러 약탈자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더라.

“쩝… 여기요.”

“감사합니다. 히히히. 자랑해야지!”

건네받은 방패를 인벤토리에 집어넣더니 좋아서 방방 뛴다.

곧바로 목을 썰어 버리려고 했는데 곧바로 머리 박으면서 ‘케이 님 팬이에요’ 하니까 차마 칼이 안 뽑히더라. 그냥 눈 꾹 감고 썰어 버렸으면 주머니 좀 든든해졌을 텐데… 쯧.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난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약탈자 넷의 살인적이고 무자비한 심문을 받고 있는 젊은 놈을 바라봤다.

“이 새끼야. 급하게 모집하더니 너 이거 이중 퀘스트지? 누구야? 누가 우리 죽이랬냐?”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씨발! 발칸 그 새끼냐? 어? 어! 그 새끼가 누님이랑 우리 제끼라고 시켰지?”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이 새끼가 진짜! 하. 좋아. 너 손가락 길드 소속이지? 내가 오늘부터 너네 대가리부터 다 쳐 버린다!”

“헉! 제발… 그것만은…….”

“왜? 이제 후회되냐? 응? 너 새끼야. 우리 누님이 눈치가 빨라서 바로 머리 안 박았으면 우린 진즉에 다 죽었어. 알아? 여긴 피바다 됐다고!”

“압니다. 엘프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분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단지 저분이 워낙 느닷없이 찾아오셔서 뒷조사할 시간도 없었고, 또 정체를 숨기셔서…….”

“씨발아. 그런 걸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정보 길드잖아. 그리고 씨발 네가 먼저 눈치채고 대가리 박아 사태 수습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그만!”

머리까기소녀의 서슬 퍼런 한마디에 심문을 하고 있던 넷의 입이 한일자로 다물어진다. 오… 카리스마 있네.

“케이 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니까 우린 여기서 물러난다.”

“그래도 누님.”

“닥치고 그만 가자! 따라와!”

“네넵.”

카리스마 뿜뿜하며 넷을 문밖으로 내쫓은 머리까기소녀가 나를 향해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럼 케이 님 좋은 시간 되세요오.”

“네. 다음에 뵈요.”

음… 눈치가 빠르네. 하긴 약탈자로 고인물 되려면 남을 잘 죽이는 것보다 위험을 빨리 캐치하고 피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고개를 돌려 젊은 놈을 바라보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순종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넌 나랑 따로 할 일이 있지?”

딸꾹…….

“안 잡아먹는다.”

* * *

부엉이굴 본부에서 튀어나와 한참을 전력으로 달리던 머리까기소녀는 잠시 후 암흑가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실제로 뛴 것도 아니건만 심장이 벌렁벌렁한지 숨을 헐떡인다.

“헉… 헉… 허미 씨팔… 진짜 간 떨려 뒈지는 줄 알았네.”

영문도 모르고 그녀를 따라 뛴 넷 중 쌍검을 든 이가 물었다.

“누님. 왜 이렇게 뛰신 거예요?”

“후우… 위험했어.”

“위험했다니? 그게 뭔 소리예요? 케이 새끼가 그냥 가라고 했잖아요.”

“그러게 듣던 것보다 너무 순둥순둥하던데 혹시 짭 아냐?”

“어? 너도 그 생각 했냐? 나 누님 귓말만 아니었으면 환영참으로 배때지 쑤셔 보려고 했어.”

금세 기세등등해진 넷이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세간에는 네임드라느니 절대강자라느니 띄워 주지만 항상 그런 가십 기사의 반은 과장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재능이 있는 이들을 MCN 회사들은 놓치지 않는다. 데려다가 스킬과 아이템과 경험치를 먹이고 키워 한바탕 활약하게 한 다음 뒷돈을 먹인 인터넷 언론으로 반짝 띄우는 것이다.

케이도 처음에만 요란했지 워낙 그 등장이 급작스럽고 실력파답지 않게 얼굴이 너무 반반해서 대부분 어디 거대 MCN에서 시나리오 써서 등장시킨 것으로 추측 중이다. 막말로 얼굴 먹어 주고 실력 좋은 남자 위튜버는 잘만 키우면 대박이었으니까.

아프리카가 다스리던 영지가 초토화되었다느니, 수십 수백을 베었다느니 하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에 넘어가기엔 그들의 세이온 짬이 그리 녹록치 않다.

누님의 귓속말 때문에 장단을 맞춰 주느라 굽실거렸을 뿐 그들 오인조는 포디나에서 활동하는 약탈자 중 악질 고인물로 통했다. 초보자 도시에 웬 고인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많은 약탈자 고레벨들이 포디나에서 활동했다. 워낙 규모가 큰 도시라는 이유와 더불어 근처에 적대국인 치나 제국이 있어 여차하면 국경을 넘어가 학살을 통해 명예 점수 복구 후 일반인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드득.

“닥쳐 병신 새끼들아.”

“…….”

“…….”

머리까기소녀가 이를 갈며 외치자 넷의 입이 한일자로 닫혔다. 그녀가 이 오인조의 우두머리인 이유는 유일한 홍일점이어서가 아니었다. 가장 강하고 눈치도 빠르며 머리도 좋아서 우두머리가 된 거다.

“날 기억도 못 했어.”

“무슨 말입니까? 대장?”

“너희 내가 아프리카 비제이 천호 팬인 거 알지?”

“그쵸. 그 새끼한테 도네 쏜다고 애들 목도 열심히 따고 다니는데…….”

“나 일주일 전 케이 님이 아프리카 길드 영지에서 그 미친 학살극 벌일 때 거기 있었어. 천호 님이 팬미팅한다고 해서 약탈자까지 풀고 참석했었다고.”

팬미팅 한번 참석하겠다고 약탈자 문양을 지우기 위해 치나 제국으로 넘어가 쪼렙 약탈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다. 그렇게 꽃단장을 하고 팬 미팅에 참석했는데 웬걸 하필 그날이 웬 괴물로 인해 영지가 피바다 된 날이다.

“팬 미팅 중에 긴급소집 듣고 천호 님 싸우러 나가시고 나도 천호 님한테 눈도장 한번 받아 보려고 갔다가…….”

“갔다가요?”

“그 천호 님이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머리 따이더라.”

아프리카 비제이들 중 실력파로 상당한 인지도를 지녔던 천호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머리가 공중으로 빙글빙글 날아오르고 그 머리를 장난스럽게 걷어차던 케이의 상큼한 미소를 다시금 떠올린 순간 몸을 부르르 떠는 머리까기소녀다.

“나도 복수하려고 달려드는데 뭔 빨간 빛이 번쩍하더니 내 앞에 있던 기사들부터 내 뒤에 있던 애들까지 전부 배때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더라. 난 다행히 키가 작아서 팔만 날아갔지.”

“허어…….”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안 죽으려고 포션 빨고 붕대질하는데 근처에만 있어도 피가 쭉쭉 빨려 나가. 거기에 자동 방어 마법 방패도 있고, 초광역 군중제어기에 데리고 다니는 그 미친 늑대인간 소환물들은 웬만한 기사도 찜 쪄 먹더라. 거기까지 보고 기가 질려서 미친 듯이 도망쳤어.”

“세, 세상에…….”

“알겠냐. 병신 새끼들아. 아까 내가 곧바로 대가리 안 처박았으면 너희들이랑 나랑 아이템 싸그리 털리는 거였다고…….”

자신과 동생들의 몸을 간간히 훑는 그 눈은 마치 손에 들어올 아이템을 감정하는 것 같았다. 이 머리에 돌멩이만 든 멍청이들은 그것도 눈치 못 챘고.

약탈자들은 죽으면 아이템을 모조리 드랍한다. 아무리 평소에 인벤토리를 싹싹 비우고 다닌다지만 착용하고 있던 건 모조리 뺏긴다는 뜻이다. 전신에 시뻘건 약탈자 문양 새기고 아이템 거지가 되면? 세이온 인생은 망했다는 뜻이다. 아이템 털린 고레벨 약탈자는 같은 약탈자들에게 좋은 먹이였으니까.

꿀꺽…….

쌍검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대장?”

“어떻게 하긴 다른 도시로 가거나 치나 제국 넘어가서 신분 세탁하고 양민 행세해야지. 에잇… 한동안 포디나는 돌아보지도 말아야지.”

* * *

오인조에게 쩔쩔매던 젊은 놈은 나를 지하 깊숙한 밀실로 안내했다.

“그… 저도 케이 님 팬입니다.”

“닥치고.”

아까 그 머리까는소녀가 팬이라면서 달라붙을 때는 손발이 오글거려서 도저히 심한 말 못 하겠더니 남자팬이라서 그런지 견딜 만하다.

“그… 의뢰 때문에 오셨죠?”

“그렇지.”

“흠흠, 저는 정보 길드 부엉이굴의 포디나 지부장 조니라고 합니다.”

“지부? 너 아까는 본부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그렇게 하면 상대가 좀 쫄게 돼서… 죄송합니다.”

“후, 앉자.”

“옛!”

본부건 지부건 난 용건만 보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건 상대가 유저라는 것이다. 만약 NPC였으면 곧바로 친밀도 극악을 찍었을 텐데. 난 성당에서 받은 퀘스트의 내용을 조니에게 말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연다.

“포디나에 헤븐께서 내려주시는 가호를 악용하는 무리라면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이쪽에서 해결 안 되니 성당 쪽에서도 뜨는군요.”

“……?”

꽤나 난해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대답이 쉽다.

“그거 중국애들 작업장을 말하는 걸 겁니다.”

“작업장?”

“예. 이 포디나라는 도시가 중국 애들이 작업장 꾸미는데 정말 천혜의 장소거든요. 일단 치나 제국과 붙어 있어 이동이 용이하고, 주 작업장으로 이용되는 지하수로와 쥐굴은 너무 넓고 깊어서 작정하고 숨거나 버티면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작업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게임의 시장 경제를 좀 먹는 요소였다. 그뿐인가. 작업장을 통해 생산된 골드는 대부분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 탈세나 각종 위법한 일에 쓰인다. 양자슈퍼컴퓨터로 완벽에 가까운 게임을 구현했다는 헤븐즈게이트 또한 작업장은 골치였다. 시스템적으로 너무나 완벽했기에 오히려 접근하기 힘들었고, 시스템 외적인 침략에 무력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랄 건 양자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핵이나 불법 메크로 등이 완벽히 차단되어 소프트웨어적인 대규모의 작업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하수로에 있는 작업장인가?”

“네.”

지하수로는 나도 초창기에 많이 이용한 곳이었다. 당시에도 중국 애들이 극성이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몇 달 사이에 더 심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작업장과 가호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그런데 그거랑 헤븐이 내려주는 가호랑 상관있나?”

“그건 걔들이 작업장을 통해 캐릭터 20레벨이 되면 포디나 성당에서 초보자 이벤트로 아이템 뽑기권 30장을 받거든요. 그 뽑기권들이 문제입니다. 대부분 꽝이지만 가끔 대박이 터지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그 후 캐릭터를 삭제 후 다시 1레벨을 만들어 작업에 투입되는 겁니다. 이게 참 문제가 그 작업장에 투입되는 숫자가 너무 많다는 거랑 보통의 게임이라면 그냥 게임만 망하고 말 텐데 게임 머니가 가상 화폐 역할도 하니 실제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쳐 헤븐즈게이트사가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는 중입니다.”

초보자 이벤트로 퍼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걸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일종의 형평성 문제였다. 특히 세이온의 경우 전체적 구간의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해 일정 부분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플레이가 힘들 정도라고 하니 저레벨 구간에서는 무료 뽑기권이라도 퍼줘야 한다.

“그렇게 큰 문제라면 작업장 관련된 처단 퀘스트를 막 뿌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저희 정보 길드나 다른 퀘스트에서도 작업장 소탕 퀘스트가 나오기는 하는데 저쪽 규모가 워낙 만만치 않아서 지지부진한 형편입니다.”

“퀘스트가 만만치 않다?”

“넵. 보시겠습니까?”

“그래.”

정보 길드 지부장 조니가 테이블을 두들기자 테이블 한쪽이 열리며 잘 정리된 서류함이 나타났다. 그중 붉은색으로 된 서류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자 눈앞에 붉은색 반투명 창이 생겨났다.

[쥐굴 청소][전쟁 퀘스트-불가능]

-쥐굴을 잠식하고 있는 ■■■들을 소탕하고 그 근원을 발본색원하라.

-■■■ 처단:

필요 조건: 없음

보상

-50,000골드

-아이템 뽑기권x1,000

-명예 점수 +100,000

보상이 엄청나게 좋다. 클리어만 한다면 거의 억대의 수익을 보장하려니와 명예 점수 십만 점이라면 한두 명 정도는 귀족의 지휘도 노려 볼 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보상이 좋은 이유는 한편으로 당연했다.

“전쟁 퀘스트? 그것도 불가능이라니… 쥐굴이 치나 제국 영토에 작업장 대가리가 치나 제국 황제라도 되냐? 침공전이야?”

“예. 이건 치나 제국… 아니 중국 공산당 광전총국 놈들이 주도하는 짓입니다. 덕분에 꽤 많은 길드가 도전했다가 실패한 악성 퀘스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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