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소탕 작전
방법은 간단했다. 경비병들을 빈민가에서 성당으로 넘어오는 곳에 배치하여 넘어오는 작업장 놈들을 잡도록 지시했다. 구분하는 건 정보 길드가 도와줬는데, 기본 장비만 갖춘 30~40명 정도가 감시를 받으며 성당으로 걸어오면 십중팔구 그놈들이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네.”
무려 200명이 바로 다음 날 바로 붙잡혔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말 운이 따랐다. 놈들을 지키던 놈들이 덤벼들었지만 경비병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흔한 경비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여 명 정도가 대열을 짜고 뭉치면 웬만한 고레벨도 도망치는 게 경비병이다.
“모조리 잡아들여!”
“예!”
“우아악!”
“으악!”
반항하던 몇 놈이 가차 없는 경비병의 창질에 그 자리에서 피 분수를 뿌리며 쓰러졌다.
적국의 불법체류자이자 비영지민에게는 가혹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NPC야 죽으면 끝이지만 유저는 부활해서 붙잡힐 경우 백이면 백 감옥행이다. 장비는 모조리 압수. 일정 형을 살면 나올 수 있지만 풀려나려면 살인적인 벌금을 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차라리 캐릭터를 삭제하는 걸 권장할 정도다.
참고로 형을 다 살 때까지는 캐릭터 삭제도 못 한다.
[신성한 학살][스페셜 퀘스트]
-헤븐의 사랑은 거룩하고 가혹하도다.
-포디나에 헤븐께서 내려주시는 가호를 악용하는 무리를 처단하라.
-가호를 악용하는 무리 처단: 201/???
필요 조건: 레벨 50 이상, 명예 점수 –30,000 이상, 업적: 피에 미친 양민 학살자[전설], 거칠 것 없는 악당[고급], 대량 학살[희귀]
보상
-아이템 뽑기권 100매
-스킬 뽑기권 100매
-???
“잘 올라가네.”
직접 죽인 게 아닌 터라 행여 카운터되지 않는 게 아닐까 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잘만 오른다.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은신에 특화된 푸른바람엘프족 세트로 장비를 맞춘 난 도망치는 녀석들 중 아이템이 꽤 괜찮아 보이는 놈의 뒤를 쫓았다.
추적의 반지[희귀 등급]
-1인에 한하여 추적의 인을 생성합니다.
-추적의 인 지속시간 30분 사정거리 500m
-소모 마나: 초당 1
-쿨타임: 1분
지이잉-
지금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추적의 반지로 추적의 인을 상대의 몸에 박자 내게만 보이는 붉은색 선이 반지와 이어졌다. 녀석은 내가 추적을 걸었는지도 모르고 빠르게 빈민가 안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다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기 딴에는 따돌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느긋하게 선만 따라가면 된다.
“이런 곳에 비밀통로가 있었네.”
붉은 선이 가리키는 곳은 다 쓰러져 가는 움막의 안쪽이었다. 바닥에 온갖 넝마가 뒤엉켜 있었는데, 그것을 들쳐 보니 바닥에 검은 구멍이 드러났다. 안으로 이어지는 토굴을 지나자 잠시 후 지하수로다.
타탁…….
“오랜만이군.”
처음 세이온을 시작했을 때 신물 나게 노가다했던 지하수로 던전이다. 첫 업적인 거대 황금쥐 헌터를 얻은…….
신기한 건 지하수로인데 레벨 제한을 무시하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주 몬스터인 거대쥐나 코블트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던전 레벨 제한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역인 것 같은데 이런 곳을 어떻게 찾은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뒤따라 들어올 이들을 위해 표시를 한 후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이어진 붉은 선을 따라가자 무너진 벽 안쪽으로 다시금 지하로 이어지는 굴이 보이는데,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붉은 선은 따라가니 3층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3층은 지하수로의 보스인 코볼트 대족장이 출현하는 곳이었는데, 자연적인 동굴로 이루어진 곳에서 더욱 밑으로 뻗어 있다. 그렇게 얼마를 쫓았을까 드디어 완전히 다른 지하 공간에 도착했다.
“지랄 맞게 깊네.”
과거 코볼트 대족장이 있었던 지하 서식지의 느낌이 드는 거대한 지하 공동. 어떻게 이런 깊은 곳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빽빽이 차지한 수많은 작은 집들과 개 사육에 사용하는 철창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유저들이 있다.
“봇들은 빨리빨리 들어가라!”
“서둘러!”
붉은 갑옷을 걸친 이들이 허름한 기본 장비만을 착용한 수십 명의 유저들을 인솔해 서둘러 닭장으로 밀어 넣는다. 작업장에 투입되는 사람들을 봇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보다는 뭔가 도구를 지칭하는 것 같다.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퍽! 퍼퍽!
“꺅!”
우물쭈물하는 한 여자를 손에 들린 검은색 단봉으로 때리자 새된 비명을 비틀거린다. 보통은 고통이 경감되어 웬만한 타격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텐데 뭔가 특별한 기능이 있는지 단봉을 휘두를 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흑흑.”
여자가 무릎을 꿇고 연신 손을 비빈다. 평소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그 모습이 익숙하다.
퍽! 퍽퍽!
“아악! 악!”
“들어가!”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아 우악스럽게 철창에 쑤셔 넣는다.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모두 로그아웃해라! 깨어 있는 것들은 가만 안 둬!”
“시간 없어! 얼른 밀어 넣고 마법 걸어!”
“예!”
작은 철창들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은 후 마법을 걸자 현혹계 마법인지 철창들이 바위로 변했다. 저런 식으로 숨겼군. 한바탕 본보기로 두들겨 패서인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봇들이다.
“홍사대! 빨리빨리 하고 모여!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봇들을 철창에 쑤셔 넣던 검고 붉은 갑주로 무장한 이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척! 척!
홍사대라고 불린 이들의 숫자는 무려 백여 명으로, 오와 열을 맞춰 서는 것을 보니 마치 군인을 보는 것 같다.
‘규모가 크네.’
봇이라 불린 이들도 거의 사오백 명은 되어 보였다. 밖에서 붙잡은 이들이 이백 정도니 작업자만 육칠백 명이라는 소리였다. 거의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 매크로나 핵을 쓸 수 없으니 전부 실제 사람이라는 뜻. 관리하는 꼴을 보면 한 장소에 몰아넣고 관리하는 거 같은데 두들겨 패는 걸 보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내가 딱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저들의 접속지는 중국일 테니까.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
제대로 된 대우는 못 받는 거 같다.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보인다.
-케이 님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침 기다리던 귓속말이 들려왔다.
-병력은?
-빵빵한 퀘스트로 VIP 등급 9명 데려왔습니다.
-고작?
-그… 저희 지부 VIP로, 실력에서만큼은 보장합니다.
실력만 보장한다는 건 실력 외에는 보장 못 한다는 소리 아냐?
-퀘스트를 걸었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VIP는 성실도도 따지니까요.
정보 길드에서는 고객들의 등급을 나눠 관리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강한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VIP면 최상급이라는 소리다.
-좋아. 시작할 테니 바로 들어와.
-예!
-입구가 비좁으니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릴 거다. 이쪽에서 시간을 벌어 줄 테니 미적거리다 뒈지면 너부터 죽여 버린다.
-아, 알겠습니다!
아무리 등신이라도 이 정도까지 해 줬는데도 못 떠먹으면 진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난 무기를 +10듀렌달로 스위칭한 후 검 손잡이를 가볍게 붙잡았다.
“밖으로 나섰던 봇들과 홍사대가 공격당했다. 일호는 즉시 사태 파악에 들어가고 이호와 삼호는 적들의 동향을 살피며 휴식 중인 홍사대원들을…….”
마침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앞에 나서서 일장연설 중이다. 장비가 번쩍번쩍한 게 꽤 군침이 돈다.
“시작해 볼까.”
[피의 검]
[진(眞) 광폭화 8레벨]
생명력을 소모하여 공격력을 최대 2배 증가시켜 주는 피의 검과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경우 데미지가 580% 상승하는 진 광폭화를 사용하자 전신이 찌르르 울리기 시작했다.
저레벨 때부터 사용했지만 아직까지는 단일 광역 딜로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주력기. 레벨과 공격력이 한껏 증가한 지금은 단 한방의 시작이지만 화려한 만찬의 에피타이저로 충분하다.
-간다.
-예!
숨어 있던 곳에서 벗어나 산들바람 걷기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적들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응축된 에너지로 듀렌달이 떨려온다.
츠츠츠츳…….
중첩된 대미지가 응축된 +10듀렌달을 뽑아 머리 위로 치켜들며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공격할 곳을 주시한다. 연설하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놈의 동공이 확장되는 게 보인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것 같은데……. 응. 이미 늦었어.
[어스 브레이크]
단숨에 내리꽂는다.
쿠콰콰콰콰콰콰쾅!
* * *
“시작입니다! 어서!”
조니가 외쳤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어쭈? 엠비… 너 많이 컸다?”
“크는 데 보태 줬냐? 불만 있으면 덤벼 새끼야. 주둥이 싸움 질색이니까.”
“아, 닥치고 빨리 좀 들어가!”
“명령하지 마! 새끼야!”
“기분 나쁜데 이 새끼 먼저 죽일까?”
“아서라. 퀘스트 실패하면 내가 네 목부터 딴다.”
“저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쩌라고! 씨발”
“아, 빨리 들어가. 퀘스트 끝나고 나 놀러 가야 돼.”
“케이라는 새끼 뒤통수 보이면 내가 먼저 딴다. 크크크크.”
움직이기는커녕 저들끼리 싸우기 바쁘다. 조니는 시작도 하기 전에 들이치는 두통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너무 실력 위주로 뽑은 부작용일까. 최대치의 퀘스트 보상을 땡겨서 데려왔건만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나름 정보 길드 지부장까지 하는 자신의 인맥이 이렇게 빈약했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 계획을 추진한 케이의 무시무시한 보복이 두려워 그럴 수도 없다.
“저기 좀…….”
“너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 봐.”
“씨발 붙어!”
자신의 말을 들리지도 않는지 자기들끼리 드잡이질을 하려 한다.
한국 유저들의 고질적인 단점이 이것이었다. 실력은 전 세계 유저 평균으로 가장 뛰어나다. 그래서 동등한 숫자로 해외 유저들과 붙으면 말 그대로 찌바른다. 문제는 실력 좋은 것들은 전부 잘나서 서로 뭉치지를 못한다.
참고 참던 조니도 열이 뻗쳐 고성을 내뱉으려던 순간이다.
구구구구콰콰콰쾅!
구멍 안쪽으로부터 묵직한 폭음과 함께 바람이 밀려 나왔다.
쩌저적… 쩍쩍…….
지반이 가늘게 떨리며 흙먼지가 떨어진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소리와 진동만으로 그 위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썩은 고인물들이다.
“와우… 초대형 광역기 터졌다.”
“실력자가 있나?”
“아이템 좀 털어먹을 수 있겠는데?”
“씨발 나 먼저 갈 거야!”
눈을 반짝이며 구멍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9인.
애초에 통제 불가능한 이들이기에 조니는 한숨을 쉬며 그들의 뒤를 따라 구멍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구멍은 깊고도 깊었다. 어느 던전이나 이런 구멍 한두 개야 이상할 거 없지만 그걸 교묘하게 숨긴 작업장 놈들의 실력이 예술이다. 이러니 못 찾았지. 그동안 작업장 때문에 골치 아팠던 걸 생각하며 조니는 이를 갈았다.
교묘하게 움직이는 것도 문제지만 작업장 주제에 지닌 바 무력도 대단해서 상대하기 골치 아픈 놈들이었다. 장비와 레벨을 떠나 군대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싸우니 어중간한 퀘스트로 뭉친 공격대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제대로 상대하려면 중렙 100인 공격대 수준은 돼야 하는데 초보자 도시에서 그런 이들을 찾기는 힘들다.
“케이도 힘들 거야.”
아무리 개인이 강하다 해도 집단에는 미치지 못한다. 운이 좋아 유명세를 얻었지만 홀로 놈들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 꽤나 고전하고 있으리라.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같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구멍에서 벗어나자 그를 처음 맞이한 건 거대한 공동에 흩뿌려지는 팔다리와 처절한 비명이었다.
콰콰콰콰! 쫘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