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99화 (99/154)

99. 혜미 누나 결혼하자

병사들을 불러 작업장 정리를 마친 후 집에서 쉬며 아이템 처분을 위해 혜미 누나를 호출했다. 지역 간 이동이 얼마나 귀찮은지에 대해 투덜거리던 누나는 내가 가장 먼저 보여 준 아이템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연신 비비며 자기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어떻게 넌 항상 그렇게 게임을 날로 먹니?”

“날로 먹다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고생? 하… 널 보면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서 초딩 1학년 수학 풀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여. 넌 벨붕 캐릭터야. 알아?”

“농담이야 욕이야?”

“절반 정도는… 사실이지. 나머지 절반에 절반은 욕이고…….”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너 잘났다고.”

“뭐, 새삼스럽게…….”

“쳇, 이제 놀리지도 못하겠네. 그거나 다시 보여 줘 봐.”

누나의 말에 인벤토리에서 예의 그것을 꺼내 보여 줬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누나가 말했다.

“이거 먹어서 탈나는 건 아니겠지?”

“글쎄, 근데 괜찮을 거 같아.

“어떻게 그렇게 확언해?”

“앙심 품어 봤자 암살자밖에 더 보내겠어? 오면 뭐 전부 슥삭 해 버리면 되고. 돈 벌어서 좋지”

“끙…….”

누나가 앓는 소리를 냈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 차마 하지는 못하겠다는 듯. 눈빛으로만 보자면 ‘얘는 역시 게임을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아. 누가 좀 나타나서 이 자신만만한 동생의 콧대를 좀 꺾어 세상의 무서움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는데 그 꿈은 참 요원한 거 같다.’라고 부르짖고 있다.

“나도 알아 잘난 거.”

“후, 재수 없을 정도로 잘나서 더 재수 없어.”

“재능 있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이제는 나도 안다. 내가 가진 게임의 재능이 일반적인 수준의 재능과는 비교하기 힘들다는 거. 다른 사람을 볼 때 ‘저걸 왜 못하지? 이렇게 쉬운데…….’ 같은 상황을 몇 번 겪어 보니 내가 남들보다 게임을 참 잘한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기야 하지. 에휴…….”

“왜 한숨이야?”

“부러워서. 난 최고 비싼 거 먹어본 게 천만 원짜린데… 그거 먹고 막 울면서 눈물 똥꼬쇼 했는데 누군…….”

“그렇게 부러우면 방송 켜서 누나가 먹었다고 뻥쳐.”

“미쳤니? 나 게임 접게 만들고 싶어?”

“주면 받을 거야?”

내가 손에 들고 있던 황금색 카드를 내밀자 누나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눈을 질끈 감는다.

“마구니야 물러가라.”

“이거 봐 봐.”

“안 보여. 안 들려.”

이게 그렇게 비싼 건가. 난 새삼스레 내 손에 들린 황금색 카드를 내려다봤다.

[스킬 강화권][신화] -일정 확률로 스킬을 강화시킨다.

붉은 갑옷은 스킬 강화권을 뱉었다. 그것도 신화 등급을 말이다.

흔히 강화라고 하면 +1 ~ +3 같은 걸 생각하겠지만 세이온에서의 스킬 강화는 스킬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지는 복불복이지만 스킬이 지닌 일종의 격이 상승하는 것이기에 돈이 썩어나는 이들이 꾸준히 사 모으는 인기 품목 중 하나였다.

“싫으면 말고.”

“으앙!”

허공에 대고 헛손질을 하는 걸 보면 당장에라도 마이프레셔스 하면서 달려들고 싶은 눈치다.

이건 누나도 본 적 없는 거란다. 비슷한 게 전설급으로 몇 개 떴다고 해외 기사에 토픽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거의 고급 세단의 가격이라더라. 그런데 신화급 스킬 강화권이 눈앞에 있다.

“팔면 얼마나 할까?”

“굳이 가격 매겨 보자면… 워낙 희귀하니까 10억 정도? 그래도 신화급 스킬보다는 가격이 쌀 거야. 신화급 스킬은 그 자체로 사기니까.”

“그렇게 비싸?”

“비싸지. 희귀하니까. 신화급 스킬이라는 것 자체가 돈이 썩어나다 못해 미쳐나는 인간들이 도전하는 거고, 그런 인간들이 사용하는 게 신화급이니 당연히 그 강화권도 비싸지.”

하긴 그것도 그렇다.

“우리 이거 팔까?”

“이걸 왜 팔아. 네가 써야지. 나도 희귀급 몇 번 써 봤는데 복불복이라고 하지만 붙으면 대박이야.”

“음, 난 별로 필요 없는데.”

내가 가진 신화급 스킬인 스킬이터는 뭔가 더 손댈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 아주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게다가 근본이 공격 스킬이 아닌지라 단순히 데미지가 더 올라가거나 혹은 범위가 더 넓어지거나 하는 게 아니다. 결론은 어떻게 강화될지도 미지수라는 것.

“네가 써. 또 돈으로 바꿔서 살림 보탠다고 했다가 상도 오빠한테 쿠사리 먹지 말고.”

“끙… 그것도 그렇지.”

본래 계획은 돈 벌면 집도 옮기고 작업실도 차릴 작정이었는데 그놈에 파킨이 새끼 때문에 상도 형이 결사반대로 돌아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워낙 사방팔방 내키는 대로 날뛰다 보니 적이라고 할 만한 놈들이 너무 많아졌고, 상도 형은 그 돈을 살림에 보태기보다는 캐릭터의 성장에 투자해서 차후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들이 쪼들리는 것도 아니고 집도 직업도 어엿하게 있는데 굳이 내 도움은 필요 없다나 뭐라나. 정 그렇게 살림에 돈 보태고 싶으면 한 100억 정도 모으면 생각하잖다.

‘동생 도움 받기 싫다는 거지.’

형은 항상 그랬다. 첫 만남에서는 좀 부침이 있었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친해진 뒤로는 마치 하나 밖에 없는 동생 대하듯 나를 챙겨 줬다. 자기 딴에는 날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런 거라는데 아직 무슨 말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잠시 후 난 작업장에서 쓸어온 아이템들을 전부 누나에게 넘겨줬다.

대부분이 작업장 봇들이라 쓸 만 한 건 없었지만 워낙 죽인 숫자가 많아 괜찮은 걸 많이 얻었다. 아마 전설급 배낭이 아니었으면 20%도 챙기지 못했으리라.

“이번 거래로 잘하면 상단 만드는 등급까지 오르겠네.”

“상단?”

“응. 상단을 만들려면 객주 등급까지 올려야 하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차익을 많이 실현해야 등급이 오르거든.”

“그렇구나. 근데 상단 만들면 뭐가 좋은 거야?”

내 물음에 누나가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으로 욕하지 말고 입으로 말해 그냥.”

“에휴, 세이온에서 아이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도 알지?”

“응. 모두 NPC나 유저가 만드는 거잖아.”

“그래. 세이온은 완전한 하나의 세계라서 그 어떤 아이템도 게임사가 손대서 만드는 건 없어. 전부 생산물들이지.”

“알아.”

세이온의 아이템은 노멀이든 신화급든 제작자가 존재한다. 당연히 뽑기에서 나오는 아이템도 제작자가 있는데 그것이 뽑기라는 형태를 통해 나오는 메커니즘은 바로 ‘공물’이었다. 세이온이라는 게임에 유저가 들어오기 전부터 NPC들은 수만 년에 걸쳐 번영과 쇠퇴를 반복하였고, 종교로 군림한 헤븐은 그들로부터 ‘공물’을 받아왔다.

뽑기는 그것을 다시 카드의 형태로 세상에 뿌리는 것이고 말이다.

일례로 장인 퀘스트 중에는 신전에 정기적으로 아이템을 납품하는 퀘스트가 있는데 나중에 뽑기로 받았을 때 아이템에 있는 제작가 고유 상표를 보고 그 가치를 가늠한다고 하더라.

또한 스킬은 그것과는 좀 다른 형태로 ‘수집’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스킬을 지녔던 ’NPC’가 영구히 죽게 되면 그 정보가 기록 저장되었다가 스킬의 형태로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객주라는 건 상인 길드가 이 사람의 신용을 보증한다는 뜻이야. 그렇게 계속 거래를 하면서 NPC들이랑 신용을 쌓아야 좀 더 돈이 되는 것들이랑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지.”

“돈 되는 것들?”

“귀족 말이야 귀족. 나야 원래 자본이 있었고 너처럼 확실한 생산자를 꽉 쥐고 있으니까 쉽게 등급 올리는데 보통 초보자는 길거리 좌판부터 시작해서 구멍가게 장만하는 것도 두 달 이상 걸려. 그리고 그런 구멍가게라도 있어야 상인길드에 가입할 최소 조건이 되지.”

“그리고?”

“좋은 거래처를 많이 뚫고 사업체 규모를 늘리다 보면 슬슬 소매상에서 도매상으로 건너가는 테크를 타. 그렇게 규모가 커지면 객주 등급이 되는 거고, 그러면 영주랑 얼굴 맞대고 거래할 수 있게 되지. 뭐 그래 봤자 천한 양민 신분이라서 무릎 꿇고 목소리 공손하게 내야 하는 건 똑같지만. 행여 잘못 말해서 기분이라도 상하게 하면 목이 댕강~”

누나가 목 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아참, 누나 아직 평민이지?”

“그렇지?”

“나 남작인데.”

“어쩌라고 시발……. 너도 영광스러운 수청 기회 어쩌고 하는 개소리 할 건 아니지?”

“수청?”

“어, 그런 새끼들 있어. 거들먹거리면서 짐승 새끼 눈으로 쳐다보는…….”

뭔가 더러운 걸 떠올렸는지 진절머리를 치는 누나다.

“현재 진행형이야?”

“어.”

“내가 손봐 줄까?”

“아서라. 내 가게 있는 영지 남작이야. 그것도 너처럼 단승 귀족이 아니라 계승 영지 귀족 남작”

“아하.”

단승 귀족과 계승 귀족은 같은 신분이라도 차이가 있다. 나 같은 단승 귀족은 더 상위 귀족과 가신의 계약을 맺고 토지나 월급을 받지만 계승 귀족은 작게라도 다스리는 영지가 있다. 물론 계승 귀족이라고 단승 귀족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다. 단승 귀족을 건드린다는 건 곧 그 봉신의 주인인 대귀족을 건드리는 거랑 똑같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영지 주인이 누나 찍었다는 소리잖아. 장사하는 걸로는 좋은 거 아닌가?”

“나쁘지야 않지. 귀찮은 불량배 같은 건 다 막아 주니까.”

“그렇구나. 그럼 뭐야? 차기 남작부인?”

“미쳤니?”

빽 소리지르며 질색하는 누나다.

흔히 생각하기로 NPC 귀족과 결혼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질색하는 편이었다. 남녀 간의 행위도 가능한 곳이기에 엄한 NPC랑 그 짓 하기 싫다는 것도 한 이유지만 세이온의 세계가 가부장적인 사회다 보니까 여자의 경우 결혼하게 되면 이동의 자유가 대폭 감소한다. 물론 영지를 지닌 계승 귀족이랑 결혼해서 남편을 잘 구워삶으면 귀족의 신분에 빵빵한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세이온의 귀족은 한정되어 있다. 뭐 그래도 결혼하는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서 얼마 전 티브이에도 나왔었는데 게임 속 NPC랑 사랑에 빠져서 실제 배우자랑 이혼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다고 하더라.

“애 딸린 유부남이야.”

“헐?”

“나한테 두 번째 첩으로 들어오란다. 씨발놈……. 귀족 새끼만 아니면 내가 아주 회를 쳐 주는데.”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누나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럼 누나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뭐? 어떻게?”

“나랑 결혼하는 거.”

“……?”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볼을 붉힌다.

“흐흠, 이, 이거 프로포즈야. 어우야. 너 이렇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면… 그렇지만 아무리 너라도 난 아직 너무 어리고 널 남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흠흠……. 뭐 몇 년 정도 더 지나면 너도 솜털이 가시겠지만 그때는 또 뭐냐… 흐흥…….”

뭔 상상을 하는지 몸을 배배 꼬는데 심히 역겹다.

“저기 누나?”

“으응?”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내 지금 신분이 단승이기는 하지만 남작이고, 나랑 혼인관계로 만들면 포디나에서는 귀족으로 인정받잖아. 이참에 근거지를 포디나로 아예 옮기라는 뜻이야.”

“아아…….”

퍽!

“앗! 왜 때려!”

내 설명에 이해됐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내 정강이를 걷어차는 누나다.

* * *

내 아이디어는 크게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내가 뭐 대단한 귀족이면 모를까 남작 딱지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몇몇 지인 NPC들은 있었지만 명예 점수를 다시 복구했지만 NPC의 친분관계는 또 따로 계산되는지 아직 서먹하다. 그래도 나름 주군이라 포디나 백작에게 결혼한다고 말했더니 축하한다고 축의금으로 천 골드 주더라.

그길로 관청으로 가 누나와 같이 혼인신고를 했고 우린 부부가 됐다.

“혜미 아이언우드라…….”

상태창에 새롭게 갱신된 자신의 풀네임을 읽으며 뭔가 깬다는 듯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누나다.

“여보.”

“아우 닭살. 너 그 말 다시 하면 죽여 버린다.”

“크크크.”

정말 완벽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건 누나에게도 내게도 무척이나 도움 되는 관계였다. 전리품이야 불로소득이라 똑같이 세금 낸다지만 내가 어떤 거래를 할 때 누나를 통하면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귀족이니 세금도 더 적게 내고… 또한 누나 입장에서도 공짜로 귀족이 된 거고 말이다. 막말로 이제 누나가 기분 더럽다고 영지민에게 칼부림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영주의 소중한 자산을 건드렸다고 벌금은 세게 먹겠지만…….

“아무튼 난 가서 가게 정리하고 올게.”

“얼마나 걸려?”

“글쎄, 가게도 문제지만 거래처도 정리해야 하니까 넉넉 잡아 3주 정도 되겠지.”

“오래 걸리네.”

“신용 관리 소홀히 하면 망해.”

“그렇지.”

“아무튼 포디나 영지의 귀족기사 케이 아이언우드 남작 나으리. 정리 끝나고 오면 바로 가게 열 수 있게 가게 터 좋은 곳으로 부탁 좀 드립니다.”

“알겠소이다. 부인.”

“씨발, 진짜 죽여 버린다.”

“크크크크.”

누나가 떠난 후 난 포디나 백작가의 관리들을 만나 새 가게 자리를 알아봤다. 도시 규모가 워낙 커서 작은 중소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포디나였기에 목 좋을 곳의 가게 자리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아니, 그보다 빈 곳이 없어!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군.”

“외곽이나 빈민가 근처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천금을 준다고 해도 자리를 양도할 이는 없을 겁니다. 기사님.”

“그래 보이네.”

“여기보다는 남쪽 말굽 거리는 어떠십니까? 그쪽이라면 꽤 커다란 터가 하나 있는데 새로 건물 올리기도 좋을 겁니다.”

“그 하루 종일 똥 냄새 나는 곳 말인가?”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부인 되시는 분께서 장사를 하신다면 그쪽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상업지구 규모는 포디나에서 가장 크니까요.”

“흐음…….”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관리가 허리를 굽실거린다. 말굽 거리에서는 가축을 사고파는 동물 시장이 있었는데 말을 비롯해 소나 양 닭 따위가 하루 종일 거래되었다. 옛날에 마시장이 있던 자리라 말굽거리로 이름 붙었다나 뭐라나.

“그건 안 사람이랑 상의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관리와 이야기를 마친 난 숙소로 돌아와 로그아웃을 했다.

캡슐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광수형이 책상에 앉아 데스크탑과 노트북을 켜 놓고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일어났냐?”

“어, 형.”

“밥 차려놨어. 먹어.”

“상도 형이랑 혜미 누나는?”

“상도 형은 일하러 나갔고, 혜미는 게임 중이야.”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난 주방으로 갔다. 가스렌지 위 냄비를 열어 보니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한가득 끓여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신김치에 비계가 적당히 들어간 최고급 찌개다.

“새 반찬 했으니까 꺼내 먹어.”

냉장고를 열어 보니 새로 담근 오이무침과 겉절이, 깍두기가 락 앤 락에 담겨있다. 뚜껑을 열어 한입 맛을 보니 절로 경탄이 터진다.

“와, 형은 진짜 식당 해도 대박 났을 거야.”

“뭘, 그 정도 가지고.”

어깨를 으쓱하는데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단숨에 한 그릇 뚝딱 한 후 간단히 설거지를 하고는 형에게 다가가 작업하는 걸 지켜본다. 지금 작업하는 건 예전 아프리카 영지에서 깽판을 치는 영상이다. 제목이 홀로무쌍으로 되어 있는데 닭살이 오들오들 솟구친다.

처음 편집할 때는 이것저것 많이 만지더니 이제는 몇몇 쓸모없는 장면을 삭제하며 전투를 더 박진감 있게 편집한다. 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걸 더 좋아한다더라.

검이 지나가며 목이 날아오른다. 솟구친 발이 그 머리를 걷어차 달려오던 녀석의 면상에 적중한다.

“정현아. 넌 왜 항상 머리 자르고 걷어 차냐?”

“흐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난 싸울 때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머리를 걷어 찬 것도 당장 그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아마 다른 수단이 있었다면 그걸 썼을 거다.

“사람들 반응이 안 좋아?”

“그건 아냐. 오히려 좋아해서 문제지.”

“좋아해?”

“응. 궁금하면 룰러 들어가서 커뮤니티 반응 직접 확인해 봐.”

“그건 싫어.”

“네 팬들인데 소통하는 게 싫어?”

“팬 아닌 애들도 가끔 들어오더라고.”

사람이 좋은 말만 들을 수는 없는 법이고 해 놓은 짓이 있으니 욕먹을 수도 있지만 내 커뮤니티인 룰러에 나한테 죽은 이들이 들어와 각종 쌍욕과 도배질을 해놓은 걸 본 뒤로는 커뮤니티 읽는 건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광수 형이 편집하는 걸 보고 있는데 전자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왔어? 밥 차려놨어. 먹어.”

광수 형이 혜미 누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읊었다. 그러나 누나는 형의 말을 들은 채 만 채 하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야.”

“왜?”

“나 좀 도와줘.”

뭘? 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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