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00화 (100/154)

100. 권력의 힘

“그러니까 누나 말은 때려치우고 나간다니까 갇혔다고?”

“어. 아바타가 집에 감금됐어. 흑흑”

“죄명이 뭔데?”

“장물 거래, 탈세, 귀족 모독… 그렇지만 장물 거래랑 탈세는 네 아이템 세탁한 게 너무 많아서 걸린 거야.”

“귀족 모독은?”

“덮치려고 해서 홧김에 칼 뽑았더니 붙이더라”

세이온의 귀족은 평민들에게는 반불가침 영역이었다. 막말로 기분 나쁘면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죽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누나한테 그렇게 말했다가는 내가 죽을 수 있으니 자제해야지.

“개새끼네.”

“응, 그러니까 와서 좀 도와줘.”

“알았어. 근데 누나.”

“응.”

“거기가 어디야?”

“…….”

“…….”

“에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코리 왕국 남쪽 하임 영지… 중간에 다크마쉬 자작 영지에서 포탈 타고 위스 남작령 근처 숲으로 이동해서 남쪽으로 반나절 쭉 달리면 오룬 남작령이 나와.”

“더럽게 머네.”

“뭐? 야! 난 네가 호출할 때마다 왕복하는 코스거든! 왜? 오기 싫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데 귀찮아서 가기 싫다고 하면 정말 물 것 같다.

“그, 그럴 리가! 이놈의 시끼 감히 우리 누나를!”

아무리 NPC라지만 애 딸린 유부남 주제에 누나를 첩으로 노린다니. 당장에 그것을 잘라 장대에 걸어 버리고 싶다. 서릿발 같은 누나의 눈길을 피해 서둘러 세이온에 접속한 난 곧바로 내성에 있는 포디나 백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일단은 포디나 소속이기에 타영지로 가기 위해서는 백작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척!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의 경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 포디나 백작의 집무실로 걸어가다가 백작가의 수석 마법사인 일렌 자작과 마주쳤다. 포디나 백작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이로 산타 할아버지처럼 풍성한 수염에 항상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왕년에 전투 마법사로 이름 좀 날렸던 분이다. 참고로 명예 점수가 마이너스가 되자 가장 나를 싫어하던 노인네였는데 아마 내가 포디나를 뛰쳐나가게 된다면 이 양반 때문이리라.

“오, 케이 아이언우드 남작 오랜만이네.”

“일렌 자작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나보다 상급자이자 신분도 높은 그였기에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일렌 자작은 예의 그 가식적인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요즘 자네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더군. 영지의 골칫거리였던 지하 조직을 일소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네 위명에 겁먹은 불순한 것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자네 같은 기사가 활약해 준 덕분에 영지민들이 백작님의 통치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자네는 손속이 좀 과한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마냥 좋은 소리만 할 건 아닌지 말속에 뼈가 있다. 그렇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순순히 인정했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앞으로 명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허허허…….”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런데 이 노인네가 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최근 혼인을 했다고 하던데… 맞나?”

“아… 예. 혼인식은 못 하고 일단 신고만 했습니다.”

“흠…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가?”

평소에 나한테 궁금한 게 많았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혼인식을 안 한 이유야 행여 이게 유저들한테 퍼지면 ‘우결’ 찍어야 된다며 누나가 질색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혼인식을 하면 평소 친하게 지내던 NPC나 유저들에게 거하게 선물을 뜯어낼 수 있지만 나야 원체 인간관계가 가난했고 누나는 숨겨야 했다. 그리고 마침 누나가 말해 준 적당한 핑계가 있다.

혹여 이런 식으로 딴죽을 걸 수 있다고 해서 아주 내 머릿속에 정답지를 주입식 교육을 해 버렸다.

“사실 누… 아니, 안사람이 자기는 평민이라며… 굳이 시끄럽게 할 것 없이 그냥 조촐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허, 그렇군. 그래도 제대로 결혼식을 하는 게 낫지 않나? 자네도 본래 평민이었지만 이제 귀족이 아닌가. 귀족이면 귀족에 걸맞은 품위를 지켜야 하네. 그것을 무시한다면 다른 귀족에게 얕잡아 보이고 또한 자네를 임명한 포디나 백작님의 이름에도 먹칠을 하는 걸세.”

“자작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안사람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백작님보다 자네 안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물론 포디나 백작님 또한 중요하지만 제 안사람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음… 그런가.”

내 단호한 대답에 감탄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일렌 자작이다.

[일렌 자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뭐지. 뭘 했다고 친밀도가 올라…….’

평소에 친밀도 관리를 안 한 탓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밀도 상승 메시지다.

“저 그런데, 지금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이제 슬슬 헤어지고 싶기도 하고 누나 일도 있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일렌 자작이 다시금 나를 붙잡는다.

“급한 일이라니 무슨 말인가?”

“으음, 그게…….”

일단 윗사람이 물어보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난 누나에게 벌어진 일과 그로 인해 하루라도 빨리 가서 위기에 빠진 ‘안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삽시간에 주위 온도가 영하로 훅 떨어졌다.

눈앞 일렌 자작의 표정이 차갑게 굳는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저 남쪽 쥐꼬리만 한 영지 하나 가진 남작 나부랭이가 감히 우리 포디나 백작님이 친히 임명하신 기사의 내자를 억류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애 둘 달린 놈 주제에 음심을 품고 첩으로 들이겠다고?”

“…네, 그래서 제가 좀 급합니다.”

실상 겉으로 드러난 죄목은 장물 거래랑 탈세, 귀족 모욕이지만 일단은 누나를 노린 거니까.

“더러운 귀족의 손아귀에서 평민 아내를 구한다라… 멋지구먼……. 허… 허허허… 허허…….”

“저 가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백작께 허락 맡기 위해 가는 거였군.”

“예.”

“가서 어쩌려고?”

“죽… 아니 구하러 가야지요.”

“혼자 말인가?”

“예”

“허어…….”

[일렌 자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냐. 평소에는 쥐꼬리도 안 오르던 친밀도가 막 오르네.’

“좋아. 같이 가지 나도 마침 백작님을 뵈러 가는 중이었으니…….”

대답도 듣지 않고 앞서 걷는 일렌 자작이다.

* * *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포디나 백작이 턱을 쓸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옆에 선 일렌 자작에게 묻는다.

“음, 오룬 남작이라. 바토 백작 조카던가.”

“그렇습니다. 백작 각하.”

“허… 그 친구 선친께서도 여자 문제로 그리 곤혹을 치르더니 그 조카까지 말썽이군.”

“힘이 넘쳐나는 바다 사내들의 내력이지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 문제는 바토 백작인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기던 포디나 백작이다.

“그는 소드 마스터에 같은 귀족파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거참…….”

“각하, 이건 우리 포디나 영지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명예라…….”

“만약 이 일을 조용히 넘긴다면 우리 포디나는 천하에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일렌 자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쯧, 나도 알고 있네.”

혀를 찬 포디나 백작이 내게 물었다.

“자네는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가겠지?”

“예.”

난 곧바로 대답했다. 그동안 포디나에서 이룩한 게 좀 아깝기는 하지만 어차피 어딘가 정착하는 것에 미련이 없는 터라 이 일로 인해 쫓겨나도 별 상관없다. 귀족이라는 작위 또한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고…….

“허, 망설이지도 않는구만.”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가장의 정당한 권리일 뿐인데… 그렇다고 자네를 이렇게 보냈다가는 그 오론 남작가가 피바다가 되고 바토 백작이랑 껄끄러운 관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또한 그 레이디에게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일렌 자작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죽하면 우리 영지에 사람의 생피를 마시는 악마가 산다는 헛소문이 돌겠습니까.”

“음, 이 친구가 사람 피를 마실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겉만 보셔서 그런 겁니다. 장담컨대 이 친구가 돌아 버리면 우리 영지에서 막아 낼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본인을 앞에 두고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하고 있다. 뻘줌해진 내가 말했다.

“흠흠, 최대한 말로 풀어 보겠습니다.”

“자네가? 후후후”

내 이미지가 이렇게 더러웠나. ‘차라리 개가 똥을 끊지’라는 뜻의 눈빛이다.

“백작 각하. 제가 장담하건대 케이 아이언우드 남작은 바토 백작을 뛰어넘는 장차 코리 왕국의 제일검이 될 겁니다. 이런 훌륭한 기사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각하께서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면 케이 남작 또한 각하께 더욱 충성을 바칠 겁니다.”

“허, 자네. 이 친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각하”

일렌 자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포디나 백작이 말했다.

“좋아. 이 일은 내가 해결해 주지. 일렌 자작”

“예, 각하”

“통신을 준비해 주게.”

“상대는 누구로 할까요?”

“음… 바토 백작과 오룬 남작 둘 다!”

“알겠습니다.”

* * *

사람들이 왜 권력에 집착할까. 이 물음에 난 조금 전 백작의 집무실에서 벌어졌던 일을 그 이유라고 말하겠다. 내가 직접 오룬 남작에게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사상자가 꽤 나왔을 것이다. 만약 오룬 남작이 폭력을 이용한 대화를 꾀했다면 난 기꺼이 그것을 따라 줬을 테니까. 그 후로는 뭐 팔다리를 먼저 자를지 모가지를 먼저 자를지 고민하는 거고…….

그런데 그런 문제를 백작은 집무실에 편하게 앉아 삼자대면을 통해 간단히 해결했다.

이틀 동안 발바닥에 땀나도록 뛸 필요 없이… 굳이 얼굴 붉혀 가며 칼 뽑을 필요 없이 말이다.

재미있는 건 바토 백작이 나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조카 녀석이 억류한 여성이 내 부인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통신용 구슬에 금이 가도록 오룬 남작을 갈궈 댔다는 것이다.

-포디나 백작, 내가 부덕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네. 내 책임지고 이 일을 처리함세.

-나야말로 이런 일로 자네의 마음을 어지럽혀 미안하기 그지없군. 바토 백작…….

-사, 삼촌. 아무리 포디나 백작 각하라도 이렇게 제 영지 일에…….

-닥치거라. 오룬……. 한마디만 더 한다면 네 녀석을 해군으로 처넣어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여자 냄새도 못 맡게 해 버릴 테니까.

파삭!

사자후가 터지며 금이 갔던 통신용 구슬이 기어이 부서지려 한다. 소드 마스터라고 하더니 힘도 좋다.

-헉, 그것만은…….

-넌 통신이 끝나는 대로 백작령으로 달려와. 이틀의 시한을 줄 것이다.

-힉… 딸꾹…….

우스울 정도로 싱거운 결말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누나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당일, 오룬 남작은 누나에게 걸린 모든 죄를 무혐의 처분하고 그로 인해 누나가 본 피해를 모두 보상했다고 한다.

얻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포디나 백작의 집무실에서 나온 나를 일렌 자작이 자신의 저택으로 안내했다.

응접실에 조촐한 술상을 차려 오라 지시한 그가 내게 말했다.

“자네 부인 가게 자리는 내가 알아봐 주지.”

“자작님께서 굳이…….”

“아닐세. 사실 내 아내 또한 평민 출신이라네. 예전 내가 포디나 백작님의 수석 마법사가 되기 전 내가 온전히 마법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줬는데 난 작위를 얻어 승승장구하게 되자 여전히 평민 티를 벗지 못하는 아내를 부끄러워했었지.”

“그렇군요.”

“나이를 먹고서도 내 옷은 사용인이 아닌 꼭 자신이 챙기려 했지. 물건이 낡으면 버리고 새로 사라고 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난 그런 아내를 두고 궁색하다고 싫어했지. 후후…….”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술을 마신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아내가 내 곁을 떠난 후에야 그녀가 어째서 그런 낡은 물건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네.”

“어째서였습니까?”

“그 물건들 모두가 나와 함께 하나하나 장만했던 물건인 거지.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물건이 있어도 아내에게는 그것만 못했던 거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네. 아무리 유능한 사용인을 두어도 아내처럼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그렇군요.”

“사실 난 자네를 좋게 보지 않았다네. 큰 공을 많이 쌓긴 했지만 자네는 소문이 너무 안 좋았거든. 물론 자네의 성정이 좀 잔인하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 그렇지만 아내 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홀로 남작가로 쳐들어가려는 그 기백과 백작님의 명도 거역하는 자네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네.”

‘홀로 쳐들어가는 거야 다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고, 포디나 백작의 말을 거역한 건 여기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 자신 있었으니까.’라는 이유가 존재하지만 굳이 사서 오해를 해 주는데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날 찾아오게.”

“감사합니다. 자작님.”

* * *

“권력이 좋긴 좋아.”

“그러게 내가 며칠을 발품 팔았는데 이런 목 좋은 곳의 건물을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다니…….”

목 좋은 번화가에는 가게 자리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던 관리 새끼는 일렌 자작의 한마디에 ‘찾으시던 물건 여기 있습니다.’ 하고는 냉큼 사거리의 거대한 3층짜리 건물 매물을 가져왔다. 영지 이인자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자작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알아서 가격이 깎인다. 값을 치르자 중간 서류 작업까지 척척 해 주고 누나가 가게를 정리하고 도착했을 때는 내 손에 이미 건물 정문의 열쇠와 건물의 소유 증서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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