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03화 (103/154)

103. 빅엿을 먹여 주지

챙… 챙챙!

“하하하! 죽어라!”

“으악!”

“도망쳐!”

포디나 북쪽 야산에서 도적 무리를 토벌 퀘스트를 하고 있던 유빛나와 그 친구들은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오는 10여 기의 기마를 발견하고는 공격하던 도적들을 내버려둔 채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말이라는 동물 자체가 워낙 비싸 자신들 같은 초보자는 가지기 힘든 귀물이다. 한마디로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는 것. 그러나 놈들은 자신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조롱하며 가지고 놀고 있다.

“하하하! 도망치는 꼴이 우습구나. 빵즈!”

“빌어먹을 새끼들이!”

“으하하하! 재롱 떠냐?”

채챙! 챙!

경매장에서 40골드에 산 자신의 대검을 가느다란 창으로 가볍게 흘리며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이 X년 맛있게 생겼는데?”

“붙잡아서 좀 놀아 볼까? 크크크.”

“우리 위대한 중화전사들의 품에 안기는 영광을 주자구!”

숫자로나 레벨로나 상대가 안 되는 초보를 두고 조롱하고 있다. 유빛나가 이를 갈며 외쳤다.

“짱깨 새끼들아. 죽일 거면 빨리 죽여.”

“키키킥, 그러기 싫거든? 놀다가 죽일 거거든?”

“새끼들아. 남에 나라 초보자존에 쳐들어와서 이런 짓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크크크, 아주 그냥 초보자 냄새가 먹음직스러워.”

말 위에 탄 채 저들끼리 킥킥거린다.

“얘들아 그냥 아웃해 버려. 더 있다가 더러운 꼴 보겠다.”

“그렇지만 이대로 아웃해 버리면…….”

유빛나의 말에 그의 친구들이 망설였다.

아웃이라는 건 정상적인 로그아웃이 아닌 강제로 접속을 종료하는 걸 말했다. 유저는 이탈하지만 아바타는 그대로 게임 상에 남아 있기에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당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겠지만 애써 키운 아바타를 두고 나가기가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죽여 주면 모를까 놈들을 보니 쉬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국경이 뚫린 건가.’

이곳이 국경 근처기는 하지만 말을 탄 치나 제국의 유저들이 넘어올 정도로 치안이 열악하지는 않았다. 포디나 레인저는 코리 왕국에서도 상당한 정예로 평가 받으니까. 국경이 뚫리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놓고 넘어올 수는 없는 것이다.

“저 수컷 놈 빨리 죽여 버리고 놀자.”

“히히히… 그래.”

이미 자신들을 다 잡은 것처럼 구는 놈들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놈들이 탄 말이라도 상하게 할 생각으로 대검을 고쳐잡을 때였다.

쉬이이이이익……!

뭔가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츠컥!

마상창을 가지고 자신을 희롱하던 놈의 머리가 순간 사라졌다.

“어?”

“응?”

전혀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놀랐고 자리에는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쉬이익! 츠컥! 츠컥!

마상창을 쥐고 있던 머리 없는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머리 없는 시체가 둘 늘어났다. 이번에는 뭔가 보였다. 검은 잔상이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을…….

“어? 저… 적!”

쉬이이익! 츠컥! 츠컥!

다시금 두 개의 머리가 날아갔다.

히히히힝!

말 위에 앉은 다섯 개의 머리 없는 몸이 그로데스크하기까지 하다.

머리만 노리는 유령이 나타난 건 아닐까? 머리를 잃은 몸들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진다.

털썩…….

쿵-

“적이다!”

“경계!”

히히히힝!

주인 잃은 말들이 날뛰었으나 남은 다섯은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하게 말을 움직였다. 그들은 전문적인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 사람이 가운데 포위한 이들을 경계하고 나머지가 사방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들이 경계해야 할 진짜 적은 이미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레인저의 직업 스킬인 은신과 산들바람 걷기의 효과가 있었다지만 단 한차례도 땅을 밟지 않은 채 다섯의 머리를 자르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건 재능 그 이상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예다.

슈카카카카칵!

공중을 내려서며 검을 사방으로 휘두르자 단숨에 다섯 개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빠르지도 혹은 대단한 스킬도 아닌 단순히 사각만을 파고드는 극효율의 검술이다.

착!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푸른 망토의 남자가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어어…….”

유빛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껏 상상한 적 없는 너무나도 완벽한 장면이었다. 게임이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 세이온에서 이런 그림 같은 장면을 볼 줄이야……. 게다가 나타난 남자 또한 너무나도 멋있다. 얼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곳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으로 웬만한 사람은 전부 미남미녀인 곳. 그러나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기품이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주위를 가볍게 둘러본 그가 주인 잃은 말들 중 하나의 고삐를 잡았다.

“후우, 다행이네.”

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의 목을 툭툭 쓸어 준 그가 자신들을 돌아보는데 그 모습조차도 멋있다.

“괜찮으세요?”

“아. 네.”

“이곳은 위험하니 서둘러 포디나로 돌아가세요.”

“네네.”

“그럼…….”

짧게 자신이 할 말만을 남긴 그가 말에 올라탔다.

“저, 저기…….”

“예? 무슨 볼일이라도…….”

“그게… 성함이 어떻게…….”

“아, 케이라고 합니다.”

“케이 님이시구나.”

“예. 그럼 이만.”

고개를 꾸벅 숙인 그가 말에 탄 채 한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국경 관문이 저쪽이겠지?”

“……?”

국경 관문을 찾아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반대편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 순간 국경이 반대쪽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다.

“저기 케이 님.”

“네?”

“국경은 저쪽인데요?”

그녀가 반대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말에 박차를 찼다.

“감사합니다. 이랴!”

서둘러 달려가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뭔가 병신 같은데… 그래도 멋있어.”

* * *

“아우, 개 쪽팔려.”

멋들어지게 초보자들을 구하고 말을 구한 것까지는 내가 생각해도 멋있었다. 차마 그 속 사정이 국경 관문으로 무작정 달리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사방팔방으로 헤매다가 스테미너 포션과 힐링 포션으로 버티던 말이 완전히 퍼져 버렸다는 것과 그렇게 두 발로 달리며 길을 찾던 도중 운 좋게 그들을 발견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길만 따라가면 되는데 그걸 못 하냐 등신아.”

이럴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엄습한다. 지독한 이놈에 길치!

국경으로 가는 길은 엄연히 가도가 뚫려 있었다. 초보자들도 알아보기 쉽다. 길이 험하지도 않고 포디나의 지형 자체가 큰 산은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잃어버렸다. 단 두 개의 갈림길에서.

방금 병신 어쩌고 하는 말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젠장… 너무 부끄러워서 죽인 놈들 루팅도 못하고 튀고 있다.

“레인저 때려치고, 패스파인더나 할까.”

패스파인더 직업에 길 찾기라는 스킬이 있는데 지도만 있으면 시야에 화살표로 방향을 가르쳐 준단다. 작은 문제라면 패스파인더가 되기 위해 패스파인더 마스터한테 가서 제자가 된 후 코리 왕국의 절반 정도를 발로 뛰어다니며 30개 정도의 퀘스트를 해야 한단다. 빌어먹을 안 하고 말지.

-케이야!

-어 누나.

-도착했어?

-아니 아직이야.

-뭐? 출발한 지 8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금방 도착해. 금방!

-또 길 잃어버렸어? 에휴, 아니다. 차라리 다행인가.

-그건 무슨 말이야?

-병사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 들어보니까. 거기 마족 기사 하나 떴다고 하더라. 조심해.

-마족 기사? 그게 뭔데?

-음… 마족 기사라는 건.

어차피 내 세이온 지식이 원체 빈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누나는 마족 기사가 뭔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족 기사는 치나 제국에만 사는 이종족 NPC 집단이었다. 마치 베소 왕국와 코리 왕국 사이에 푸른 바람 엘프족처럼 말이다.

-얘네들 시조는 마족이랑 인간이랑 영차영차 해서 시작된 애들이야. 일종의 하프데블? 하프블러드?

-그리고?

-그렇게 영차영차 한 애들 중에 치나 제국 공주가 있었는데 황제가 공주를 불쌍히 여겨서 살 곳을 마련해 주고 또 나중에는 황위 쟁탈전에 큰 공을 세워서 작위를 받게 돼. 그리고 황제와 맹약을 맺게 되지. 그게 뭐냐면…….

-누나 배경지식 빼고 요점만 말해 줘. 내가 그걸 알아서 뭐해? 그래서 마족 기사라는 애들 능력이 뭐야?

-케이야, 케이야. 원래 배경지식을 잘 알아야 나중에 퀘스트라도 걸렸을 때 매끄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거란다.

-난 거칠게 풀어 나가도 되니까 상관없어. 됐고 능력은?

-쯧, 보자… 일단 장생종이야.

-장생종이면 뭐 하나는 기차게 잘하겠네. 활? 냉병기? 마법? 오러? 정령?

-냉병기… 나머지는 못 써.

누나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장생종인데 냉병기만 잘 쓰고 나머지는 하나도 못한다?

-근데 강하다고?

-어. 얘네 고유능력이 사기야.

-뭔데?

-마나 컨퓨즈,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마기로 주변 마나를 혼란시키는 건데 근처에 가면 마법이든 오러든 쓰기 힘들어져.

오러를 못 쓴다는 건 오러로 인한 육체 능력 상승이 막힌다는 뜻이었다.

-그럼 붙으면 오로지 검술이랑 무기로만 상대할 수 있겠네?

-그래. 근데 얘들이 반은 마족이라서 순수 신체 능력이 무척 뛰어나. 장생종이라 무기술도 마스터급이고 경험도 많아서 노련하지.

-파훼법은?

-널리 알려진 정석 파훼법은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소드마스터나 6서클 이상의 마법사한테는 쥐약이라는 설정이야. 그 둘의 마나는 마족 기사의 마나컨뮤즈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게 없을 때는 원거리에서 일점사로 때려잡는 수밖에 없어. 단 얘들이 전부 중갑을 걸쳐서 원거리 방어에 강하고 기본 속도가 빨라서 이것도 난이도가 좀 높아.

-그렇군. 하나 질문.

-뭔데?

-그럼 같은 편도 오러나 마법 못 쓰는 거야?

-맞아. 그래서 대장전이나 게릴라전처럼 혼자 싸운다고 하더라고.

-오케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정보다.

모든 계획은 완벽할 수 없고 항상 변수를 가지고 있다. 그 변수를 줄이는 건 내 몫.

누나의 말이 이어졌다.

-아참, 그리고 지금 백작이 기사단이랑 마법사단 소집했어. 그리고 포디나에 침략 저지 퀘스트 떠서 애들 좋아서 난리 났다.

포디나 백작이 드디어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하긴 앞마당 털리게 생겼는데도 모른 체했다면 정말 실망했을 거다.

-전쟁인가? 커뮤니티 반응은 어때?

-싸움에 미친놈들이 모여들고 있지. 뭐. 이삼 일이면 포디나에 고렙들로 바글거릴걸.

-잘됐네. 알았어. 다른 정보 들어오면 바로 말해 줘.

-응!

평화롭게 살아가는 NPC들 입장에서야 전쟁 없는 세상이 좋겠지만 유저들은 전쟁을 사랑한다. 특히 법과 원칙이 아닌 힘과 야만이 판치는 전쟁이야말로 게임을 즐기는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하는 유저가 한국에는 참 많았다.

‘싸움에 미친놈들.’

잘 뭉치지는 않는데 재미있을 거 같은 곳에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게 대한민국 유저들의 특징이었다.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하며 죽음에의 페널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괜히 전투 민족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아마 나도 그 미친놈 중 하나고…….”

중2병 같은 혼잣말에 소름이 돋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미 마족 기사를 상대할 계획이 세워졌다. 아직 구멍이 숭숭 뚫린 어설픈 전투계획이지만 지금부터 그 계획을 촘촘하게 만들 참이다.

“어디…….”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관문이 보인다. 관문을 지키던 이들은 모두 죽거나 사로잡힌 듯 관문 곳곳을 지키는 건 카머슨 남작령의 병사들과 기사들이다. 그런데 참 더럽게 많다. 분명 200의 병사에 기사 다섯이라고 들었는데 대충 눈으로 훑어도 600명은 되어 보이고 절반 이상은 유저들이다.

흠… 역시 중국 애들은 일단 인구빨인가. 저길 밀고 들어가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가 아무리 미친 척 들이받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골치 아플 자리에 일부러 들어가지는 않지.

그때 관문을 타고 말을 탄 치나 제국 놈들 한 무더기가 나타났다. 아까 부딪쳤던 놈들처럼 국경이 뚫렸으니 신나게 즐기기 위해 넘어오는 것이리라.

“좋아. 계획 섰어.”

기발한 생각이 났다. 당연히 실패해도 리스크는 없다.

타고 있던 말에게 최상급 스태미너 포션을 먹였다. 앞으로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할 테니 미리 도핑하는 것이다. 말 위에 올라타 난 가도를 따라 달려오는 치나 제국 놈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하하하! 저놈은 내 거다!”

나를 발견한 놈들이 말머리를 내게 돌렸다. 숫자는 열!

“열 명을 한 팀으로 가르치나.”

중국 광전총국과 관련된 괴담은 다양했다. 세이온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한다느니 위구르나 티벳 쪽 수용소 사람들을 작업장에 투입한다느니……. 직업도 광전총국이 지정한 직업을 얻어야 한다더라.

“역시 너네는 마음에 안 들어.”

가뜩이나 세계의 깡패 중국도 한국 옆에 붙어 있어 짜증 나는 판에 그 중국 애들이 가장 많은 치나 제국도 코리 왕국 옆에 붙어 있어 짜증을 발생시킨다. 현실에서는 조금 힘들지만 여긴 게임이니까.

“빅엿을 먹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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