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09화 (109/154)

109. 판타지 스나이퍼

일렌 자작을 등에 업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고 그렇게 한 시가 되어 황고슈와 만날 수 있었다.

“왔는가.”

“예!”

뭔가 죄라도 지은 건가.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그런데 꼴이 좀 특이하다.

“장비가… 꽤 자유분방하군.”

황고슈의 장비는 어제와 많이 달랐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뭔가 언밸런스한 복장이 되어 있었다.

흉갑 안쪽에 누비셔츠를 입고 있었고 팔뚝까지 덮는 장갑에 바지는 펑퍼짐한 사냥 바지. 그리고 그 위로 긴 소드 벨트 두 개가 X 모양으로 채워져 있다.

“가성비로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성비 세팅……. 하긴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다. 흙수저 모험가 패션이라던가. 뭐 나도 스타일 그렇게 따지지는 않는다. 대충 세트 맞춰 입을 뿐이지.

“흠, 지도는 잘 외웠나?”

“완벽하게 숙지했습니다!”

“조용히 대답해도 다 들려. 아무튼 문제를 내보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가도를 따라 북동쪽으로 1시간가량 이동하면 카인델이라는 국경 요새 마을이 나옵니다. 거기서 다시 다섯 시간 정도 더 가면 로플스 마을이 나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카인델이라는 마을로 간다면 어디를 경유해야 하는가?”

“북동쪽 가도를 따라가면 됩니다. 그렇지만 현재 카인델은 적들의 전초기지가 되었기에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전초기지?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지?”

“고인물들만 이용하는 전쟁 커뮤니티가 있는데, 상당히 신빙성 있는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치나 제국의 접경 영지로부터 파견된 병력이 카머슨의 카인델로 집결하고 있다고요. 과장이나 MSG 다 떼더라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정보였습니다.”

“그래?”

그런 커뮤니티가 몇몇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누나의 말로는 괜찮은 정보도 많지만 허위 정보도 많아 그걸 걸러낼 안목이 없으면 안 보니만 못하다고 했기 때문.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황고슈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다이나믹해질 거 같다.

“좋아. 준비 많이 했군. 그럼 그 주변에 특이할 점이라면?”

“예. 로플스 옆에 숲이 하나 있습니다. 그냥 로플스 숲이라고 부르는데 카인델과 로플스를 잇는 형태지요.”

“이어져 있다면 유사시 퇴각로로 괜찮겠군.”

“퇴각로로는 별로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어째서지?”

“제가 카머슨 남작령의 레인저라면 그곳 먼저 뒤져 볼 테니까요. 게다가 거긴 녀석들의 앞마당이라 지리에 서툰 저희는 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어떻게 퇴각해야 할까?”

“가장 좋은 건 급하게 후퇴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고,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좀 무식한 방법이지만 남동쪽으로 길게 우회하거나 그냥 말 타고 직선으로 빠지는 게 가장 낫습니다. 어쭙잖게 숨거나 했다가는 곧바로 발각당합니다.”

“합격이네.”

“감사합니다.”

역시 현직 위튜버라서 그런가.

“그럼 잠시만 기다리게. 출발 보고는 해야 하니.”

난 여전히 국경 관문을 보수를 지휘하고 있는 일렌 자작에게 보고를 했다. 특별히 말 두 마리를 얻어 황고슈에게 다가가니 그가 놀란 눈으로 내게 말했다.

“말을 타고 갑니까?”

“당연하지. 그럼 계속 걸어 다닐 참이었나?”

“그게… 말을 타고 다니면 적 척후들에게 들킬 위험이…….”

“쯧, 그건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들키는 건 오히려 바라던 바다.

내가 역정내듯 말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황고슈.

“저, 그럼 첫 목적지가 어딥니까?”

“당연히 카인델이지.”

“예?”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하긴 가장 위험하다고 했는데 내가 자처해서 거길 간다니 겁이 날 만하다.

“카인델은 지금 용담호혈이나 마찬가지인데 거길 간다고요?”

“그래. 거참, 너무 걱정하지 마. 정찰이야, 정찰!”

“예.”

내 말에 비척거리며 나를 따라 말을 모는 황고슈다.

이거야 원 앞으로 내가 뭘 할지 알면 까무러치겠네.

* * *

카인델 마을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가도이기도 했고 말을 타고 있기에 자잘한 몬스터 따위는 덤벼들지도 않는다. 한참을 말없이 달리던 내가 황고슈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말 편하게 하죠.”

“그, 그럴까?”

“예. 저보다 나이도 열 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나중에 사석에서 만나면 불편하잖아요.”

내 말에 황고슈의 고개가 끄덕인다.

“그럼 나야 고맙지. 하하… 그 전까지는 조마조마했거든.”

“왜요?”

“귀족 유저에게 마음 놓고 편하게 말하다가 엄한 칼날에 목 날아간 사람이 한두 명이어야지. 낚시질에 걸려서 반말하다가 댕강! 귀족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 있던 기사가 무엄하다고 댕강!”

황고슈가 목 자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하하.”

“빨리 준귀족 딱지라도 달아야 하는데 아직 용병 신세는 벗어나지도 못하니…….”

입이 풀렸는지 황고슈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풀어놓기 시작했다.

“주무기가 활입니까?”

“그렇지.”

그가 자신의 활을 내밀었다.

[+7 헬레나의 롱보우] [전설급][거래 가능]

-전설적인 명궁 헬레나가 사용하던 활로 그녀는 이 무기로 300명의 기사를 죽였다.

공격력: 60(+40)~250(+210)

내구도: 150/150

옵션

파워풀 캐넌

-공격력 2배의 화살을 날릴 수 있다.

-내구도 소모 2배

-쿨타임 1분

7강화까지 된 전설 등급 활인데 옵션도 꽤 괜찮다. 내가 가진 활도 괜찮기는 하지만 깡뎀을 따지면 비빌 수가 없다.

“좋네요.”

“돈 좀 들었지. 지금은 후회 중이지만.”

“왜요?”

“검방으로 시작해서 레벨이나 장비가 받쳐 줄 때 활로 갈아탔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활을 주무기로 써서 아주 개같이 고생 중이야. 원샷 원킬이 로망이었는데 여기선 그게 힘들더라고.”

“그렇긴 하죠.”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온의 몬스터는 여타 다른 게임들과는 탑재된 AI 수준이 달랐다. 다른 게임 몬스터들이 정해진 스크립트에 따라 움직인다면 세이온의 몬스터는 설정된 지능을 기준으로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에 따라 다른 게임에서는 쪼렙 졸업 몬스터로 정평이 난 고블린이 저레벨들이에게는 상당히 위험도 높은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었다.

지능이 뛰어나니 무리를 만들고 함정을 판다. 거기에 고유 스킬인 ‘고블랭’으로 직접 만든 무기까지 사용하니 어지간한 유저들도 솔플로 덤비지 않는다.

“활 때려치우고 너처럼 칼이랑 마법으로 시작했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활을 몇 번 쓰기는 했지만 딱히 영상으로 남긴 건 아니어서 모르는 것 같다.

“저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흐흐, 세이온에서 실력파 위튜버 한다는 사람치고 너 모르는 사람 없을걸?”

“그래요?”

“당연하지. 대한민국 사람들 줄 세우기 좋아하는데 툭하면 너랑 비교 당하니 모를 수가 있나. 아직 레벨이 낮아서 본격적인 고렙존으로 안 가서 그렇지 레벨만 올리면 탑 5도 금방이라고 그러는데.”

“몰랐네요.”

“헐, 정말 몰랐어? 위키에만 들어가도 알 수 있는 건데?”

“그런 걸 안 해서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걸 할 정도로 여유롭게 살지 못했다는 게 맞겠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넌 아직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겠지만 위튜버는 게임만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이런 주변 정도에도 빠삭해야지.”

“그건 그렇죠.”

난 순순히 그의 말을 인정했다. 내가 그런 것에 무지한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단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아직 그리 크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하는 정보는 재깍재깍 물어다 주는 누나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위튜버 선배인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카인델로 가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러니까…….”

“잠시만요.”

슬슬 입을 털려고 시동을 걸던 황고슈를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무시한 채 인벤토리에서 활과 활 통을 꺼냈다.

[+10 푸른 바람의 장궁][전설급][거래 불가]

-푸른 바람 엘프족의 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명품이다.

공격력: 50(+50)~200(+200)

내구도: 200/200

옵션

가이디드 에로우

-발사된 화살이 주변의 적을 추적하여 공격한다.

-추적 가능 거리: 300m

-소모 마나 200

-쿨타임 30초

근거리와 중거리 전투가 주를 이루다 보니 평소 활은 가방에 넣고 다녔다. 잘 쓰지는 않지만 나름 땡기는 맛이 좋아서 연습은 해 두는 편이다.

“활?”

난 대략 2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탐스러운 수박 하나를 노려보았다. 풀숲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 있었는데 움직이지 못했다면 발견 못했을 거다.

“쥐새끼가 있군요.”

드드드득!

난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어 당겼다. 거리가 좀 돼서 그런지 아직 내가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가이디드 에로우]

퉁!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 자신이 발각당한 것을 눈치챈 적이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지만 가이디드 에로우는 놈을 놓치지 않았다.

퍽!

머리에 화살 하나가 돋아난 인영이 풀썩 쓰러졌다.

돌아보니 황고슈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수박을 쳐다보고 있다.

“황고슈 님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했죠?”

* * *

꿀꺽.

황고슈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유명인인 케이와의 대화에 신이나 잠시 사주 경계를 소홀이 하기는 했지만 행여 책이라도 잡힐까 주위를 꼼꼼히 살피던 그였다. 왕년에 판타지 스나이퍼로 이름을 날렸기에 멀리 보는 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먼저 발견했다. 스킬은 절대 아니다. 그만한 초광역 탐색 스킬은 들어본 적 없으니까. 결론은 순수 색적 능력으로 발견했다는 것.

더 놀라운 건 무려 200m에 달하는 거리임에도 정확히 머리를 맞춰 버렸다는 것이었다.

‘활도 이렇게 잘 다뤘어?’

무려 200m다. 아무리 게임이고 온갖 스킬과 아이템 옵션으로 보정이 된다지만 활이라는 무기는 근본적으로 곡사였다. 조준이 쉽지 않다는 뜻. 게다가 세이온은 필요 이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터라 원거리 지향의 활 유저에게는 극악의 환경이었다.

세이온에 저격 좀 한다고 하는 애들도 사실 100m가 한계.

그런데 무려 200m다.

‘나라면 열 번 도전하면 한 번 가능할까.’

새삼 자신의 옆에 있는 케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다시금 느껴진다.

“황고슈 님 무슨 말 하려고 했죠?”

“아, 아냐.”

황고슈가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얘는 조언이 필요한… 아니,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야말로 전투에 있어서는 선천적인 천재 그 이상이다. 새삼 자신이 싸지른 똥이 떠올랐다. 만약 그 밈을 케이가 보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 그가 생각했다. 어떻게든 케이의 마음을 사야 행여나 있을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싱거우시긴.”

어깨를 으쓱한 케이가 등에 장비하고 있던 검을 가방에 집어넣은 후 활과 활통을 착용했다.

“얼른 루팅하러 가죠.”

“예!”

케이의 말에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한 황고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

“으응. 알았어.”

“아, 그리고 미리 말 안 한 게 있는데.”

“……?”

“우리 위력 정찰입니다.”

“……!”

위력 정찰이라는 말은 현대전에서 강력한 화력으로 적이 있을 만한 곳을 공격한 뒤 반격 지점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정찰과는 전혀 다른 전투를 상정한 공격이라는 뜻. 이 상황이라면…….

“혹시 처음부터 카엘린을 타격할 생각이었던 거야?”

“빙고, 그러니 황고슈 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순간 말을 하는 케이의 죽빵을 때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러 참는 황고슈다. 그리고…….

디링~

케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퀘스트가 갱신되는 알림음이 울렸다.

‘설마…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부정하며 퀘스트창을 열었지만.

[매우 어려운->불가능한]

‘맙소사…….’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속였다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엄밀히 말해 속인 건 아니기도 했거니와 따져 봤자 이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은 케이에게 캥기는 구석도 있지 않던가. 친분을 쌓지 않으면 후일 그와 만났을 때 아주 곤란한 꼴이 될 수 있었다.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냐.’

다른 이도 아니고 케이다.

백작으로부터 직접 카메리아의 학살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포디나의 최강자!

딱 하나 걱정되는 건 필드 상에서 대규모의 적을 마주치는 거다. 케이야 잘 싸우니 어떻게든 살겠지만 자신은 자비 없이 게임오버일 테니까.

그러나… 케이를 따라 다시금 정찰에 나서고 약 10분 후 그는 말을 타고 국경을 향해 진군하던 100의 기마대 무리를 목격했다.

“쟤들은… 설마…….”

척 봐도 정예로 보이는 엄정한 군기를 뿜어낸다. 온통 붉은색으로 통일된 갑주를 착용한 그들의 위로 휘날리는 깃발을 본 황고슈의 눈이 커졌다.

“레드가드!”

황금색의 다섯 개의 별이 새겨진 붉은 깃발! 척 봐도 오성홍기다.

그리고 세이온에서의 이름은 레드가드지만 실제 유저들에게 불리는 이름은…….

‘홍위병… 아니, 씨발! 빨간 메뚜기!’

저들은 유저가 아니었다. 14억 인구 중 고르고 고른 재능을 엄격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낸 군대였다. 광전총국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광전총국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정확한 숫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대략적 추산으로 그 수는 무려 일만에 달한다. 그뿐인가. 그들 중 다시 고르고 고른 이들에게는 최하 전설급의 장비와 스킬로만 무장시켰다는데, 만약 그들이 전면에 나선다면 전 세계 세이온 랭커의 순위가 요동칠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런 레드가드가 이곳에 나타났다. 다행이라면 아직 저쪽에서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머리를 돌린 그가 케이에게 외쳤다.

“피해야… 뭐 해?”

황고슈는 시야에 들어온 케이의 분위기가 자신과는 너무나 상반되어 순간 얼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것은 마치… 초식 동물을 바라보는 육식 동물의 그것과 같았다. 끈적한 느낌의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맛있어 보이는데…….”

“뭐, 뭔…….”

“황고슈 님. 쟤들 셉니까?”

“그, 그래. 쟤들은 중국에서 작정하고 만든…….”

“아아… 대충 알겠고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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