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10화 (110/154)

110. 악마가 돌아왔다

척척척!

상당히 부담스러운 커다란 배를 흔들며 한 중년인이 복도를 걸었다. 어울리지 않는 카이저 수염을 한 그가 나타나자 길목에 있던 이들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분분히 좌우로 갈라졌는데 이럴 때 그에게 잘못 걸리기라도 했다가는 곧장 그의 말채찍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말튼 남작!”

고풍스러운 문을 밀며 들어간 그가 방 중앙에 서 있는 사내에게 외쳤다.

그를 확인한 사내가 씨익 웃으며 답한다.

“카머슨 남작님. 오셨습니까?”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할 참인가!”

카머슨 남작의 외침에도 사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꽤나 유들유들한 표정이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에는 작은 경멸이 묻어 있다.

“자네가 그리 장담하기에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도 참고 이번 작전을 용인해 줬네! 그런데 패배하다니!”

탕탕!

화를 주체 못 하겠다는 듯 연신 말채찍을 휘두르는 카머슨 남작이다. 그러나 말튼 남작은 한 치의 놀람도 없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남작님 그러나 이건 남작님의 잘못도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남작님의 병사들이죠.”

“뭐라? 지금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이는 건가”

“악마가 나타났다며 겁에 질려 후퇴했으니까요.”

“큭…….”

말튼 남작의 말에 시근덕거리던 카머슨 남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도 소식은 들어 알고 있다. 그 악마가 다시 나타났다고……. 그리고 그 대상이 어째서 악마라고 불리는지도 말이다. 과거 포디나 백작의 딸의 혼인 납치 미수의 보복으로 쳐들어온 그 악마 놈……. 감히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님의 동상을 박살 낸 것으로 모자라 영지에 불을 지르고 병사들과 기사들을 학살하고 유유히 빠져나간 그놈이 다시 나타났다.

한동안 잠잠하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악마는 더 강해졌다고. 그리고 그것을 증명했다.

용병들로 모자라 황실에서 내려온 마족 기사까지 모조리 죽이면서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일찍이 악마를 알아본 자신의 기사와 병사들은 용병들이 죽어가는 틈에 후퇴하여 어느 정도 병력을 보존했다는 것이고, 그가 모르는 사실 하나는 너무 일찍 도망친 덕분에 마족 기사가 용병들을 공격한 일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말이다.

“이, 이익… 그래도 이 일은 자네가 책임져야 할걸세! 악마를 잡을 거라 호언장담을 하여 큰돈을 들여 초빙한 마족 기사까지 죽었어!”

찔리는 게 있는 카머슨 남작이 노호성을 터뜨렸지만 말튼은 상관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제 주군이신 알스 공작 각하께서 적극적으로 카머슨 남작님을 도우라 하신 이상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음, 공작각하께서?”

공작이라는 말에 카머슨 남작의 표정이 환해졌다.

‘멜코크 폰 알스 공작.’

기존 2공작 체제였던 것을 3공작 체제로 만든 남자이며, 현 치나 제국의 세 공작 중 하나이자 가장 강한 대 군세를 보유한 이다. 참고로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였다. 본래 레드 레볼루션이라는 용병대의 대장이었던 그는 어느 자작가의 영지전에 고용되었다. 결과는 그가 계약한 자작가의 승리.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마지막 회전에서 자작이 죽어 버리고 영지전을 벌이던 두 영지를 그가 먹어 버렸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일. 놀라운 것은 그 이후였다.

그저 그런 용병대의 대장인 줄만 알았던 그는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의 휘하에 있는 용병들은 하나같이 소드마스터나 대마도사에 근접하는 자들이었으며, 그에 준하는 이들도 이들 또한 구름처럼 많았다.

숭무(崇武)를 표방하는 치나 제국은 힘이 곧 권력인 제국이었다.

보유한 군세만으로 하나의 영지는 우습게 넘볼 수준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금력의 소유자이며 그 이후로 그의 군세가 꾸준히 늘어났다는 것. 그렇게 자금과 병력으로 야금야금 주위 영지들을 집어삼켰고 결국에는 황제에게 영지를 인정받고 공작의 작위를 받기에 이르렀다.

“허험, 공작 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내 안심이지. 그래. 그럼 어떤 계책이 있는 건가?”

카머슨 남작의 말에 말튼 남작은 속으로 작게 욕을 삼켰다. 만약 대계가 아니었다면 당장 이 뚱땡이의 뱃살에 검을 박아 넣었으리라.

“걱정 마십시오. 레드가드 100명이 국경으로 향하는 중이니 말입니다. 음, 아마 내일 아침이면 도착하겠군요.”

“허, 레드가드가?”

‘레드가드.’

레드가드라는 말에 카머슨 남작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치나 제국 제일의 무력을 자랑하는 알스 공작의 군세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 하나하나가 정예이며 기사급이라는 레드가드가 100명이나 가세한다면 그 악마 같은 놈 또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레드가드라면 내 안심이지. 그런데 말일세. 그 레드가드가 어찌 그리 빨리 움직일 수 있었는가? 설마 내 영지에 내가 모르는 공작님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나?”

나름 예리하게 찔러오는 카머슨 남작이다.

그러나 말튼 남작은 전혀 흔들림 없이 그 질문에 답을 내어놓았다.

“공작께서는 항상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십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건 행여나 있을 적의 첩자에게 군대의 움직임이 노출될까 저어했기에 극비로 취급했기 때문이고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건 죄송합니다.”

말튼이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끄덕이는 카머슨 남작이다. 그때였다. 아무런 동요가 없던 말튼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진 것은.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말튼이 소리쳤다. 졸지에 깜짝 놀라 뒤로 뒤뚱뒤뚱 물러나는 카머슨 남작이다.

“무, 무슨 짓인가!”

카머슨의 새된 고함에 정신을 차린 말튼이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아니, 그게 무슨… 이보게!”

이미 방을 빠져나가는 말튼 남작의 등뒤로 카머슨의 목소리가 뒤따랐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은 채 빠르게 달렸다. 이윽고 그가 도착한 곳에는 심각한 표정의 기사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 앞이었다. 자리에 도착한 말튼 남작이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마법사 차림의 여인에게 외쳤다.

“류엔! 무슨 말이야! 레드가드가 전멸했다니!”

“말 그대로야. 조금 전 레드가드 21번대 대장이었던 장후에게서 연락이 왔어. 국경으로 이동하던 중 습격을 당해 91명이 죽고 나머지는 가까스로 후퇴했다고…….”

“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장난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장난을 칠 만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 그럼 이유가 뭐야? 지나가던 드래곤한테 밟히기라도 한 건가?”

“일단 봐.”

루엔이 그에게 짧은 영상 하나를 전송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말튼 남작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 이게 뭐야!”

* * *

“으… 으으…….”

황고슈는 지금 살짝 고민 중이었다. 분명 실금했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것을 실시간으로 본 후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케이의 애청자로써 1인칭도 해 보고 영상도 많이 봤다. 그러나 그것을 감상하는 것과 직접 그 현장에 있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단어는 단 하나였다.

“압도적… 인 괴물…….”

온통 말과 인간의 시체뿐인 공간에 단 한 명이 오롯이 서 있다. 무기질적인 투명한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오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저 괴물이 바로 케이다.

처음에는 미친놈인 줄 알았다. 아니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비라는 표현이 적당했으리라. 무려 100명에 달하는 기마를 향해 말조차 타지 않은 채 정면으로 달려드는 그 모습이라는 건…….

갑작스레 나타난 적임에도 레드가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군대라는 표현에 소름 끼치도록 어울리는 그들은 곧장 케이를 짓밟고 지나가려는 듯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들에게는 상대의 정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좀 미친놈이 죽고 싶어서 달려드는 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콰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소리와 함께 가장 전면에서 달려오는 레드가드 다섯이 찌그러져 터져 나갔다.

쾅! 쾅! 쾅쾅쾅!

뒤이어 연속적인 폭발음! 무려 인마 일백과 단 하나의 충돌이건만 박살 나는 건 일백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격의 중심까지 파고든 케이의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으아악!”

“아악!”

마치 물 반 고기 반인 곳에 그물을 던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검을 뿌려 댈 때마다 머리든 팔다리든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고, 무기를 꺼낼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십여 명이 갈려 나갔다.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는 않았다.

“포위섬멸진!”

대장으로 보이는 화려한 갑주의 사내가 외치자 혼란에 빠졌던 레드가드들이 말을 수습하고는 케이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다수가 소수를 포위하여 공격하는 포위섬멸진은 쉬운 듯하지만 상당한 고난위도의 전법이었다. 다수가 소수를 상대하기에 공격하는 측이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서로 동선이 꼬일 수 있어 오히려 합격(合骼)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러나 레드가드의 포위섬멸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순식간에 스물이 지워졌지만 거의 완벽한 포위섬멸진으로 케이를 압박했다. 그렇다. 상대가 케이만 아니었다면 포위섬멸진은 완벽했을 것이다.

츠카카카칵!

“으아악!”

“스, 스킬이!”

케이를 향해 좁혀들던 이들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설퍼 보이는 몇몇 공격만이 케이를 향해 날아갔고 그는 그것을 무척이나 쉽게 피해 내며 가슴 시리도록 날카로운 일격을 되돌려줬다.

쫘아아악! 쫘악!

그야말로 대학살극! 그를 포위하고 공격하던 이들의 머리가 사이 좋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공격! 공격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대장이 목이 터져라 외치자 공포에 질려 가던 이들의 눈에 다시금 전투의 의지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상대는 여전히 케이였다. 모든 전투에 있어서 압도적이라는 말이 부족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전투의 천재.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삐죽 솟아올랐다.

그리고 터져 나왔다. 그 파괴의 붉은 광선이.

지이이이이잉!

마치 스타워즈의 광선검처럼 뻗어 나간 그 빛에 꿰뚫린 레드가드들이 연어처럼 퍼뜩 거린다. 케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이이잉!

그가 몸을 회전하며 손가락을 사방으로 긋자 광선은 사방으로 폭사되며 레드가드들을 훑고 지나갔다. 말 그대로 떼죽음! 공포에 질려가는 그들에게 케이는 독을 풀었다.

“친위대 소환!”

아우우우! 크아앙!

빛과 함께 현신한 세 마리의 늑대인간이 주위에 전의를 상실한 적들을 마구잡이로 베기 시작했다. 케이 또한 그것들과 함께 신나게 목을 베고 다닌다.

“씨, 씨발…….”

황고슈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학살극의 관전자로써 연신 욕을 내뱉는 것밖에 없었다. 욕의 이유? 케이의 압도적인 무력 때문에?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저 레드가드들이 불쌍해서? 절대 아니다.

“더 강해지고 무서워졌어.”

그렇다. 케이는 더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더 무서워졌다. 그의 전투를 보고 있으면 저게 진짜 같은 유저가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예전에는 나도 강해지면 한 10% 정도는 따라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

일단 같은 유저라는 신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케이는 ‘저걸 어떻게 따라 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강해져 있었다. 한계가 어디인가. 시간이 지나면 저보다 더 강해질 것인가. 그렇다면 훗날 이 세이온에서 저 괴물이 차지할 위상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후퇴! 후퇴하라!”

레드가드의 대장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그의 말을 따르는 이는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고작해야 열? 대장의 외침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쳤고 홀로 남은 케이는.

“김빠지게 도망가냐!”

도망치는 레드가드의 등을 바라보며 저딴 말이나 지껄이고 있다.

“이게 무슨 위력 정찰이야!”

저 케이는 위력 정찰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 * *

“일단 골드로는 31,200골드.”

“헤에?”

“이제 아이템!”

“우홋!”

두 가방의 주둥이를 열고 아이템이 쏟아 내자 누나의 눈에 하트가 뿅뿅 그려졌다. 대부분 희귀와 전설급 무기와 방어구 악세사리들이 쏟아진다.

“2,000골드, 15,200골드, 62,800골드, 101,000골드… 122,000골드.”

누나의 입과 두뇌는 마치 노련한 경매사의 그것처럼 아이템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꽤나 흐뭇한 상황.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누나의 입이 점점 느려졌다.

“252,000골드… 268,000… 근데… 케이야.”

“왜?”

“이거 왜 죄다 시뻘개?”

“시뻘건 애들이었어.”

“아…….”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곧 눈매를 사납게 일그러뜨리며 내게 말했다.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얘들 아무래도 길드 같은데 이름이 뭐냐고!”

“아, 레드가드라고 하던데?”

“레드가드? 설마 레드에볼루션?”

“레드에볼루션은 또 뭐야? 빨간혁명?”

“…….”

“…….”

“…….”

“그냥 입으로 욕해.”

“야이, 백치미야! 레드에볼루션도 몰라?”

“알 게 뭐야!”

“제발! 세이온 정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라구!”

“아, 몰라. 나보다 약한 놈들한테 뭔 관심!”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바가지를 긁히니 나도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다.

“아니, 너보다 약한 놈들이라니 얘들이 얼마나… 얼마나… 하아… 틀린 말은 아니네.”

뭔가 말을 열심히 되뇌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몇 놈이었어?”

“한 백 명 정도였나?”

“백 명이 맞을 거야. 걔네 한 개 대가 백이니까.”

“아하…….”

“아하가 아니라……. 넌 어떻게 갈수록 괴물이 돼 가니…….”

“괴물이라니… 그냥 하다 보니 된 거지.”

“그게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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