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11화 (111/154)

111. 작은 오해

사실 약간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새롭게 얻은 마나컨퓨즈는 그야말로 양민 학살 스킬의 끝판왕이었으니까. 물론 그 양민의 기준이 전설급 스킬이라는 것에서 앞으로 내 사냥감이 되실 분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어떤 놈은 날 때부터 송곳니를 가지고 있고, 어떤 놈은 열심히 도망칠 수 있는 두 다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이 없는 것을 비관한다고 해서 없는 게 생겨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넌 미친 게임 재능을 가진 놈이잖아. 솔직히 이 물음에는 할 말 없다. 그냥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대답할 수밖에…….

“하아아아… 내가 너랑 이야기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세이온의 상식들이 실시간으로 무너진다구.”

“그거야 내가 새로운 규칙이니까!”

“뭔가 병신미가 폭발하는데 멋있어서 반박할 수가 없어.”

“하하.”

“그만해. 제발… 여기 우리밖에 없긴 하지만 부끄러움은 내 몫이야.”

“흠흠…….”

“그보다 어쩔 거야? 너 이거 레드 에볼루션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걔들 세?”

“최정예 레드가드 9,900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초거대 길드. 아니, 겉으로 표방하는 건 길드지만 알려지기로는 광전총국이 거느린 사이버 군사조직체로, 지금 치나 제국의 공작이 거기 길드마스터야.”

“와… 9,900명? 거기에 공작?”

“넌 지금 사자의 코털 정도가 아니라 눈을 찔러 버린 수준이라고……. 어쩌면 네 덕택에 치나 제국이랑 코리 왕국이 전면전 상황으로 갈 수도 있어.”

“어차피 터질 때가 되긴 했잖아.”

“그건 그렇지.”

내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사실 치나 제국과 코리 왕국은 조만간 전쟁이 한번 터질 거라 예상되는 곳이었다. 현실 세계와 무관할 수 없는 게 이쪽 사정이라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중국 유저들도 많았지만 애초에 광전총국이라는 국가 조직이 게임에 개입하여 유저들을 움직이기에 그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튼 고생했어. 로그아웃하고 쉴 거지?”

“아니, 다시 나갈 거야.”

“왜?”

“일렌 자작이 퀘스트 줬어. 국경 순찰 한번 해 달라고.”

“순찰?”

“응. 그 레드가드인가 뭔가 하는 애들 잡았다고 하니까 표정 심각해지더니 가까운 곳에 한번 다녀와 달래.”

몸이 피곤했다면 거부했겠지만 위력 정찰(?)이 짧고 굵게 끝난 덕분에 몸은 멀쩡했다.

“그럼 그 황고슈 데려가는 거야?”

“아니, 일렌 자작이 지도도 새로 주고 순찰 지점 찍어 줬는데 여기서 한 1km밖에 안 되더라고. 말 타고 5분 거리인데 굳이 필요 없잖아.”

“음, 그래도 길잡이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앞마당 다녀오는데 뭘. 어쨌건 난 다녀올게.”

내가 아무리 심각한 길치라고는 하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곳도 못 찾을 수준은 아니다.

못내 불안하다는 듯한 누나를 뒤로한 난 말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난 누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 했다.

* * *

“여기가 어디냐.”

순찰을 끝내고 곧장 왔던 길을 돌아왔는데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는다.

분명 흐릿하지만 오솔길이 있었는데 갑자기 길이 사라지더니 급경사가 나타나고 종국에는…….

“여기 큰길이 있었나.”

마차 두 대는 지나갈 것 같은 큰 길이 나를 맞이해 줬다.

“이게 여기 있는 건가.”

지도에 큰 길이 있기는 하다. 이상한 점이라면 본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훨씬 깊숙한 곳이라는 것. 설마하며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내가 전혀 엉뚱한 곳에 왔다는 걸 빼고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몬스터 몇 마리만 덤빌 뿐 NPC든 유저든 보이지 않는다. 실로 난감한 상황.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는데… 꺼내기가 싫은 해결책이다.

“아, 누나한테 말하면 또 놀릴 텐데…….”

앞마당이라고 큰소리 탕탕 쳤는데 길 잃어버렸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쪽팔리지 않은가.

그렇지만 길치 장인으로서 모든 결과를 종합해 보면 난 내 자력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쩔 수 없나.”

* * *

포디나에 있는 상단으로 돌아와 직원들과 함께 전리품을 한창 세부 분류하던 혜미는 갑작스레 울리는 외부 통화 발신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나.

-어, 왜? 로그아웃했어?

-…아니, 아직 게임 속…….

-무슨 일인데. 나 바쁘니까 빨리 말해.

-그게 나 길 잃어버린 거 같아.

-뭐? 너 설마 아직 귀환 못 한 거야? 해도 졌는데?

-내가 어딘 줄 알면 길 잃어버렸다고 하겠어?

-자작한테 지도 받았다며!

-받긴 했는데 이 지도 뭔가 이상해.

-지도가 아니라 네가 이상한 거겠지.

-하아, 그만 갈구고 얼른 좀 구해줘.

징징거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혜미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새끼가 레드가드 백 명을 식후 간식 먹듯이 후려잡는지 아직도 도통 이해를 못하겠다.

-하아, 일단 달은 보이니?

-응.

-달을 마주 본 상태에서 오른팔을 들어.

-들었어.

-거기서 45도로 팔을 뻗고 그 오른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직진해서 와.

-음, 하늘인데?

-멍청아! 하늘로 들라는 게 아니라 옆으로 펴라고!

-아… 그럼 그렇게 말하지. 어쨌건 그럼 이쪽으로만 가면 돼?

-그래.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게 국경 방향일 테니까.

-으음, 알았어. 이게 정말 맞다는 소리지.

-그래.

뭔가 가르쳐 준 것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지 목소리에 의문이 묻어 있다.

-왜? 뭐 이상해?

-아, 아냐. 그럼 갈게.

-알았어.

* * *

다음 날…….

새롭게 아침을 시작하는 말튼 남작과 류엔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국경으로 향하던 레드가드 21번대의 참패(몰살)에 대한 경위를 밤새도록 밝혀야 했고, 게임에 접속하니 새로운 소식이 그들의 피곤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케이라는 그놈……. 진짜 영악하고 무서운 놈입니다.”

류엔의 말에 말튼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어제 그 일이 있고 지금까지 놈의 손아귀에서 철저히 놀아났으니까.

“빌어먹을…….”

레드가드가 몰살당했다는 소식에 말튼 남작은 당장 비상을 걸고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것에 주력했다. 레드가드가 패배했다는 건 절대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되었으니까. 그 후 외부로 죽은 레드가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한편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해 레인저들에게 습격자의 흔적을 쫓으라 명령했다.

“놈의 추적을 멈춘 게 실수였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국경이었으니까.”

“그렇지.”

놈들이 곧장 국경을 통해 돌아갔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비상을 풀고 로그아웃하여 모든 정보를 취합해 상부에 보고하기까지가 새벽 2시였다. 너무 늦어 퇴근도 못 하고 쪽잠을 잔 후 게임에 다시 접속해 보니 참담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해가 어떻게 되는 거야.”

“페로코 마을이 전소되었고 카머슨 레인저 남쪽 주둔지가 전멸……. 포디나 국경을 감시하던 레인저 부대 중 50%가 죽었습니다.”

페로코 마을이라면 카머슨 영지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마을이다.

“치명적이군.”

레인저는 귀했다. 전시에는 척후로 활용되기에 지휘부의 눈 역할을 한다. 절반이 죽었다면 눈의 절반이 뽑혀 나갔다는 소리와 같다.

“교활한 놈…….”

보통 이런 식의 단독 침투에서 민간인이 사는 마을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된다.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은 무려 마을을 불태웠다. 마치 와서 보라는 듯 성대한 불장난을 쳤다. 하루아침에 집과 터전을 잃은 영지민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후방의 마을이 불타오른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민심은 흉흉해지는 중이다.

거기에 어떻게 알았는지 기밀에 속하는 레인저들의 주둔지를 몰살시키고 추적하던 레인저들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침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적당한 숫자로는 도망치는 것도 힘든 괴물이니까.”

“그렇습니다. 후우… 대체 왜 그런 네임드가 이런 쓸데없는 짓을…….”

“끙…….”

나오는 건 한숨이요. 침음성뿐이다. 가장 큰 근본적인 물음은 이것이었다. 이 짓을 벌이고 있는 게 무려 네임드라는 것. 대체 왜! 탈 유저라고 일컬어지는 괴물이 이런 하찮은 영지전에 뛰어드냐는 것이다. 중국에도 네임드로 알려진 이들은 많았다. 원체 세이온을 하는 유저의 숫자가 많으니 네임드도 무려 세 자릿수다. 그리고 그들은 웬만해서는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길드의 우두머리가 되어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 몬스터를 잡아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하지, 이런 단독침투는 그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미친놈인가. 아니면 치밀한 전략가인가.”

낮에 그 미친 짓을 벌이고서 자신들이 안심한 틈을 타 다시금 침투해 후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갔다.

쾅쾅쾅!

“말튼 남작! 말튼 남작!”

“끙… 저 돼지 새끼가…….”

뿌드득.

회의실 문을 카머슨 남작이 말 채찍으로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말튼은 이를 갈았다. 분명 저 돼지도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놈을 죽이고 영지를 차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 자칫 그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알스 공작은 도와주는 척하고는 뒤로 영지를 도모한다는 말이 퍼질 것이다.

“류엔, 난 저 돼지를 상대할 테니까 넌 일단 로그아웃해서 이 사실을 공작님께 보고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최소 레드가드 3개 대와 네임드 셋이 필요하다.”

“예!”

레드가드 3개 대와 네임드 셋이면 놈을 확실히 잡아 죽일 수 있다.

“두고 보자. 이 치욕은 꼭 갚아주마.”

“말튼 남작!”

탕탕탕!

* * *

“너 어제 뭐 했니?”

“어우, 말도 마.”

난 어제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기한 게 있어서 마을에 숨어들었다가 자경단이랑 레인저 놈들한테 걸려 가지고 걔들이랑 드잡이질하느라 혼났어.”

누나 말대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니 돌아오긴 했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던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는 것. 계속 이동하니 큼지막한 마을이 하나 나오더라. 적국의 마을이라 들어갈 수는 없고 마을 외곽을 조심조심 둘러 가려는데 때마침 마을 중앙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 이목을 끌었다.

이장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이 커서 혹 챙겨 갈 게 있을까 해서 숨어들다 결론은 그냥 곡식 창고. 씨발씨발 하며 나오다가 창고에 숨어 뭔가를 하고 있던 NPC 처녀, 총각한테 직방으로 걸려버렸다. 아니, 왜 가마니 사이에 포개져서 숨어 있냐고! 그것들을 그냥 죽였으면 몰래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잠시 망설인 틈을 타 소리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더라. 덕분에 마을 장정들과 자경단 놈들이 쏟아져 나오고 날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데 짜증 나서 마을에 죄다 불을 질러 버렸다. 그렇게 NPC들이 마을에 불 끈다고 사방으로 흩어졌고, 난 그 틈을 타 난 다시금 국경으로 달렸다.

“중간에 말도 죽어 버렸어.”

마을에서 벗어나니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타고 있던 말이 죽어 버렸다. 레인저들의 짓.

그 후로 쉴 만하면 곳곳에 숨어 있던 레인저들이 툭툭 튀어나와 활을 쏴 대고 도망치는데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결국에는 쫓아가서 다 잡아 죽이기는 했지만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아, 그랬어? 피곤하겠네. 좀 더 자.”

내 하소연을 모두 들은 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거 같은데 마치 그건 ‘이제 난 포기했다’라고 말하는 거 같다.

뭐지…….

* * *

[수많은 유저들이 기대하고 기대하던 국가 전면전 드디어 이루어지는가?]

[[단독] 한밤의 악몽! 그날 카머슨 남작령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카타리나의 도살자 케이 자신을 다시 한번 증명하다.]

[[단독]포디나를 넘보다 괴물과 맞닥뜨린 레드에볼루션! 카머슨 남작령에서 분패!]

“들켰네.”

기사 내용이 꽤 과장되어 있다. 카머슨 남작령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마구잡이로 학살해대는 희대의 괴물이라…….

“길 잃어 먹고 헤맨 건데 그치?”

“알아.”

“너 이거 사람들한테 알리면 안 돼. 이 정도로 심각한 길치 방향치라면 이건 약점이나 마찬가지니까.”

“알았어.”

약점이라는 건 나도 안다. 현실에서야 네비게이션이나 맵을 보면 된다지만 세이온에서는 그게 안 된다.

“세이온에는 네비게이션 같은 거 없어?”

“있겠니? 있었으면 돈 있는 사람들이 벌써 썼겠지.”

“하아, 진짜 미친 게임.”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는 사람도 많아. 부족함을 느끼니까 길 잘 찾는 재능도 대접 받는 거지.”

“으음.”

누나 말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알기로 세이온 하면서 전투라고는 단 1g도 하지 않은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으니까.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에서야 칼 들고 설치는 게 가장 속 편하겠지만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하고 상업이나 농업으로 빠지는 거다.

NPC와 결혼도 하고 자식도 키우고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완전히 사회에 녹아들어 산다더라. 대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는데 현실에서도 꼭 누군가를 100% 이해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그래서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누나 말로는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거란다. 오히려 초반에 너무 잘 막아서 문제라고나 할까.

“너 오늘 할 거 없지?”

“황고슈 님이랑 순찰 한 번 더 나갈 거야.”

“그거 힘들걸?”

“왜?”

“카머슨 남작이 전령 보냈대. 그래서 일단은 전투 금지.”

“전령?”

“응. 뭐 듣기로는 이번 일에 대해 자신은 관련 없다는 내용이라나 봐. 책임자를 찾아 엄벌할 테니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더라.”

“뭔 참신한 개소리야?”

국경을 침범한 놈들 중에는 분명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설혹 관련이 없다고 해도 영지의 주인인 이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거다.

“맞아. 개소리기는 한데 일단은 싸우지 말래.”

“아, 머리 복잡해지네.”

짜증이 확 치민다. 계획이 전부 어그러졌으니까.

“왜 기사에는 안 뜬 거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니까. 나도 일렌 자작한테 들었어.”

“단순한 시간 끌기 아닐까? 그 레드가드인가 하는 녀석들이 다 죽어버려서 나에 대한 대책에 없으니.”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합리적 의심이다. 누나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냐? 널 이길 만한 네임드를 데려오거나 암살이나 회유할 생각이겠지. 확실히 이기려면 최소한 네임드 두 명에서 세 명은 데려와야 할 테고 그 정도 숫자의 스케줄을 조정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테니까.”

“그럼 왜 그 말에 따라야 한다는 거야?”

“그거야 포디나 쪽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아…….”

누나의 말이 맞다. 포디나도 시간이 필요하다. NPC들의 정치적 상황도 그렇지만 유저들도 모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넓으니까.

“알았어. 그럼 오늘은 좀 쉬지. 뭐”

어제 필요 이상으로 플레이 타임이 길어져서 머리가 무겁던 참이다. 실제 몸을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뇌는 그대로 활동하기에 몸은 멀쩡한데 머리만 피곤한 거다.

“그럼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요 앞에 머리도 좀 다듬고 이것저것 볼일도 보고… 기분 전환도 하고”

“그래. 기분 전환 괜찮지.”

“누나도 같이 나갈래?”

“아니, 난 접속해서 가게 챙겨야지.”

“열심이네.”

“당연한 거 아니야? 돈이 얼마가 들었는데…….”

“하하, 그렇지.”

누나와 대화를 끝낸 난 지갑을 챙겨 빌라 밖으로 나섰다.

“바람 좋네.”

날씨도 화창하고 피부에 와 닿는 바람도 기분 좋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오랜 게임으로 굳어 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다.

“일단 머리를 좀 다듬고…….”

오랜만에 기분 전환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