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오랜만이다, 엑스트라
-비제이 두레이븐! 출격!
ㄴ오, 드디어 실력파 비제이 등장인가.
ㄴ현직 비제이 랭킹 34위! 백인참!
-염병, 실력파 다 뒤졌나. 저 새끼가 왜 나와.
ㄴ케이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누워 있어.
ㄴ헐? 진짜?
ㄴㅇㅇ 얼마 전에 기사 뜸
ㄴ안 되는데… ㅠㅠ
ㄴ안 되긴. 두레이븐 님이 다 해줄 거야!
ㄴ저 새끼 케이 짭이잖아.
ㄴ케이가 두레이븐 짭이거든?!
ㄴ근데 저 조자룡이라는 놈 내내 케이 타령만 했는데… 뭔 수작일까. 교통사고 알고 그런 건가?
ㄴㅋㅋㅋㅈㄱㄹㅇ
ㄴ두레이븐이 쳐 버린 거 아냐? ㅋㅋㅋ 쟤도 쌓인 게 많을 텐데
두레이븐이 나서자 채팅창에는 온갖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케이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두레이븐은 뛰어난 전투 실력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어모았다. 물론 그의 뒤에 있는 거대 기획사가 철저한 육성을 통해 만든 일종의 아이돌이라는 말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확실한 건 그가 수많은 유저들 중 고르고 고른 진짜 실력파라는 것이었다. 케이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차세대 네임드라는 명성은 그가 가져갔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을 정도로 그는 확실한 PVP스페셜리스트였다.
휘릭! 척!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설급 검은 가죽 갑옷으로 통일한 그는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투구 사이로 눈을 빛내며 두레이븐이 외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말로 해결하자고 꽁무니를 빼던 놈들이 이제는 대가리 수가 좀 맞았다고 기세등등해졌구나! 나 백인참 두레이븐이 그 간사한 대가리를 잘라 주겠다!”
“흥, 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도전하다니. 네놈에게는 볼일 없으니 케이를 불러라!”
“땟놈들은 혓바닥이 길군!”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두레이븐.
“죽여 주마!”
차앙!
예도를 든 두레이븐과 은색 창을 든 조자룡이 격돌했다.
파팡! 파파팡!
최소 전설급 장비와 스킬들의 주인들답게 전투는 화려했다. 조자룡의 창에서 은빛 창염이 뿜어져 나가고 두레이븐의 예도에서 푸른 방어막이 뿜어지며 그것들을 막아 낸다. 1초에 수번을 맞부딪히며 무기와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빛이 번쩍인다.
파파파파팡!
-와, 역시 싸우는 수준이 다르다.
ㄴ캬… 뽕맛 지리고……!
ㄴ역시 1:1이 핵존잼!
간만에 보는 실력자들의 싸움에 채팅창이 난리 났다. 저 정도 수준 실력자들의 싸움을 직관한다는 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
“에휴…….”
그러나 정작 침을 튀기며 중계를 했을 황고슈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잘 싸우네요.”
잘 싸우기는 하는데 그냥 그것뿐이다. 이건 마치 최신 블록버스터 CG를 감상하고는 곧바로 80년대의 나무토막 CG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케이에게서 느꼈던 벽의 느낌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솟아오르는 경외심은 겪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한 마디로 황고슈는 케이의 전투 외에는 자극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둘의 전투에 환호했다. 그렇게 5분여 정도가 흐르자 둘은 그들이 지닌 최후의 수를 꺼내들었다.
“오러 게틀링!”
물러서는 두레이븐이 손으로부터 하얀 빛무리가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자 조자룡은 창을 돌리며 그것들을 막아 내고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들고 있던 창을 두레이븐을 향해 곧게 뻗었다.
[은룡출해]
“크아아앙!”
거대한 은룡이 조자룡의 창으로부터 뻗어 나와 꿈틀거리며 두레이븐을 향해 날아간다.
오러게틀링이 쏘아졌지만 은룡은 그것들을 모조리 몸으로 부수며 나아갔다.
-오… 강기!! 오러블레이드다!
ㄴ오러블레이드는 무슨 오러블레이드. 스킬빨로 잠깐 찍 싸는 거구만.
ㄴ웃기고 있네. 강기 형상이면 오러블레이드 상위니까 신화 스킬 맞다.
ㄴㅇㅇ 다음 짱깨.
크아앙!
황고슈의 시청자들이 오러네 아니네로 싸우는 와중에도 실체화된 은룡은 두레이븐을 향해 치달았다. 조자룡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비장의 절초! 두레이븐이 보호막으로 그것을 막아 내려 했지만…….
콰아아아앙!
“크악!”
보호막 따위는 우습다는 듯 은룡은 그것을 박살을 내 버리고는 그대로 두레이븐이 있던 자리를 초토화해 버렸다.
“내 승리다!”
쓰러진 두레이븐의 앞에 거만하게 서서 창을 치켜드는 조자룡!
와아아아아!
그가 승리하자 카머슨의 이만의 군세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졌네. 두레이븐 병신 새끼.
ㄴ나 두레이븐 구독 끊으러 감.
ㄴ나도 구독 끊음.
ㄴ그래도 졌잘싸
ㄴ지랄, 졌잘싸는 무슨……. 어휴 나라 망신!
ㄴ신화급 스킬이잖아. 저걸 무슨 수로 막아.
두레이븐에 대한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채팅창. 조금 전까지 두레이븐을 응원하던 이들도 비난에 합류했다. 다소 원색적인 비난이 섞이기는 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럴 만도 한 것이 타국과의 전투에 대표로 나선다는 건 곧 국가를 대표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개인 방송인들은 스포츠 스타처럼 폭넓은 대중의 인기를 얻지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타국의 유저에게 게임 오버를 당한다는 건 그만큼 치욕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인기와 인지도를 얻은 이들은 쉽게 이런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혹 나서더라도 그만한 돈이나 명예에 따라 움직일 뿐.
굳이 찾아다니는 이들은 명성을 얻어 네임드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두레이븐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가던 명성에 똥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그러나 상대였던 조자룡은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척……!
죽은 두레이븐의 시체를 창으로 꿰어 공중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자랑하듯 시체를 흔든다.
“와아아아!”
카머슨 남작 측에서는 환호가 포디나 측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 개새끼가……!”
“씨발 놈! 죽여!”
시체 훼손. 게임에서 이미 죽인 상대를 농락하는 짓 중 하나. 물론 상대가 원수라든가 당한 게 많다면 시체 훼손을 할 수 있다지만 이런 국가적인 자리에서 저런 모욕적인 짓을 저지른다는 건 시체 훼손을 벌인 상대를 떠나 상대 국가 유저들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으하하! 나에게 또 도전할 자 누구냐!”
조자룡은 이제 노골적으로 도발하기 시작했다. 응하지 않는다면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이는 없다. 마음 같아서야 나서고 싶지만, 나서는 건 죽여 달라는 것과 같다.
“겁쟁이들아! 어서 나오란 말이다!”
벌거벗겨진 시체가 창에 꿰어 흔들거린다. 적국의 상태이기에 상대의 모든 아이템을 빼앗을 수 있어 벌어지는 최악의 퍼포먼스다.
“저 개새끼가!”
“너 새끼 이리 와 봐!”
“야야! 말려!”
“씨발 우리 쪽 네임드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조자룡의 도발은 포디나 측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먹혀들었다.
그렇게 카머슨 남작측은 환호가 포디나 측은 울분의 고함이 울릴 때였다.
철컹… 쿠쿠쿠…….
관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짙은 흑갈색의 가죽 갑옷에 머리를 덮은 후드 이중으로 된 소드 벨트에는 하얀 검이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다. 주위를 슥 둘러본 그가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자룡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전혀 긴장하지 않아 마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누구지?”
“누구야? NPC인가?”
웅성웅성…….
한 사람의 출현에 양 진영의 소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관문이 열렸다는 건 포디나 백작이 인정한 대전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는 출전할 만한 네임드가 없다. 유일한 준네임드인 케이는 교통사고가 나서 내내 미접속 상태다. 모두의 궁금증을 품은 채 남자를 바라보는 와중에도 그는 조자룡을 향해 걸어갔다.
“흠…….”
한창 포디나를 조롱하던 조자룡이 시체를 한쪽으로 던져 버리고는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전혀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 방만한 태도에 눈썹을 꿈틀했다. 저것은 자신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전설의 첫 장을 더럽히는 행위와도 같다.
챙!
“놈! 이름을 밝혀라!”
창을 겨눈 채 외치는 쩌렁쩌렁 외치는 조자룡. 그러나 상대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묵묵히 걸어와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섰다.
“네놈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글러 먹었구나. 하긴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소인배이니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물러가라. 내 창에 너 따위의 피를 묻힐 수 없으니…….”
꽤 멋진 대사를 늘어놓는 조자룡.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쉰 상대는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따위한테는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데?”
“뭐? 뭐라?”
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전신에서 투기가 피어올랐다.
“가지고 놀다가 처참하게 죽여 주마.”
훙! 훙훙!
분노를 담은 듯 창날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리고 마음은 이미 그를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인 것 같은 그의 눈빛! 그때 남자가 허리춤에 걸린 검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가지고 놀다 죽이든 울면서 죽이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와. 아, 되도록 네가 가진 최고 스킬로 덤벼라. 괜히 나중에 얕보다가 죽었다느니 헛소리하지 말고.”
“이놈이……!”
츠츠츠.
조자룡의 전신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농락이 아닌 최악의 치욕을 안긴 채 천천히 죽여 버릴 것이다.
조자룡이 천천히 뛰기 시작하더니 이내 빛살 같은 빠르기로 쏘아져 나갔다.
“일단 그 발칙한 주둥이 먼저 찢어 버리리라! 일점관통(一点觀通)!”
콰콰콰콰!
그가 가진 스킬 중 가장 파괴력이 높은 건 은룡출해였지만 속도만을 보자면 지금 꺼내 든 일점관통이 가장 빨랐다. 비록 전설급 스킬이라 파괴력은 단 1인에 한정된다고 해도 그가 가장 오래 사용한 숙련된 스킬이기에 숙련도도 최상급이다. 일단 이 공격으로 우선권을 가져온 뒤 차근차근 다져 버리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아앗!”
창과 하나가 된 그의 몸은 순식간에 상대의 근처에 도달했다. 찰나와도 같은 순간의 섬광이 잔상마저 꿰뚫겠다는 듯 날카롭다. 자신의 공격에 얼어붙은 건지 아니면 반응할 역량조차 되지 않는지 상대는 이제야 검집에서 칼을 꺼내기 시작했다.
“느리군! 멍청이!”
조자룡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상대의 여유로움에 잠시나마 긴장한 게 우스울 지경이다. 이대로 관통하기만 하면 끝.
그러나… 그가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상대는 이미 함정을 파 놓은 지 오래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가 지근거리에 들어온 순간 파놓은 함정이 발동되었다.
“어헉……!”
창이 닿으려는 순간 조자룡의 신형이 순간 비틀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데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의 몸은 상대의 뽑혀 나오는 검과 맞닥뜨렸다.
스컥!
한차례의 짧은 단절음과 함께 조자룡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 광경에 이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양측 모두 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쿵……!
조자룡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 * *
난 저만치 굴러가는 조자룡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멍청이냐. 바보냐?”
상대가 필요 이상으로 여유를 부리면 왜 그럴까 하고 한 번 정도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허장성세라는 전법도 있다지만 전투에서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이 녀석의 처지에서야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건 모두 내 철저한 계산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우, 영양 가득하네.”
마나컨퓨즈만 켜놓고 있었더니 대어가 날아와 가슴에 안겼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힘든 게 드잡이질하기보다는 한 방에 보내버리는 거다. 아이템이 전부 전설급이다. 적대국 유저에 대해서는 착용한 모든 것을 약탈할 수 있다. 대략적으로만 계산해도 십만 골드는 넘을 것 같다.
역시 자잘한 거 수십 마리 잡는 것보다 씨알 좋은 놈 하나가 맛있는 법이다. 녀석의 장비들을 품평하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을 돌려보니 세 개의 인마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것들은 바뀌는 게 없구만.”
보통 대전사라면 하나가 나서는 게 일반적인데 저것들은 항상 셋이 쌍으로 움직인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부끄러움도 없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한날한시 죽기로 했다는 뭔 되도 않는 헛소리를 하더라.
히히히힝……!
그래도 최소한의 개념은 있는지 멀찌감치 떨어져 말을 멈추고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 관우가……!”
“우리 삼형제는……!”
“용서하지 않…….”
뭔가 개소리를 꽥꽥 싸지르는데 그다지 듣고 싶지 않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대결 상대랑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10분 이상을 잡아먹기 일쑤인데 난 이걸 아주 혐오하는 편이다. 어차피 상대를 죽이러 왔는데 굳이 입을 털 필요가 있나. 멋들어진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그 열망이야 이해하지만 그것이 내 시간을 빼앗아도 된다는 당위성은 되지 않는다.
“나 관우가 먼저 네놈에게 징치를 내릴 것이다!”
훙훙훙훙!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획획 돌리며 요란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난 솔직히 저것도 이해가 안 된다. 뭐 기수식이니 사전 몸풀기니, 말하는데 굳이 상대에게 자신의 무술 종류와 무기 리치를 가늠할 여유를 주다니…….
“이름을 밝혀라!”
청룡언월도를 겨드랑이에 끼고 자세를 한껏 낮춘 관우가 외쳤다. 흠… 그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난 쓰고 있던 후드를 벗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엑스트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