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18화 (118/154)

118. 그는 항상 대책이 있다

“후…….”

케이는 긴 숨을 토해 냈다.

방어구는 내구도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고 몸 상태도 그만큼 안 좋다. 아무리 뱀파이어릭 오라로 생명력과 마나 오러를 보충했다지만 육체의 상처는 온전히 물약과 재생력에 의존해야 했고 현재 그의 몸은 물약 중독에 재생력으로도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에게는 정말 세이온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다.

“으으…….”

그와 눈이 마주친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잔뜩 겁에 질린 그 얼굴들을 보니 저열하고 기분 좋은 우월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고작 NPC에게 불쌍함 같은 걸 느끼냐고 물을 수 있지만 애들은 좀 불쌍하다.

“뭐하고 있나! 공격! 공격해!”

“너희는 자랑스러운 치나 제국의 병사들이다!”

독전관 놈들이 자국의 병사들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으아아아!”

“죽어!”

“악마 놈아! 제발 죽어!”

병사 하나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하긴 저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악마가 맞았다. 이만 명 중 몇이나 벤 건지는 감이 안 잡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천 단위는 아득히 넘겼다는 것이었다.

[업적][치나 제국을 찢는 자] [전설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치나 제국 국적의 유저 혹은 NPC와 전투 시 공격력, 방어력 30% 상승

덕분에 생각지 못한 업적도 얻어 버렸다. 이전의 ‘카타리나의 도살자’와 같은 전설급이지만 같은 전설에도 급은 존재했다. 지금 얻은 이것은 전쟁 업적으로는 거의 최상급에 달하는 것이리라. 거기에 레벨도 2개나 올라서 69가 되었다. 세이온에서 본격적인 고레벨이라고 불리는 것이 70부터니 엄청나게 빨리 성장한 것이다.

치나 제국이 병사들은 개 떼처럼 달려들었다.

쫘아아악! 콰득!

달려드는 놈들은 용서 없이 베고 찌르고 부숴 버렸다.

아무리 적이 많고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해도 이론상 공격받을 수 있는 방위는 총 8개였다.

물론 원거리 공격이나 마법 따위를 고려하면 경우의 숫자가 좀 더 많아지겠지만 아무튼 10개를 넘기지는 않는다. 여기서 내가 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면 내 후위는 비게 됨으로 대략 5~6방위 정도에서 덤벼드는 놈들만 상대하면 된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병사들이 죽어 쓰러졌다.

“영광에 스러진 전장의 영웅들이여… 지금 이 자리에…….”

종군 마법사로 보이는 놈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병사들이 갑자기 눈이 시뻘게지더니 그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버프 스킬은 아니었다. 버프는 온전하게 능력치만 올려주는 스킬인데 눈이 빨갛게 변한 병사들은 방어를 완전히 포기한 채 덤볐다.

[데스레이]

삐이이이이이!

“으아악!”

쏘아져 나간 붉은 광선이 마법사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가급적이면 주문을 외우기 전에 처치하고 싶은데 일반 병사와 별 차이 없는 무장을 하고 있어 마법을 발현한 후에야 죽일 수 있다.

“으아아! 죽어!”

마법에 걸린 놈들이 달려든다. 방어를 포기한 놈들이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좀비처럼 달려드는 녀석들을 상대하다 보니 몸에 조금씩 데미지가 쌓이는 건 피할 수 없다. 검을 스위칭한 케이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땅을 향해 듀렌달을 내리그었다.

[어스 브레이크]

콰콰콰콰콰쾅!

방사형으로 터져 나가는 충격파와 함께 수십 명의 치나 제국 병사들이 산산조각이 나 하늘로 솟구쳤다. 거의 10m는 될 법한 시산혈해(屍山血海) 속으로 케이가 내려섰다.

타탁!

물컹하며 밟히는 땅의 감각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피를 먹었는지 축축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으으… 이건 미친 짓이야.”

“악마… 괴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피의 안개 속에 주저앉은 병사들이 공포의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무리 숭무주의의 치나 제국의 병사들이라 해도 이만의 병사들 속에 뛰어들어 기천의 병사들을 홀로 베어 내는 괴물을 상대로는 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 케이가 오만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그의 흉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쩌저적…….

흉갑이 쪼개져 바닥에 떨어졌다. 누나가 특별히 구해 준 전설급 방어구인데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쯧, 누나한테 혼나겠네.”

완전히 박살 나기 전에 다른 방어구로 교체했어야 했지만, 어차피 죽으면 가방까지 털리기에 그냥 내버려 뒀더니 끝내 사망해 버렸다. 게다가 더 안 좋은 건 나를 바라보는 병사 놈들의 눈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놈을 죽이는 병사에게 금화 100닢을 주겠다!”

독전관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병사들의 얼굴에 탐욕이 어리며 다시금 창과 검을 꼬나쥐었다.

“으아아아!”

“죽어!”

오로지 신화급 무기의 깡뎀으로 베고 자르고 찌른다.

쫘악! 쫘아아악!

솟구친 진흙 방패에 병사들이 휩쓸려 죽어 나갔다. 가로로 긋는 데스레이의 수십의 병사들이 두 동강이 났고, 광역 매혹으로 군중을 흩뜨리고 또다시 베어 낸다. 그러나 병사들은 미친개처럼 계속 몰려들었다. 그렇게 거의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를 때였다.

투캉!

케이는 순간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기분으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치 거인의 손에 두들겨 맞은 듯하다.

[불사의 권능이 발현합니다.]

즉사의 타격을 입었을 경우 발동하는 불사의 권능이 켜졌다. 60초 동안 부상과 생명력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이다. 재빨리 물약을 꺼내 마시며 몸을 일으키는데 병사들이 갈라지더니 기사들을 이끌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멋들어진 검은 수염에 학우선을 든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학우선으로 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엘프의 악몽, 드디어 복수를 완성하는구나.”

듣기만 하면 오그라드는 기분이라 가급적 듣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이명을 꺼내 드는 남자다.

케이가 아무런 대답 없이 노려보자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크크큭,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어지간히 분한가 보군. 그러나 어쩌겠나. 이렇게 된 것이 다 너의 그 오만함 때문 아닌가. 네놈은 항상 그랬다! 유린하고 조롱하고! 네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아는가! 이제 그 복수다! 케이! 네가 저지른 죄악의 무게 달게 받아라!”

“…….”

뭔가 기세 좋게 말하지만, 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못했다.

“음… 그런가?”

“그런가? 고작? 네놈은 네가 저지른 그 모든 죄악이 고작 그런가 한마디로 설명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흐음…….”

상대가 몰아붙이자 케이는 저도 모르게 볼을 긁적였다. 그런 케이의 반응에 남자의 손에 들린 학우선이 파르르 떨린다. 그가 말했다.

“너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게… 음… 솔직히 모르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를 통해 시간을 좀 벌어야 하니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케이다. 조금 미안해질 정도.

“너! 내 전설급 학우선도 가져간 주제에 날 몰라!”

“학우선? 아! 혹시 그거 전설급 학우선?”

“그렇다!”

“아, 제갈량이었군. 반갑다.”

학우선이라고 하니 상대가 누군지 떠올랐다. 꽤 비싸게 팔아먹은 기억이 있어서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고 말이라도 한마디 할 참이었으니까.

“그렇다! 오호대장군! 제갈량이 바로 나다!”

케이가 알아봐 준 것이 기분 좋은지 활짝 웃는 제갈량이었다.

그러나 활짝 웃던 제갈량의 표정이 순간 이전보다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것이냐. 네놈에게 나는 그 정도일 뿐이냐!”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좋다. 오늘 내가 네놈에게 내 이름을 확실하게 새겨 주마. 레드가드! 통천지벽을 펼쳐라!”

“존명!”

그의 외침에 케이를 중심으로 방패의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처처처처처척!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이는 방패의 벽이 반경 100m를 둥글게 틀어막았다. 방패만으로 만들어진 벽의 높이는 무려 10m. 성벽보다 단단해 보이는 방패들에서 붉은 오오라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네놈의 무덤이다.”

제갈량이 옆으로 물러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이 앞으로 걸어나 와 정렬하기 시작했다.

척 봐도 범상치 않은 갑주와 무기를 갖춘 그들은 심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내며 케이의 앞에 섰다. 그런 이들의 숫자가 무려 5명이다. 케이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영주들의 친위기사들이군.”

“흐흐, 그렇다. 네놈을 죽이기에 더없이 적절한 검이지.”

“세 보이네.”

친위기사라는 건 영주들의 최근접에서 호위하는 기사들을 말했다. 일반적인 기사가 아닌 영지에서 가장 강하며 가장 신뢰할 만한 이들을 친위기사로 삼는 것. 한마디로 영지의 제일검을 말한다.

“나 카머슨 남작 각하의 제1기사 루오딘! 네놈에게 과거의 빚을 받아 가겠다.”

다섯의 중심에 서 있던 중년의 기사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나랑 엮였었나?”

“크크, 그래. 네놈이 남작령에서 저지른 방화사건 때 내 아들을 찔러 죽였지.”

“음, 그렇군.”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아 무안함에 볼을 긁적이는 케이다.

가급적 죽은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크크… 네놈의 목을 잘라 내 아들의 묘에 바치겠다.”

지이이이잉!

중년 기사의 검에 붉은빛이 씌워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본래 길이보다 약 두 뺨 정도 더 길어진 빛의 검이 되었다.

“오러 블레이드라… 소드 마스터인가?”

“그렇다. 네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결과다.”

‘오러 블레이드.’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기 중 하나였다.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해 베고자 하는 의지를 극한으로 응축하여 마나를 통해 발현하는 근접전 최강의 공격기로, 살아 있는 생명체든 영적인 존재든 혹은 마나로 이루어진 스킬이든 오러 블레이드로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우우웅.

가볍게 늘어뜨린 오러 블레이드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린다.

“단숨에 보내주마.”

팟!

그 말과 함께 중년의 기사의 신형이 케이의 눈에서 사라졌다. 오러블레이드를 다룬다는 건 단순히 강력한 검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정기신이 완벽하게 단련된 초인이라는 뜻이었고 그 상태에서 다시금 깨달음을 통해 벽을 뛰어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경지다. 참고로 유저 중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이는 세이온 전체를 통틀어 100명이 채 안 된다고 알려진. 케이로써는 닿지 못한 곳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중년의 기사는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케이라는 사람은 절대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런 극한의 상황에 놓일 것을 예상했다면 그에 충분히 대응할 만한 무기도 마련해 놨다는 뜻이다.

“죽어라!”

순간이동 하듯 앞에 나타난 기사의 오러 블레이드가 케이의 목을 베어 갔다. 그리고…….

츠컥!

기사의 목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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