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22화 (122/154)

122. 금광맥

누나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던 중 난 순간 등골에 느껴지는 오싹함에 말을 멈췄다.

“누나.”

“왜?”

“캡슐 고장 난 거 같아.”

“고장?”

“갑자기 추워.”

“에이 설마…….”

“아닌가?”

“당연하지. 온도 위험하면 바로 경고 표시 뜨잖아.”

“그렇기는 한데… 킁, 왜 추운지 모르겠네.”

“걱정되면 잠깐 나가 봐. 온도 센서가 고장 났을 수도 있으니까.”

“역시 그래야겠다. 아바타 좀 맡아 줘.”

“알았어.”

누나에게 아바타를 맡긴 난 그대로 강제 종료를 했다. 하는 방법은 쉽다.

옵션창 열고 현실의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머리에 쓴 헬멧을 벗으면 되니까. 다만 되도록 이 짓을 하지 않는 건 한번 나갔다가 들어오면 다시 로딩되느라 캐릭터가 5분가량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사이에 기습이라도 당하면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

강제 종료하고 밖으로 나가자 순간적으로 덮쳐오는 어둠에 암순응하느라 눈을 깜빡였다.

낮이기는 하지만 되도록 캡슐에는 빛이 들지 않는 게 좋아서 창문을 완전히 막아 놓는다.

“별거 없는데.”

온도를 확인하니 들어오기 전 맞춰 놓은 22도 그대로다.

띡… 띠딕.

혹시 몰라 온도를 2도 정도 더 높인 후 게임에 접속하니 누나가 멀뚱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때?”

“이상 없어.”

“그래? 다행이네. 어쩌면 네가 감각 설정을 항상 최대로 해 놔서 그런 걸지도 몰라.”

“그런가.”

“응. 나도 주워들은 건데 감각 설정 최대로 하고 하드하게 플레이하면 감각기에 부하 걸려서 환촉이 있다고 하더라고…….”

“환촉이 뭔데?”

“가짜 느낌 말이야.”

“아하…….”

“차라리 이참에 감각 설정 좀 낮춰 놔. 맨날 100% 해 놓으면 무섭지 않냐?”

“난 시작할 때부터 100%였어. 저번에 시험 삼아 낮춰 봤는데 감각이 둔해져서 오히려 별로더라고…….”

내 대답에 누나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난 때려 죽어도 못할 것 같아.”

“싸울 때는 좋아.”

“하긴 그 무시무시한 전투력의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면 소소한 거긴 하지.”

“흐흐, 맞아.”

아프지 않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더럽게 아프다.

특히나 냉병기에 찔리는 게 가장 아팠는데 무기가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도 아주 더럽다.

왜 게임 따위를 하면서 아픔이라는 신호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지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진짜 고통은 또 아닌 터라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그건 그렇고 누나.”

“왜?”

“난 잘 적응 안 돼.”

“뭐가?”

“쟤들…….”

난 길 양옆에 서서 목이 부러지도록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지민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가끔 말 위의 나를 힐끔거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아이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내리누르는 걸 볼 때마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순찰을 하는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남의 동네 NPC는 밀 수확하듯 잘만 썰어 대면서 고작 그게 미안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얘들은 일단 내가 다스리는 애들이다. 내 것이라는 소리지.

누나가 영지민들에게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동네에서 네가 왕이잖아. 난 예전에 어떤 영주 새끼가 농노가 눈 마주쳤다고 말 앞발로 머리 부수는 거 봤어.”

“웩, 미친…….”

“농담 아니야. 솔까 당장 네가 ‘쟤 마음에 드는데? 잘 씻어서 오늘 밤 내 침실에 집어넣어.’라고 말해도 이루어지는 게 이 동네라고……. 아주 사내들의 로망이 살아 숨 쉬는 악명 높은 중세시대.”

“아무리 중세라지만 영주 부인은 화 안 내?”

“그거야 캐바캐지. 영주 부인이 유력가 자식이면 성질부리는 거고, 그냥 얼굴만 반반한 몰락 귀족이면 닥치고 있는 거고. 평민은 아예 정부인 되기 힘들지.”

“오호, 그럼 누나는 어떻게 할 거야?”

“나? 영주 부인 입장에서?”

“어어.”

“상도 오빠한테 일러야지. 니 동생 NPC X먹느라 허리 휜다고.”

“윽…….”

“호호호. 왜?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어? 뭐, 마음 있으면 내가 넓은 아량으로 첩 두엇은 인정해 줄게.”

“됐어. 다섯 마을 다 합쳐서 인구 천 명도 안 되는데 첩은 무슨…….”

“너 천 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구나. 우리 이참에 마을 처녀들 전부 한번 모아 볼까?”

“아, 됐다고…….”

“혹시 유부녀 취향?”

“…….”

괜히 장난 한번 걸었다가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그렇지만 뭐라 할 수 없는 게 누나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서 참 막막했을 것이다.

‘케이 아이언우드 자작.’

남작 딱지 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자작으로 승작을 하고 다섯 개의 마을을 하사받았다.

이름을 보자면 스코플, 블라냐, 모라브, 트로젠, 벨리케 마을인데 위치는 치나 제국과의 접경 서북쪽이다. 국경 역할을 하는 카타리나 산이 있고, 그 밑으로 볼라냐 마을이 있다. 여기서 동쪽 가도를 따라가면 벨리케 마을이 나오는데 그 남쪽으로 다섯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플 마을이 마지막으로 서남쪽과 남동쪽으로 모라브 마을과 트로젠 마을이 있었다.

참고로 총 인구는 1,100명인데 영주관이 있는 스코플 마을을 제외하고는 인구 100명 미만의 고만고만한 마을들이었다. 포디나 백작이 병사라고 100명을 빌려주기는 했는데 이 숫자로는 몬스터 토벌은커녕 마을 치안 지키기도 힘들 거 같다. 하사 받은 영지치고는 엄청 큰 거라고 하는데…….

“포디나 백작한테 기사 하나만 받아 오면 좋겠는데…….”

“말 참 어설프게도 돌리네.”

“돌리는 게 아니라 가장 시급한 게 기사니까 그렇지.”

내 말에 누나가 약간 띠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우유부단한 짠돌이 백작한테는 이제 기대하지 마.”

“왜?”

“왜긴 왜야. 자기도 왕실 놈들한테 국경으로 짬당한 주제에 너한테 똑같은 짓 하잖아.”

“그거야 내가 여기 자리를 잡고 있어야 국경이 안전하니까 그런 거 아냐?”

“바보냐.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카머슨 남작령 이하 그 주위 똘마니들은 전부 망했어. 배상금 내기도 바쁜데 군대를 다시 조직해? 약속 어기고 쳐들어오면? 가뜩이나 선전포고도 안 하고 덤볐다가 깨져서 제국 이름에 똥칠했는데 그 짓거리 하면 아마 제국 황실에서 토벌해 버릴걸.”

“오…….”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는데 할 말이 없다.

“그럼 왜 날 여기에 박아넣은 건데?”

“왜긴 왜야. 부담스러우니까 이쪽으로 내보낸 거지.”

“내가 부담스러워?”

“그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네가 2만과 장렬하게 산화해야 하는데 멀쩡히 살아 버려서 이름값이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갔으니 자기 품에 안고 있기 부담스러워진 거야. 거기다가 너 이번에 얻은 거 엄청 많지? 특히 명예 점수.”

“응? 으응.”

누나의 말에 난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케이 아이언우드

레벨: 69

종족: 인간

직업: 기사

신분: 자작

명예 점수: 490,811점

능력치

근력: 95▲3

민첩: 90▲2

지능: 85▲1

의지: 95▲4

오러: 1931

스킬▲펼치기

업적▲펼치기

명예 점수는 퀘스트를 통해서만 획득하는 게 아니었다. 적대국의 NPC나 유저를 죽여서도 획득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이름을 알리면 그 또한 명예 점수로 환산된다.

일기토를 벌여 적의 장수 넷을 연달아 물리치고 기사단 셋을 단신으로 분쇄, 거기에 삼천에 달하는 병사들을 홀로 처치함으로 내 명예 점수는 밑도 끝도 없이 치솟아 버렸다. 거기에 이터 스킬로 야금야금 저축한 능력치도 거의 레벨 2개 수준이고, 전설급 업적 1개에 결정적으로 내 영웅급 가방이 가득 차도록 전리품을 챙겼다.

“네가 이 속도로 명예 점수 쌓으면 나중에 네가 포디나 백작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영지민들이 널 지지할걸?”

“그건 너무 확대 해석이지.”

“그런 경우 있거든.”

“정말?”

“응. 좀 경우가 다르기는 한데 NPC 영주가 하도 병신 짓거리를 해서 명예 점수 떨어지니까 영주 휘하 NPC들이 영주 멱 따 버리고 다음으로 명예 점수 높은 유저를 영주로 추대했다더라.”

“헐, 그런 것도 가능해?”

“그래.”

“으음…….”

포디나에서 명예 점수가 높다는 건 명성이 높다는 말과 같다. 누나 말대로 내가 포디나 백작보다 명예 점수가 높아져서 백작 입장에서 부담스럽게 되었다는 말도 얼추 이해가 간다.

“아무튼 일단 우린 이 영지를 발전시키는 것만 생각해야지. 포디나 백작이 무슨 마음을 먹었건 영지를 얻었다는 건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는 거니까.”

“기회 좋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발전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

“어허, 넌 누나만 믿으면 되는 거야. 이미 계획은 다 내 머릿속에 있다는 말씀!”

“무슨 계획?”

내 물음에 누나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건 아직 비밀.”

“에? 뭔 여기서 비밀?”

“그런 게 있어. 그냥 넌 나만 믿으면 된다니까.”

“흐음…….”

내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누나를 바라보자 작게 헛기침을 한 누나가 말했다.

“힌트 하나 주자면 네 영지에 마을 다섯 개 넣느라 내가 힘 좀 썼다는 거야.”

“……?”

“거기까지만 알면 돼. 자자! 그만 돌아가서 로그아웃하자.”

“끙… 어.”

누나와 난 스코플 마을 중앙에 있는 영주관으로 향했다. 하얀색 벽돌로 된 낡고 소박한 2층짜리 건물로. 본래 마을회관으로 사용되던 걸 영주관으로 삼았는데 백작의 성을 보다가 이 작은 영주관을 보자니 한편으로는 갈 길이 참 멀다고 느껴진다.

그건 그렇고 힘을 썼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통 나오는 게 없다. 그렇게 누나의 말에 대한 의문만 한가득 품은 지 이틀. 난 누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뭐… 라고?”

“금광!”

“금광? 설마 그… 금 나오는 금광?”

“그렇지!”

내 물음에 누나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네가 영지 받는다는 소문 듣자마자 곧바로 난 곧바로 일렌 자작님한테 달려갔지. 일단 네가 어느 곳을 영지로 받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알려 주기 주저하더니 자기도 좀 미안한지 국경 근처라고 말해 주더라고. 곧바로 포디나에 있는 내 정보망을 전부 총 동원해서 영지 내에 있는 마을들 특산물이랑 떠도는 소문 같은 걸 전부 끌어모았단 말이야.”

“오…….”

내가 늘어져 지쳐 자고 있을 때 누나는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아주 제대로 된 정보 하나를 포착했지.”

“그게 뭔데?”

“국경 근처에 있는 볼라냐 마을 알지?”

“응. 알지.”

“거기 카타리나 산에서 시작되는 개울이 하나 있거든. 그런데 거기서 사금이 나온다네?”

“사금?”

“응. 국경 근처기도 하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유저들 중에 거기서 작은 금덩어리를 심심찮게 발견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곧바로 아는 지인들 중에 광맥 찾는 스킬 있는 애 수배해서 근처 산을 싹 뒤졌지. 그랬더니!”

“그랬더니?!”

“금광맥이 짜잔~”

그 말과 함께 누나가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는데 그것은 광산 길드에서 발행하는 금광맥을 보증한다는 서류였다.

“광맥 확인한 다음에 곧바로 일렌 자작한테 달려가서 싸바싸바해서 이 근방을 영지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단 말씀이야. 이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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