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26화 (126/154)

126. 학살 의뢰

히히힝!

레인저 놈들에게 고마운 정보와 함께 약간의 보급을 받은 난 말을 타고 가도를 달렸다.

일단 결과만 말하자면 난 역시 길을 잃었던 게 맞았다. 원래 가려던 곳은 로펠이라는 곳이었는데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잡았나 보다.

“젠장…….”

남들은 지도 없이 길만 잘 찾는데 난 비싼 지도까지 있는 주제에 툭하면 길을 잃어 먹는다. 진짜 누구한테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누나가 하는 말이 이미 소문 쫙 퍼졌단다. 네임드 새끼가 눈이 해태 눈깔이라서 툭하면 길 잃어 먹는다고.

“사설 지도 없나.”

정처 없이 달리기도 지루하던 차 난 외부 장치를 디바이스에 연결했다.

제이텍 전자에서 제공해 준 캡슐의 디바이스는 기본적으로 수십 개의 멀티 테스킹도 가능한 물건이었다. 물론 5개 이상 띄우면 과거 시각에 의지했던 원시적인 1세대 디바이스처럼 VR 멀미에 시달리겠지만 3개 정도면 무난하게 할 만하다.

“누나가 말해 준 사이트가 여기인가.”

세이온과 관련된 사이트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에 접속했다.

길찾기 관련해서는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세이온인지라 수많은 사설지도가 존재했는데 헤븐즈게이트사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했다. 물론 불법이라 쓰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치나 제국은 헤븐즈게이트사의 통제가 적어서 써도 상관없다고 누나가 말했다.

75001235 [치나 제국 전도 ver.4.11] -99.99$

75001237 [치나 제국 네비게이션 ver 1.1] - 95$

75001239 [치나 제국 황도 지도 ver 2.25] - 299$

“쓸 만한 게 없네.”

돈 되면 자식도 팔아먹는 중국 애들답게 극비에 가까운 황도 지도도 마켓에 올려 놓기는 하지만 쉬이 손댈 수 없는 건 역시나 가격과 신뢰도 문제였다. 상품평이 수천 개가 있어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게 마켓 고인물들의 평가이니 여기서 필요한 건 역시 믿을 만한 인맥이다.

-누나

-왜?

-치나 제국 남쪽 지도 마켓에서 골라 줘.

-부엉이굴에서 사지 않았어? 오천 골드나 가져갔잖아.

-아, 인 게임 지도 쓸모없어. 돌아가면 조니 목부터 비틀어 버릴 거야.

-그 착한 애를 왜 괴롭혀. 그냥 네가 못 쓰는 거겠지. 너 지금 있는 곳이 어딘데?

-요리스 영지

-꽤 깊이 들어갔네. 기다려 봐. 나도 검색해 봐야 하니까.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요청하는 건 바로바로 해결해 주는 누나다.

-찾았어. 76001839가 그나마 쓸 만하다고 하더라. 가격은 좀 비싸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도 해 주네.

-그래?

난 누나가 추천해 준 지도를 구매하여 외부 장치에 다운로드했다. 300달러로 가격은 좀 세지만 열어 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세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와, 잘 만들었다. 이거… 네비게이션 수준인데?

-그 정도야?

-응.

-다행이네. 나도 믿을 만한 사람 추천으로 말한 거지만 이쪽 애들은 도통 믿을 수가 없어.

-아주 좋아.

얼마나 좋은지 조니가 준 지도는 화장실 휴지로 사용해도 될 정도다.

한참 다운로드된 지도를 살피고 있는데 누나가 말했다.

-저기 정현… 아니, 케이야.

-한 가지만 해. 무슨 일이야?

-그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지도 제작자 쪽에서 나한테 연락이 왔거든.

-연락? 어떻게?

기본적으로 VPN 물고 들어가는 거라 추적은 거의 힘들다고 들었는데.

-내가 물어봤던 사람이랑 아는 사이더라고. 그리고 이쪽에서 아마 내가 네 정보 담당으로 알려진 모양이야.

-음, 그거 별로 안 좋은데… 아무튼 그래서?

-제작자가 너랑 이야기 좀 나눠 보고 싶다고 하는데?

누나가 물음에 난 고심에 빠졌다. 지도 제작자라…….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얻을 것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치나 제국 지도 제작자라면 분명 중국 유저일 텐데 그쪽 나라 놈들한테 나에 대한 정보를 넘기고 싶지 않다.

-거절해. 굳이 들어줄 필요 없잖아.

-그렇게는 한데 마냥 거절하기는 좀 불안해서…….

-그럼 누나가 이야기해 보던가.

-알았어.

대략 30분 정도 지나자 누나가 지도 제작자와 대화가 끝났는지 채팅이 올라왔다.

-케이야.

-왜?

-지도제작자 너한테 의뢰할 게 있대.

-뭔데?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한 달 거리에 있는 영지를 점령하고 있는 길드를 부숴 달래.

뜬금없이 한 달 거리에 있는 영지의 길드를 부숴 달라니……. 할 수 있냐 없느냐를 떠나서 내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물론 유저 죽이러 들어온 건 맞지만 굳이 그곳까지 날아갈 이유가 있나? 그러나 누나의 다음 말에 난 완곡한 거절을 하려던 행동을 멈췄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되기는 한데 의뢰비 100만 달러에 성공 보수 100만 달러야.

이럴 때 사용하는 게 ‘거절하기는 너무 큰 액수였습니다.’라는 밈인가.

-달러를 어떻게 준다는 건데? 설마 세금 다 부쳐서 준다는 건 아닐 테고.

-골드나 코인.

-음, 이유가 뭔데?

-그건 말할 수 없다네.

-안 가르쳐 주면 의뢰는 안 받는다고 해.

-알았어. 기다려 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는 대화가 길어졌는지 말이 없다. 지루해져 지뢰찾기 게임이라도 띄울까 고민하고 있을 때 누나의 채팅이 올라왔다.

-그 사람 위구르 자유연합 소속이야.

-위구르 자유연합? 그게 뭔데?

-킁, 너 위구르가 뭔지도 몰라?

-아니, 대충은 아는데 자세히는 모르는 거지.

-하긴 대부분 너 정도 아는 게 다겠네. 일단 의뢰 내용은 이거야.

누나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누나의 말을 종합하자면 위구르 자유연합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위구르 인들의 단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과거 일제 강점기의 상해 임시정부의 하위 민간 기관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지도 제작자는 그 기관의 특수요원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의뢰한 영지는…….

-한마디로 강제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와 티벳인들을 데리고 작업장을 돌린다는 거네?

-응. 강제로 돌리는 거니 당연히 노동법이니 임금이니 같은 건 당연히 없고, 문제는 그 강도가 너무 심해서 하루에도 대여섯 명씩 죽어 나간대.

-응? 무슨 작업장 돌리는데 사람이 죽어?

작업장은 기본적으로 캡슐을 통해서 하는 행위일 뿐이다.

캡슐은 당연히 사용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게임을 하다가도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접속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강제 접속 불가가 되게 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국 애들이 만든 작업장용 캡슐 중에는 그런 거 다 무시하는 것도 있어. 그리고 강제수용소에서 사용하는 캡슐은 그것보다 지독한데 사람을 아예 캡슐에 심어서 하루에 거의 20시간을 풀로 돌린다고 하더라.

-토 나오네.

그 정도면 거의 세이온 디스토피아 하드모드 아닌가.

-아니, 그 정도면 세계 인권 위원회가 나서서 제재해야 하는 거 아냐? 헤븐즈게이트사는 그걸 보고만 있어?

-세계 인권 위원회가 차이나 머니에 식물인간 된 지가 언젠데 그런 소리를 하니. 옛날에 코로나19 때도 차이나 머니 먹은 세계 보건 기구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은 이야기 몰라?

-알아. 아무튼 누나 말은 그 세 개 영지에서 중국 놈들이 작업장 돌리고 있다는 소리잖아. 강제수용소 사람들 데려다가.

-그렇지. 그리고 이 사람 말에 따르면 6살, 7살짜리들도 캡슐이 집어넣어서 돌린다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누나의 말에 순간 머릿속이 화끈하고 달아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한다고?

-어린이용 캡슐 사진이랑 작업장 돌리는 영상 줬는데 너도 보여 줄까? 미리 말하자면 마음 단단히 먹고 봐야 할 거야.

굳이 보고 싶지 않지만, 누나는 내가 허락도 하기 전에 영상 하나를 내게 전송했다.

“으으…….”

울고불고 난리 치는 어린 여자아이를 우락부락한 어른들이 닭장에 닭 집어넣듯 쑤셔 넣더니 사지와 머리 몸을 가죽 벨트로 결박을 하고는 머리에 캡슐을 씌우고 있다. 음성이 소거된 영상인데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거 같다.

-시발, 이 정도면 세이온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내가 게임으로 돈을 번다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세이온을 계속해야 할지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세이온이 사라지면 저 지랄이 없어질 거 같니?

-아니, 쓰레기는 어딜 가도 쓰레기겠지.

-그래. 아무튼 그래서 그 영지를 점령하고 있는 그 길드를 박살 내 달라는 게 그 의뢰야.

-알았어. 근데 길드만 박살을 내면 끝나는 거야? 그걸로 작업장이 사라지는 건 아닐 텐데?

-걔들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그것까지 설명해 달라기에는 걔들도 우릴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일 거고.

-하긴 그렇겠네. 알았어. 수락한다고 해.

-응.

적잖은 의뢰비와 성공 보수를 떠나 이건 해야 할 거 같다.

거기에 어차피 대학살을 벌이러 들어온 마당에 돈도 벌면 일거양득 아닌가.

가는 동안에 어떻게 의뢰를 해결할지 고민 좀 해 봐야겠다.

* * *

수천 개의 캡슐이 벽과 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어느 어두운 창고. 하얀 방진복을 입은 두 남자가 한 캡슐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또 죽었네. 쯧… 이 캡슐에서 일곱이나 죽은 거 보면 교체해야 할 거 같은데…….”

“아서라, 위에서 적당히 부품 돌려서 쓰라고 성화다.”

“역시 그렇지?”

“그래. 그건 그렇고 오늘 죽은 거 몇 마리야?”

“이거까지 해서 FF-310, CF-0425, CD-0981 S-1211 다섯 마리.”

“좋아. 나머지는 상태 어때?”

“죽자마자 꺼내서 바로 얼려 놨어.”

“상태는 다 신선하겠지?”

“폐급인 FF급은 신장이랑 심장 빼고는 버려야 해. 그래도 CF랑 CD는 어리니까 다 쓸 수 있겠지.”

“음. 알았어. 이따가 3시 반에 도축반에 연락해 놓을 테니까 꺼내서 도축실에 가져다 놔.”

“이건 어떻게 하지?”

“내가 가져다 놓을 테니까 일단 빼내자.”

육류 가공 업체에서나 나눌 대화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캡슐 안에는 갓 10살이나 되었을 법한 아이가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푸슉.

“우웩…….”

캡슐의 뚜껑이 열리자 온갖 분비물이 썩어서 나는 지독한 냄새가 풍긴다.

“후우, 냄새… 씨발… 푸지게도 쌌네.”

“어쩔 수 없잖아. 오물주머니 수량이 남는 것도 아니고…….”

“일단 풀자.”

한차례 욕설을 내뱉은 둘은 아이의 전신을 속박하고 있던 가죽 벨트를 풀어냈다.

머리에 씌워진 헤드셋까지 벗겨내자 초점 없이 풀린 눈이 드러난다.

“재수 없게 눈 뜨고 뒈졌어.”

“한두 번 봐? 헛소리 말고 아이스박스 가져와.”

드르르륵.

잠시 후 캡슐의 옆에 길이 1m가량 되는 아이스박스가 놓이고 둘은 아이의 시체를 들어 아이스 박스에 쑤셔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배고프네. 빨리 끝내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술 한잔 어때? 가오린이 한턱 쏜다는데.”

“그래? 좋지!”

둘은 시시덕거리며 아이스박스를 끌고 사라졌다. 그렇게 남은 것은 주인이 사라진 작은 캡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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