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보스 몬스터는 쉽습니다
누나를 통해 알아본 위구르 자유연합은 이름에 비해 꽤 소박한 조직이었다.
이름만 보면 막 UN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던가 언론에 오르내린다든가 할 거 같은데 수많은 비슷비슷한 이름의 단체 중 하나더라.
물론 티벳이나 위구르 인권에 관해 관심이 있지 않으면 대부분 모르겠지만, 뭐 일단 누나의 말로는 뒤통수칠 만한 애들은 아니라고 한다.
다음 궁금증은 왜 나한테 그런 의뢰가 들어왔냐는 것인데 그것은 중국이 자랑하는 감시 시스템 때문이었다. 세이온을 관장하는 헤븐즈게이트사의 슈퍼 양자컴퓨터를 중국의 슈퍼양자 컴퓨터가 뚫어 내지 못하자 중국은 게임의 직접적인 해킹보다는 외부장치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간단히 말해 중국에서 운용되는 모든 캡슐에는 일괄적으로 이 감시 시스템 장치가 부착되는데 이 캡슐을 이용하는 모든 유저의 게임 내 위치 정보와 대화기로 로그까지 실시간으로 전송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 종료를 하거나 대규모의 원격조종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중국 내에 있는 저항 단체들은 실시간으로 감시를 당하며 실제로 추적을 당해 잡혀가는 것도 부지기수.
물론 위구르 자유연합에 속한 이들이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타국에서 접속하는 이들은 그런 감시 시스템에 자유로웠고 실제로 몇몇은 그런 식으로 게임 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런 이들은 무척이나 소중하기에 운용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걔들 눈에 띄었고 의뢰가 들어왔다는 거군.
-내가 부주의했어. 이렇게 추적당하다니…….
-누나 잘못 아니야. 오픈마켓에서 지도 찾아달라고 한 건 나니까. 그리고 뭐 엄청나게 강한 놈들도 아니잖아?
목표: 케리트 영지
-영지민: 12,873명
-영지 병력: 기사 10명, 마법사 3명, 병사 431명
-점령 길드: 레드 드래곤 [중국 랭킹 562위]
-길드마스터: 강무기 (중국 랭킹 1,167위)
-레드 드래곤 길드원 수: 40명
“작업장 돌리는 길드치고는 규모가 정말 쥐꼬리만 하네.”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는 길드잖아. 딱 길드 유지할 수준만 갖춘 거지”
“아무튼 저 길드를 박살 내 버리면 끝이라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영지를 점령하고 있는 길드의 권한을 박살을 내 무주지로 만들어 달라는 거야.”
“같은 말 아냐?”
“죽인 다음에 내성을 완전히 차지해야 무주지 선포가 가능하잖아. 당연히 길드 녀석들이 개떼처럼 몰려올 거고 그럼 전부 죽여야 하겠지.”
“아하…….”
“알아보니까 이런 게 치나 제국 내에 100개가 넘는다고 하더라.”
“100개라. 그럼 그 100개가 전부 강제 수용소 작업장으로 돌아간다고?”
“응. 오피셜은 아니지만 그렇게 알려졌어. 참고로 등록된 영지민 대부분이 그 작업장 인원이고.”
“하.”
완전히 자동화 공장이라는 뜻이다.
영상으로 봤던 아이의 얼굴에서 보육원 동생들의 얼굴이 하나둘 오버랩되었다. 동생들이 그런 짓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
-어때? 할 거야? 영 불안하면 여기서 쫑내버리고…….
누나가 넌지시 내 의사를 물었다. 아무래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강대국의 일에 가볍게 태클 거는 일이니만큼 누나는 불안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굳이 의뢰가 아니더라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 그리고 어차피 태클이라면 이미 예전부터 줄기차게 걸지 않았나?
-상관없어. 이미 중국 쪽이랑은 웃으면서 볼 단계는 아니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중국에서 난 블랙리스트에 별 다섯 개는 찍혀 있을 것이다.
중국 애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 딴지를 걸어 좌초시킨 게 나다. 거기에 내 손에 죽은 네임드의 대부분은 중국인들이었고 그들을 밑거름 삼아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도 골백번은 죽이고 싶을 것이다.
물론 변명할 말은 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난 굳이 중국 유저만 찍어 죽이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짓 하기에 죽였고, 죽이고 보니 중국 유저였을 뿐이다. 저들의 불운이라면 재수 없게 내 퀘스트 동선에 많이 끼어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중국 유저는 몬스터에 비해 아주아주 달달했다. 몬스터가 유저에 비해 AI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피통은 몬스터가 더 많았고 급소를 공격해 치명타 판정을 받아도 끈질기게 버티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에 비해 중국 유저는 적국이라 페널티도 없고 잡기도 쉬운 마당에 보상도 좋은 호구들이 대량으로 모여서 나 잡아주세요, 하고 유혹하는데 그걸 외면할 수 있겠는가.
-대신 몇 가지는 요구사항 전달 좀 해 줘.
-어떤 거?
내가 누나를 통해 부탁한 것은 평범한 이동 수단으로는 까마득한 거리에 있을 목표 장소로 빠르게 이동할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퇴로 확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누나를 통해 내 요구를 전달한 지 반나절이 지나 의뢰주 측에서 파견한 한 인물과 만날 수 있었다.
흑마를 타고 전신을 덮는 흑갈색의 가죽코트에 등에는 단창을 맨 긴 생머리의 여성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누알라라고 합니다.”
“로헨이다.”
“따라오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짧게 자신의 이름을 말한 누알라는 나를 이끌고 곧장 가도에서 벗어났다. 대략 10분여를 걷자 하얀 바위들이 점점이 박힌 너른 초지가 나타났는데 그녀가 손을 들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말을 탄 이들이 홀연히 나타나 이쪽으로 합류했다.
처음에는 10명 정도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하나둘 모여들더니 거의 30명에 이르는 병력이 되었다. 상당히 고레벨에 오랜 기간 함께 손발을 맞춘 티가 역력하다. 조금 걸리는 거라면 장비가 정말 구려 보인다는 것과 나를 보는 눈빛들이 정말 다채롭다는 것이다.
어떤 놈들은 인상을 구긴 채 날 쏘아보고 있고, 또 어떤 놈들은 나를 얕봤는지 오만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총평하자면 나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누알라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알려지지 않은 포탈이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 움직이면 대략 나흘 안에 도착할 겁니다.”
“알려지지 않은 포탈?”
“네.”
“먼가?”
“반나절 거리에 있습니다. 아, 로그아웃은 언제 하시나요?”
“5시간 정도 남았군.”
“그, 그럼 4시간 정도 후에 안전지대 펴고 캠핑을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그럼 호위 대형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척.
누알라가 손을 들자 나를 포함한 30명은 천천히 숲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은밀하게 움직이는 터라 지루해진 난 누알라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지?”
“포탈이 있는 이곳은 악명 높은 100레벨대의 보스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입니다. 자칫 어그로가 끌리게 되면 도망치기도 어려운 놈이라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누알라의 말에 난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고작 100레벨대 보스 몬스터가 두려워서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라고?
그러나 누알라는 그런 내 반응을 오해한 거 같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악의 사태가 오면 저희 30명이 목숨을 바쳐 로헨 님을 보호할 겁니다.”
“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예. 물어보시죠.”
“내 정체나 내가 맡은 의뢰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뇨. 전혀 모릅니다.”
내 물음에 누알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에게 내려온 상부의 지시는 로헨 님을 케리트 영지로 향하는 포탈로 안내하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눈빛을 보니 정말인 거 같다.
겉보기에는 허접해 보여도 기밀 유지에는 정말 철저하다는 건가.
“알겠다.”
마음 같아서는 그 100레벨 보스 모스터 면상을 구경하고 싶지만, 난 이들의 뜻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선두에 달리던 척후가 누알라에게 달려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 보스 몬스터의 미니언에게 어그로가 끌린 것 같습니다!”
“제길,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네!”
누알라의 외침에 모두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뒤쪽으로 해서 부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거의 사람 절반만 한 노란 벌들이 우리를 뒤쫓아 오고 있다.
[일반][자이언트 킬링 비][90레벨]
“장수말벌이네.”
갈고리 같은 긴 주둥이가 달린 노란 삼각형의 머리에 목에는 사자 갈기처럼 긴 털이 자라 있고 몸에는 검은 줄무늬가 호랑이처럼 죽죽 그어져 있다. 배 쪽에는 두 뺨 가랑 길이의 긴 독침이 살벌하게 빛난다.
두두두두두두……!
전속력으로 도망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를 쫓는 자이언트 킬링 비의 숫자가 늘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우우우우우우웅…….
수십 마리의 자이언트 킬링 비를 거느린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벌이 모습을 드러내며 전방을 가로막는다.
[보스][자이언트 킬링 비 퀸][100레벨]
퀸이라는 보스 녀석은 다른 놈들보다 두 배 정도 되는 덩치에 머리에는 금빛의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몬스터 주제에 꽤 오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우우웅웅!
거의 백여 마리의 벌들이 우리를 포위한 채 살벌한 날갯짓을 한다.
누알라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설산대가 목숨을 걸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
결의에 찬 표정이 너무 비장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누알라의 뜻에 따라 주고 싶지만 굳이 여기서 필요 없는 희생을 할 필요는 없겠지.
“저건 내가 맡지.”
“네?”
내 말에 누알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걸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자칫 공격이 시작되기라도 하면 단독 레이드가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가방에서 빙룡도를 뽑아 든 난 자이언트 킬링비 퀸과 나 사이에 있는 미니언들을 눈에 담았다. 머릿속으로 최적의 전투계획이 빠르게 수립된다. 보스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실제 퀸의 전투력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위험한 것은 오히려 거느리고 있는 미니언들이다. 결론은 최대한 빠르게 퀸을 처치한 후 미니언들을 처리하는 것.
“좋아.”
[멸신검]
* * *
“네?”
로헨의 말에 누알라는 벙 찐 표정이 되었다. 맡기는 뭘 맡는단 말인가. 설마 저 악명 높은 보스 몬스터를? 이 근방을 지배하는 저 보스 몬스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토벌되지 않은 보스 몬스터였다. 도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부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드가 시작되면 여왕은 미니언들을 소환한다. 그 숫자는 무려 일백. 게다가 레이드가 진행될수록 주위에 있는 자이언트 킬러 비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기 시작한다.
퀸을 레이드 하기 힘든 건 여왕이 전투에는 나서지 않은 채 킬러비들의 뒤에서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킬러비들은 물샐 틈 없이 여왕을 호위하며 적을 도륙하는 완벽에 가까운 살인기계들이다.
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로헨이라는 이 남자는 앞으로 나섰다.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 로헨이라는 남자. 얌전히 자신들을 따라오기에 안심했건만 하필 보스 몬스터 앞에서 객기를 부리려 한다. 그 순간.
번쩍.
그가 자신이 타고 있던 말 위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파파파파팟!
그는 공중에 떠서 사납게 날아다니고 있는 자이언트 킬러비들을 밟으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쫘아아아악!
순식간에 자이언트 킬러 비 퀸의 머리 위에 나타난 그의 하얀 검이 여왕의 몸을 수직으로 두 동강 내 버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 모두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여왕을 잃은 자이언트 킬러 비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날아든다.
부아아아앙!
“안 돼!”
누알라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무려 100마리에 달하는 킬러 비들이다. 유저 하나 따위는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갉아 먹으리라. 그러나 퀸의 몸을 두 동강 낸 그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걸려 있었다.
타탁! 탁! 탁! 타탁!
놀랍게도 그는 달려드는 킬러 비들을 밟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엄청난 속도로 사방에서 달려들 건만 무슨 징검다리라도 되는 양 그것들을 밟으며 움직인다. 세이온에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인가.
챠캉! 차륵.
빙글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의 손에는 어느새 다른 검이 들려 있었다. 그를 따라 공중으로 치솟는 자이언트 킬러 비들을 향해 그가 검을 내리그었다.
‘어스 브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