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28화 (128/154)

128. 불가능해야 하는데…

“날먹이네.”

나름 100레벨 보스 몬스터라기에 이격 삼격을 준비했는데 다행히 퀸은 단숨에 양단되었다. 하긴 백 마리의 미니언을 휘두르는 보스 몬스터가 방어력까지 갖췄으면 그건 레이드 보스 몬스터 수준일 것이다. 아무튼 보스 몬스터와 그 미니언들까지 단숨에 처리하고 나자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나를 반겼다.

[보스 자이언트 킬러비 퀸의 보스 스킬 벌의 춤을 획득하셨습니다.]

벌의 춤 [1레벨] 필요 마나:500

-소환자의 레벨과 1/10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지닌 자이언트 킬러비 5마리를 5분간 소환한다.

-소환된 킬러비는 [자이언트 킬러비의 독침]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이 0이 될 시 역소환되며 쿨타임 24시간 후 재소환할 수 있습니다.

자이언트 킬러비의 독침 [고유]

-적중 시 100의 고정 물리 데미지를 가집니다.

-적중 시 10분간 마비 효과를 일으키며 독저항 내성 굴림에 따라 마비 효과가 줄어듭니다.

“5분간 자이언트 킬러비 5마리를 소환한다라… 그다지 쓸모 없을 거 같은데.”

마비 효과를 일으키는 독침은 괜찮지만, 본체 자체가 너무 약했다. 물론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강점이 있었다.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려도 쫓아왔으니까. 그러나 나 같은 경우라면 회피하지 않고 붙으면 20초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스킬 레벨을 MAX인 10레벨까지 채우면 50마리 정도를 소환할 수 있으니 꽤 도움이 될 테지만 나한테는 어차피 구씨 삼형제가 있었다.

“지워야겠네.”

내가 새롭게 얻은 보스 스킬인 벌의 춤을 지우려 할 때였다.

[‘별의 춤’을 소모하여 성장 시킬 스킬을 설정해 주세요.]

“어라?”

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시지다. 이상한 마음에 스킬창을 열어 본 난 메시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흡수한 스킬을 소모하여 다른 스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아…….”

이터 스킬이 바뀌면서 새로운 옵션이 생겼는데 그동안 굳이 신경 쓰지 않아 까먹고 있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더 강해지는 게 싫었다. 왜냐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 상대가 될 존재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으니까.

적과의 전장에서 감각과 감각을 겨루고 가진 바 기예로 부딪힌다. 난 그게 너무 좋다.

타성에 젖어 약한 적들을 학살하며 자기만족에 빠지고 싶지 않다. 게임에서 뭔 그딴 걸 찾냐고 하겠지만 가장 최근 마족 기사랑 붙었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은 내게 중독적으로 다가왔다.

2만에 가까운 적병을 향해 단기로 달려든 것도 내 실질적 전투력 측정도 하고 그 같은 감정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다. 뭐 조금 비슷하게 느끼기는 했지만 수많은 적에 휩싸여 펼치는 난전과 단 하나의 존재와 벌이는 쟁투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터 스킬을 키우는 것을 외면했다. 어차피 그냥 둬도 나를 강해지도록 만드는 스킬이다. 스킬이 업그레이드되며 사람을 죽일 때마다 0.01이나 0.02 정도의 무작위 능력치를 흡수하는 효과가 생겼는데 워낙 많은 사람을 죽여서 그런지 능력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마주 싸울 놈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세스랑 당장 붙고 싶다.’

그녀는 강하다. 당당히 마주 겨룰 이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그녀는 오롯이 내 위에 떠 있다. 과연 세계 랭킹 1위라고나 할까. 웃기는 건 오히려 그래서 건드리기 싫은 것이다. 만약 그녀를 이겨 버린다면 목표가 사라져 버린다.

[친위대 소환의 레벨이 MAX에 도달하였습니다.]

[이터에 속한 스킬이 MAX 에 도달할 경우 해당 보스의 강화형을 레이드하여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스템 알림음이 상념에 빠진 나를 깨웠다.

대충 눌렀는데 친위대 소환 스킬을 강화했나 보다. 그건 그렇고 이터에 속한 스킬은 강화 방법이 좀 다른 것 같다. 일반적인 스킬은 해당 희귀도에 맞는 스킬 강화권으로 강화하는데 이터에 속한 스킬은 그 스킬을 얻은 보스의 강화형을 다시 레이드 해야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친위대 소환을 얻은 보스가 놀 대족장인데… 놀 대족장의 강화형이면 놀 로드나 놀킹인가. 찾는 것부터가 일이군.”

누나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직 없다.

로드라면 최소한 놀 일만 마리를 거느린 놈일 테고 킹이라면 최소 십만 많으면 백만을 거느린 놈이라는 뜻이니까.

“다른 게임처럼 쉬우면 좀 좋아.”

세이온의 몬스터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 게임이 비정상인 건가.

다른 게임들은 하늘하늘한 꽃밭 필드에 복붙한 것처럼 서 있는 놈들의 이름이 전부 ‘무슨 무슨 족장’이거나 ‘무슨 무슨 천부장’이라고 쓰여 있다. 분명 게임 개발자들은 ‘정말 멋진 이름이군!’ 하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족장이라던가 천부장이라는 건 무리를 거느린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것들을 개성 없이 필드에 던져 놓고 잡으라는 건 문장의 이치를 무척이나 따지는 문과생들에게는 곤혹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튼. 누나한테 물어봐야겠다.

“저, 저기.”

그때 내 옆에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누알라가 머리와 어깨를 조아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셔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던 누알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히익 하고는 고개를 팍 숙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30명 또한 대충 비슷한 꼴이다. 나 불만 있어요 하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던 놈들이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 뭐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이해가 가는데 이러면 가는 내내 내가 불편하다.

“편하게 해라.”

“예? 예!”

목소리에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뭐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

* * *

“사실 저희도 무슨 일을 맡았는지 몰라요. 저 중국 놈들의 감시망이 너무 촘촘해서 저희 조직은 철저하게 점조직과 단기 명령으로 움직이거든요. 행여 중간에 들켜서 동지가 잡혀가더라도 전체가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지만 친했던 이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 잡혀갔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에는 너무 슬펐는데 이제는 그런 슬픔도 무뎌져서 느껴지지 않아요. 다행히 저는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사는 터라 그런 위험은 없지만, 만약 제가 로헨 님 같은 힘이 있다면.”

“그렇군.”

“상부에서 저희 천산대를 모두 소집한 것을 보면…….”

실수했다. 적당히 겁먹기를 바랐는데 이 누알라라는 여자는 오히려 그것이 편한 건지 시간이 좀 지나자 몇 마디 조심스럽게 건네더니 내가 꼬박꼬박 대꾸해 주자 그때부터 입에 모터를 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주둥아리 좀 닥치지?’ 하고 말하고 싶지만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주절주절 말하는 게 예전 보육원에서 나를 따르던 아이들의 눈빛과 왠지 겹쳐 보여 그러기도 힘들다. 그때였다. 누알라의 옆으로 천산대원 하나가 다가왔다.

“대장님. 도착했습니다.”

“그, 그래?”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멀리 보이는 하얀 돌산이 우리의 목적지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야트막한 돌산으로 보이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정도의 틈이 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다지 크지 않은 너른 공간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에는 파란 포탈이 영롱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 포탈이 있군.”

“예. 여기는 과거 그러니까 치나 제국의 전신이었던 헤크람 공국의 요원들이 이용하던 비밀 루트인데 저희가 퀘스트로 그 요원들이 사용하던 비밀수첩을 입수해서…….”

“으음.”

“여기는 절대 들킬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놔두면 설명이 천년만년 걸릴 거 같은데 도통 말을 끊을 수가 없다. 왠지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우르르 몰려 있는 천산대의 눈빛이 나를 조금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를 띠꺼운 눈으로 보던 녀석이 앞으로 나서며 누알라에게 말했다.

“대장님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 응! 그래. 로헨 님. 함께 가시죠.”

“그러지.”

너 참 고맙다.

* * *

후우웅!

몸이 붕 떴다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예전 푸른 바람 엘프족을 만나러 갈 때 사용했던 포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탁…….

바닥에 발을 딛자 조금은 으스스한 느낌의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습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대수림의 한가운데다. 포탈에서 비켜서자 누알라를 위시한 천산대가 하나둘 포탈을 건너오더니 익숙한 움직임으로 사방을 경계했다.

내 바로 뒤를 따라 들어온 누알라가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 앞 흙을 파기 시작하더니 이내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딸칵-

상자가 열리자 하나의 종이가 나왔고 그걸 읽은 누알라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힐끔 봤는데 나로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암호다.

“뭐라고 쓰여 있지?”

“그, 그게 로헨 님이 케리트 영지를 탈환하면 잡혀 있는 동포들을 해방시키라고…….”

“그렇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한테 전부 떠맡길 줄 알았는데 귀찮은 일은 이들이 해 줄 모양이다.

“저 로헨 님.”

“왜 그러지?”

“제가 알기로 케리트 영지는 기사도 10명의 마법사도 3명 거기에 무려 병사도 400명입니다. 거기에 점령하고 있는 레드 드래곤 길드는… 아무리 로헨 님이 강하더라도 이건…….”

누알라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 한 명이 영지를 쓸어버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조직이 보유한 네임드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일. 그런데 상부에서 내려온 쪽지에는 로헨이 그것을 혼자 정리할 것이며 정리가 끝나면 동포들을 해방하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쉽다.”

굳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 정말 쉬워서 쉽다고 하는 거다.

참고로 난 이미 저레벨 때부터 여러 영지를 박살 내 본 경험이 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미친 듯이 잘한다는 대한민국 유저들로만 구성된 초거대 길드가 차지하고 있는 영지들이었으며 그 속에서도 난 할 거 다 하고 놀았다.

“쉬운 일이신가요?”

“음. 안내만 잘해라.”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누알라였다. 믿음을 좀 심어 줘야겠군.

* * *

누알라는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그가 킬러 비 퀸과 그 미니언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것을 보며 조직에서 고용한 그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과 영지를 쓸어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영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몬스터가 아닌 유저였다. 그뿐인가? 수백에 이르는 병사과 기사들도 있다.

그들은 몬스터의 단순한 AI가 아닌 일반 유저보다 더욱 고등의 AI와 함께 조직적으로 움직일 줄 안다. 그뿐 인가? 무려 래드드래곤 길드다.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그 적은 숫자로 하나의 영지를 차지한 이들이다. 한마디로 소수정예라는 뜻. 중국 랭킹 1,167위의 강무기는 또 어떤가.

천 단위 랭킹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중국의 세이온 유저는 무려 수백만에 육박했다.

그 사이에서 천단위의 랭킹을 지녔다는 건 0.001%의 초강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걸 이 로헨이라는 이가 혼자 뚫는다고?

“말이 안 되잖아. 그래야 하잖아.”

그래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보통의 유저라면…….

“저게 뭐야.”

로헨이라는 저 사내는 무척이나 정직했다.

아니, 너무 정직했다. 무려 성의 정문을 박살 내고 홀로 쳐들어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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