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30화 (130/154)

130. 누구라고? (1)

“병력의 반이 전멸했는데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야!”

“그, 그것이 죄송합니다.”

레드드래곤의 부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속으로는 네놈이 취미생활 할 때 방해하면 죽이려고 드니 어떻게든 알아서 해결해 보려고 했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어차피 그래 봐야 미운털만 박힐 테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적의 숫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숫자는 서른 정도입니다.”

“어떤 놈들인지 작정하고 들어왔군. 놈들의 위치는?”

“제2작업장과 영지도시가 양면공격 당하는 중입니다.”

“작업장? 위구르나 티벳 놈들인가.”

과거 서북공정의 일환으로 강제 병합한 티벳과 위구르의 찌꺼기 같은 놈들로 감히 하나의 중국에 대항하는 버러지들이다. 중국인이 된다는 영광스러운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을 놈들. 그러나 아무리 무늬만 영지 해도 그런 곳을 고작 서른으로 쳐들어왔다는 건 정예 중에 정예라는 소리다.

“좋아. 오히려 포상을 받을 수 있겠어.”

레드드래곤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근래 골치를 썩이던 놈들의 정예를 소탕한다면 상부로부터 큰 상을 받으리라. 그러나 이어진 부하의 대답은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했다.

“근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무슨 말이야?”

“서른의 대부분은 작업장을 공격 중이고 현재 영지를 공격한 건 넷이라는 점입니다.”

“넷?”

“예!”

“흥, 네임드인가 보군.”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눈은 신중했다. 레드드래곤 또한 게임의 한계를 뛰어넘은 네임드들을 봐왔고 그 재능이 게임에서 얼마나 불공평하게 적용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단순한 스킬이나 재능의 영역이 아닌 자신들과는 한세대 동떨어진 인류라 칭해도 무리가 없을 그런 이들이다.

물론 그 또한 ‘평범한’ 네임드들일 뿐이다.

광전총국에서 키워지는 진정한 괴물들은 따로 존재했으니 그들이 세이온에 발을 딛는 순간 세이온의 모든 힘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의 일이다.

“지부로 연락을 취해.”

“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레드드래곤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이곳은 작업장이고 자신은 관리인일 뿐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의 대비는 이미 되어 있다. 지부로 연락하면 지부에 소속된 대기조가 투입될 것이다. 광전총국에서 키운 정예 중에서 정예인 레드 가드 100인이라면 그 어떤 적이라도 독 안에 든 쥐다.

“기대되는군.”

레드드래곤의 눈이 흉악하게 빛났다.

* * *

“죽어!”

날이 시퍼런 창이 내 머리 위를 찔러왔다. 허리를 가볍게 뒤틀어 몸을 회전시키며 창을 붙잡은 후 끝에 달린 병사의 머리를 듀렌달로 베어 냈다.

척척척!

포위진을 이룬 병사들이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왔다. 360도를 포위당했기에 내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지금의 난 오히려 즐거울 뿐이다. 포위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공격당하는 방위는 총 8개였다. 벽을 등지고 서게 되면 3개에서 4개로 줄어들고 월등한 감각과 속도의 차이에서 적의 수는 무가치해진다.

“그럼 재미없지.”

단숨에 포위를 뚫어 낼 수 있지만, 난 오히려 위험 속에 몸을 내맡긴 채 순수한 검술만으로 적들을 상대한다.

챙! 푸푹! 챙챙! 쫘아악!

“으아악!”

“커억!”

차근차근 베어 내며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최대한 빠르게 적을 섬멸하는 걸 목적으로 삼았지만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적들에게는 스킬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순수한 검술 실력만으로 상대하는 게 내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때였다.

“체인라이트닝!”

아까부터 집요하게 나를 겨냥하고 있던 마법의의 지팡이에서 푸른 번개 줄기가 방출되었다. 내 주위를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음에도 마법을 사용한 것은 칭찬해 줄 만하지만 내 킬카운터를 줄이려 드는 괘씸함은 용서할 수 없다.

퍼퍼퍼퍼퍽! 쫘아악!

“으아아악!”

빵빵한 마법 방어로 푸른 빛줄기를 몸으로 받아내며 마법사의 근처로 이동한 난 마법사와 함께 녀석을 호위하고 있던 방패병들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아데사 님이 당했다!”

“우리로는 상대가 안 돼!”

“도망쳐!”

겁에 질린 병사들이 도망치려고 한다.

“아, 또 이러네.”

병사들이 무슨 개복치 새끼들도 아니고 조금만 강하게 공격하면 도망치기 바쁘다.

물론 그 이유야 간단하게 유추할 수 있다. 병사를 관리하지 않으니 충성심 따위가 있을 리 있겠는가. 관리가 잘된 코리 제국의 영지병들의 경우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데 치나 제국의 경비병들은 내가 조금만 힘을 써도 어떻게든 도망치려 들었다. 킬 카운터를 올려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다. 빨리 끝내야겠군.

“후…….”

깊은 심호흡과 함께 자세를 낮췄다. 시야가 확 넓어지며 주위의 모든 게 머릿속으로 입력된다.

“단숨에…….”

한 줄기 선이 그려진다. 시스템이나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선이다. 간단명료하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필살의 흐름.’

츠츠츠츳!

“베고 나아간다.”

[멸신검]

-이동 속도 100% 증가

-공격 속도 100% 증가

팟!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짐과 동시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0.5배속으로 느려졌다. 이것이 멸신검의 힘. 최종 무기인 오러 블레이드는 없지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난 멸신검의 오의에 거의 근접해 간다는 걸 실시간 깨닫는 중이다.

쫙! 쫘좍! 쫘좌좌좍!

필살의 흐름이 끝나는 길에 멈춰 섰을 때.

“크어…….”

“으… 으으…….”

“살려…….”

내 등 뒤로는 후끈한 피 냄새 속에 토막 난 시체와 부상자 가득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대략 40명 정도를 단숨에 죽인 것 같네.

가볍게 피를 털며 다시금 앞으로 걸었다. 아직 상대할 놈들은 많다.

* * *

“우리나라 애들이 정말 잘하는 건가 이것들이 못하는 건가.”

성주가 병신이었던 아프리카 길드 영지도 영지민들이 병사처럼 덤벼들었다. 영지의 규모만 따지면 오히려 아프리카 길드의 영지보다 큰 거 같은데 내실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곳이기에 웬만큼만 신경 써 주면 반발도 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게 영지민들이다. 그런데 이곳의 영지민들은 코리 왕국의 영지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을 보여 줬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웬 빗자루 든 할머니가 뛰어나와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병사의 머리를 두들긴다.

퍽퍽!

“이놈들! 이놈들! 이 쳐죽일 놈들!”

“아이고 어머니! 이러시면 죽어요!”

문에서 튀어나온 삐쩍 마른 여인네가 내 눈치를 보며 할머니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애쓴다.

보통 영지병들은 영지에서 뽑는 거 아닌가? 병사들을 무슨 원수 보듯이 하네.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여인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을 싹싹 빈다.

“사, 살려 주세요.”

“…….”

너무 불쌍해서 반말도 못 쓰겠다.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 부축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인데 그럴 상황은 아닌지라 난 손을 젓자 고개를 꾸벅이며 집으로 들어간다.

“얘들아.”

“아우우우!”

“크르릉!”

“컹컹!”

내 부름에 구씨 삼형제가 거짓말처럼 주위에 나타났다.

내 능력치의 1/3이라고 하던데 이 정도면 거의 나랑 비슷한 속도 아닌가.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 하나씩 입에 물려주며 누알라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그쪽 일은 잘되고 있나?

-지금 작업장 한 개 정리하고 넘어가는 중이에요! 로헨 님은 괜찮으신가요?

-거의 다 정리되었고 슬슬 내성으로 갈까 한다.

-정말 대단하세요!

놀라는 듯 말하지만 별로 영혼이 없어 보인다. 이유야 대충 이해가 가지만 굳이 그걸 여기서 짚을 필요는 없겠지.

-별거 아니었다.

-으음, 그렇군요. 그… 저기 그런데 어려운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뭐지?

-내성을 점령이 끝나시더라도 세 시간 정도만 더 점거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말이지? 원래 의뢰는 내성 점령 후 너희가 영상 찍으면 끝나는 거 아니었나?

-그게…….

대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는 누알라다. 난 구씨 삼형제와 주위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대충 가방에 주워 담으며 내성으로 걸었다. 잠시 후 그녀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곧 광전총국에서 지원이 올 텐데 그 전에 작업장을 처리하자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작업장을 하나라도 더 정리하고 싶어서 그러니 좀 더 버텨 주세요.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게임오버 시켜야 이들이 쉴 수 있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누알라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흠… 이건 진심이군.

의도야 알고 있다. 케릭터가 게임오버 당하면 3일간 접속할 수 없고 그러면 작업에 투입된 이들은 3일은 쉴 수 있다. 고작 3일이지만 매일 송장을 치운다고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처리할 작업장이 총 몇 개지?

-그… 세 개입니다.

-다 처리하는데 예닐곱 시간 정도 필요한가?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하나라도 더 처리할 수 있게 서너 시간만… 아니, 서두르면 두 시간이라도…….

-내가 좀 도와줄까?

-어떻게 말씀이시죠?

-그걸 설명하기 전에 실험을 좀 해야겠는데… 내 주변에 나 감시하려고 꽂아 둔 녀석들 있지?

-으음… 네.

-나오라고 해. 내가 쫓아가면 도망칠 거 같으니까.

-네.

잠시 후 천산대 두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아마 이 녀석들은 내가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지 감시하려고 붙여 놓은 것일 테다.

구씨 삼형제가 둘을 둘러싸고 음식 품평을 하듯 냄새를 맡으며 그르렁거리는데… 침은 왜 흘리냐?

“지지다. 먹는 거 아냐.”

“끼잉…….”

아쉬운지 낑낑거리며 군침을 삼키는 셋이다. 진짜 먹으려고 했나.

“누알라에게 말은 들었겠지?”

“예! 로헨 님!”

“좋아. 백구, 흑구, 황구.”

“컹! 크릉! 컹컹!”

“얘들 따라가서 시키는 거 좀 하고 와.”

이전이었다면 이런 복잡한 명령을 내리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레벨이 MAX가 된 지금은 왠지 가능할 것 같다. 내 말에 셋이 나와 천산대원 녀석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실험 성공

-누알라?

-예.

-내 펫들을 보낼 테니 작업장 공략 전위에 세워라.

-예? 펫을 보내신다고요? 펫이라는 건 주인에게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내 펫은 다르다. 더 깊게 물어보지는 말고. 참고로 셋이 모이면 웬만한 네임드도 잡을 수 있다.

-정말이신가요? 그럼 대가는…….

-필요 없으니 데려가서 얼른 끝내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 지금 나누는 대화가 채팅이 아니라면 내게 절이라도 할 기세다.

잠시 후 구씨 삼형제를 천산대원들을 따라 보낸 후 난 홀가분한 기분으로 내성을 향해 걸었다. 서두를 생각은 없다. 지원군이라는 것들은 어차피 처음부터 계산 안에 있었으니까.

덜컹! 쿠쿠쿠쿵!

“적이다!”

굳게 닫힌 내성 옹벽 위 조그만 창문 안에 있던 병사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씨이잉! 퍽!

씨앙! 퍼억!

날아온 화살들을 가볍게 피하자 머리를 스치며 바닥에 꽂혔다.

역시 내성을 지키는 놈들답게 외성의 병사들보다는 수준이 높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다.

타탁… 탁!

산들바람 걷기로 가볍게 옹벽을 찍으며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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