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32화 (132/154)

132. 초강자의 등장

“좋아. 좋아.”

발걸음이 가볍다. 거만하고 센 척하는 놈들은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그에 걸맞은 아이템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허영심인지 아니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지닌 아이템이 확실히 좋다는 것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건 무기들 중 전설급이 몇 개 끼어 있는데, 반해 방어구들은 전부 희귀급의 수제라는 것과 그 생김새가 어떤 특정 혐오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사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뭐, 그래도 전설급 무기 19개면 수지맞는 장사지.”

가방의 1/3가 전설급 무기로 꽉 찼다. 든든한 가방 무게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버티던 녀석이 벽에 몸을 기댄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음… 팔다리를 다 잘라 놨는데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사망을 막아 주는 스킬을 가진 것 같다.

“네놈이…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내가 누군지 아는 건가?”

“고작 그런 인피면구 따위가 네놈의 정체를 가려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염병, 인피면구라고 하는 걸 보면 꿰뚫어 봤나 보다. 조니 자식 절대 안 들킨다더니…….

“네놈이 쓰는 그 붉은 광선과 빙룡도면 충분하지. 아마 네놈이랑 제대로 싸운 놈들이면 백이면 백 다 알 거다.”

조니가 아니라 나 때문이구나.

“크큭, 여유 있을 때 많이 즐겨놔라. 곧 있으면 우리 중국의 진정한 강자가 이곳으로 올 테니까.”

“강자라…….”

촥!

“컥! 왜.”

붉은 혈선이 그어진 목이 툭하고 떨어졌다.

“왜긴 아이템 루팅해야지.”

어차피 하하호호 덕담 나눌 사이도 아니고, 둬 봤자 악담만 오고 갈 거 아닌가. 조금이라도 빨리 루팅을 하고 움직여야 귀찮은 일이 적어지기에 난 놈의 몸에서 아이템을 루팅했다.

“이야… 대박이네.”

다른 녀석들은 드문드문 전설급이 끼어 있지만, 이 녀석은 전신이 전설급으로 도배되어 있다. 반지 하나까지 싹 긁어 가방에 집어넣은 난 다시금 복도를 따라 걸었다.

“아놔. 또 갈림길이네.”

이놈에 성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지은 건지 아까부터 계속 헤매느라 쓸데없는 곳을 들락거렸다. 지나가는 놈이라도 있으면 잡고 물어봤을 텐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갈림길 앞에 서서 어디로 갈까 고민할 때였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한 점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에 난 자리에 멈춰 빙룡도를 뽑았다. 뭔가 직감이 위험을 알려오고 있다. 복도 맞은편에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무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남자가 한 손에는 긴 칼을 든 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나를 발견한 녀석이 웃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쉬이이이이이잇!

쩡!

“큭…….”

순식간에 공간을 접듯 다가선 녀석의 칼이 빙룡도와 맞부딪혔다.

쩡! 쩌저쩡! 쩡! 챙챙! 채챙! 채채채챙! 쩡!

순식간에 수십 번의 칼질이 오갔다. 베어 오는가 싶던 칼이 직각으로 꺾이며 머리를 찔러 오는가 하면 피했다 싶던 주먹이 사라지고 발차기가 된다.

스르릉! 챙!

검을 흘리고 손바닥을 내밀어 내 시야를 가로막은 후 밀려오는 세 개의 빛줄기!

타타탕!

“으윽!”

검을 들어 막았음에도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느리군.”

처음으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망이야.”

파팡!

바닥을 박찬 녀석이 몸을 던지며 휘두르는 칼의 잔영이 몸 이곳저곳을 찢었다. 산들바람걷기로 물러났지만, 칼은 사냥감을 노리는 뱀처럼 집요하게 내 목을 노려왔다.

“힘 좀 내봐.”

‘마나 컨퓨즈.’

‘멸신검.’

상대의 전설급 이하 스킬들을 무효화시키는 마나 컨퓨즈와 공격 속도와 반응 속도를 100% 증가시키는 멸신검을 동시 발동시켰다.

챙! 채챙! 채채챙! 파악!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다.

빙룡도가 놈의 어깨를 스쳤다. 속도는 내가 근소하게 앞서는 상태. 그러나 녀석의 묘한 검술에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상대는 마나컨퓨즈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이전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치이이이익!

바닥을 스치듯 낮게 깔리며 올려 베는 검을 막아섰을 때였다. 상대의 입가에 미소가 걸친 것을 본 난 거의 본능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빙룡지력.’

콰콰콰쾅!

“크윽!”

상대의 공격을 100% 반사시키는 무적의 기술인 빙룡지력을 사용했는데 대체 이 충격은 뭐지?

쿠쿠쿠쿵!

“으으윽…….”

한참을 날아가 벽에 몸이 박히고서야 멈춰선 난 맞은편을 바라봤다. 다행히 놈 또한 빙룡지력에 영향을 받았는지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혀 있다.

“너 강한 놈이구나.”

“크큭, 너야말로…….”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녀석이 걸어왔다. 분명 반사된 공격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입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멀쩡해 보인다. 추정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보유 스킬이 전부 신화급인가.’

아무리 내가 이놈과 싸우기 전 전력 소모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전투를 되짚어보면 확실히 나보다 우월하다. 세이온을 시작하고 나보다 진짜 인정한 건 단 한 명뿐이었는데 오늘로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나 또한 몸을 추슬러 앞으로 걸었다. 나보다 강자라는 걸 알았지만 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머릿속으로는 붙으면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 나오는데 말이다. 나 미친놈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지경인데……. 한편으로 그 이유를 되짚어보면 얼핏 이유를 짐작 가능하다.

‘내 모든 것을 태워 붙어 볼 만한 적이라는 거겠지.’

일부러 수백 수천의 적을 만들어 붙는 게 아닌 오롯이 단 하나와 생사결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이 뭐냐?”

“내 이름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탁… 탁탁… 탁탁탁… 파파팟!

“널 증명해라!”

씨아아아앙!

녀석의 칼에서 뿜어진 하얀 반월이 회오리치며 날아왔다.

그다지 넓지 않은 복도인 터라 피하기보다는 물러나는 게 더 좋은 상황. 그러나 난 모든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상대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데스레이나 어설픈 스킬의 조합은 오히려 안 좋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순수한 반사신경이다.

‘보인다.’

파파팍!

벽과 천장을 연달아 박차며 반월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난 놈을 향해 지체없이 뛰어들었다.

팍!

등에 메고 있던 망토가 반월에 걸리며 반 토막 나 버렸다.

누나가 꽤나 고생해서 사 온 신품인데 혼나겠네.

채애애앵!

녀석은 내 공격을 매우 가뿐하게 받아냈다.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입가에 머문 미소도 그대로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미끼! 진짜 후속타는 따로 있다!

휘리릭!

난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발생한 강력한 반발력을 몸의 회전력으로 치환시켰다.

공중인 터라 자세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대신 쭉 뻗은 발에는 회전력이 충분히 전달 되었다. 그대로 내려찍기!

쩌어엉!!!

녀석의 팔꿈치와 내 발이 부딪혔다. 칼을 들지 않은 팔뚝 너머로 녀석의 눈이 보인다.

“제법...! 컥!”

빠아악!!!

내려찍은 발을 축 삼아 골반을 틀며 놈의 가슴에 반대 발을 꽂아 넣는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신음을 내지른 녀석이 뒤로 주춤 물러났고 난 곧장 빙룡도를 사선으로 베어 올렸다.

채애애앵!

막대한 충격파가 나와 놈 사이에 터져 나갔다.

카카카칵!

도신과 검신이 맞닿은 부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카칵! 카카칵!

무기를 맞닿은 채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단순히 힘을 주는 것이 아닌 나와 녀석 사이에는 찰나 수십 번의 힘겨루기가 오고 가는 중이다.

“꽤 따끔했다.”

“그래? 이건 어때?”

난 곧장 손가락 하나를 폈다.

‘데스레이.’

삐이이이이익!

무지막지한 마나를 소모하지만, 준비동작이 없으면서 가장 빠른 광선이 최근접의 상태에서 녀석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아무리 녀석이 빠르더라도 이 공격까지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순간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난 녀석이 아직도 여력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아아악!

순간 프레임이 끊기든 데스레이를 피해 낸 녀석의 검에 태극의 문양이 만들어졌고 위기를 직감한 난 빙룡도의 스킬을 발동시키며 최대한 빠르게 몸을 뒤로 날렸다.

‘빙룡지력!’

콰아아아아앙!

맹렬한 폭음과 함께 난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이전과는 다르다.

‘산들바람 걷기.’

파파팍! 파팍!

억지로 발을 움직여 공중과 천장을 걷어차 몸을 억지로 내려섰고.

츠컥!

그 순간 내 잘린 왼팔이 공중을 날았다.

툭.

타탁… 탁…….

뒤로 물러선 난 잘린 왼팔을 바라봤다. 팔뚝 중간 부분이 정말 깨끗하게 잘려 있다. 세이온을 시작하고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절상(絶傷)이다.

“흐으읍!”

팔뚝을 타고 고통이 밀려 올라온다. 감각을 최고조로 유지하기 위해 올린 동기화율의 부작용이다. 다행이라면 잘려 나갈 때 가장 고통스럽고 그 이후로는 거의 고통이 안 느껴진다는 것이다.

“많이 아파 보이는군. 후후.”

“꽤 아프네.”

칼을 가볍게 털어 낸 녀석의 입가에 예의 그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그러게, 나도 죽을 거 같긴 하다.”

“순순히 인정하는군.”

“인정해야지 어쩌겠냐.”

상대와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인정해야 다음 전투를 준비할 수 있다.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건 아집이다.

“흠, 그렇지. 그럼, 말이야. 친구 내가 너한테 선택의 기회를 주지.”

“무슨 기회?”

내 물음에 녀석이 자부심에 도취 된 눈빛으로 대답했다.

“내 자랑스러운 조국 중국을 대표하는 영광의 자리에 오를 기회 말이다.”

“…….”

‘미친놈인가.’

웬만하면 장단을 맞춰 주고 싶은데 이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마 자신이 사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건가? 세계의 깡패이며 존재만으로 최대 민폐 국가이자 지구를 오염시키는 최선두에 있는 것이 중국이었다.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툭하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통에 도리어 욕을 먹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랑스러운 조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어때 나와 함께 가겠는가? 만약 네가 약속만 한다면 내 이번에는 대국의 아량으로 살려 주도록 하지.”

“살려 준다라. 그건 좀 매력적이군.”

“크크큭, 그래. 너도 여기서 죽어 모든 아이템을 잃고 싶지는 않겠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입을 떼었다.

“우리 중국의 품에 안긴다면 우린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

“그래? 음… 귀화를 하라는 건가?”

“그렇지. 그렇게만 한다면 펜트하우스? 스포츠카? 돈?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지랄하고 있네. 내가 미쳤다고 중국을 가냐.’

녀석에게 미안하지만 난 선천적으로 중국어 거부 증상이 있었다. 그 특유의 시끄럽고 쨍쨍 울리는 성조를 듣다 보면 짜증이 톡톡 튀어 오른다. 그런데 중국으로 오라고? 내가 머리에 총 맞았냐? 날 실험실로 끌고 가 뚜따 할 거 같은 놈들 아가리로?

“귀화를 선택한 녀석들이 있나?”

“많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그렇군.”

사실 내가 녀석과 대화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건 녀석에게 반격하기 위해서 시간이 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진(眞) 광폭화 [7레벨]을 소모하여 멸신검 [1레벨]을 강화합니다.

-멸신검이 2레벨이 되었습니다.

-진흙 방패 [MAX 레벨]을 소모하여 멸신검 [2레벨]을 강화합니다.

‘정말 더럽게 안 오르네.’

신화급 스킬 아니랄까 봐 요구 경험치가 엄청나다.

광역 매혹 [5레벨]을 소모하여 멸신검 [2레벨]을 강화합니다.

광폭화와 진흙방패, 광역 매혹이 사라졌다. 그러나 멸신검의 스킬 레벨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멸신검과 마나 컨퓨즈, 친위대 소환, 데스레이다.

‘빌어먹을…….’

정이 든 스킬들이기는 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던 저 녀석과의 전투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비빌 수 있는 건 멸신검뿐이다.

-데스레이[MAX 레벨]을 소모하여 멸신검 [2레벨]을 강화합니다.

-멸신검이 3레벨이 되었습니다.

‘됐다.’

멸신검 [3레벨]

-공격 속도 120% 상승

-반응 속도 120% 상승

-사용 시 10초당 오러 1 소모

20%의 차이가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녀석의 속도를 쫓을 수준은 된다.

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빙룡도를 들어 올리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새끼 실력에 비해 감이 느리네.

‘멸신검.’

츠팟!

“큭!”

녀석의 팔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쌤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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