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준비 완료
츠컥!
“컥!”
피 분수를 뿌리며 남자가 쓰러졌다.
[업적 폭풍 학살자[신화 등급]를 획득하였습니다.]
“끝났네.”
드디어 1만 명을 죽여야 달성할 수 있는 업적 폭풍 학살자를 얻었다.
슥슥…….
듀랜달에 묻은 피를 죽은 남자의 옷에 닦은 후 납검을 한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업적 폭풍 학살자[신화 등급] [new]
-공격력 20% 증가
-방어력 20% 증가
-오러 20% 증가
-풍속 30m/s 이상일 때 공격 속도 50% 증가
“나쁘지는 않은데 애매하네. 진짜…….”
실망하지는 않았다. 실망은 이미 이 업적의 세부 내용을 확인할 때 다 했으니까. 물론 나쁜 업적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신화급인 ‘룰러’ 같은 업적과 비교하면 정말 애매하기 이를 데 없다.
“바람의 파이터야?”
태풍 불 때 제 성능을 내는 업적이라니……. 뭐, 세이온에 날씨나 장소와 관련된 업적이 없는 건 아니니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껏 게임하면서 만난 태풍이 손에 꼽을 지경이라는 것을 볼 때 이 업적을 100% 활용하는 날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이리 와!”
“크릉크릉!”
“컹컹!”
내 부름에 구씨 삼형제가 내 곁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러고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반짝인다.
“고생했다.”
“컹!”
“컹컹컹!”
“헥헥헥헥!”
가방에서 특제 육포를 꺼내 던져 주니 한입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는 다시금 내게 눈을 빛낸다.
“하아.”
싸울 때는 늑대 인간인데 이럴 때는 진짜 완전 개다.
“뭐, 그동안 고생하기도 했고 업적작도 끝났으니까 육포 아낄 필요 없겠지. 옜다.”
난 가방에서 육포를 한 무더기씩 꺼내 각자 손에 들려 줬다. 하는 짓은 갠데 손이 달렸으니, 뭐……. 셋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육포를 씹기 시작했다.
“잘도 먹네.”
난 육포를 맛있게 뜯는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날을 회상했다. 의뢰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난 그들에게 의뢰비와 함께 성공 수당으로 100만 달러를 더한 300만 달러를 받았다. 구씨 삼형제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과 영지를 턴 결과 상당한 골드가 쌓여 있었다는 이유로 100만 달러를 더 얹어 준 것이다. 무려 35억가량 되는 큰 자금이 들어왔기에 좀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과 헤어진 난 곧장 영지로 돌아와야 했다. 그 이유는 바로…….
* * *
“꺄아아아악!”
내가 영지에 들어섰을 때 누나는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뛰어와 내게 안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가방을 안았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 언니하고 달라붙을 얼굴이다.
“그렇게 반가워?”
“그럼! 내가 얼마나 손 떨렸는지 줄 알아?”
“동생은 죽을 뻔했는데.”
“안 죽었잖아.”
내 전투는 광수 형과 누나가 검수하기에 내가 그 광천제 목진극이라는 녀석을 베는 것도 봤다. 그리고 내가 광천제 목진극을 죽이고 루팅한 것도 봤을 테고.
+3[태풍의 인도자][신화 등급]
-신화시대의 드워프 대장장이는 무기에 폭풍의 힘을 담기기를 원했다.
그는 만 년 동안 폭풍이 그치지 않은 저주의 땅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인 오리하르콘에 무자비한 폭풍의 마물 레카의 심장을 벼려 한 자루의 도를 만들어 냈다.
공격력: 200(+150~300(+200))
내구력: 420/700
-태풍의 가호: 10분간 이동 속도 30%가 증가하는 태풍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다.
-태풍의 분노: 10분간 공격 속도 30%가 증가하는 태풍의 분노를 사용할 수 있다.
-태풍의 자비: 10분간 생명력의 회복 속도가 100% 상승하는 태풍의 자비를 사용할 수 있다.
+3[천잠보의][신화 등급]
-머나먼 동대륙의 장인 류화가 제작한 내갑으로 만년지주의 거미줄과 내단으로 천 일을 들여 완성한 보의다. 탁월한 방어력과 지수화풍의 모든 속성 공격에 우월한 저항력을 지닌다.
내구력: 151/500
-모든 속성 저항 +50
-독 저항 +50
-류화의 가호: 어떤 극한의 자연환경에서도 사용자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3[교룡의 가죽 군화][신화 등급]
-머나먼 동대륙의 장인 류화가 제작한 신발로, 천산을 어지럽히던 교룡의 가죽으로 제작한 보의다.
내구력: 451/500
-모든 능력치 +30
-공격 속도 +50% 증가
-이동 속도 50% 증가
목진극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들 중에는 세 개의 신화급 아이템이 포함되어 있었다. +5빙룡도만은 못하지만 신화 등급의 +3 태풍의 인도자와 갑옷 종류 중 안에 받쳐 있는 내갑인 천잠보의 마지막으로 광천제 놈의 속도의 원천으로 보이는 교룡의 가죽 군화까지. 가격으로만 따지면 이것들도 개당 빌딩 한 채값이다. 파천도와 천잠보의를 제외한 나머지도 모두 전설급에 풀강화 아이템이긴 했지만, 전설급이 아무리 날뛰어도 신화급에는 비비지 못했다.
“팔 거야?”
난 세 신화급 아이템을 바라보며 맛이라도 볼 것처럼 군침을 흘리고 있는 누나에게 물었다.
현재 상도 형과 광수 형, 혜미 누나는 내 개인법인의 월급을 받는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본래는 동업의 형태로 하자고 했지만, 대부분의 수입이 나에게서 나오는데 동업은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 셋 때문에 부득불 이런 형태를 취한 것이다. 대신 셋에게 수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각기 5%씩 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웃기는 건 5%임에도 그 수익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포디나의 백화점과 영지에서 나오는 매출을 합치면 거의 작은 중소기업급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요즘 얼굴이 활짝 피는 혜미 누나였다. 내 물음에 혜미 누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걸 왜 팔아. 돈이 있어도 구하지를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당연히 네가 껴야지.”
“오…….”
“왜?”
“아무것도 아냐.”
“싱겁기는.”
한순간 누나를 돈벌레로 본 것을 반성한다.
“어디 보자. 그럼 나머지도 따져 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누나는 내 전리품들을 꼼꼼히 따져 계산했다. 많이 해 봐서 그런지 웬만한 아이템은 전부 가격을 꿰고 실시간으로 금액이 계산된다.
“삼만 이천… 칠만… 구만 오천. 십만… 십이만……. 이건… 십사만. 십사만 오천… 십육만 이천… 음. 다해서 이십오만 사천이백 골드네.”
“현금으로 하면 얼마야?”
“골드 가격이 좀 올라서 지금 1,100원이니까. 279,620,000원이네.”
“와…….”
루팅 할 때는 몰랐는데 금액으로 말해 주니까 확 와닿는다.
나 정말 게임이 천직이었구나. 그때 만약 상도 형이 캐릭터를 내 계정에 심어 버리는 미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어디 공장이나 물류센터에서 짐 나르고 있겠지.
“나 부자인가?”
“당연하지. 한 달 순수익으로 백화점이랑 영지 수입이 6억 1천만 원이야.”
“음…….”
몇백도 아닌 몇천도 아닌 몇억이다. 솔직히 말해 난 아직도 잘 실감 나지 않는다. 누나나 형들이 왜 그렇게 돈을 안 쓰냐고 가끔 묻는데 이건 어쩔 수 없이 몸에 들인 절약 습관이었다.
그것도 아주 악몽 같은 과거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같은 습관이다.
‘엄마…….’
아빠가 친구들의 돈까지 끌어모아 사업에 투자하고 망했을 때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어릴 때 기억이지만 마치 심장에 화인으로 새겨져 있는 악몽. 집이 망하고 엄마는 아빠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싸웠다. 아니,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지은 죄가 있는 아빠는 입을 다물었고 그런 아빠에게 엄마는 정말 잔인하게 굴었다. 누가 보고 있건 상관하지 않고 온갖 욕을 퍼붓고 때렸다. 그리고 가장 최악이었던 집에 있는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던 날도 기억한다.
“야이! 개새끼야! 널 만난 게 내 인생에 실수야! 꺼져! 꺼지라고!”
“수미야. 조금만 참아 봐. 내가 어떻게든…….”
“꺼지라고 씨발 새끼야! 네가 사람 새끼니? 이 고생을 시키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며! 이게 뭐야!”
엄마가 거품을 물고 미쳐 날뛰던 그날… 아빠는 목을 맸다.
“후우…….”
너무 오래돼서 이젠 좀 참을 만하지만 어릴 때는 어디선가 욕이라도 들려오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이야기.
그러나 이어진 누나의 다음 말 한마디에 난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어 누나를 바라봤다.
“근데 신화급 템들 수리하려면 못해도 일억은 갈아 넣어야겠네.”
“…뭐? 그렇게나 많이?”
“응. 좀 많이 비싸네. 내가 최근에 대상인으로 승급하면서 직업 스킬로 감정 스킬 새로 배웠는데 이게 현 시세랑 실시간 연동이 돼서 가치 측정을 해 주는데… 수리비 분석해 보니까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끙… 내구도가 좀 깎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였어?”
“넌 세이온을 반년 넘게 했으면서 아직도 모르니?”
괜스레 물었다가 면박만 당했다.
나도 안다 신화급 아이템은 비싸다는 거. 그래서 나도 약한 녀석들 상대할 때는 비교적 저렴한 듀렌달을 쓰는 거고..
“빙룡도 줘 봐. 수리비 얼마 드는지 보게.”
“여기…….”
난 차고 있던 빙룡도를 누나에게 넘겼다. 빙룡도를 받아 든 누나는 도를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이내 더 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는 더 심하네.”
“더 심해?”
“응. 영상에서 너랑 싸운 놈이 이거 든 놈이었지?”
“으응.”
“얘 오러 블레이드 썼니?”
“어.”
“에휴, 오러블레이드랑 생짜로 맞부딪혔으니 이렇게 망가지지.”
“끙, 그놈에 오러 블레이드…….”
나도 안다 오러블레이드랑 부딪히면 검이 많이 상한다는 거.
그렇지만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상대를 싸울 때 희귀 등급의 무기는 몇 번 부딪히지도 못하고 부서져 버린다. 괜히 근접 계열 최강의 원픽 스킬인 게 아닌 것.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무기빨로 버티는 건데, 아무리 빙룡도가 +5 신화 등급이라도, 같은 신화 등급에 오러 블레이드까지 켠 상태면 버티기 힘들다.
“잊어. 이겼잖아. 돈 좀 들겠지만, 수리만 하면 되는 거고 이거 없었으면 이기기 힘들었을 거야.”
누나가 나를 달래듯 말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오러 블레이드만 남았다. 내가 더러워서라도 오러 블레이드 얻고야 만다.
“드디어 끝났네.”
그 후 난 내 영지 주변뿐만 아니라 포디나 영지까지 포함해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약탈자들을 썰고 다녔다. 암흑가의 정보 길드 지부장 조니를 닦달해 정보를 뽑아냈다. 그리고 상대가 소수로 움직이건 단체로 움직이건 찾아내서 박살 냈다.
덕분에 포디나와 내 영지의 치안은 몰라볼 수준으로 좋아졌고 내 악명은 천장을 모르고 솟구쳤다.
-약탈자 유저님들. 포디나 절대 가지 마세요. 거긴 지금 악마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임요?
-조금 전 제 약탈자 길드… 악마한테 강제 해산당했습니다. ㅠㅠ
-아니, 시발… 무슨 네임드가 동네 순찰을 다녀. ㅠㅠ 다른 애들처럼 손구락이나 까딱거리며 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얼마 전에 들어갔다가 깨박살 났다. 케이 새끼 약탈자랑 무슨 원한이라도 품었냐.
-그 동네 들어가지도 마세요. 암흑가 부엉이 새끼들이 케이한테 전부 일러바침. 도시에 숨어도 소용없습니다. 포디나 백작이랑 물고 빠는 사이에 그 동네 귀족이라 대로 한복판에서도 죄다 베어 버림.
-미친 거 아냐? 그런 망나니를 그냥 둬? 영지민들 충성도 팍팍 떨어지는데?
-바보냐. 그 망나니가 얼마 전에 혼자 치나 제국 이만이랑 혼자 다이다이 뜬 새끼다. 그 동네에서는 이제 거의 신적인 존재라서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하건 찬양하는 수준이다.
-케이 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어쩌다가 실수로 약탈자 됐는데 님 때문에 포디나에서 나가지를 못하고 있어요. ㅠㅠ
한동안 커뮤니티가 떠들썩하고 내 위튜브 영상들에는 피해자로 보이는 이들의 댓글이 일만 개가 넘기도 했지만 난 꿋꿋이 약탈자들을 처단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드디어 알레그로 퀘스트의 마지막인 업적을 얻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
“이제 슬슬 엘프 할아버지 얼굴 좀 보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