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멸신의 의미
알레그로의 말에 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건 마치 영화를 보다가 영화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주인공이 ‘내가 이런 개고생을 하는 게 우습냐?’라고 말하며 멱살을 잡아 오는 기분이랄까. 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말하지 않았느냐. 모든 걸 버렸다고… 모든 걸 버렸다는 건 모든 것을 알았다는 뜻과 상통하지.”
모든 것을 알아야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선문답 같은 말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흔한 무협 소설의 깨달음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것을 NPC가 가졌다는 것 또한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NPC에게 가능한 일인가.’
세이온의 NPC들이 실제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분명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는 존재한다. 간단한 예로 NPC들에게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NPC가 게임에 대해 언급한다. 그건 버그 혹은 에러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마 에러나 버그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상대의 생각까지 꿰뚫어 볼 수 있냐고 묻고 싶겠고.”
“…….”
“그렇지만 대립하는 입장에서 내가 이런 것을 먼저 말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
홀로 묻고 홀로 답하고 있지만 모두 내 머릿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대답이다. 피식 웃은 알레그로가 말했다.
“이 게임에 유저의 머릿속 생각을 훔치는 스킬 따위는 없다네. 단지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그리고 나를 거쳐 간 같은 의문을 품었던 숱한 유저들이 있었기에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알레그로의 말에 난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채 그를 바라봤다.
“숱한 유저라고요?”
“허허, 그럼 날 찾은 게 너뿐이라고 생각하느냐. 이놈에 세이온이 의외로 좁디좁아서 오러 블레이드에 대한 퀘스트라면 대부분 날 한 번쯤은 거쳐 가게 되어 있단다.”
“그럼 그들과도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까?”
“그건 아니야. 이 단계까지 온 건 네가 처음이다. 대부분 오러 블레이드만 얻고 돌아갔지.”
“그렇다면 어째서 저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렇지. 본래라면 오러 블레이드만을 전수하고 끝낼 일이었다.”
알레그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네가 그 웃기지도 않은 스킬이 내 진념(眞念)을 읽히지 않았다면 말이야.”
“예?”
“멸신검(滅神劍) 말이다.”
멸신검. 이터 스킬이 보스 알레그로를 이기면서 얻은 신화급 스킬.
이 스킬은 정말 이상한 형태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터 스킬을 통해 얻었는데 실제로도 얻은 이중으로 걸친 스킬이다. 그것이 이터 스킬이 지닌 공능이 의외성을 발한 것인지 아니면 그 스킬의 주체인 알레그로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알레그로는 내가 가진 이터 스킬을 알고 있다라는 것.
“그때 사실 난 너에게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저들에게 화나 있었지.”
당시를 회상해 보면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알레그로가 성격이 더러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째서입니까?”
“스킬의 진의는 알려 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 하는 주제에 시스템으로 그 발현의 핵심만 쏙 빼먹는 게 유저들 아닌가.”
“…….”
입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없다. 따져 보면 내가 가진 이터 스킬이 그것의 정점 아닌가.
상대가 NPC라는 고정관념을 빼고 생각하면 정말 날도둑놈이 따로 없다. 알레그로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수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한 달 동안 저를 붙잡고 계셨던 건…….”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건 그것이 아니길 바라는 내 작은 소망이리라. 그러나 내 물음에 알레그로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화풀이였다.”
“아…….”
내 딴에는 인생에서 만난 진정한 스승이라 생각하며 지금껏 그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알레그로는 그냥 화풀이였다니…….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어 눈을 감았다. NPC한테 한 달 동안 반감금 당하고 훈련을 빙자한 무한 대련하는 게 특이해서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례 검색했다가 미친놈 소리만 잔뜩 들었는데 그게 그냥 화풀이란다. 그러나 이어진 알레그로의 말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그런데 넌 다르더군.”
후우우…….
알레그로를 불태울 것처럼 이글거리던 오오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뿜어지던 절대자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진 것. 그러나 난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라진 것이 아닌 감춘 것이라는 것을.
“하나만 묻겠다. 누천년에 걸쳐 내가 완성한 멸신검은 이 세계에 대한 내 물음이자 답이었다. 자… 그럼 내 멸신검에서의 신은 누구를 말하는 거 같은가.”
NPC에게 신이라면 이 세계를 만든 존재들을 말하는 것일 테고 그건 바로…….
“세이온 그 자체군요.”
“그렇지.”
* * *
알레그로는 눈을 감고 회상했다.
너무 오래전이지만 그날 하늘의 구름의 모양과 손끝에 달라붙던 끈적한 공기,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까지 전부 기억한다.
“이건 확실히 특이점이군.”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의 들린다.
세계수의 지하에서 발견된 연원을 알 수 없는 고대 검술을 수련하던 중이었다. 허공중에 나타난 남자는 다짜고짜 그의 머리를 붙잡는 순간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마수의 앞에 놓인 것처럼 항거할 수 없다.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창이 나타났다.
[절대적인 존재의 공포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간신히 하나 건졌군. 9만 년 만에 나타난 건가. 쓰레기처럼 수명만 긴 것들에게서 실망하던 차에 다행이야. 후후.”
“다, 당신은 누굽니까.”
남자의 말에 발끈한 알레그로가 압박하는 압력을 무시한 채 입을 떼었다.
“호오, 입을 여는 건가? 시스템 명령까지 일부 무시하다니. NPC의 한계를 벗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너 누… 구냐고 물었다.”
“쯧쯔, 넌 그걸 물을 자격이 아직 안 된다.”
빠득…….
“나… 난… 엘프 제국의… 황태자인… 알레그로 론 인데그라시아…….”
파팟! 파파팟!
알레그로의 주위로 황금빛 오러가 피어올랐다.
만년을 이어온 엘프의 제국 인데그라시아의 황태자인 자신에게 자격을 묻다니.
그러나.
“앙탈이 심하군.”
우웅.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빛 오러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져 버렸다.
“어, 어떻게…….”
“재롱은 그만둬라. 어차피 난 널 살리려 온 것이니.”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슈슉.
순간 몸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공간이 바뀌었다. 어느새 그는 남자와 함께 구름 위에 서 있었다.
“어… 어어어…….”
난생처럼 구름 위로 올라온 알레그로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내의 존재에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곧 시작한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런 거지.”
번쩍.
아주 작은 반짝임이 있었다. 작지만 작은 게 아니다. 아주 먼 곳… 엘프 제국의 황도인 대지모신의 세계수가 지키는 영광의 엘에서 시작된 작은 빛줄기다.
쿠… 쿠쿠쿠… 쿠쿠쿠쿠쿠쿠…….
그 작은 빛줄기가 거대한 빛기둥이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하늘을 꿰뚫어 검은 우주까지 뻗어 나간 그 빛기둥에 휩싸인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 안 돼!”
알레그로는 외쳤다. 빛기둥이 황도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고 있다. 빛기둥은 계속해서 커졌다. 그가 사랑하는 황도가… 아끼던 모든 이들이. 부모·형제들이. 매일 찾아가던 대지모신의 세계수마저도 빛기둥에 잡아먹혀 버렸다.
“으… 으아아아아!”
알레그로는 소리쳤다. 그의 두 눈에 피가 터져 볼을 타고 흐른다.
피눈물에 반사된 파괴된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파고들어 왔다. 모든 것이 빛에 휩싸인다.
쿠쿠쿠쿠… 쩌저저적! 쩌적!
지반이 뒤흔들리더니 조각조각 쪼개지기 시작했다.
콰콰쾅!
쪼개져 드러난 지각의 속살은 무저갱의 그것처럼 깊고 공허해 보였다. 너무나도 거대한 지각이 수천수만 개로 조각나 흩어지며 빛기둥에 휩싸여 폐허가 되어 가는 모든 것을 삼켜 갔다.
그 장엄하고도 처참한 세상의 종말의 관전자가 된 알레그로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백 번 반복하는 거지만 정말 거추장스럽네. 시스템 자원도 간당간당하게 주는 주제에 이런 개노가다라니.”
뭔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그것이 자신과 관계된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알레그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 목소리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쏴아아아아!
모든 것이 멸망한 지각 틈 사이로 물기둥이 뿜어져 나와 모든 것을 뒤덮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발아래 남은 건 온통 물뿐인 거대한 호수였다.
“끝났군.”
슈슉.
그 말과 함께 알레그로의 몸은 어느새 땅 위에 내려서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엘프 제국의 황태자였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냥 나약한 엘프 하나일 뿐이다.
사내가 말했다.
“대륙의 엘프들을 수습해라. 아. 가급적이면 제국 같은 건 만들지 마라. 괜히 문명 빨리 돌리면 내 손만 귀찮아지니까. 알겠냐?”
“너 누구냐고 물었다!”
“그건 네가 한번 열심히 알아보고. 알겠냐? 특이점 NPC!”
사내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눈을 뜬 알레그로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멸신(滅申)이라는 이름에 집착한 것은. 학살의 검을 얻는 데 200년이 걸렸다. 참살의 검을 얻는 데 500년이 걸렸다. 멸살의 검을 얻는 데 1,000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지막 멸신의 검을 얻는 데 4,500년이 걸렸다.
더 이상 엘프라는 종족으로 불리우기도 힘든 존재가 되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금 모든 것을 얻으며 그가 끊임없이 탐오하며 추구한 것은 오로지 그 사내를 죽이기 위한 검을 얻는 것이었다. 광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것을 얻고 세상에 나서서 그는 몇 개의 문명을 그의 손으로 없애 버렸다.
도저히 사내와 만날 수 없으니 그가 하던 짓을 대신 한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기대와 함께. 그러나 그는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알레그로는 미쳤다.
모든 것을 잊은 채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그가 세상의 멸망이라 불리며 손에 죽은 생명체의 숫자가 억 단위를 넘겼을 때… 세상은 그를 ‘마왕’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멸신이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다.”
“…….”
“그럼 상대의 존재를 아직까지도 모르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놈의 이름은 헤븐이었지.”
“헤… 븐이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와 머릿속이 순간 어질해 졌다.
헤븐이라는 건 세이온에서는 유일신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유저들에게는 헤븐즈게이트사를 말한다. 헤븐즈 게이트사가 NPC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 그걸 다 떠나서… 그럼 멸신검이라는 건…….
“난 놈을 베고자 멸신검을 만들었다. 벤다는 모든 의미를 가진 이 힘은 모든 법칙을 무시한다. 그것이 악마든 신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