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노괴물
연결이 끊어졌다.
[사용자 캡슐의 긴급 강제 접속 차단 요청 강제 종료됩니다.]
“크으…….”
지금까지는 겪어 본 적 없는 두통이 엄습했다. 마치 누군가가 뇌를 쥐어짜는 것 같고 온몸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린다.
“정현아! 정신 차려!”
푸슉!
캡슐 뚜껑이 열리며 상도 형이랑 광수 형이 날 붙잡고는 끌어냈다.
“너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캡슐에서 경고음 울렸어.”
“겨… 경고음?”
난 힘겹게 몸을 움직여 캡슐 옆 컴퓨터의 모니터와 키보드를 움직였다. 내 1인칭 시야 한가운데는 [PAUSE]라는 붉은색 문구가 점멸하고 있었고, 화면에는 쓴웃음 짓는 알레그로의 얼굴이 보인다. 경고 문구의 세부 코드를 확인해 보인 비정상적인 스펙업으로 인한 동기화율 폭등으로 인해 강제 접속 차단이 되었다.
“젠장. 다, 다시 들어가야 해.”
캡슐에 누워 고글을 썼는데 접속 버튼이 눌리지 않는다.
“임마, 캡슐에서 경고음 뜨면 접속 못 하는 거 몰라?”
“들어가야 해!”
알레그로가 나한테 자신의 모든 것을 떠넘겨 버렸다. 레벨이 오르고 스킬이 진화하고 용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멍청한 늙은이… 바보 같은… 빌어먹을……. 그런 것을 줄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던가.”
그런 것을 주면 내가 공짜라고 좋아서 넙죽 받아먹을 거 같아?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는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빌어먹을! 왜 안 되는 거야!”
텅! 텅!
캡슐을 껐다가 켜고 별짓을 다 해도 접속이 안 된다.
“정현아! 대체 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너 지금 상태 정상 아니야!”
혜미 누나가 내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그래. 정현아 이유를 일단 말해 봐. 우리도 알아야 뭔가 대책을 내놓지.”
“후우…….”
광수 형의 말에 난 캡슐에 붙은 패드를 두들기는 걸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형과 누나의 말이 맞다. 일단 설명이 우선이다.
“누나 물 좀 줘.”
“응, 잠깐만 기다려.”
누나가 후다닥 뛰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왔다. 찬물이 몸에 들어가니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잠시 후 난 알레그로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그러나 내게 일어난 일은 전혀 작지 않다. 내 설명이 끝나자 누나의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세이온을 하기에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일인전승으로 내려오는 유니크한 직업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레벨이나 스킬을 전승시키는 게 진짜 가능한 이야기야?”
“그 용사의 계승인가 마법이 끝나니까 레벨이 99가 됐어. 스킬들은 죄다 진화를 하고는 MAX를 찍어 버리고, 기존의 직업들은 전부 사라지고 고대 용사가 되더니 무슨 먼치킨 같은 직업 스킬에 신화급 업적이 붙었고…….”
“99? 그러면 만렙이라는 소리인데? 거기에 고대 용사 직업에 모든 스킬이 맥스? 너 꿈꾼 거 아냐?”
“후… 로그 확인해 보면 되잖아.”
내 말에 누나가 캡슐로 다가가 로그를 확인해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와아…….”
“내 말 맞지?”
“응! 세상에… 이런 스펙이 나올 수 있어? 대박사건!”
누나의 눈이 반짝인다. 이게 그렇게 신날 일인가. 젠장… 나는 우울해 죽겠는데 저렇게 좋아하다니. 그렇지만 저게 일반적인 유저의 반응일 것이다. NPC 하나 잘 물어서 세이온 최강이 된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난 좋아할 수 없다. 그 늙은이는 이제 없으니까.
다시는 볼 수 없으니까. 내 간격 안에 들어온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건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이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도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좀 쉬었다가 다시 접속해. 너 상태 안 좋아 보인다.”
“그렇지만…….”
“닥치고 얼른 일어나서 밥을 먹든가 잠을 자든가 해.”
“후, 알았어.”
* * *
[세이온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빨리 들어가려고 언제나처럼 관성적으로 skip 하던 문구다. 그러나 오늘은 skip을 누르기가 싫은 건 접속하게 되면 알레그로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젠장, 무슨 궁상이냐.”
상도 형의 말대로 밥도 먹고 한숨 자고 왔더니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됐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비정상 종료가 되는 바람에 알레그로의 집에 있을 아바타를 안전지대로 옮기는 것. 엘프들이 알레그로의 집에 들어와 내 아바타를 건드릴 리야 없겠지만 무방비하게 노출하고 있는 건 안 좋다. 잠시 후 알레그로의 거실 한복판에서 눈을 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에 보이는 실내를 느릿하게 유영하던 먼지도 고요하다.
“역시… 없는 건가.”
알레그로는 항상 이 공간에 있었다. 함께하던 한 달 내내 말이다. 왜 밖으로 안 나가나 신기해서 엘프들에게 물어보니 장수종인 그들도 그를 보고 대체 몇 살인지 가늠이 안 되는 괴물이라 말하기에 그냥 그려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제 없다.
상태창을 열어 알레그로에게 받은 것들을 확인했다.
“보너스 능력치만 엄청나게 쌓였구만…….”
29레벨이 오르면서 보너스 능력치만 145가 쌓였다.
능력치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월등히 뛰어난 능력치는 그 자체로 깡패와도 같다. 그러나 알레그로에게 받은 진짜는 따로 있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빙룡도를 뽑았다. 한 점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 새하얀 검신에 오러를 주입하자 푸른 빛을 내뿜는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모든 것의 근원 자체를 끊어 버린다는 신조차도 멸하겠다는 광오한 뜻을 지닌 멸신검의 오러 블레이드다.
“흐으읍…….”
-공격 속도 300% 상승
-반응 속도 300% 상승
시야가 급격히 좁아지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명료하게 보인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100m 떨어진 거리에서라도 파리의 날개를 베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스르릉…….
오러 블레이드로 가볍게 바닥을 눌렀다. 통짜 나무로 되어 있어 웬만한 충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는 바닥이지만 마치 두부에 젓가락 꽂듯이 가볍게 들어갔다. 물론 신화급 무기인 빙룡도의 날이라면 비슷한 짓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쩌적… 쿠쿵…….
“아, 실수했네.”
거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기둥에 대고 살짝 힘을 줬는데 그대로 잘려 나가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절삭력. 정말 엄청난 힘이다.
그렇다 알레그로는 정말 내게 큰 선물을 줬다. 그렇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다.
“빌어먹을, 누가 이딴 거 바랬나.”
화가 치민다. 가르칠 때도 자기 멋대로더니 끝까지 자기 멋대로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가서 한바탕 칼부림하고 싶은 심정이다.
“궁상 그만 떨고 가야지.”
철컥…….
빙룡도를 검집에 꽂은 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언젠가 마음이 정리되면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끼이익.
거실 안쪽의 방문이 열리며 엘프 하나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자고 일어났는지 반쯤 감긴 눈에 산발한 그 엘프는 바로 알레그로였다.
“어…….”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간의 침묵.
“어는 무슨 어냐. 약골녀석 같으니라고… 그것… 음?”
그의 시선이 거실 가운데 반쯤 부서져 무너진 나무 기둥으로 옮겨 갔다.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허허… 이건…. 내가 삼천 년 전 엘르의 탄생을 축하하며 심었던 향나무로 만든 기둥인데…….”
알레그로의 눈살이 흉신 악살 변하더니 광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서늘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나를 옥죈다.
“흠, 제자야. 힘이 넘쳐서 미쳤느냐? 어디 힘자랑할 곳이 없어서 내 집 기둥에 칼질을 하누?.”
“어… 그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알레그로가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기쁨과 그에게 꽤 큰 의미가 있는 나무 기둥을 부쉈다는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에 난 아무 말 못 하고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허허… 이 녀석 보게.”
알레그로의 입꼬리가 비틀려졌다. 이건 그의 심사가 베베 꼬여 가고 있다는 뜻이다.
“힘 좀 받았다고 이제 대꾸도 안 하냐? 그래. 아주 그냥 자신감이 넘쳐?”
시정 잡배나 사용할 껄렁껄렁한 한마디와 함께…….
우우우웅…….
그의 손에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처음에는 완벽한 검의 형태였는데, 손을 가볍게 떨치자 마치 채찍처럼 꿈틀거리며 거의 2m 길이가 되었다. 내가 절대 넘보지 못할 경지다. 염병… 나한테 힘을 다 넘긴 줄 알았는데 고작 10% 정도인가 보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끙끙 앓았네.
“그래. 어디… 날로 먹은 걸 제대로 소화했는지 검사해 보자꾸나.”
알레그로의 반대편 손에 하늘로 향했다.
우우웅!
순간 그의 손으로부터 푸른 오러가 뿜어져 나오더니 집의 벽에 어렸다. 오러로 집안 전체를 감싸 버린 것.
“이제 손에 사정 봐줄 필요는 없겠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오는 알레그로를 마주 바라보며 ‘조금은 봐주셔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이전에 나를 상대했던 건 엄청나게 봐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되니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불길이 피어오른다.
스르릉…….
난 빙룡도를 뽑아 오러 블레이드를 활성화한 뒤 알레그로를 향해 검을 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보이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개겨 보련다.
“와라.”
알레그로가 손을 까딱였다.
* * *
“그런 비장한 분위기에서 몸이 흑백으로 변하시니 저는 저한테 힘을 모두 넘기시고 소멸하신 줄 알았죠.”
“난 삶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엘프다.”
“그런… 가요?”
몇만 년을 살았으면서도 아직 삶에 미련이 남으셨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냈다가는 조금 전 알레그로와 나눈 몸의 대화의 2차전을 펼치게 될 거 같아 마음속에 고이 묻었다.
“그럼 저한테 힘을 얼마나 넘기신 겁니까?”
“흠, 전체 양으로 따져 보면 한 20~30% 정도겠구나. 이 빌어먹을 헤븐이 제한한 한계치 밑인 거지.”
“한계치요?”
“그래. 그 한계치를 넘기면 헤븐은 그 존재를 일종의 반신 정도로 분류한다. 꽤 많은 혜택이 있지만 그만큼 제약도 많지.”
“그럼 그 제한선을 넘지 않는 선의 힘을 제게 넘긴 거군요.”
“그래. 힘을 넘김으로 이제는 제약에서 벗어난 거지.”
알레그로의 눈앞 공중에 떠 있는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찻물이 새어 나와 내 앞에 놓인 찻잔을 채웠다.
“오러에 당한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알레그로표 특제 차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난 차를 마시며 상태창을 열었다. 알레그로의 오러채찍에 거의 난도질 당한 전신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죽을… 아니지, 중간에 ‘불사의 권능’을 사용했으니 죽었다가 살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아마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진짜 죽었겠지.
후룩…….
난 엘프차를 한입에 들이켜고는 알레그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스승님.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그래서 대체 제게 시키실 게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