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39화 (139/154)

139. 진짜 건물주?

드디어 형과 살던 빌라를 떠나 새 건물로 입주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부우웅…….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는 도로.

난 형이 운전하는 차의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제 알레그로와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원하는 게 없으시다고요?”

“그래. 원하는 건 없다. 바라는 건 있지만…….”

뭔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대답만 늘어놓는 알레그로. 정말 나보다 세지만 않았으면 한 방 치고 싶은 얄미운 표정이다.

“그럼 그때 하신 말씀은 뭔가요? 스승님은 헤븐을 공격할 수 없으니 저에게 그 힘을 넘기겠다고 하셨잖아요.”

“맞다.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는 건 제가 헤븐을 공격하길 바라신다는 뜻 아닙니까?”

“맞긴 한데… 네게 그걸 강제할 생각은 없다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랄 뿐이지.”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요? 만약 제가 헤븐을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거죠?”

“그렇지.”

적잖은 힘을 내게 넘겨줬으면서 막상 바라는 게 없다니…….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다.

“선문답하지 마시고요. 확실히 말해 주세요.”

“후후,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을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그보다는 이제 수련해야지?”

뜬금없이 수련?

“그건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냐니? 설마 그 얄팍한 능력치랑 오러 블레이드만 받고 끝내겠다는 건 아니겠지?”

“…….”

굳이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그렇게 말했다가는 알레그로의 ‘진심검’을 맛보게 될 거 같다.

우우우웅.

그의 손에서 예의 그 채찍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친다.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블레이드에 어울리는 상승의 검술을 써야 하지. 이제부터 아. 무. 바. 라. 는. 것. 없이 내가 완벽하게 전수해 주마.”

“굳이 필요 없는데… 히익!”

“하… 뭐라?”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육성으로 터졌다. 순간 섬뜩한 오러를 폭발하는 뿜어내는 알레그로.

“오냐. 이 늙고 병든 스승의 검술을 필요 없다고 하니……. 제자 놈이 어떤 참신한 검술을 가졌는지 다시 한번 검사해 봐야겠군.”

“으음… 살려…….”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 손에 사정을 볼 필요는 없겠지.

“야……! 야야! 일어나!”

알레그로에게 두들겨 맞는 악몽에 잠겨 들려는 찰나 상도 형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 어어…….”

“도착했다.”

“벌써?”

“벌써는 무슨 40분이나 걸렸구만. 새끼……. 형은 열심히 운전하는데 조수석에서 잠이나 처자고.”

“잔 거 아니거든.”

“지랄하네. 눈 감고 있었잖아.”

“눈 감고 생각 중이었어.”

“넌 생각하면서 잠꼬대하냐?”

“내가 뭐라고 잠꼬대 했는데?”

“막 끙끙거리더니 살려 달라고 어쩌고 하더라.”

“흠흠, 어제 좀 피곤했어.”

“말은.”

아닌 게 아니라 어제 정말 피곤했다. 한 8시간 두들겨 맞았나. 게임에서 맞다가 피곤해지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내려. 건물주 새끼야.”

“알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차에서 내린 난 눈앞에 있는 하얀 건물을 올려다봤다.

언제 봐도 참 잘 샀다고 생각할 정도로 위치도 좋고 본래 상가용으로 지어져서 내부의 공간도 널찍널찍하다. 형에게 듣기로는 건물주 노인 부부가 4층과 5층을 아들에게 공짜로 임대로 줬다는데 뭔가 사이에 안 좋은 일이 터져서 아들은 쫓아내고 건물도 팔아 버린 거란다.

부우우웅… 드르륵… 드르륵!

4층에서 요란한 공사 소음이 들려온다.

“많이 시끄럽네. 입주자들이 싫어하겠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양해는 구했어.”

“형이 직접?”

“왜? 내가 하면 안 되냐?”

“아니, 형 얼굴로 양해 구하면 상대한테는 반협박으로 들릴 거 아냐.”

“끙…….”

내 말에 얼굴을 구기는 상도 형. 음… 이렇게 보니 이전보다 얼굴에 주름살이 많아졌다. 이 형을 어떻게 장가를 보내나.

“헛소리 말고. 집에 있는 캡슐을 일주일 뒤에 옮기는 거지?”

“어. 제이텍에서 직접 해 주기로 했어.”

“그래? 비싼 거라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렇지.”

협찬으로 받은 거긴 하지만 당시 실 가격으로 오천만 원이 넘는 캡슐이다.

오백만 원대의 보급형 캡슐을 옮길 때도 이삿집 센터에 따로 웃돈을 준다는데 오천만 원짜리 캡슐이니 본사 직원들이 나와 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올라가자.”

“너 혼자 올라가. 나 바빠.”

“뭐하는데?”

“세무소 간다.”

“세무소는 왜?”

“주민세 재산분, 주민세 개인 균등 주소지, 주민세 개인 균등 사업장, 재산세 건축물, 재산세 토지, 지역자원시설세, 등록면허면허세, 등록면허등록세, 종합소득세, 지방교육세, 지방소득세, 부가 가치세, 국민연금, 건강보험, 교통유발 부담금. 너 건물주 되면서 세금 문제가 얼마나 많은 줄 모르지? 그거 때문에 가시는 거다. 이 형님이…….”

“어, 어어… 다녀와.”

고등학교 때 분명 공부는 바닥이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어려운 단어를 주르륵 말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상도 형과 헤어진 난 4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벽과 바닥 타일이 다 뜯어진 인테리어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네.”

앞으로 내 아지트가 될 5층짜리 건물의 4층 전체를 게임룸 겸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는데 인테리어를 맡은 업체의 인부들과 내가 사용하는 5세대 캡슐을 만든 제이텍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이 구슬땀을 흘려 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갈데라 3대에 방송까지 생각하면 사용하는 전기량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저걸로 한다고요? 저쪽이랑 저쪽 벽 뚫고 다시 해야죠.”

“아, 그럼 새벽에 나와서 밑 작업 한 거 다 날아간다니까요! 그리고 저 벽들은 철근이 워낙 촘촘하게 들어 있어서 해머드릴로도 한참 걸려요!”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현장 한가운데 서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인테리어 사장과 제이텍에서 나온 이부장님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게임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과 방송을 업으로 할 내가 곳이기에 인테리어 업체도 이름 있는 곳을 불렀고 내가 유일하게 광고해 주는 업체 덕을 톡톡히 보며 연일 함박웃음을 짓는 제이텍에서도 특별히 이부장님이 직접 나와 엔지니어들과 전기작업을 하는 중이다.

“이거 프로게이머용 세팅이라서 게임룸에 환기도 신경을 써야 해요. 그러니까 저쪽이랑 저쪽에 구멍 뚫어서…….”

“거참 깐깐하시네.”

“깐깐한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기 들어올 캡슐이 얼마짜린 줄 알아요? 대당 육천만 원짜리야. 이거 비싼 만큼 민감해서 우리도 엔지니어 네 명이나 와서 일한다고요.”

“어휴, 알겠어요.”

이 부장님의 열변에 인테리어 사장이 두 손을 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던 이 부장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정현 씨!”

“하하하, 이 부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그건 그렇고 안 본 사이에 얼굴이 확 폈네.”

“맨날 게임만 하니 햇빛 볼 일이 없더라고요.”

“하하, 그건 그렇죠. 정현 씨 캡슐은 내가 특별히 관리하는데 접속 시간 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더만. 우리 연구소장님이 정현 씨 한번 초대해 달라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저를 왜요?”

“왜긴요. 우리 회사의 역작인 갈리아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내 주는 유일한 분이니 그렇죠.”

“회사에 계약한 다른 테스터들은요?”

“에이, 그 사람들은 정현 씨 싱크로율에 반의반도 못 따라와요. 한번 실험해 본다고 비슷한 상황에 싱크로율 억지로 올려서 스트레스 테스트 했는데 싱크로율 좋다는 친구도 10분 하고 구역질하더만.”

“하하, 그런가요.”

난 그냥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싸움에 도움이 돼서 그냥 높여 놓고 게임할 뿐인데.

“어, 웃을 게 아니라니까? 진지하게 연구소장님이 만나고 싶어 해요.”

“예. 시간 나면 한 번 찾아가 볼게요.”

“시간 나면이 아니라 이참에 확실한 일정을…….”

“하하하…….”

적당히 웃음으로 무마하려는데 스마트폰 화면에 일정을 띄우는 걸 보면 작정한 모양이다.

나를 연구소로 끌고 가려는 이 부장님과 끌려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거절하던 때였다.

띵.

양복을 입은 풍채 좋은 중년 남자가 거만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온다.

“음…….”

뒷짐을 진 채 인테리어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중년 아저씨.

누군가 싶어 쳐다보는데 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내게 걸어왔다.

“야.”

“예?”

“너 지금 나 꼴아봤냐?”

“에?”

“꼴아봤냐고!”

뜬금없는 반말에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되묻자 남자가 갑자기 고성을 내질렀다.

남자의 고성에 공사하던 이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본다.

“뭘 봐! 새끼들아! 여기 공사 책임자 누구야!”

사람들이 보든 말든 바락바락 고성을 내지르는 남자.

아무래도 공사 소음 때문에 온 거 같다. 난 한 걸음 나서며 남자에게 말했다.

“제가 공사 책임잔데 무슨 일입니까?”

“뭐?”

남자는 내 말에 내 위아래를 훑더니 잠시 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더니 내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허… 참, 지금 장난치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딩 새끼가 어른한테 농담 따먹기를 하려고 드네.”

“…….”

“좋은 말 할 때 공사 책임자 불러라.”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넌 알 거 없으니 빠지고 공사 책임자 부르라니까?”

“제가 책임자라니까요.”

“하… 이 새끼 말 참 못 알아듣네.”

찰싹.

볼이 화끈해지더니 내 얼굴이 타의에 의해 돌아갔다. 너무 오랜만에 맞아 봐서 정신이 멍하다.

“이봐요! 당신 뭐하는 짓이야!”

내 옆에 있던 이 부장님이 황급히 나서서 나와 남자 사이를 가로막는다.

“뭐 하는 짓이긴. 싸가지 없는 어린 놈의 새끼 참교육 중이지.”

피식피식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다. 그의 말에 열이 올랐는지 이 부장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참교육? 미친 거 아냐? 너 뭐야? 새끼야! 뭔데 와서 행패야? 행패가!”

“행패?! 말 잘했다! 행패? 야! 내 건물에서 이런 대공사를 하는데 어! 건물주한테 말도 없이 어! 이런 짓을 해? 이거 하락 받고 한 거야? 공사 책임자 어디 있어!”

쾅! 콰쾅! 쾅!

남자가 옆에 쌓여 있던 페인트 통을 발로 걷어차며 외쳤다.

“어? 건물주가 왔는데 책임자 어디 있냐고!”

남자의 말에 난 순간 내가 건물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면 상도 형이 건물을 샀다고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설마…….’

만약 상도 형이 내게 그런 짓을 했다면? 아니라는 걸 굳게 믿지만 원장님이 나이가 차서 밖으로 나가는 애들에게 매번 신신당부하는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밖에 나가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사기꾼이야. 그리고 그 사기꾼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알고 지내던 친한 사람이고. 아무도 믿지 말고 행여 믿더라도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해. 알았니? 다른 사람들은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너희들은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 그러니 항상 조심해.’

“아니겠지.”

난 남자가 고성을 지르든 말든 상관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 몇 번의 신호가 간 후 상도 형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상도 형.”

-어. 왜 무슨 일 있어?

내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 걸 눈치챘는지 상도 형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어렸다.

“여기… 이 건물 주인이라는 사람이 와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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