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40화 (140/154)

140. 믿음직한 형 한 마리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건물주라니…….

“지금 여기 와 있다니까?”

-흠, 어떻게 생긴 놈이냐?

“한 사십 대 정도 됐는데……. 퉁퉁하고 키는 나보다 좀 작아.”

-쓰읍… 40대라……. 짐작이 가는 놈이 하나 있기는 한데…….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후… 알았어. 저거 지금 거짓말하는 거 맞지?”

-당연하지, 인마! 그리고 혹 무슨 일 있어도 나서지 마. 너 이제 공인이야. 알지?

“알았어. 아무튼 난 형만 믿는다.”

“오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형의 목소리에 다소 안심을 한 난 전화를 끊고 남자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 부장님은 내 쪽을 가로막고 서서 건물주라는 남자에게서 나를 막아 주고 계셨다. 고맙네. 몇 번 보지도 않은 날 위해 나서 주는 어른이라니.

“네가 뭔데 애를 쳐! 건물주면 다야?”

“이 새끼가 돌았나!”

“돌긴 새끼야.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건물주들이 갑질한다고 욕을 먹는 거야. 그리고 새끼? 이런 한참은 어린놈의 새끼가 주둥이에 걸레를 물었네.”

“하, 당신 지금 하는 말 책임질 수 있어? 어 그래. 건물주? 갑질? 오냐. 내가 건물주 갑질 보여 주지. 야! 누구 허락 맞고 내 건물에 손을 대! 공사 중단하고 전부 꺼져!”

남자의 외침에 현장은 싸해졌고, 이 부장님은 자신이 건물주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저 말이 가진 의미를 아는 것. 그러고 보니 이 부장님한테는 이 건물을 통으로 매입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부장님이 입을 다물자 남자는 너 잘 걸렸다는 듯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씨발! 이제 실감이 가? 건물주가 우습지? 당장 공사 멈추고 꺼지라고!”

남자의 고함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연장을 내려놨다. 그들도 안다. 임대계약법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하지만, 세상은 꼭 법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막말로 건물주가 정말 독하게 맘먹고 쫓아내려고 하면 법도 소용없게 된다. 그리고 이럴 경우 공사비는커녕 제대로 인건비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너 새끼야 이리 와 봐. 어린놈의 새끼가 눈깔을 아주 더럽게 뜨네?”

남자가 나를 가리켜 손가락질했다. 순간 욱해서 저 손가락을 분질러 버리고 싶었지만…….

형 말대로 난 공인이니까.

“싫은데?”

“뭐? 이 어린놈의 새끼가 싫은데?”

자기도 이 부장님한테 반말 찍찍 갈긴 주제에 자긴 또 듣기 싫은지 가뜩이나 붉은 얼굴이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별 미친 것들이 오늘… 그래! 오늘 날 잡자!”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다짜고짜 손바닥을 휘둘렀다.

“하…….”

아까야 워낙 어이없는 상황이라 맞았을 뿐이지, 평소라면 맞고 싶어도 맞아 줄 수 없는 형편없는 공격이다. 난 몸을 슬쩍 빼며 고개를 가볍게 젖히는 것으로 그것을 피해 냈고, 순간 중심을 잃은 남자는 뒤뚱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꾸엑!”

우당탕!

공사로 인해 먼지가 자욱한 바닥에 쓰러진 꼴이 꼭 돌멩이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황소개구리 같다. 사람들도 그 꼴이 웃긴지 애써 웃음을 참는다.

“풋…….”

“푸흡…….”

쪽팔렸는지 서둘러 일어나려다 또 주저앉는다.

“이… 이… 새끼가 감히 발을 걸어?”

사람들이 웃어서 부끄러운 건지 남자는 다짜고짜 내가 발을 걸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 현장에 그의 편은 없다.

“이것들이…….”

사람들이 자기 말에 전혀 호응해 주지 않자 혼자 씨근덕거린다. 난 남자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을 사실만을 추려서 그에게 말했다.

“발 걸긴 뭘 발 걸어. 당신 혼자 넘어진 건데.”

“이… 이이… 뭐? 당신? 이 어린놈의 새끼가 끝까지!”

놈은 눈이 완전히 돌아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더니 못을 뺄 때 쓰는 60cm 정도의 빠루를 발견하고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너 이 새끼 오늘 초상 치러 봐라.”

“어?어어! 아저씨 그거 내려놔!”

“야야. 저거 뺏어!”

“이봐요! 그거 내려놔요!”

인부들이 그것을 말리려 했지만, 놈은 빠루를 붕붕 휘둘러 접근을 막았다.

“닥쳐 천민 새끼들아! 그리고 너 새끼, 감히 발을 걸어?”

“아저씨가 혼자 넘어졌잖아. 그리고 그거 내려놔. 휘두르면 선 넘는 거야.”

“이 새끼가 끝까지! 반말을!”

놈이 빠루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난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중간에 공격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자꾸 형의 당부가 떠올라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렇게 얼마나 피했을까.

“어……?”

뒷걸음질 치던 내 오른발이 뭘 잘못 밟았는지 주욱 미끄러졌다. 중심을 잡으려 잠시 몸을 멈췄는데 하필 그때 빠루가 날아왔다.

“빌어먹을…….”

난 어쩔 수 없이 그것이 날아오는 궤적으로 두 팔을 교차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어?”

두 팔에 느껴질 고통을 예상하며 이를 악문 순간 머릿속이 위잉 하고 울리며 시야가 좁아지는가 싶더니 빠루의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마치 세이온을 할 때와 같은 감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의문을 가질 때가 아니라 저 무자비한 쇳덩이의 공격을 피하는 게 우선이다.

탁!

난 빠루를 든 녀석의 손목을 옆으로 밀며 균형을 잃은 채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이상한 감각이 사라졌다.

쾅!

“악!”

애꿎은 바닥을 찍은 놈이 빠루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진짜 미친놈이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서니 사람에게 빠루를 휘두른다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저게 사람 새낀가. 어떻게…….”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 전에 흠씬 두들겨 패야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놈을 바라보는 눈빛이 흉흉해졌다.

“아이고 나 죽는다. 내 손……! 너 새끼들 고소할 거야.”

그 와중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놈이 손을 부여잡고 끙끙거릴 때였다.

순간 내 뒤에서 거대한 손이 쑥 하고 나타나 놈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턱!

“어……? 어… 억… 으어억!”

놈은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머리를 잡은 손을 떼어 내려 하지만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손의 주인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이성을 거의 잃어가는 불곰 한 마리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네놈이었구나. 장태규.”

* * *

꾸드득…….

“으아악!”

놈의 머리를 붙잡은 형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끄아아악!!”

“네가 감히 내 동생한테 빠루를 들어?”

“아아악!”

장태규라는 이름의 돼지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한 손의 악력만으로 상대의 머리를 쥐어짜는 형의 눈에 살기가 번뜩거린다. 음…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죽일 것 같다.

“형, 그만해. 더하다가는 죽겠다.”

내 말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형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너 입술이 왜 그러냐?”

“입술?”

손가락으로 입술을 슥하고 만져 보니 피가 점점이 묻어 있다. 아까 워낙 세게 맞아서 입술이 터진 모양이다.

“아, 그냥 아까 한 대 맞았어.”

턱!

형이 녀석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동시에 거대한 삼두근이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으… 으아아아악!”

“네가 내 동생 뺨을 쳐?”

형은 진짜 죽일 기세로 머릴 쥐어짰다. 완전히 꼭지가 돌아갔는데 이 상태에는 내 말도 잘 안 듣는다.

“형! 그만!”

내가 형의 팔을 붙잡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형은 잠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녀석의 머리를 놓았다.

“후,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장태규”

“으으으… 너… 새끼… 내가 누군지… 알… 끙… 나 이 건물 주인이야.”

“지랄하고 있네. 정확히 말해서 전 건물주 아들이겠지.”

“뭐… 뭐? 너… 이 새끼!”

형이 그 말을 한 순간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놈이 무슨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 형의 멱살을 붙잡았다. 고목 나무에 매미 한 마리 붙은 것 같지만 기세만큼은 사람도 죽일 것 같다.

“너 새끼야. 우리 아빠엄마 어디 갔는지 알지? 어!”

“알지.”

“말해! 말해!”

철썩!

“어억!”

형의 솥뚜껑만 한 손이 휘둘러지자 장태규의 몸이 허물어졌다.

“어디 갔는지가 아니라 왜 갔는지를 물어야지. 태규야. 그리고 형 멱살은 아무나 잡는 게 아니란다.”

“응……? 아니. 왜?”

“글쎄? 왜일까? 아들놈이라고 하나 있는 거 헬스장까지 차려 줬는데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매일 가게 돈 쓸어다가 강원랜드에 가져다 바쳐서? 아니면 지 가게도 아닌 주제에 담보 걸고 사채 빚까지 빌려서? 아니면 건물을 노린 외동아들 새끼가 부모님 밥에다가 약을 타서?”

장태규는 형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차 얼굴이 파랗게 변하더니 급기야 약을 탔다는 부분에서 얼굴이 검게 변해 버렸다.

“맨날 건물주 아들이라고 세입자들한테 갑질만 하더니 못된 것만 배워서 부모 가슴에 비수를 꽂으니 부모님들이 꼭지가 안 돌고 배기겠냐?”

“그… 그래서 어디 가셨는데……?”

“왜? 강원랜드에서 룰렛 돌릴 돈 없냐? 아니면 강원 돼지 형님 돈 떼먹고 도망다니는 중이냐?”

“네, 네가… 그걸 어떻게…….”

퍽!

“억!”

형의 큼지막한 발바닥이 녀석의 가슴을 걷어찼다.

“컥… 컥…….”

“너 새끼 잡아 오는 놈한테 네가 빚진 2억에서 절반 준다고 이 바닥 소문 쫙 났어. 아마 돼지 형님이 너 잡으면 도끼부터 들걸?”

“히익……!”

녀석은 도끼라는 말에 손을 벌벌 떨며 고개를 떨궜고, 그런 녀석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며 형이 핸드폰을 꺼냈다.

“내가 그래도 이 건물주 영감님 얼굴 봐서 10분 후에 돼지 형님한테 전화할 거다.”

“뭐… 뭐?”

퍽!

“악!”

“뭐는 반말이고 새끼야. 아무튼 내가 10분 후에 전화할 거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도망쳐. 알았냐?”

“하… 하지 마.”

“마?”

“하지 마세요! 제발…….”

“지랄 염병하고 있네. 너 지금 내가 크게 봐주는 거야. 너 잡아가면 1억 꽁으로 먹는 건데 봐주는 거라고. 알아!”

“으아악!”

“당장 일어난다! 실시!”

형의 고함에 녀석이 사시나무처럼 떨며 몸을 일으켰다.

“뛰어.”

“예?”

“뛰라고 새끼야!”

다시 한번 형의 고함이 울리자 정신을 차린 녀석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등에 다시 한 번 형의 고함소리가 작렬했다.

“어쭈, 지금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겠다고? 비상구로 뛰어!”

“예예!”

이제는 처음의 그 위풍당당함을 모두 잃은 장태규는 그렇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미안하다. 내 한 번은 와서 지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봐.”

“그게 이 건물이 원래 30억이 넘는 건물인데. 건물주 노인네가 아들놈이 싸 놓은 똥 몇 개 처리해 주는 조건으로 10억 깎아 줬어.”

“싸 놓은 똥?”

“아까 들었잖아. 큰돈 들여서 헬스장 차려 줬더니 매상 전부 싸 들고 강원랜드 간 거. 거기에 돼지 형님이라고 저런 헐랭이들 등쳐 먹는 형 있는데 공사 당해서 2억 빚까지 졌어. 난 지금까지 그거 해결하러 다닌 거고.”

“그럼 해결은 한 거야?”

“예전에 끝냈지. 문제가 아들 놈 새끼가 도망 다니느라 도통 안 나타났다는 건데 오늘 얼굴 봤네.”

“그럼 그동안 집에 잘 안 들어온 게 그거 때문이었어?”

“그래. 쩝… 보니까 혜미는 게임 속에서 너 챙겨 주고 광수는 네 영상 편집하면서 서포트도 해 주는데 막상 형인 난 그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잖아. 흐흐흐…….”

“형.”

“왜? 감동했냐?”

“아니, 그냥 형은 장가가기 참 힘들 거 같아서. 참 걱정이다.”

정말 이 산적 두목을 누가 데려갈까 심히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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