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부드러운 오러 블레이드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어쨌건 인테리어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캡슐 세 대를 중심으로 스튜디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갖가지 장비들이 갖춰졌다. 아직 5층의 주거 구역이 남았지만 일단은 스튜디오가 중요하니까.
또한 공사하는 동안 그동안 건물에 세 들어 계시는 세입자분들을 모두 만났는데 어째서 개진상 같은 건물주 아들의 등쌀을 견디며 붙어 있는지 각이 딱 나오더라.
“목이 좋아서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까요. 더러워도 참고 살았지.”
자글자글한 주름이 진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2층의 갈비탕집을 하시는 분이다. 참고로 1층에는 커피숍이, 2층에는 갈비탕집이, 3층에는 한의원이 있다.
“건물주 양반 동생이라며? 어쩜 이렇게 안 닮았어. 호호호… 그 양반은 산적같이 생겼더만 동생은 아주 말쑥하네.”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한의사분의 사모님이다.
“하하하…….”
“그런데 동생은 무슨 일 해?”
“위튜버요. 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요.”
“어머, 그렇구나. 하긴 얼굴이 이리 반반하니까, 그런 거 해도 되겠네.”
“하하하…….”
눈치를 보니 나를 남캠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세이온을 한다는 사람이야 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역시 게임이나 위튜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생소한 이름이리라.
세입자들에게는 내가 건물주가 아니라 형이 건물주라고 말했다. 등기부등본 끊어 보면 다 나오는 거지만 따지는 사람은 없더라.
“왜 굳이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냐?”
“형 장가보내고 싶어서 그러지.”
솔직히 난 건물주라고 유세 떠는 것도 싫어할뿐더러 형 면상에 ‘건물주’라는 간판이라도 걸어 놔야 여자가 꼬일 거 같으니까.
“인마, 어. 그래도 왕년에는 나 좋다는 여자 많았어!”
“내가 형 왕년을 몰라? 어디서 먹히지도 않을 구라를 쳐. 맨날 주변에 말만 한 살덩어리들만 거느리고 다녔지.”
“썅…….”
“그건 그렇고 큰일이네.”
“뭐가?”
“이부장님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
“무슨 말?”
형의 물음에 난 그날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캡슐 설치가 끝나 갈 즈음 난 이 부장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문의를 드렸다. 알베르토에게 모종의 술법을 당한 것과 끝나는 순간 캡슐이 멈추면서 튕겨 나온 일, 그리고 그 진상이 왔을 때 겪었던 특이한 현상에 대해서도 말이다.
“PAUSE 표시가 뜨고 멈췄다라…….”
내 말에 이 부장님은 직접 캡슐에 기록된 해당 데이터를 살폈다.
“아, 여기 있네. 보자…….”
키보드를 다다다닥 치니 그날의 데이터가 상세히 뜬다. 뭔가 내가 읽을 수 없는 영어로만 한가득한데 이 부장님은 그걸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어이구, 싱크로율이 왜 이래!”
“예?”
“자, 잠깐만…….”
뭔가 놀란 표정의 이 부장님이 가방에서 다른 기계를 꺼내 캡슐에 연결한다.
타탁… 타타탁… 타탁…….
한참 타이핑하더니 이내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 부장님.
“세상에… 200프로라니…….”
“160프로요?”
“어, 어… 싱크로율이 한순간 160%까지 폭등했네. 그래서 캡슐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자체적으로 멈춘 것 같아.”
“그게 가능한 건가요?”
“불가능하니까 나도 놀란 거지.”
내가 알기로 싱크로율은 100%가 끝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100%를 달성한 사람은 아직 없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100%를 넘기면 그건 사람 뇌가 아니라는 소리다.
“버그인가. 으음…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그런데 이건 기계에서도 볼 수 없는 수치인데… 자네, 혹시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 뭐 그런 건가?”
“멀쩡한 사람인데요?”
“그렇지? 음…….”
내 위아래를 요리조리 살피는 이 부장님. 마치 코드 꽂는 곳이 없는지 찾는 눈치다.
“사람 맞습니다.”
“허… 참… 일단 이건 연구소에 내가 문의해 보지. 같이 가 보자고.”
아무래도 답이 안 나왔는지 이 부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그렇고 연구소라… 별론데…….
“그건 좀 싫은데요”
분명 그 연구소에서는 내게 일어난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싶어 할 테고 백이면 백 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할 것 같다. 그리고 난 그게 싫다.
“그래도 검사는 받아 봐야지. 뇌가 어떻게 돼 있길래 160%가 나오는지 말이야. 이건 자네 건강에도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렇긴 하죠. 그래도 좀… 싫습니다. 그 연구소장님 저한테 관심 많다면서요.”
“그렇지.”
“그래서 저는 싫어요.”
“왜,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예. 그러니 연구소에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끙…….”
이 부장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예전에 생동성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미성년자의 생동성 알바는 불법이었지만 우리나라가 어디 그런 거 따지던가. 게다가 당시에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고 생동성 알바 대상도 청소년이라고 하니 옳다구나 하고 받았었다.
원장님은 세미나 간다고 자리를 비우셨고 상도 형은 당시 한창 방황하던 시기라 날 잡을 사람도 없어 일박 이 일로 다녀왔는데, 임상 다음 날 쇼크가 와서 죽는 줄 알았다.
‘개같이 고생했지.’
하필이면 기록으로 남기기도 애매한 미성년자한테 약을 썼는데 쇼크가 왔으니 임상을 진행한 병원에서도 난리가 났다. 다행히 처치가 잘 끝나 금방 퇴원했지만 내가 쇼크에서 막 벗어나 쉬고 있을 때 내 병실에 찾아온 의사의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고아 새끼니까 적당히 구슬려서 다음 임상에도 불러 봐. 결과가 아주 흥미로워.’
‘쇼크 겪었는데 다시 하려고 할까요?’
‘하게 해야지, 새끼야.’
날 사람이 아니라 무슨 실험체 보듯이 하던 그 목소리를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난 병원이 싫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죄송해요.”
“아니야. 물건 판 입장에서 명확히 답을 못 주는 게 미안한 거지. 대신 안전 장치랑 성능 업그레이드 좀 해 줄 테니까 그건 받아.”
“예.”
“그리고 그 시야가 느리게 변했다는 건 아마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일 거다.”
“아드레날린이요?”
“어, 운동선수가 한참 경기에 몰입하면 아주 잠깐씩 그런다는데 비슷한 경우 같네.”
“으음… 좋은 건가요?”
“나쁜 건 아냐. 항간에는 과용하면 몸이 축난다고 하는데… 그거야 몸 심하게 쓰는 운동선수의 경우고. 넌 운동할 거 아니잖아.”
“그렇죠.”
“그럼 됐지, 뭐.”
뭐 이렇게 됐다.
“괜찮겠냐?”
“뭐가?”
“게임 말이야. 해도 괜찮겠냐고.”
“그때 너 꽤 안 좋아 보였어.
“해야지, 그럼.”
지금 이 모든 부의 근본이 내 게임 실력에 있다. 그런데 내가 게임을 그만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 들어갈게.”
“어.”
형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한 채 게임에 접속했다. 곧이어 익숙한 초기 화면을 지나 세이온에 들어가니 눈앞에 갑자기 커다란 알레그로의 모습이 불쑥 보인다.
“으악!”
난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알레그로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뭡니까?!”
“내가 이 집에서 할 일이야 널 보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이틀 동안 말입니까?”
내게 힘을 준 알레그로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이틀 동안이나 접속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고?
“내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찰나지.”
“으음, 그거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신데요.”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알레그로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내 모든 걸 가져갔잖느냐. 어찌 보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수제자인데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
“한 10%만 주신 거 같은데… 뭐, 아무튼 감사합니다.”
수제자라고 하니까 알레그로가 내게 비술을 펼치던 때가 생각나 또 기분이 멜랑꼴리해진다.
난 상태창을 열었다.
‘푸른 폭풍 연공술 [전설][MAX]’
-푸른 폭풍은 언제든 그 소유자를 찢어발길 흉포한 짐승이다. 그렇기에 그 공능으로 항상 주위의 마나를 흡수하며 자신의 힘을 키운다.
-오러 사용 가능
-마나 흡수 속도: 500% 증가
-오러 출력: 500% 증가
-모든 피해의 50%를 오러 피해로 전환
-즉사 판정 수치 90% 하락
-오러 폭주 확률 10% 증가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푸른 바람 일족의 오러 연공술에 비하면 거의 끝판왕급.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준준형 엔진이 슈퍼카의 엔진이 된 거랄까. 그런데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좀 걸린다.
“그런데 오러 폭주 확률이라는 게 뭡니까?”
“네 상태창에 쓰여 있느냐?”
“예.”
“폭주 확률이라… 흠… 그렇군. 인데그라시아 연공술에서 따라간 건가?”
“인데그라시아 연공술에도 이런 페널티가 있습니까?”
“그렇지. 폭풍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네. 그 폭풍을 닮고자 했기에 그 성정마저 가진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 그대로 폭주하게 되지.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강해지지만 끝나는 순간에는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네. 뭐 유저인 자네에게는 그리 큰 페널티도 아니겠군.”
“그렇군요.”
알레그로의 말대로 유저에게 죽음은 NPC들의 죽음과는 다르다.
NPC의 죽음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만, 유저는 레벨이 다운되고 모든 사회적인 관계가 사라지긴 하지만 다시 살아나니까.
“아 그런데 스승님,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하거라.”
“게임 시스템상으로 유저가 죽으면 그 유저는 NPC들에게서 잊히는데 스승님은 죽은 유저도 기억하십니까?”
“그래. 난 기억한다.”
“휴, 역시 그렇군요.”
시스템에서 벗어난 존재이니 당연히 그런 페널티에서도 자유로우리라.
내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자 내가 생각하는 게 뭔지 다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널 잊을까 봐 두려웠느냐?”
“아뇨. 만약 잊어버리시면 대뜸 저를 보자마자 찢어 죽이려 하실 것 아닙니까. 빌어먹을 유저놈이 내 스킬을 베껴 갔다고…….”
“하긴 그건 그렇군. 아마 어떻게 내 스킬을 가져갔는지 알 때까지 쫓아다녔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알레그로…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일부러 저렇게 말했는데… 쳇…….
이 괴물 같은 사부가 날 쫓아다니는 걸 상상하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말 그대로 세이온의 절대신 헤븐이 아니면 막을 수 없는 괴물 아닌가.
“자, 그럼 시작해야지?”
“으음. 예.”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알레그로를 마주 봤다.
지이잉…….
그의 손에서 예의 그 오러 채찍이 늘어졌다. 빌어먹을 오러 채찍… 내 딱딱한 오러와 부딪치면 마치 문어의 촉수처럼 휘어지며 나를 공격한다. 내가 가진 단단한 오러가 촉수를 일검에 자를 정도로 절삭력을 가지지 않고서야 내가 확실히 불리하다.
난 허리춤의 목도 뽑았다. 처음에는 빙룡도나 듀렌달을 썼지만 둘 다 신화와 전설급 무기라 소모가 엄청나서 지금은 그냥 목도를 사용하는 중이다.
지이이잉…….
내 목도 위에도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같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작 안 하냐?”
“잠시만요.”
난 목도에 오러와 정신을 집중했다. 이전에 내가 알레그로에게 물었을 때 알레그로는 이렇게 답했다.
‘의지는 현상을 초월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은 그 의지에 있다는 것.
물론 그와 나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격차와 경험이 존재하겠지만 그도 첫 시작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 두들겨 맞았으면 흉내 정도는 낼 줄 알아야죠.”
“오호… 의지는 현상을 초월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거냐?”
“어느 정도는요.”
굳이 알레그로처럼 손에 오러를 씌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오러의 성질에 있으니까. 한없이 부드러운, 그렇지만 그 절삭력은 잃지 않아야 한다. 난 내가 원하는 오러 블레이드의 성질을 상상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목도 위의 오러 블레이드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알레그로의 그것처럼 뭉글거리기 시작한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유연성은 확보했다.
“후,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네요.”
완전하지는 않지만 발은 떼었다. 남은 건 숙련도를 쌓는 것뿐… 그리고 내 앞에는 그 숙련도를 쌓기에 가장 최적화된 분이 서 계시다. 그것도 감탄 어린 표정을 지은 채…….
“허, 유(柳)의 묘리를 이렇게 빨리 깨우치다니…….”
“덤비시죠. 이전처럼 당하지는 않습니다.”
“허허, 그래? 좋다. 그럼 난 좀 다른 걸로 상대해 주지.”
지이이이잉! 파파팍!
채찍처럼 바닥에 늘어져 있던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순간 단단하게 변하더니 표면에 뇌전이 어리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가 싸하다.
“잘 막아 보려무나, 제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