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학살공주 구출 작전
헤븐즈게이트사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만한 슈퍼양자컴퓨터 헤븐이 있는 일명 ‘돔’의 방호와 보안은 철저하다 못해 가히 철옹성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돔’은 본사 건물의 지하 100m에 자리 잡고 있어 핵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으로, 출입하는 방법은 오로지 엘리베이터 하나뿐이다. 그뿐인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컴퓨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가 발전 시설이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9명의 무장 경비가 3교대로 돌아가며 물 샐 틈 없이 그 입구를 지키는데, 출입의 권한이 있는 이도 헤븐즈게이트사의 대표이며 헤븐을 설계한 박상혁뿐이었다.
혹자들은 물리적인 접근에만 너무 중점을 둬 해킹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공격에는 취약한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미 과거 수십만 번의 국가 단위의 해킹 공격을 헤븐 자체적으로 완벽하게 차단했고, 도리어 상대를 추적 및 역공을 가하여 세계의 이름 있는 해커들조차 장난으로라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대가 바로 슈퍼양자컴퓨터 헤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헤븐즈게이트사라도 허점은 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나 보안 시설의 문제가 아닌 사람로 인한 허점이었다.
꿀꺽…….
헤븐즈게이트사 보안 팀의 안길수 팀장은 자꾸만 땀이 차오르는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문질렀다.
‘씨발…….’
지금 그가 하는 일은 그의 신념과 30년을 헌신한 회사를 배신하는 일이었다. 본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는 해야 했다.
‘아빠… 여보… 흑흑…….’
‘어이, 안길수 당신이 할 일은 우리가 주는 물건을 그 컴퓨터 본체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난 그런 권한 없어!’
‘안길수… 자식새끼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봐?’
‘아악! 꺄아아악!’
‘하, 하지 마!’
‘흐흐흐, 역시 자식새끼 피를 보니까 겁이 나지? 이봐, 박상혁이. 내부에 들어갈 때 유일하게 따라 들어가는 게 너잖아. 안 그래?’
‘크흑…….’
‘이 물건을 두고 오기만 해. 그럼 네 자식새끼와 마누라 목숨은 무사할 테니까.’
놈들에게서 받은 하키 퍽처럼 생긴 둥글고 검은 그것을 주머니 안에서 굴리며 안길수는 이를 악물었다. 20년을 박상혁 회장과 회사에 충성했다. 그리고 30년간 회사는 자신의 충성에 충분한 보상을 해 줬다. 그렇게 이제는 슬슬 은퇴를 생각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한밤중 집으로 침입한 괴한들은 그에게 배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다. 일에 치여 느지막이 한 결혼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질 때의 그 기분이란…….
이를 악문 안길수 팀장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사람 좋은 미소의 늙은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바로 헤븐즈게이트사의 주인이며 양자슈퍼컴퓨터를 만든 대한민국이 낳은 희대의 천재 박상혁이다.
“어이, 길수야.”
“아, 예. 대표님.”
안길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뭐야.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어라? 식은땀도 흘리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회장님.”
“아무것도 아니긴. 몸 안 좋아 보이는구먼.”
회장의 손이 어깨를 두들길 때마다 안길수 팀장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 * *
슈슈슈슉! 쿠쿠쿵!
온통 나무만이 가득한 거대한 대수림의 한복판… 지금 이곳에 두 마리의 거대한 이무기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쩌정! 콰콰쾅!
서로 이를 드러내며 뒤엉킬 때마다 폭발하듯 비산하는 충격파에 주변에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되건만, 이무기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우지직! 쿠쿠쿵!
집채만 한 거목들이 반으로 부러져 바닥에 쓰러지고 바위들은 공깃돌처럼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그야말로 자연의 대한 폭거이며 폭력이다! 숲을 사랑하는 엘프들이 본다면 뒷목을 붙잡고 쓰러질 광경이지만 이 대참사를 일으키는 이들 중 하나가 그들과 같은 엘프, 그것도 그들의 조종이라고 할 만한 알레그로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베소 왕국으로부터 엘프들을 구출해 낸 그들의 영웅이자 구원자인 ‘엘프이 악몽’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할 것이었다.
한차례 폭풍 같은 전투가 지나가고 창노한 음성이 울렸다.
“꽤 늘었군. 하하하”
알레그로의 입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막상 그 당사자인 케이의 처지에서는 욕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알레그로는 지금 가만히 서서 검지손가락 하나만을 까딱이고 있지만, 그는 전력을 다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입을 열어 대꾸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싸움에만 집중하기에도 부족하다.
퍼석!
목도가 소멸해 버렸다. 찰나 지간이지만 정신히 흩어졌고 그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오러 블레이드가 목도를 잡아먹었다. 그러나 케이는 멈추지 않았다.
우우웅!
그의 손으로부터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랐다.
목검으로만 이루던 그것이 손안에서 펼쳐진 것이다.
크라라라락!
더욱 거대해진 오러가 짐승처럼 표효하며 알레그로에게 날아든다.
“허허허…….”
자신 또한 몇 년의 고된 수련을 통해 이룬 것을 고작 두어 달 만에 가져갔다. 아니, 유저라는 한계를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짧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하하하!”
유(柳)의 오러를 뛰어넘어 그것을 뱀이라는 마인드폼으로 승화시켰다. 오러에 의지를 투영하여 하나의 형상을 이뤄 내는 경지! 이것에 숙달되면 오러를 완전히 손발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을 넘어 그 한계를 넘볼 수 있게 된다.
“정말 빠르구나.”
그가 살아온 세월 속, 무수한 이들을 만났다. 재능을 지닌 이들은 NPC 중에도 유저들 중에도 많았다. 그러나 단연코 케이만큼 빠른 성취를 보이는 이는 단연코 단 일인도 없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흡수한다. 깨달음이 필요한 경지라고 생각했건만 그것을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뛰어넘는 그 악마의 재능에 알레그로는 그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대체 어디까지 따라올 것인가.
“그러니 이것도 받아 보거라.”
지금의 경지가 완숙해진 이후에나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쿠쿠쿠…….
알레그로의 손아귀에서 날뛰던 거대한 오러의 채찍이 한순간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하나로 뭉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케이는 저것이 마인드폼 이후의 뭔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미친… 갑자기 그딴 걸 꺼내면 어떻게 합니까!”
챙!
케이가 빙룡도를 뽑아 들었다. 지금껏 목도 혹은 맨손을 사용한 건, 멸신의 오러가 가진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지랄맞은 특성 때문이었다. 조금만 컨트롤이 빗나가도 멸신의 오러는 빙룡도를 잡아먹었고 덕분에 내구도가 뭉텅이로 날아갔다.
그러나 같은 맨손으로 상대하면 필패다. 최대한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흐읍!”
빙룡도에 오러 블레이드를 입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우우우웅!
오러 블레이드에 계속해서 오러를 밀어 넣었다. 99레벨이 되면서 얻은 보너스 능력치를 전부 오러에 투자했기에 장비빨을 포함에 각종 업적으로 오러는 차고 넘친다.
파칙… 파치칙!
빙룡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과포화된 오러에 블레이드의 형상이 무너지려는 걸 케이의 의지가 붙잡으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빌어먹을…….”
최대한 멸신의 오러의 컨트롤에 집중함에도 빙룡도의 내구도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간다.
팟!
그러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이윽고 빙룡도 위에는 길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흠, 고작 한다는 게 오러를 응축시킨다는 것뿐이냐?”
그것을 본 알레그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 단계 위를 보여 주려고 했는데 제자 놈은 오히려 두 단계를 떨어뜨렸다. 유(柳)의 오러 블레이드를 마인드폼 하여 드래고닉 오러를 흉내 내기에 기대했건만, 이건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내 알레그로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졌다. 보통이라면 죽을 것을 염려하여 손속에 사정을 봐주겠지만 제자 놈은 유저다. 죽어도 며칠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유저… 시스템의 힘을 스킬을 꿀떡꿀떡 강탈하는 괘씸한 능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이럴 때는 확실히 좋다.
“죽음으로 겪어 보거라, 제자야.”
‘물어뜯어라.’
파팟!
알레그로의 손이 펼쳐지는 동시에 오러의 구체로부터 수십 줄기의 오러가 폭발하듯 확장하며 케이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 크기만 해도 직경 수십 미터는 너끈히 넘을 지경. 그러나 이것은 스킬의 시작에 불과했다.
쿠아아아악!
카아아악!
그 거대한 오러의 기둥들이 하나하나가 거대한 짐승이 되어 케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수백 수천의 대군이 달려들어도 일순간 지워 버릴 것 같은 위력이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것은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빙룡도를 앞세운 채 날아오는 짐승의 아가리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케이뿐이다.
“젠장, 이건 반칙이죠.”
날아오는 수십 줄기의 오러를 바라보며 케이는 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이제 더하기 빼기를 지나 곱하기를 배우고 있는데 갑자기 미적분이 나온 듯한 기분이다. 이건 그냥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과 같다. 아무리 자신이 유저이기에 죽음에서 자유롭더라도 이건 선을 넘었다.
공격을 쏘아 낸 알레그로가 아주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마치 한번 발버둥 쳐 보라는 듯 케이의 반골 기질을 후벼팠다.
“죽어도 한 칼 먹이고 죽겠습니다.”
드드드드득!
빙룡도에 맺힌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떨리기 시작했다. 오러에 대한 통제가 풀려 가는 것. 그러나 케이는 상관하지 않았다. 오러 블레이드에 더욱 힘을 줘 크기를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츠츠츠츳!
케이의 전신에 오러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은 오러 블레이드와 하나로 뭉쳐 거대한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저 미친 놈… 크큭…….”
케이가 지금 하려는 것을 눈치챈 알레그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신검합일.’
검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간단한 무리(武理)지만 지금 케이가 보여 주는 것은 그것의 더 상위의 것이었다.
“오냐! 좋구나! 붙어 보자!”
알레그로도 미친 짓에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 * *
퓨슉… 슈우우욱…….
캡슐의 뚜껑이 열리며 정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후우우우…….”
긴 한숨을 내쉰 정현은 캡슐 옆에 붙은 작은 간이 냉장고를 열어 에너지 음료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텅… 터텅…….
다 마신 통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새로운 에너지 음료를 꺼내 마신다.
꿀꺽… 꿀꺽…….
평소 소식을 지향하는 편이라 음료도 두어 모금만을 마실 뿐이지만 지금 그의 몸은 계속해서 수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 통을 단숨에 들이켜고서야 속이 풀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말없이 정현을 지켜보고 있던 혜미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거 뭐야?”
“뭐?”
“그 있잖아. 푸아아아! 콰아아아! 하는 거…….”
“푸아아아… 콰아아아……?”
“아… 몰라. 난 봐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게 뭐냐고!”
“그건… 그냥… 나도 모르겠어.”
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전에도 아바타와 현실의 몸의 괴리감을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아바타의 강함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자 그것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누나가 보기에는 어때?”
손을 들어 허공에 흔들어 본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도 없고 오러의 움직임도 없다.
게임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그 심오한 경지가 게임으로만 구현되는 신기루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정현이 멍하니 손을 흔들고 있자니 혜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후, 나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99레벨에, 신화급 스킬로 도배된 상태창, 스승이라고 달라붙은 건 저게 NPC인지 아니면 그냥 신적인 뭔가인지 규정되지 않는 존재이며, 게임에 들어가면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 뭔가 손에서 거대한 것들을 뽑아내 괴수 대전을 펼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이겼네?”
“알레그로가 봐준 거야. 내가 한 건 그냥 캐릭터가 가진 두 번의 부활을 쓴 요행이 통한 거고…….”
“하, 이 영상을 위튜브에 올리면 단숨에 1천만 조회 수도 뽑을 텐데…….”
조금 전 모니터로 본 것을 떠올리며 혜미가 푸념을 했다. 가뜩이나 요즘 올릴 영상이 거의 없어 구독자가 줄어 가고 있다. 그나마 포디나의 영지와 백화점 그리고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생활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지만, 이전의 짜릿한 전리품은 없으니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껏 정현을 다그치지 않는 건 지금 알레그로에게 배우는 것이 남들은 꿈에도 바라 마지않을 기연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기 때문이고. 이제 슬슬 정현이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
“정현아, 의뢰 들어왔어.”
“의뢰?”
혜미와는 가급적 레이드나 의뢰 같은 건 안 하기로 했기에 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말을 꺼냈다는 건 해야 하는 의뢰라는 뜻이니까.
“무슨 일인데?”
“구출 의뢰.”
“구출?”
“응. 그리고 의뢰자는 학살공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