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44화 (144/154)

144. 그것이 그의 실수였다

“세스 님. 여기라면 잠시 쉬어 가도 될 것 같습니다.”

“…….”

다섯밖에 남지 않은 달의 눈을 돌아본 세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말이 없던 그녀지만 오늘은 더 그렇다.

“태환이랑 미나가 경계 좀 해라.”

“네. 부단장”

“맡기고 좀 쉬세요.”

“그래.”

달의 눈의 부단장인 지훈은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온통 모래뿐인 주변을 둘러봤다.

‘피의 사막.’

아무도 밟지 못했던 미개척지다. 유럽과의 실크로드를 잇기 위해서는 돌파해야 할 곳.

그레이트 샌드웜과 티탄 스콜피온, 블러디 스네이크라는 80레벨 유저들도 버거워할 몬스터은 기본 패시브가 버로우였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진화한 그것들은 두꺼운 외피와 치명적인 독, 은밀성으로 수많은 유저들을 집어삼켰다.

우습게도 지금은 그 몬스터들 덕분에 추격대를 따돌린 상태지만 그만큼 달의 눈도 희생되었다.

“빌어먹을 길드 놈들…….”

지금 그가 욕하고 있는 건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의 개척단 놈들이었다. 중국의 개척단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하고 있었다. 언제나 태연하게 뒤통수를 치는 놈들이니까. 그러나 같은 국가 소속인 대한민국의 개척단 놈들이 배신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보스의 레이드를 부탁하고서는 레이드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학살공주 세스가 세계 PK 1위에 갖은 악명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웬만해서는 대한민국의 유저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길드들이 감당하기 힘든 일로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왔던 게 그녀였다. 지닌바 스킬이 있어 악명이 따라붙었지만 그녀의 명성을 시기하는 이들에 대한 응징이 과도하게 알려졌을 뿐이다.

그랬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그때 달의 눈의 단원 하나가 걸어와 그에게 말했다.

“부단주님.”

“왜?”

“우리 영지가 침공당했습니다.”

“상대는?”

“미라클과 장백산맥, 벼락, 청성, 악마 길드입니다.”

“벼락과 청성은 우리 우호 길드 아니었나?”

“아무래도… 거대 길드들의 압력으로 배신한 것 같습니다.”

“후… 피해는?”

“버티고는 있지만, 많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알겠다. 세스 님한테는 내가 나중에 말하지. 지금 속이 말이 아니실 테니.”

“알겠습니다.”

세스의 영지는 웬만한 공작급의 규모를 자랑했다.

세이온 내 세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온 세상이 적으로 돌아섰군.”

중국과 대한민국 일본 러시아의 거대 길드들이 그녀 하나를 죽이기 위해 뭉쳤다.

그동안 도움을 주거나 친분이 있던 이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답이 없다. 완곡한 거절의 의미. 말 그대로 주위에 적뿐이다.

세스 모르게 구출 의뢰를 돌린 것은 그였다. 그녀의 자존심상 구출 의뢰를 하느니 그냥 죽을 것이기에……. 10억이라는 의뢰금을 걸었지만 나서는 이는 없었다.

“하긴 누가 수락할까.”

세스를 돕는 순간 모두의 적이 되고, 그것은 세이온을 그만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니까. 하긴 자신이라도 이런 의뢰는 받지 않으리라.

“내가 모자란 탓이다.”

능력 있는 참모라면 이런 것을 사정에 깨닫고 방비했어야 했다. 그들이 세스에 대해 지닌 질투심을 꿰뚫어 봐야 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이 세스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시야 한구석에 통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의뢰 수락- 케이]

-자세한 구출 계획을 의논했으면 합니다.

“응?”

뜻하지 않은 메시지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이 상황에서 세스의 편에 설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상대는 무려 케이였다. 가장 바라지 않던 최강의 강타자.

이미 단신으로 수 개의 길드를 무너뜨렸으며 1:20,000의 신화를 만들었고 치나 제국을 물러나게 만든 인물. 전투력으로는 세스에 버금가는, 아니 이제는 그녀를 뛰어넘었다는 그가 세스의 손을 들고 나섰다.

* * *

알레그로에게 사정을 설명한 난 곧장 포디나의 영지로 돌아왔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누나가 열심히 영지를 키워 준 덕분에 영지는 내가 떠나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발전했다.

“그냥 누나가 영주해도 되겠다.”

“네 명성 덕분이야.”

명성이라… 하긴 악명도 명성이라면 명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 인지력이라는 걸 가진 이들은 내 영지에서 허튼짓할 엄두도 못 낸다고 하니까.

“영지 치안이 안정되고 세금만 적당히 걷으면 영지민은 알아서 늘어나. 돈은 뒷동산 금광산이 다 벌어 주니 이 정도 조건에서 영지 발전 못 시키면 나가 죽어야지.”

한 달 사이 광산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 노천 광산이다. 말 그대로 2~3m정도만 파고 들어가도 금맥이 나오는 말 그대로 금이 널린 곳이었다.

“광산에 문제는 없고? 노리는 놈들이라거나”

“학살공주랑 너를 노리는 것들이 계획에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겠지.”

“낌새는 보였다는 거구나.”

“겉으로는 하하호호해도 힘의 원리로 돌아가니까. 입지 조건이 좋기도 하고.”

“입지 조건이 좋아? 치나 제국 옆인데?”

“2만 대 1로 떡 발린 옆나라? 얼굴에 똥칠을 하고 그 치욕적인 전쟁배상금을 토해 냈는데 약속 어기고 다시 쳐들어오면 정말 낯짝이 대단한 거지.”

“아하…….”

“국경이라는 것만 빼면 여기만큼 조건 좋은 곳이 없어. 몬스터도 안 세지, 초보 도시라서 노동력이라고 할 만한 중하급 유저들은 끊임없이 유입되고 조만간 치나 제국이랑 무역 시작하면 여기가 구심점이 될 거니까.”

“군침 나는 곳이구나.”

“응. 그래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넌 이미 유력 길드 두 개를 박살 낸 전적이 있지.”

“킁…….”

“그래서 너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겁나?”

“그럴 리가.”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유저라 해도 죽음에 대한 페널티는 어쩔 수 없다.

게임 속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모두 사라지는 건 둘째치고 강한 유저일수록 많은 능력치가 사라진다. 또한 죽인 상대가 적국의 유저일 경우 모든 아이템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많게는 전투력의 절반 정도가 증발하는 것이었다.

뭐, 그래서 중국을 끌어들인 거겠지. 나를 완전히 탈탈 털기 위해서.

그 꼴은 못 본다.

“그건 그렇고 부탁했던 아이템은?”

“받아.”

누나가 은색의 엠블럼이 박힌 네모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바닥에 내려놓고 엠블럼을 누르면 쓸 수 있어. 평소에는 가방에 넣고 다니고. 비싼 거니까 가급적 망가뜨리지 마.”

“얼마짜린데?”

“십만 골드”

“와, 현금 일억 짜리라는 거네.”

“그 괴짜 녀석도 만들어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거니까.”

누나가 구해 준 아이템은 일종의 탈것이었다.

장거리 이동 수단이 포탈 빼고는 없는 이 세이온에서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구한 물건.

[개조된 고대인의 마석 엔진 날틀][희귀 등급]

-고대인의 연구 던전에서 출토된 초기 마석 엔진을 이용하여 완성한 날틀

속도: 60km~ 220km

항속 거리: 900km

연료: 마석 1,000/1,000

내구: 48/50

무게: 70kg

-강화 불가

무려 1억을 쏟아부은 것치고는 정말 빈약한 상태창이지만 이것의 실체를 보게 된다면 어째서 1억이나 하는지 이해하리라.

“이 중세시대에 동력 글라이더라니…….”

“만든 그놈이 미친놈이지.”

고대인의 던전에서 나온 엔진으로 비행기를 만든 것은 누나가 잘 아는 과학 위튜버라고 했다.

꽤 오래전에 만들어 조회수 달달하게 빨아먹기는 했지만 들어간 비용이 너무 많아서 처리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애물단지를 1억을 주고 사 온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뭐야? 누나?”

“뭐 보면 알겠지만 유리몸이야. 중간에 공중 몬스터라도 만나서 부서지면 그대로 끝이고, 착륙 잘못해도 끝장. 탈 수 있는 곳은 고도 300m 이상의 절벽은 필요하지. 다행히 운전은 라이딩 스킬로 커버 가능하다고 하더라.”

“으음… 희귀 등급에 내구가 50정도면 정말 아슬아슬하네.”

“그러니까 최대한 아껴서 써. 수리비도 엄청 들어가니까.”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일단 처음 방문할 놈은 누구지?”

“고구려 길드랑 그 주변에 쩌리들.”

“오케이. 크게 한 방 먹이고 들어가야겠군.”

참교육 순회공연 시간이다.

* * *

“하, 더럽게 머네.”

포디나에서 고구려 길드가 있는 영지에 가려면 북쪽으로 일주일을 말을 달려야 했다.

다행이라면 중간에 포탈과 날틀이 있어 그 거리를 하루로 당겼다지만 먼 것은 먼 것이다.

“어디 날 이렇게 고생한 놈들 면상 좀 볼까?”

멀리 고구려 길드의 영지가 보인다. 성벽도 높고 병사도 많다. 척봐도 상당한 대도시.

이름이 무슨 레오딘인가 뭔가라고 했는데 굳이 기억할 생각은 없다.

왜냐고?

“오늘 멸망의 날일 테니까.”

세스를 공격하는 거야 이해한다.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겠지. 그러나 기분이 정말 더러운 건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나를 안다면 분명 내가 싫어할 방식으로. 이건 분명 세스와 나를 도매금으로 한 번에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난 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빅엿을 먹여 줄 것이다.

“광수 형 상황 어때?”

-대기자 천 명 정도고 길드에서 보낸 것 같은 분탕 종자들은 실시간으로 쳐내고 있다.

“곧 방송 시작할게. 미리 찍어 둔 거 걸어 두고.”

-어. 스타트만 끊어.

“오케이.”

오늘부터 난 위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을 할 거다.

그 사전 작업으로 이번 사건의 전모를 영상으로 제작했고, 조금 있으면 방송이 시작될 거다.

개척단이 중국과 손을 잡고 학살공주를 친다. 학살공주 측에서 구출 의뢰가 왔고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개척단 길드들이 자신들에 대항하면 대한민국에서 방송하기 힘들게 만들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것까지.

대충 명분은 만들었다. 뭐, 솔직히 내가 명분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내게 죽을 이들에게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줘야 좀 덜 억울하겠지.

“형! 시작한다.”

-그래.

[위튜브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 1,312명

시야 한구석에 스트리밍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실시간 전투 방송이기에 후원과 채팅은 보이지 않는다.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 * *

“음?”

고구려 길드 영지의 성벽 위를 지키고 있던 기사 라이던은 멀리서 날아오는 뭔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거대한 포탄처럼 보이는 그것은 순식간에 성벽에 가까워졌다. 이대로 날아온다면 성문에 그대로 부딪히리라.

“미친놈인가.”

라이던은 피식 웃었다. 가끔 저런 놈들이 있다. ‘오늘 초 거대 길드에 한번 덤벼 보겠습니다.’ 같은 미친 컨텐츠로 성문에 덤비는 위튜버 놈들. 그리고 그런 놈들의 90%는 좀 깔짝거리다가 도망쳤고, 10%는 성문 경비의 문도 넘지 못하고 죽었다.

저놈도 십중팔구 그런 꼴을 당하리라.

그것이 그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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