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45화 (145/154)

145. 케이, 선포하다

우당탕!

성문을 향해 날아가던 케이는 순간 중심을 잃은 듯 비틀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요란하게 나뒹굴었다.

“아오…….”

폭풍 걷기와 진(眞)멸살검을 연계해 성문을 박살 내려고 했는데 둘을 함께 운용하는 것에 실패해 버렸다. 폭풍 걷기가 마나를 사용한다면 진(眞)멸살검은 오러로 운용하는 것이라 생긴 문제. 무슨 게임을 하는데 그런 복잡한 메커니즘까지 따져야 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스킬들은 게임의 것들이 아니었다.

수백, 수천 년 다듬어지고 발전하여 그것을 다시 몇만 년 수련한 알레그로의 고차원적인 스킬들이다. 이제 고작 배운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완벽하게 펼치는 건 어불성설이나 마찬가지. 만약 지구에 마나나 오러 따위가 존재했다면 알레그로의 무(武)를 잇는 초인이 현세에 만들어졌으리라.

“푸하하하…….”

“웬 병신이냐.”

성벽 위를 지키던 고구려 길드 기사들이 머리 위로 손가락을 돌리며 깔깔거렸다.

“저 새끼, 위튜브 각 제대로 뽑았네.”

“아저씨! 채널 이름이 뭐야?”

“큭큭큭큭큭…….”

“어라? 인상 쓴다! 푸하하”

“근데 저 새끼도 케이 커스터마이징이네.”

“아, 진짜 개나 소나 전부 케이야.”

케이가 유명해지며 그 모습이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웃긴 것은 그로 인해 케이를 더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대중은 유명인의 스타일이나 커스터마이징을 따라 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하게도 케이의 ‘흔하게’ 잘생긴 얼굴은 많은 이들이 따라 하는 중이었는데 막말로 길 걷다가 둘러보면 절반 이상이 케이의 얼굴이다. 중증 빠들은 들고 다니는 아이템까지 비슷하니 케이를 몰라보는 것도 당연하다.

“어이, 아저씨 영상 다 찍었으면 얼른 가. 오늘 중요한 일 있어서 출입 통제니까 괜히 윗분들한테 걸려서 죽지 말고.”

고구려 길드의 기사가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외쳤다.

나름대로 생각해 줘서 한 말이겠지만 당연하게도 케이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스르릉…….

“어, 저 새끼 칼은 왜 뽑아?”

“썸네일 각 잡나 보지.”

피식피식 웃으며 그 모습을 구경하는 기사들.

그때 한 기사가 케이의 검을 보고는 흠칫 놀라 외쳤다.

“어… 저거…….”

“뭐야? 왜 그래?”

“저거… 아무래도… 진짜 같은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새끼가 든 칼 진짜 빙룡도라고…….”

“뭐? 에이, 그냥 레플리카겠지.”

워낙 현실적인 세이온이기에 겉모습만 따라 하는 레플리카도 있었다. 물론 겉만 같을 뿐이지 속은 평범하기에 다분히 꾸미기용 아이템이다. 그러나 케이의 빙룡도를 지적한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레플리카도 몰라볼 거 같아? 저거 진짜 빙룡도 맞아!”

“뭐? 그 말은?”

쿠구구구구…….

빙룡도를 든 케이의 주변으로 지면이 떨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이글거린다. 뜨거워져서 이글거리는 것이 아니다. 연공술은 단순히 오러 능력치를 만들어 주는 스킬이 아닌 오러의 회복과 출력에도 영향을 준다. 전설급 스킬인 푸른 폭풍 연공술은 주변의 마력을 난폭하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흡…….”

케이가 작게 심호흡을 하며 빙룡도를 휘두른 순간.

츠팟.

강렬한 빛과 함께 고구려 길드의 성문을 포함한 성벽에 있던 모든 것들이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쿠쿵… 쿠쿠쿵…….

빛과 소리마저 집어삼켰는지 아무런 소음이 없었다. 남은 것은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멈춘 케이뿐이다.

“가 볼까?”

훗날 케이의 제1차 코리 왕국 대정벌기라 불린 악몽의 서막이었다.

* * *

-경축! 고구려 길드 멸망!

ㄴ길드 입구에서 고구려 길드 길마 모가지 따는데 걸린 시간 20분.

ㄴ이야…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네. 이거 혹시 짜고 친 건 아니지?

ㄴㅋㅋㅋㅋ 고구려 길드 지금 난리 났다.

ㄴ고구려 길드 새끼들 나가니까 채팅방이 쾌적하네.

ㄴ근데 분명 케이 쳐들어온다고 알렸을 텐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네?

ㄴ20분 안에 애들 전부 끌고 온 거 보면 나름 분전했지 뭨ㅋㅋㅋㅋ케이가 너무 빨랐을 뿐

-아,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이게 정말 실화야?

ㄴ최근에 방송 잠잠하더니 폐관 수련하고 온 듯……. 이전의 그가 아니다.

ㄴ핵 아냐? 어떻게 한 명의 유저가 저렇게 셀 수 있는 거지?

ㄴ안 그래도 지금 고구려 애들 헤븐즈게이트사에 항의하러 몰려간단다.

ㄴ나도 가 볼까?

-태왕단이랑 개마무사단 작살 나는 거 영화네, 영화! 뭔가 한 번씩 번쩍거릴 때마다 100명씩 썰려 나가냐고… ㅋㅋㅋㅋㅋ

ㄴ아… 이런 건 1칭 3D로 봐야 하는데…….

ㄴ나중에 프리미엄으로 꼭 풀어주세요. 편당 10만 원 불러도 소장각

-케이 이 개새끼! 미친 거 아냐! 아니, 고구려 길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짓을 해!

ㄴㅋㅋㅋㅋ 대문 안 보고 들어왔냐? 세스 구하는 놈들은 전부 세이온 접게 만들겠다고 고구려가 먼저 케이 기분 건드렸잖아. 나 같아도 기분 나쁘지.

ㄴ아니, 씨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국가 길드를 기분 나쁘다고 공격해? 그러다가 중국이나 일본 새끼들 쳐들어오면 지가 책임질 거야?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구려 놈인가 보네

ㄴ어쩌라고 씨박! 케이가 언제 그런 거 따졌냐?

ㄴ그리고 막말로 지금 고구려 새끼들도 그것들이랑 세스 잡겠다고 짝자꿍 했잖아.

ㄴ 근데 솔까 이 꼴 보고도 쳐들어오면 그게 더 대단한 듯

-고구려 길드 멸망의 날!

ㄴ야, 고구려 길드원이 일만 명이 넘는데 무슨 길마 대가리 한 번 따였다고 멸망이냐?

-위에 새끼 뭘 모르네. 야 길드원 일만 명이 넘는 길드가 한 명한테 일방적으로 따였어. 그것도 협박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 길드가 유지될 거 같냐? 그리고 케이가 이걸로 끝낼 거 같아?

-아… 근데 이꼴 나면 헤븐즈게이트 주가 대폭락 아니냐? 한 사람이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니…….

ㄴ응. 어차피 헤븐즈게이트 대표 개인 회사야.

-스트리밍 정원 좀 늘려주세요! 못 들어오는 애들이 10만이 넘어!

ㄴ후원도 좀 열어서 내 돈 좀 가져가라!

* * *

텅… 텅… 텅그렁…….

잘라 낸 머리를 바닥에 던졌다. 두어 바퀴 구른 머리가 공교롭게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흠…….”

투구 속에 경악한 표정이 보인다. 하긴 대한민국 랭킹 탑 10위를 위시한 길드 간부 10명이 칼 한번 꺼내지 못하고 모조리 목이 잘렸으니 놀라기는 했을 것이다.

-불명예 점수 1,000,000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 [전설] 피에 미친 살인귀를 획득하셨습니다.

-공격력 10% 증가

-공격 속도 10% 증가

-방어력 10% 하락

-모든 NPC들의 우호도 10% 하락

-불명예 점수 1,000,000을 최단기간에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전설] 미쳐 날뛰는 연쇄 살인마를 획득하셨습니다.

-공격 속도 20% 증가

-모든 NPC들의 우호도 10% 하락

“업적 짭짤하네요. 불명예 점수 100만 점 달성하니까 전설급 업적 두 개 주네.”

불명예 점수 백만을 달성한 사람은 별로 없는지 이에 업적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알린 것. 아마 채팅창에는 지금 업적의 세부 옵션에 관한 질문이 빗발치겠지만 그것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전리품 수거에 들어가 볼까?”

난 머리만 남은 고구려 길드의 길마 태황의 시체로 걸어갔다.

“어이구, 무기네.”

적국의 유저가 아니기에 떨어지는 아이템은 랜덤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길마가 떨어뜨린 건 +9 강화된 전설급의 창. 당연하게도 무기 아이템은 가장 비싸다.

“속 좀 쓰리시겠네.”

파밍을 모두 마치니 가방이 묵직하다. 전리품의 대부분이 고 강화된 전설급의 아이템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파밍을 마칠 때까지 얼씬도 하지 않았기에 난 느긋하게 그것들을 하나하나 감정하며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 볼까?”

볼일 다 마쳤으니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뚜벅뚜벅.

난 완전히 박살이 나 폐허가 된 내성을 나섰다.

“흠…….”

수천은 가뿐히 넘길 유저들이 무기를 뽑아든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시야에 전부 들어오지도 않을 지경이었는데 그들이 뿜어내는 살기만으로도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뚜둑… 뚜둑…….

스르릉-

목을 풀며 빙룡도를 뽑아 들었다.

* * *

“우…….”

“으윽…….”

“으으…….”

분노와 살의에 점철되어 있던 공기에 공포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열어.”

한마디 던진 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던 고구려의 길드원들이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난 그 사이를 말없이 걸었다. 한두 놈씩 혈기에 못 이겨 덤비고 싶어 들썩이는 놈들이 보이긴 했지만,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분노를 삼킨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눈앞에 한 명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멈춰라.”

“뭐냐?”

“난 고구려 길드의 모사 백군이라고 한다. 케이.”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건지 넌 알고 있나?”

“…….”

“넌 이제부터 모두에게 배척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땅을 떠나서도, 이 게임을 떠나서도 모든 이들이 널 미워하고 밀어 낼 거다! 이곳에 네가 발붙일 곳은 없을 거고 설령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들도 네 꼴이 될 것이다.”

녀석은 날 손가락질 하며 외쳤다. 그러자 날 둘러싼 모든 이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을 해 대기 시작했다.

“물러가라! 천박한 새끼!”

“넌 오늘로 끝이야!”

“세이온에서 꺼져라!”

그 함성이 너무 커서 도저히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말 없이 빙룡도를 하늘 위로 들자 그 저주의 찬 외침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좀 조용해졌군.”

“…….”

척-

난 빙룡도를 백군이라는 놈에게 겨누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흥, 당연한 일이다. 넌 오늘부로 이 대한민국의 세이온 유저 전체의 적이 된 것이다!”

“푸하하하하하!”

녀석의 말이 끝난 순간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웃기 시작했다. 아. 웬만하면 진득하게 들어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네.

“뭐가 우습지?”

“아니, 뭐… 대한민국 세이온 유저가 전부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는 네 착각이 좀 우스워서 말이야.”

정말 웃긴 일 아닌가. 거대 길드가 아무리 대중의 여론을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해도 이런 착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고작 게임 속에서나 통할 손바닥만 한 권력을 가지고서 대한민국이 어쩌고 하다니. 이들의 망상을 깨 주고 싶다.

“뭐, 좋아. 판도 깔렸으니까 지금 말하지.”

“…….”

모두가 내 입을 주목했다.

“난 지금부터 내게 그 같잖은 협박을 보낸 모든 녀석들의 근거지를 쓸어버릴 참이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이 일에 관련된 모든 녀석들도 쓸어버릴 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백군이라는 놈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내가 할 수 있냐를 따지자면…….

이미 보여 준 결과가 바로 이곳에 있다.

“놈들에게 전하지. 지금 당장 학살공주 세스에게서 물러나지 않으면 너희 근거지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걸 실시간으로 감상할 거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