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작은 오해
길드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길드마스터를 죽이는 것.
누군가는 뭐 그런 허술한 방법으로 길드를 무너뜨릴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길드마스터를 죽이면 길드마스터가 가진 세이온 내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사라진다. 작위를 포함해서 말이다.
만약 어중이떠중이 길드라면 그냥 에이 재수 없네 하고 길드를 새로 창설하면 되겠지만, 그 길드가 영지를 먹은 귀족이라면 이야기가 아주 심각해진다. 왜냐고? 영지라는 건 더 상위의 하이로드나 국왕과의 계약을 통해 위임받아 통치하는 것이기에 그 계약권자가 죽으면 그 영지는 다시금 다른 귀족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변경을 지키는 변경백의 영지나 혹은 개국공신이 불허받은 계승영지의 경우에는 상속이 되지만 코리 왕국의 영지를 받은 길드 중 변경백이나 개국공신은 없었다.
“고구려 길드 애들은 어때?”
“어쩌긴 초상집이지.”
“하… 말도 안 나오는군.”
“그러게… 아무리 개척단에 본진을 투입했다고 해도 길드 랭킹 1위 고구려가 그렇게 무너지다니……. 허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괴물이었어.”
“미쳤는데 머리도 좋고 강하기까지 한 놈이니까.”
랭킹 3위 마스터즈 길드의 길드마스터 정직남의 말에 랭킹 5위 군황 길드의 길드마스터 레기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를 학살공주 세스급의 위험인물로 보지 않은 게 실수다. 과소평가의 대가는 쓰디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길드로 돌아가 이번 계획을 검토한 보좌진들의 목을 전부 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생각 없이 들이박는 놈 아니었나?”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붉은 장발의 사내가 정직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드랭킹 4위 마린 길드의 길드마스터 사신이다.
“대가리 떨어지는 놈이 저 정도 힘을 지닐 수 있을 거로 생각했나?”
“그렇겠지. 그리고 빌어먹을……. 그 씨발 새끼 때문에 전부 망쳤지.”
“다른 새끼들은 왜 안 오냐?”
“몰라 연락도 안 돼.”
“전부 패닉이군.”
한차례 욕을 내뱉은 사신이 술을 거칠게 들이켰다.
그가 마시는 것은 상당한 독주였는데 주위에 굴러다니는 빈 병들을 보아 이미 위험한 수준으로 마신 것 같다.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야 하니까 그놈에 술 좀 그만 처먹어라.”
“왜? 이를 갈고 있을 학살공주가 겁나냐? 아… 너는 예전에 걔한테 굽실거리던 게 있어서 배신감이 더 크기는 하겠다.”
“뭐? 새끼야?”
사신이 정직남의 말에 발끈하여 몸을 일으켰다.
공동의 적인 학살공주 세스를 타도하기 위해 뭉쳤지만, 본래는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는 사이다. 그때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기나가 웃음을 터뜨린다.
“푸훗… 하하… 하하하……!”
현재 그들에게 닥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은 시원한 웃음이다. 그 웃음소리에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던 정직남과 사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본다.
“넌 이 상황이 웃기냐?”
“호호호, 그럼 안 웃기고 배겨? 고작 그놈 하나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길드 랭킹 3위랑 4위가 멱살을 잡고 있는데?”
“뭐?”
“지금 너희가 보여 주는 꼴이 그가 의도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것뿐인 줄 알아? 우리가 개척단에 있는 정예들을 물러서게 하든 아니면 그대로 놈의 저 말도 안 되는 무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든. 저놈은 전혀 손해 볼 게 없어.”
“후우, 그렇지.”
“씨발…….”
둘은 깊은 한숨과 함께 서로에 대해 으르렁거림을 멈췄다. 이런 짓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여론은 어때? 그 백군이라는 놈 말마따나 놈한테 좀 불리하게 돌아가나?”
정직남이 제기나에게 물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정보력이 가장 뛰어나며 여론을 잘 파악하는 것이 제기나였다. 그의 물음에 낮은 한숨을 토한 제기나가 답했다.
“아니, 전혀 반대로 돌아가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새끼 때문에 더 안 좋아.”
“더 안 좋다고?”
“그래. 그놈의 병신 같은 말 하나 때문에 우리는 완전 악역 포지션이야. 본래라면 사소하게 묻혔을 일이지만 놈이 생방송 중인 걸 그 멍청이가 몰랐던 거지.”
“말도 안 나오는군.”
백군의 지원사격(?)으로 지금 케이의 채널 채팅방은 그를 칭송하는 글들이 가득했다.
인원은 20만을 가뿐히 뛰어넘어 이제는 50만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그리고 50만의 대부분은 케이를 협박한 거대 길드들을 욕하는 중이었다.
“어쩌다 그런 새끼가 랭킹 1위 고구려의 모사가 됐냐?”
“그 새끼 고구려 길마 친형이잖아. 그거 빼고는 내부 정치질이 특기인 놈이야. 대가리는 쓰레기였어.”
“그놈에 가족 정치…….”
“왜 그래? 너도 네 마누라 요직에 박았잖아.”
“넌 이 상황에서도 시비냐? 그렇게 따지면 너를 포함해서 랭킹 10위권 길드들은 전부 자유로울 수 없어.”
길드는 돈이 된다. 대한민국 탑 10위권이라면 대부분 위성 길드와 영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었고 평균 크기의 영지 하나를 잡음 없이 성장시켰을 경우 한 달 수익만 50억에서 60억에 달했다. 그렇기에 실제 길드의 이름으로 법인을 만들어 빌딩을 올리고 길드원들을 직원으로 등록한다. 이런 상황이니 길드의 명줄을 쥐고 있는 길드마스터는 요직에 정말 믿을 사람을 심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전화 안 되냐?”
“그래. 전부 먹통이다.”
“제길, 내 생각에 연락되지 않은 놈들은 지들 살 궁리하는 거 같은데…….”
“그래. 쪼박이, 발정이, 똥개 새끼”
별명으로 말했지만 각기 2위와 6위 7위의 길드마스터들이다. 1, 3, 4, 5라는 다수의 포지션에 있을 때는 아무 말 못 하다가 1위인 고구려가 케이에게 두들겨 맞자 소식 두절이 되었다.
“2위 대박 길드……. 6위 하렘 길드 7위 웨어울프 길드……. 이 개새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사신이 이를 뿌득 갈았다. 학살공주를 잡자고 처음 주장한 것은 2위 대박 길드의 길드 마스터 대박장군이었다. 현실의 어느 그룹의 사남이라는 대박장군은 현실의 금력을 게임으로 끌고 와 이들 중 가장 커다란 길드 전력을 보유했다. 길드가 내세울 만한 강자가 없어 길드 순위가 낮을 뿐 언제든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길드. 그렇기에 대박장군은 학살공주를 꾸준히 탐내왔다.
세계 제일의 무력을 지닌 것으로도 매력이 넘치는데 학살공주 세스의 현실 신분을 안 뒤로는 스토커인 양 쫓아다니다가 대박 길드가 거의 멸망할 뻔하여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는 개쪽을 당한 뒤 이를 갈아온 대박장군이 이 일을 주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이 중차대한 순간에 딴짓한다? 무슨 꿍꿍이인가.
그때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겨 있던 레기나가 손을 탁쳤다.
“이번에 케이를 맡하기로 했던 게 하렘 길드와 대박 길드였지?”
“그렇지. 하렘 길드 시드가 위튜버 쪽은 꽉 잡고 있고 대박장군은 플루네스 MCM을 운영하니까. 대박이 놈이 자기한테 맡기라고 큰소리쳤잖아.”
케이가 위튜브를 하는 이상 구독자 천만의 초대형 위튜버인 시드와 거대 MCM의 대박장군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인맥과 학맥의 나라답게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좀 있다는 개인 방송인들은 모두 거미줄처럼 촘촘한 인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막말로 그들을 거스른다는 건 위튜브를 접겠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렇기에 맡겼는데 이 사달이 벌어진 것.
“이건 추측일 뿐인데 말이야. 만약 그 대박장군이 계획적으로 케이를 도발했다면?”
“어?”
레기나의 말에 정직남의 눈이 커졌다.
“그 새끼가 왜?”
“목적이야 당연히 우리지!”
“우리?”
“그래. 이전까지 고구려의 태황이나 나나 너 모두 케이라는 놈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어. 인정하지?”
“으음…….”
말은 하지 못했지만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설을 만든 케이지만 무시해 왔다. 왜? 놈은 혼자였으니까. 이만 대 일로 싸웠다지만 그건 학살공주 세스가 마지막에 도와줘서 가능한 것이었고, 길드를 홀로 박살 냈다는 건 솔직히 과장됐다고 여겼다. 케이의 채널에 영상으로도 올라왔지만 그건 편집된 것이었기에 조작이라고 생각했다. 왜? 자신들도 조작하니까.
“아무튼 그런데?”
“그 대박장군 새끼가 케이의 진면목을 알았다면? 그래서 일부러 케이를 도발하고 슬그머니 놈이 고구려 길드를 치게 만들었다면? 아니, 이미 그놈과 짜고 움직이는 거라면?”
“그딴 짓을 해서 녀석이 얻을 게 뭔데? 그래 봤자 놈은 우리랑 한배를 탄 거잖아. 자칫 잘못하면 학살공주에게 다 죽는다고.”
“배가 박살 나면 우린 위험해지지만, 녀석은 다른 배가 또 있지. 그놈은 재벌 4세니까. 그리고 만약에 말이야… 놈이 이것까지 계산했다면 최악은 세스한테 붙어 버릴 수도 있어.”
“……!”
고구려가 일격을 당했다. 영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길드마스터가 죽어 버린 것이다.
영지의 주인이 사라진 것. 물론 규모가 있기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중앙 귀족 NPC들에게 다시금 영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2위인 대박 길드가 단숨에 치고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잘만 하면 씹창난 학살공주와의 사이도 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는 거지. 우리가 압력을 넣어서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지켜 주겠다 하고…….”
정직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레기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귀가 잘 맞는 하나의 음모였다. 그리고 그 음모의 목표는 이곳에 있는 이들이었다.
“개척단을 움직여 우리 뒤를 친다고?”
“그래. 일만 잘되면 놈은 다 얻는 거야. 1위인 고구려 길드의 자리와 세스와의 동맹! 그리고 새로운 절대강자 케이까지 말이야.”
“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되면 우리랑은 엘리전 가는 거야. 놈이 그걸 원한다고?”
“양손에 세스랑 케이를 쥐었어. 무서울 게 있을까? 지금으로는 추측일 뿐이지만 대비는 해야 돼.”
“씨발!”
사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다혈질적이며 호전적인 그다.
“이래서 재벌 새끼들은 믿으면 안 되는 거였어!”
“사신 경거망동하지 마. 아직은 추측이라고 말했어.”
“추측은 무슨! 딱 떨어지는구먼!”
“일단 대박장군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흥, 연락이 되지 않는 거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난 간다!”
사신의 말에 정직남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뭘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난 뒤통수 맞는 거 싫어해. 그러니 맞기 전에 쳐야지.”
“진정하고 일단 앉아. 치더라도 같이 움직여야 할 거 아냐! 이대로 너 혼자 움직이면 정말 죽도 밥도 안 돼!”
정직남의 말에 씩씩거리던 사신이 낮은 한숨을 쉬며 다시금 쇼파에 주저앉았다.
“그럼 뭘 어쩌자고……! 학살공주가 살아나면 우린 전부 끝장이야.”
“중국 놈들이 있잖아. 그놈들이 동원한 천인 못 봤냐? 고작 10명으로 학살공주를 몰아붙였어. 그 제갈미라는 년이 말하기를 그 천인이 무려 100명이 대기 중이란다. 그 속에서 학살공주가 살아날 거 같아?”
“그런가?”
“그래. 일단 진정해. 지금 레기나가 말한 건 전부 추측이야. 아니게 되면 곤란한 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정직남은 사신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평소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였다. 그가 보기에 자신들은 작은 파도에 휩쓸렸을 뿐이다.
“마침 케이 녀석이 실시간 생방송 중이니까. 그거나 보고 있자.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면 답이 나올 거 아냐.”
“그래. 알았다.”
진정이 된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약 30분 후 케이 놈이 말도 안 되는 날틀을 타고 향하는 곳을 알았을 때 가장 신중한 정직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씨발!”
케이가 향하고 있는 곳은 그의 영지였다.
* * *
부우우우우웅…….
세찬 바람이 머리를 할퀸다.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날틀은 흡사 작은 글라이더처럼 생겼다. 다른 점이라면 배면에 붙은 마석엔진은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내며 털털거렸고 그 동력으로 후면에 달린 프로펠러가 끊임없이 회전한다는 것이다. 날틀의 머리 부분에 탑승한 케이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조종간 옆에 달린 스로틀을 돌렸다.
부아아아앙!
-와… 세이온에 비행기라니!
ㄴ몰랐냐? 이거 과학 위튜버 써비가 만든 건데?
ㄴ조회수 달달하게 뽑고는 처박아 놨던 건데 케이가 샀나 보네.
-이런 게 있으면 진즉 좀 내놓지! 헤븐즈게이트 뭐하냐!
ㄴ비싼 장난감이야. 멍청아. 내가 알기로 저 마석 엔진값만 오천만 원이다. 거기에 저거 한 시간 굴리는데 들어가는 마석이 3개인데 개당 천 골드다.
ㄴ헐? 개당 천 골드면… 30만 원??
ㄴ그래. 거기에 저거 내구도도 엄청 낮아서 공중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지옥 시작이야. 거기에 바람 영향도 엄청 많이 받아서 잘못하면 그대로 꼴아 박는다.
-그래도 진짜 빠르네. 이틀거리를 두 시간 만에 돌파하다니…….
ㄴ그래서 비행기가 사기인 거야. 구불구불 돌아갈 필요 없이 바로 직진할 수 있잖아.
ㄴ그렇지. 근데 어디 가는 거야?
-글쎄답……. 이대로 가면 그리니 호수인데 자작나무 강변 보이는 거 보면 북동쪽으로 움직이는 거고… 이다음에 어디냐?
-어디긴 곧 황혼의 숲이지.
-황혼의 숲 지나면?
-유적 쉼터 나오고 유적 폐허 나오고… 그다음에… 아, 마스터즈 길드 영지인 로데넌 나오네?
-헐? 마스터즈면… 대한민국 랭킹3위 길드 마스터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직남 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