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53화 (153/154)

153. 습격당하다

사실 이 스킬은 쓰기에 좀 불안했다.

두어 번 실험을 해 보기는 했지만 다른 스킬들처럼 커뮤니티에서 그 효과에 대해 검색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 두 번에서 보여 준 효과가 절반 정도만 먹힌다고 해도…….

“모두 죽어라.”

쩌저적…….

마치 붉은색 렌즈를 낀 것처럼 주변 풍경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멸망의 저주가 시작됩니다.]

차갑고 감정 없는 느낌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츠츠츠츠츠츠츠츳- 퍼퍼퍼퍽!

멸망의 저주는 나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것들부터 하나하나 터지며 핏물로 화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멈춰 버린 시간 속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아무 이유 없이 터져 나갔다.

퍼퍽! 퍼퍼퍼퍽! 퍽퍽퍽!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건 거대한 덩치를 지녔건 터지는 것은 모두 평등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어 영화와 같은 대학살의 현장이 끝났다.

후드드드득…….

일순간 흘러넘친 피의 바다가 광장을 붉게 수놓았다. 마치 사신이 강림한 것처럼.

“개사기네.”

멸망의 저주의 효과는 간단했다.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소멸시킨다.

소설 끄트머리라 온갖 먼치킨 스킬을 남발하는 작가의 심정으로 만든 것 같지만 이 스킬도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존재했다.

잠시 후 핏물로 화한 그것들로부터 뿜어진 검은 기운이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멸망의 저주로 인하여 흑화 능력치가 +13 상승합니다.]

[흑화 능력치: 소유자를 타락시킨다. 타락 능력치는 모든 능력치를 보조하여 상승시켜 주지만 그 능력치가 일정 이상을 초과할 경우 종족값을 변화시킵니다.]

“종족값을 변화시킨다라……. 찜찜하네.”

각으로 보면 딱 마족화 같은 게 튀어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 얻은 작위나 NPC들과의 관계도 개판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의 명예 점수 수치만으로도 인간 계열들에는 쓰레기 취급당하겠지만 까딱 잘못했다가 포디나에서 전부 몰수당하고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슬슬 마무리를 지어 볼까.”

앞을 가로막는 건 다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황성과 그 안에 있을 황제뿐.

“얼른 끝내 버려야지.”

* * *

“제갈미 님. 최후의 벽이… 제국의 별들이 전멸했습니다!”

“뭐?”

제갈미는 알스의 그 황당한 보고에 머릿속이 노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케이에게 뜻하지 않은 뒤통수 후리기를 당했지만 제갈미는 놀라지 않았다.

매우 신박한 양동작전이었지만 치나 제국의 황도에는 제국을 수호하는 숨겨진 힘이 무궁무진했으니까.

‘의표를 찔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큰 착각이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도 유분수지.’

중국이 백만이 넘는 유저를 지니고도 치나 제국을 삼키지 못한 건 NPC들이 지닌 힘이 그들을 훨씬 상회했기 때문이었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제국이었고, 그들의 숨겨진 힘은 백만의 유저 따위 며칠 내로 몰살시킬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케이의 선택에 조소했다.

황도를 수호하는 그 수많은 힘들은 그녀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영구불멸의 벽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전 그 벽이…….

“한순간에 모두 ‘삭제’되었답니다.”

“여… 영상… 띄워.”

팟!

믿을 수 없는 그 보고에 그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원했다.

그녀의 말에 눈앞에 거대한 스크린으로 케이와 그의 앞을 가로막은 수많은 초극강의 존재들이 비췄다.

그리고…….

츠츠츠츠츠츳…….

-펑펑… 퍼퍼펑… 펑펑…….

뭐 이딴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는가.

“말도 안 돼.”

케이가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들자 그를 중심으로 대기가 붉게 물들더니… 제국을 수호하는 초강자들이 모조리 터져 나가 버렸다.

뭔가 대단한 이펙트도 없었다. 그냥 전부 터져 나갔다.

너무 황당해서 당장에라도 헤븐즈게이트 고객상담에 버그리포트라도 작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다.

제갈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더 이상 게임으로만 풀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들개들 풀어.”

“예!”

* * *

좁은 승합차 안. 곳곳에는 먹고 쌓아 둔 컵라면 그릇과 빈 음료수 병, 빵봉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위이이이이잉.

핸드폰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고, 승합차의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더벅머리 남자가 핸드폰을 받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띠딕…….

“끄으응!”

전화를 건 상대와 빠르게 대화를 나눈 더벅머리가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승합차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자고 있던 다른 이들을 손바닥으로 두들겨 깨웠다.

“야! 야야! 일어나라. 오더 떨어졌다.”

그의 말에 부스스 일어나는 다른 사내들.

“오더 떨어졌습니까?”

“음, 깔끔하게 처리하란다.”

“그래요?”

더벅머리의 말에 눈에 살기를 흘리며 도끼를 집어드는 사내들.

그러나 그들은 이어진 더벅머리의 말에 조용히 도끼를 내려놨다.

“이 미친 새끼야. 그거 안 내려놓니? 한국 공안들한테 쫓기고 싶니?”

“그냥 장난쳐 봤습니다.”

“작업하는데 장난 가려서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처리합니까?”

“겜 하는 놈이니까 심장마비가 적당할 테니 주사 한 대만 놔주고 튀는 거다.”

“혹 목격자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잘해야 두엇일 거다. 혹 걸리면 안 걸리게 처리해서 계단에서 굴려 버린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해.”

“예!”

이전에도 몇 번 해 봤는지 그들은 콘솔박스에서 엠플들을 꺼내 일회용 주사기에 약물을 주입했다.

이 약물을 사람의 몸에 주입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데, 나중에 부검을 하더라도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건물 구조는 다 외웠지?”

“예! 두 번 세 번 외웠습니다.”

“CCTV는?”

“가게들에 있는 것까지 전부 확인했고, 말씀만 하시면 일시에 꺼 버릴 수 있습니다.”

“좋아. CCTV 꺼!”

“예!”

더벅머리의 말에 한 사내가 테블릿을 꾹꾹 눌렀고, 그들이 타고 있는 승합차 주위에 있던 모든 CCTV의 불이 나갔다.

“가자!”

철컥! 드르르륵.

승합차 문이 열리며 검은 복면에 검은 작업복을 입은 세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빨리빨리!”

셋은 골목을 따라 자신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건물의 뒤편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이미 잠복 며칠 전부터 동선은 다 짜둔 상태다.

목표는 뒷문! 식당과 한의원이 있기에 건물 출입은 용이하다.

문제는 목적지인 비상구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의 문이 더 있는데, 그곳이 디지털도어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띠띠띠띠띠띠… 띠리릭!

그러나 디지털도어락은 너무나도 쉽게 뚫렸다.

“쉽구만.”

디지털도어락을 가볍게 풀어 버린 사내가 낮게 읊조렸다.

한국 사람들은 디지털도어락을 너무 믿는 구석이 있다.

막말로 뚫으려고 마음먹으면 열쇠보다 쉬운 게 디지털도어락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창고가 나오고 그 안쪽으로 하나의 문이 더 나타났다.

“하나둘셋 하면 들어간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 둘은 돌발 상황에 대비해.”

“예!”

그 말과 함께 두 사내가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었다.

특수 개조한 것으로 단숨에 사람을 죽일 정도로 강력한 전기 충격기다.

둘! 셋!

철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셋은 신속하게 안으로 진입했다.

사전에 조사한 바로는 세 개의 캡슐 중 하나에 목표물이 들어 있을 거라고 했다.

돌발변수는 크루의 존재인데 많아 봐야 셋이고 그중에 하나는 여자다.

지금껏 수십 명을 작업해 본 자신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안으로 들어선 직후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위잉! 철컥! 철컥!

자신들이 들어온 문이 닫힘과 동시에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큼지막한 전자 자물쇠들이 문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리고 목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스튜디오 안에는…….

“자식들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더럽게 느리네.”

몸무게 150kg은 거뜬히 넘을 법한 산만 한 덩치의 검은 양복 깍두기 십여 명이 자신들을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키고 있다.

“으음…….”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전기충격기를 든 리더는 침음성을 삼켰다.

“왜, 기다리고 있어서 많이 놀랐어?”

깍두기들의 중앙에 앉아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다른 깍두기들과는 다르게 온몸의 근육질인 그가 몸을 쭉 펴자 흉악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감시당하고 있었구나.’

리더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자신들이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감시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은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그는 고개를 슬쩍 돌려 동생들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면의 두목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쏜살같이 날았다.

“놀라긴 새끼야! 죽어!”

파파파파파팍!

덩치를 믿고 거들먹거리는 것들 따위에 겁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은 더한 아수라장을 건너왔으니까.

거기에 지금 자신의 손에는 특제 전기충격기도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두목 놈만 잡으면 그만이다.

보충제 먹고 헬스하며 만든 풍선 근육 돼지가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우적…….

핑…….

순간 뭔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캄캄해지며 귓가로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장 의식이 끊겼다.

콰아아앙!

광대와 입 턱뼈가 완전히 으스러졌고, 입에서는 핏물이 울컥울컥 흐른다.

철문 옆 콘크리트 벽에 오징어처럼 달라붙었던 남자가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단 한 방에 침묵이다.

“어우, 깜짝이야. 전기충격기를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하냐. 하마터면 죽을 뻔잖아.”

상도는 주먹에 붙은 이빨을 털어 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이들 중 상도의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곰 같은 사내에게 전기충격기 따위를 들이밀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으니까.

“으으으…….”

용감하게 스튜디오를 습격했던 삼인조 중 남은 둘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겨… 경찰 불러 주시오!”

임무의 실패도 두렵지만, 눈앞에 있는 거인에게 얻어맞았다가는 영 좋지 않은 꼴이 될 것 같다.

어차피 실패할 거면 차라리 한국 공안에게 잡혀 가는 게 좋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있는 이들 또한 경찰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부류였고, 이놈들의 특기가 뭔지 잘 아는 상도 또한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홍준아.”

“예. 형님”

“두당 천만 원씩 줄 테니까 너희가 운영하는 소각장 우리에 가두고 짜내 봐.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

“살려야 합니까?”

“명줄만 붙여.”

“일주일 안에 뭐든지 술술 불게 만들겠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너희 실력 좀 보자.”

“예!”

상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검은 양복들은 셋을 어깨에 둘러멘 채 뒷문으로 사라졌다.

“후우…….”

장내가 조용해지자 상도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이빨이 박혔던 주먹이 시큰거린다.

광수가 평소 빌라에서 하던 것처럼 주변에 CCTV를 깔았던 게 천운이었다.

만약 놈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을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