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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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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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신랑이 사라졌대요!]

아주 잠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잠잠했던 연회장은 이내 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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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도망쳤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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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는 거 진작 알아봤지. 그만들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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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요. 어머! 저, 저…… 신부 아냐?]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이라도 하려던 건지.

말 그대로 헐레벌떡 뛰어온 신부 왕나나에게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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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신부를 순식간에 둘러싼 기자들과 그들을 말리려고 덤비는 경호원들.

그리고 제 딸을 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집는 왕덕진과 이성자까지.

결혼식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왕나나의 목청이 음악도 사라진 연회장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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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꺼져! 사진 찍지 마!!! 저리 치우지 못해!! 비켜!!!”

차상윤과 관련 있는 인물들은 이미 조용하고도 빠르게 현장을 떠난 상태였다.

경호원들에 의해 엘리베이터에 태워지기 전까지 왕나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관심이란 관심을 이런 식으로 긁어모으게 될 줄이야.

모두의 구경거리, 초미의 관심사로 영원히 모두에게 기억될 날이었다.

.
.

같은 시각, 결혼식에서 도망친 신랑은 저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세단의 뒷좌석에서 통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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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다. 우리 예지 하와이 못 가봤다고 했지?”

목에 두르고 있던 넥타이를 잡아 뺀 상윤은 셔츠의 단추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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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로 티켓 보냈어, 몸만 와라.”

 

***

이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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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침대에 널브러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왕나나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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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어떻게…….”

작은 사진을 확대하자 흉하게 일그러진 제 얼굴이 괴물처럼 보였다.

아니, 값비싼 드레스를 입은 미친X이다.

카메라를 향해 달려드는 모양이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친 여자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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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다 죽여 버릴 거야!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왕나나가 휴대폰을 세게 팽개쳤다.

유리 테이블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낸 그것은 이내 대리석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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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아!!!”

멀찍이 서 있는 남자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또냐, 라는 눈빛. 지치지도 않는다는, 질렸다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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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둘이 지금 눈으로 내 욕했어요? 뭐라고? 어? 뭐냐고!!! 미쳤다고?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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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은 말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 공손하게 마주 잡아 내려뜨린 양손.

그들의 임무는 정신줄을 단단히 놓은 DL의 외동딸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사라진 신랑, 버려진 DL의 공주에 대해 온 세상이 떠들어댔다.

그리고 미쳐버린 그 공주가 만 이틀을 꼬박, 제대로 발광하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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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자해라도 할지 모르니까- 잘 지켜보세요. 아래에 말해놓겠지만 혹시 술을 달라며 어떤 소리를 해도 들을 필요 없어요.]

대기업의 안주인이 제 딸을 감시하라며 한 소리다.

하지만 그 대단한 DL을 이끄는 여장부 이성자도 아직 제 딸을 정확하게 모르는 게 분명했다.

왕나나는 경호원들에게 술을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제 드레스룸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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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뭔지 모르죠? 리샤드 아네시라고- 말해도 모르겠지만 100년도 넘은 최상급 꼬냑이거든요, 얼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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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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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같으냐고요? 대충 아무 소리나 해보라고요! 내가 지금 답답해서 뒤지겠으니까!! 시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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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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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아니, 300 넘어요!”

크하하! 이미 취한 것처럼 웃은 왕나나가 특이한 모양의 양주병 뚜껑을 잡아 비틀었다.

하지만 제 마음대로 될 리 없다.

그리고 그녀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바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나가 술병을 들고 남자 중 하나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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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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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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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가 안 된다고 했겠지. 좋아, 잠깐 기다려 봐.”

나이트가운 차림의 그녀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향한 곳은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였다.

맨 아래 서랍을 연 나나가 오만 원권 여러 장을 꺼내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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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이게 몇 장이냐면…… 하나둘, 셋, 넷…… 음, 삼십 장은 되겠네, 자, 뚜껑! 열어 봐요! 전부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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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병을 들고 있던 남자가 아무런 반응 없이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득달같이 달려온 나나가 남자의 얼굴을 향해 지폐 뭉치를 내던졌다.

우수수- 지폐들이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시X 시X- 이제 내쉬는 숨마다 욕지거리인 여자가 양주병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양 발 사이에 유리병을 끼우고 두 손으로 병의 목과 머리를 쥐고 비틀어댔다.

그렇게 한 몇 분을 낑낑거리며 별별 욕을 해대더니.

뽁! 술병의 뚜껑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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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이리 주시죠!”

남자 하나가 재빨리 몸을 움직였는데 왕나나가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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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잘 들어 봐요. 나, 술 마시고 자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취하면 더 얌전해지거든요, 그리고 내가 한숨도 못 잔 거 알죠? 자려고 그래, 자려고! 맨정신엔 도저히 잠이 안 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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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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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못 마시게 하면 피를 보게 만들 거야. 거짓말 같아요? 어떡해? 골라요! 한잔 정도 마시고 자? 아니면, 가위나 뭐 날카로운 거 찾아 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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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남자가 망설이는 틈에 왕나나는 이미 양주병의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경호원들은 정말 그녀가 양주 한잔 정도면 잠들 거라고 믿었을까. 아니, 믿고 싶었을 거다. 장정 둘도 지칠 대로 지쳤으니까.

하지만 술이 들어간 왕나나는 잠이 들기는커녕 더욱 난폭해졌다.

차상윤을 찾으며 액정이 깨진 제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벽을 향해 내던졌다. 그렇게 제 전화기를 결국 두 조각을 내더니 경호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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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줘 봐요, 그냥 나한테 팔아. 여기서 나가면 더 좋은 거로 열 개 사줄 테니까. 어서- 내놔요!”

억지를 부려 남자의 휴대폰을 뺏었지만 그녀는 도망을 친 상윤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겨우 기억해낸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도망간 신랑의 번호를 알아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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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빤히 예상된 소리를 굳이 듣고 더욱 발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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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개X끼, 죽여 버릴 거야!!!! 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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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직- 휴대폰 하나가 더 망가졌다.

***

JS PHARM.

아직도 직원들은 그날의 장면들을 두고 설왕설래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디 JS뿐이겠는가.

세상은 세계적인 톱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광견병에 걸린 개에 비유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카메라를 향해 달려드는 꼴을 두고 보자면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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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그렇다 치고. 왜 대기업에서 그런 사진들이 퍼지는 걸 막지 못했을까요? 고소할 줄 알았는데 자꾸 보니까 좀 그래요.”

잠깐 왕나나를 두고 불쌍하다며 혀를 차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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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 이거 좀 보세요! 주차장에서도 찍혔네. 어머, 어머…… 드레스 어떡해…… 걸레 됐어…….”

결국 걸레가 된 베라 윙을 애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곁에서 말리는 경호원 둘을 자빠뜨린 왕나나다.

최악은 신부가 그 지경이 된 게 도망친 남편 때문이 아니라 이상한 약을 집어 먹은 게 분명하다는 사람들의 억측이었다.

결혼식 전에 뉴스로 나간 사실이 있으니 쉽게 반박하지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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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조는 왜 상황이 이렇게 왕나나에게만 최악으로 치닫는지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잘못한 건 차상윤 쪽인데.

왕나나의 사진만 순식간에 포털의 메인을 장식했고 복사 붙이기의 연속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야말로 시작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가감 없이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찍힌 사진들은 인터넷 메인 화면을 이틀 내내 장식했다.

가히 세간의 웃음거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 분명한데.

DL이 손을 쓰지 않았다고?

아니…… 손을 쓰지 못한 거겠지.

상대가 너무 세서.

밟아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권재하를…… 당해낼 수가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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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 없이 사는 사람들도 뭔가 부족하고 마음대로 안 되고 그런가 봐요? 왕나나건 그 도망친 신랑이건 왜 이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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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거지, 우리야 커피에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면 행복하다고 어깨를 들썩이지만 그들은 글쎄-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가 문제랄까.”

은조는 장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은 온통 다른 데 가 있었다.

권재하.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직후 은조는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재하와 실랑이를 했다.

그의 뒤에 강 비서가 서 있었는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조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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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틀 동안 내내 그를 보지 못했다.

블랙스톤으로 출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JS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쯤 넋이 나간 얼굴.

창백하게 꺼진 두 뺨.

쥐죽은 듯 조용한 앞집.

이제 은조는 애를 태우는 지경이 되었다.

죽으란다고 정말 죽은 건 아닌가-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간을 확인한 은조는 마른침을 삼켰다.

퇴근까지 아직 멀었다.

***

그날 밤.

내내 망설이기만 하던 은조는 결국 휴대폰을 들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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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차라리 집에 없길…….”

그렇다면 굳이 강 비서에게까지 전화를 하는 일은 없을 거니까.

민아와 다온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은조는 조심스럽게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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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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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걸 나한테 왜 알려주는 거야? 내가 그 집 문을 열 일도 없겠지만- 0000? 무슨 비밀번호가 그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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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 갈 것도 없고…… 귀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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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곧 떠날 거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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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다…… 너랑 같이.]

아픈 다온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왔던 날 밤 둘이 나눈 대화였다.

너랑 같이-에서 사납게 눈을 치켜뜬 은조는 제 집 현관문을 세게 닫아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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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싫어. 왜 이렇게 사람을, 끝까지 바보를 만드는데…….”

똑. 똑.

아무 대답이 없다.

똑. 똑. 똑-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지만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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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 띠- 띠- 띠-

띠로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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