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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본부장의 귀환 (4/85)


4. 본부장의 귀환
2022.08.11.



 


“지연 과장님, 업무 파악이 엄청 빠르시네요! 누가 보면 여기서 1년 넘게 일하신 줄 알겠어요.”

최근 팀과 회의를 할 때면 동료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팀 분들 모두가 절 도와주셔서 제가 일을 빠르게 배운 거죠. 모두에게 너무 감사드려요.”

“과장님은 안 가진 게 뭐예요? 얼굴 이뻐, 일 잘해, 이런 겸손함까지! 내가 오빠만 있었어도 좀 엮어볼 텐데 말이죠.”

같은 팀 주연 대리가 지연의 칭찬을 계속했다.

지연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기에 굳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연 과장님 오신 지도 좀 됐는데, 우리 환영회 해야죠.”

팀원들이 모두 부장을 바라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러잖아도 곧 하려고 했어요. 마침 장기 출장 가셨던 본부장님이 모레 한국 사무실로 복귀하시니 맞춰서 하시죠. 본부장님께는 제가 미리 말씀 드려놓겠습니다.”

“어머 본부장님이요? 이제 한국으로 아예 오시는 건가요?”

“네, 이번에 오시면 당분간은 한국 사업부에 집중하신다고 합니다.”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네요.”

본부장이 한국에 복귀한다는 소식에 팀 전체가 술렁였다.


“대리님, 본부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다들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는 거예요?”

“본부장님 리더십이 엄청나게 뛰어나셔서 모두 좋아하는데, 문제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세요. 본인이 일을 열심히 하시다 보니 자연스레 팀 일도 늘어나게 되거든요. 꼭 필요한 일들이기는 하지만. 다들 본부장님 돌아오시는 건 좋은데, 일 많아지는 건 좀 싫다는 거죠.”

“능력자이신가 봐요.”

“맞아요, 능력자 중의 능력자세요. 게다가 얼굴은 또 얼마나 잘생기셨는데요. 요즘 뜨고 있는 연예인 저리 가라예요. 하지만 외모를 떠나서 리더로서 정말 멋진 분이셔서 회사에 남녀 가리지 않고 팬도 많고 본부장님 존경하는 사람도 많아요.”

사람들이 이렇게 기대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지연도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대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 자리로 돌아갈 때쯤 지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여기 네모 부동산이에요. 저번에 이야기 드렸던 매물이 나왔어요. 언제 방문 가능하세요?”

“어머! 정말요? 오늘 퇴근하고 6시 반까지 갈 수 있어요.”

직접 집을 보게 된 지연은 사진에서보다 더 아름다운 집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햇살 가득한 한낮에 보면 더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커다란 통창을 통해 앞쪽 조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특히 이 동만 입주할 수 있는 집이 두 집밖에 없어서 아주 조용해요. 1층은 주민 카페테리아이고 2층은 이 동 주민만 이용 가능한 프라이빗 운동센터, 그리고 여기 3층이랑 위에 4층만 입주하는 집이에요. 주차장은 지하 2층이고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 집의 칭찬을 들으니, 이미 반쯤 기운 지연의 마음이 계약하는 것으로 확실히 굳어졌다.


“계약할게요. 우선 선금 걸 테니, 관련 계약서 써주세요. 저는 조금만 더 살펴보고 갈게요.”

공인 중개사가 자리를 뜨자 지연은 집 곳곳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걸어갈까?”

하지만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키가 무척 큰 남자가 이미 타고 있었는데 후드를 쓰고 핸드폰을 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윗집 사시는 분인가 봐. 나중에 이사 오면 인사해야겠다. 좋은 분이면 좋겠네.’

이웃이 될 사람은 조금 전 샤워를 했는지 엘리베이터 안에 상쾌한 비누 향이 가득했다.

지연이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강하게 나더니 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춰버렸다.

그러고는 곧 엘리베이터 안의 불이 깜빡이더니 곧 꺼져버렸다.


“엄마야!”

지연이 놀라 주저앉아 버렸다.


“괜찮으세요?”

옆에 있던 남자가 차분하게 물었지만, 지연은 정신이 없어 대답을 못 했다.

7살 때 사고로 안에 갇혔던 적이 있어, 다시 타고 다니기까지 꽤 오래 걸렸던 엘리베이터였다.

다 잊은 줄 알았던 그때를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충격에 그런 것인지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걸어갈 걸 그랬어.’

“괜찮을 거예요, 잠시만요.”

지연을 안정시키려는 듯 남자는 차분하게 이야기하더니 곧 엘리베이터 안 호출 버튼을 눌러 안전실에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가 안전팀과 대화를 나누는데 당황한 지연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를 않았다.


‘무서워……. 어떡해,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금방 다시 운행될 겁니다. 오늘 안전점검 때문에 9시부터 전력을 꺼 놓는다고 공지했었는데 직원 실수로 그 시간보다 훨씬 일찍 꺼진 것 같다는군요.”

“네…….”

남자의 친절한 설명에도 지연은 아직 무서움에 주저앉아 고개도 못 들고 바닥만 보며 떨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안전 관리 꽤 철저한 곳이니 사고 날 일은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며 지연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지연은 쓰러질 것만 같아 고개만 꾸벅인 후 자신의 차로 뛰어갔다.

집으로 와서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것 같아 후회했지만.


‘나중에 이사 가면 제대로 인사해야겠어. 그분 덕에 그래도 덜 무서웠어.’

 

***



[이사 날짜 정해졌어요. 다음 주 토요일이에요.]

지연이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민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뭘요?”

-이사한다는 말.

“지난달, 우리 만났을 때 이사하겠다고 말했잖아요. 저 나가면 집은 팔든지 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집도 어차피 당신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어디야 이사 가는 곳은?

“민우 씨,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저는 당신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에요. 알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은지연.

익숙하지도, 맘에 들지도 않아 민우의 얼굴에 절로 짜증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튼, 제 짐은 열흘 뒤에 싹 뺄 테니 그렇게 아시고, 혹시 뭔가 둘이 나눠야 하는 물건 발견되면 알려줄게요.”

-그날은 언제야?

“그날? 무슨 날이요?”

-네가 부탁했던 한 달에 한 번, 우리 만나는 날. 미리 알려줘야 일정을 빼놓든지 하지.

“아…….”

지연은 갑자기 멍해졌다.


‘맞다. 내가 그런 얘길 했었지’

한 달에 한 번, 꼭 만나자고 자신이 말했으면서 막상 전혀 생각해 보지를 않았다.

새롭게 시작한 회사 생활이며 이사할 집 찾느라 너무 바빠서 이 부분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그건……. 이번 주 금요일이에요. 장소는 우리 집으로 하죠.”

당황했는지 계획에 없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알겠어, 금요일 퇴근 후 가지.

지연과의 통화를 끝낸 민우는 잠시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원래 은지연의 목소리가 이렇게 하이톤의 목소리였나?

민우가 기억하는 지연은 대부분 힘이 없거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었다.

나이보다 올드해 보이는 옷을 입고, 긴 머리를 단단히 묶고서는 항상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그 은지연.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

기획실 팀 모두가 기다리던 회식 날이 되었다.

투플러스 한우구이 레스토랑은 모던한 인테리어에 조도를 낮춰 분위기가 와인바처럼 매우 고급스러웠다.


“대리님, 이전에도 여기에서 회식했었어요? 여기 엄청 비싼 곳인 데다 예약 잡기도 꽤 힘들 텐데…….”

주연 대리에게 지연이 작게 물어보았다.


“네. 예전에도 여기 가끔 왔었어요. 본부장님이 아는 분이 하신다고 하셔서.”

본부장님이 매우 통이 크신 분이신 것 같았다.

회사에서 회식비로 나오는 돈이면 삼겹살만 먹어도 모자랄 텐데, 투 뿔 한우라니.

사람들은 곧 맛있는 한우와 다양한 술과 음료를 시키고는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지연은 이런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많이 들떠 와인을 몇 잔째 마시고 있었다.


‘하아, 너무 재미있다. 너무 좋아 이런 분위기.’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착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업무 후 회식까지 즐거우니 잠시지만 얼마 전까지 지연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스트레스들. 민우, 세아의 생각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때였다.

주연 대리와 그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소희 대리가 하이톤으로 합창을 하듯 소리쳤다.


“앗! 본부장님 오셨다! 본부장니임.”

주연 대리와 소희 대리의 합창에 모두가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지연도 고개를 돌려 쳐다보다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주연 대리에게 잘생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

 

 
회사가 아닌 뉴욕의 런웨이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남자가 성큼성큼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190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와 넓은 어깨는 네이비 슈트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깎아놓은 듯한 이목구비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섬세했다.

하지만 그의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은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져서 수려한 외모이지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본부장님!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너무 반가워요. 본부장님~ 잘 돌아오셨어요.”

“이번엔 오래 계시는 거죠?”

사람들이 우르르 본부장에게로 다가갔다.


“거의 1년 만인가요? 그동안 한국 들어와도 급하게 일 처리하고 돌아가야 해서, 다들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동안 모두 잘 지내셨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얼굴도 있군요.”

본부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연에게로 향했다.


“은지연 과장입니다, 본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지연이 벌떡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은지연 과장님. 저도 잘 부탁합니다, 이강현입니다.”

고개를 들자 강현이 지연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지연이 얼른 그의 커다란 손을 맞잡았다.

강현은 지연의 맞은편에 앉아 회식에 합류했다.

팀원들은 그간 강현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너도나도 질문을 던졌고, 그는 대답하느라 바빴다.

본격적으로 회식에 참여하기 위해 강현이 슈트 재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어 두더니 셔츠의 팔을 걷어붙이고는 자신 앞에 채워진 잔을 쭉 들이켰다.


“늦은 만큼 속도를 맞춰야겠네요.”

시원시원한 그의 모습에 옆에서 주연 대리와 소희 대리가 물개 박수를 쳤다.


“자, 그럼 복귀하신 본부장님과 새로 합류한 은지연 과장의 환영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할까요!”

부장의 말에 모두가 앞의 잔을 들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주연 대리를 시작으로 하나둘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졌다.

강현의 등장으로 더욱 흥이 달아올라 밤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회식이었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모두 함께 11시가 넘지 않게 회식 장소에서 나왔다.

지연은 막상 보이는 택시가 없어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불렀으나 가까워서 그런지 잡히지를 않았다.

앱으로 다시 들어가 금액을 조정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보는 차가 지연의 앞에 나타나더니 창문이 서서히 내려갔다.

뒷좌석에 탄 강현이 보였다.


“지금 시간에 택시 잡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제 차로 모셔다드리죠. 우선 타세요.”

“아니에요. 본부장님. 금방 택시 잡힐 거예요, 먼저 가세요.”

“빨리 타세요.”

“하지만…….”

강현이 차 문을 열었다.

지연은 마음이 불편했으나 시간을 더 끄는 것이 오히려 실례일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뒷좌석 그의 옆에 탔다.

차에 타자 상큼한 향기가 차 안 가득 은은히 풍겼다.


‘이 향! 어디선가 맡아봤는데? 어디였더라…….’

“집이 어디시죠?”

“XX 전철역이요. 거기에서 가까워요.”

“알겠습니다. 출발하시죠.”

강현의 말에 차는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출발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직 한 달이 안 되었습니다, 본부장님.”

“일 익히느라 한창 정신없을 때겠군요.”

“팀 분들이 모두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일도 재미있고요.”

“다행이네요. 곧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하면 저와 좀 더 가깝게 일하게 될 테니 그 전에 일도 잘 배워두시고, 체력도 잘 키워두세요.”

“체력이요?”

지연은 의아해하다가 일전 주연 대리가 ‘본부장님은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체력 하나는 끝내줘서 밤에도 잘 버티거든요.”

강현의 입에 희미하게 미소가 서렸다가 사라졌다.


“얼마나 체력이 좋을지 많이 기대해보죠, 은지연 과장님.”

어느새 지연의 집 근처에 차가 도착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지연이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지연은 차가 사라질 때까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 처음 뵈었는데, 왠지 목소리가 귀에 익단 말이야.”

귀에 걸리던 근사한 낮은 목소리가 왠지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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