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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여왕벌의 등장 (23/85)


23. 여왕벌의 등장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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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란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껏 멋을 내었다.

이른 아침부터 헤어와 메이크업, 네일까지 완벽하게 케어 받았다.

거기에 평소에 아끼던 C사의 원피스와 카디건, H 브랜드의 한정판 핸드백, M 브랜드의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까지. 온몸을 고급스러운 명품으로 휘감았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에메랄드 클럽’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에메랄드 클럽, 처음에는 상류층 부인들의 소소한 모임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상류층 자제들의 혼사, 혹은 비즈니스 논의를 하는 중요한 통로로 통하는 정·재계 사모님들의 대표 사교계 모임이었다.

그냥 한두 번 참석은 할 수 있지만, 입성은 쉽지 않은 곳.

그 어느 정·재계보다도 텃세가 센 곳.

소문 한번 잘못 나면 순식간에 매장되는 건 일도 아닌 곳.

바로 그런 곳이 ‘에메랄드 클럽’이었다.

C&C에는 김지원이라는 안주인이 있었지만, 막상 김지원 여사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5~6년 전부터는 이런 사교 모임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그 틈새를 강주란이 노렸고, 마치 자신이 C&C의 안주인이 된 것처럼 5년 전부터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런 사교 모임에 꿋꿋이 나가고 있었다.

에메랄드 클럽을 포함해, 3~4가지 모임이 있었는데 주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그냥 돈이 있다고 상류층이 아니었다.

사교계 그룹 안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래야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란이 처음 모임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절대 환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계 30대 안의 재벌가라고 해도 엄연히 안주인이 따로 존재했고, 강주란은 그저 차 회장의 서자를 낳아준 여자였다.

호적에 입적하지만 않았지, 차 회장의 서자는 찾아보면 더 있을지 몰랐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한 세계가 이곳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받으면 이 명실상부 최고의 사교 모임의 물을 흐릴 것이었다.

처음 에메랄드 클럽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그 노골적인 모멸의 눈초리와 공기를 강주란은 똑똑히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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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니야? 저 여자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를 나와?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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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조용히 뒷방에서 돈 받으며 살면 되지, 여기서 무슨 인맥을 쌓겠다고. 누가 자기랑 말이라도 섞어줄 거로 생각했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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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나 같으면 못 나올 텐데. 하긴 그러니 김지원 여사 있는 집에서 차 회장을 잡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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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말 섞었다가 같은 부류로 오해받으면 안 되니 절대 말 섞지 말아야지.”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멀리서 들리는 말이나, 눈빛이 모두 주란에게 ‘너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김지원이 없는 이곳은, 자신의 세상이었다.

그런 눈빛에, 험담에 기죽어 기세를 접을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였다.

차승조 회장과 첫 밤을 보내던 날, 그 방에 숨어 들어갈 때 이미 강주란은 자신에게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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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회를 잡을 것이고,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아. 이 집도, C&C의 안주인이라는 이름도 다 내가 가질 거야. 난 반드시 그럴 거야. 두고 봐!”

이 일념으로 그동안 버티고, 하나하나 이루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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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내가 C&C 안주인이 될 텐데, 너희들은 그때 나에게 굽신거려 봐야 소용도 없지.’

하지만 주란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막상 주란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은 그녀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시선과 평가가 바뀐 것은 아들 차민우가 온유 제약 셋째 딸 은지연과 결혼하면서부터였다.

온유 제약은 계열사까지 모두 건실했고, 동시에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등 기업 이미지가 좋았다.

결혼 적령기의 지연에 대한 평도 좋아, 많은 기업 사모님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이어주려고도 했었다.

그런 온유 제약의 은지연이 차민우와 결혼을 하게 되다니.

덕분에 차민우와 강주란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강주란의 주가 상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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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조 회장이 막내아들을 밀어주나 보다, 그러니까 온유 제약이 사돈을 맺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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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제약에서 내조하면 금방 더 클 텐데, 차기 회장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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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아들 덕에 강주란도 곧 C&C 안주인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시선들이었다.

3년 전 아들의 결혼을 계기로 에메랄드 클럽에서의 주란의 영향력은 커졌고, 종종 클럽의 요직을 맡기도 하게 되었다.

특히, 에메랄드 클럽에서도 본처가 아닌 주란과 같은 사연을 가지거나, 혹은 후처로 들어온 사람들이 가끔 있었는데, 이런 무리 사이에서는 왕언니 같은 역할을 하며 리더를 자처했다.

쇼핑도, 마사지도, 투자도 함께 하고, 정·재계 뉴스들도 공유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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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란 언니, 잘난 아들 요즘은 어때요?”

몇 년 전, M전자 김 회장의 안주인을 몰아내고 둘째 사모님이 된 고진아가 주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주란과는 언니 동생 하며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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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우? 민우야 승승장구 잘나가고 있지. 그런데 갑자기 민우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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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아니 뭐…….”

고진아는 시선을 돌리더니 갑자기 의뭉스럽게 말을 확실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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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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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얼마 전에 내가 다니는 에스테틱 갔더니 거기 실장이 그러더라고. 새로운 손님 중에 C&C 글로벌 상무 사모가 왔는데, 엄청 통이 크더라며 그 여자가 결제한 프로그램에 엄청나게 만족하던데 나도 해 보겠냐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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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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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언니 아들 와이프 은지연이를 좀 알잖아. 종종 보기도 했고. 걔가 그런 데 다니는 애가 아닌데 그런 말을 하길래. 내가 이름을 좀 물어봤더니, 지연이 이름이 아니더라고. 이름이 뭐였더라. 정……세 뭐랬는데. 아무튼.”

이 말을 들은 주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콧구멍이 벌름거릴 정도로 숨을 거칠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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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G 백화점에 주문해 둔 옷 좀 찾으러 갔는데 언니 아들을 멀리서 보게 됐거든. 그런데 은지연 말고 웬 다른 여자 허리를 감고 꼭 붙어서는 다니더라고요. 다른 데도 아니고 G 백화점을 말이야. 그래서 좀 궁금해져서 물어봤어요.”

고진아가 ‘알만하지 뭐.’이런 표정으로 입에는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지으며 주란을 쳐다보았다.

G 백화점은 최고급 백화점인 만큼, 정·재계 사모님들이 많이 드나드는 백화점이었다.

VVIP들만 온다고 해고 과언이 아닌 이곳에 정·재계 인사나 가족들이 누군가를 데려오면, 금세 에메랄드 클럽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VVIP들은 만나는 연인, 혹은 따로 만나는 사람은 이곳에 절대 데려가지 않았다. 잘못했다가 몇 시간 만에 만나고 다니는 사진이 돌 수도 있었기에.

하지만, 차민우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냥 백화점 중 하나였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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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말문이 막힌 주란은 다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은지연과 오해를 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소문이 났다는 것이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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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문이 우리 회장님에게 전해지면 안 되는데…….’

평소 은지연을 아꼈던 차 회장에게 이 일이 전해지기 전에 지연을 회유하거나, 다른 수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민우가 은지연과 이대로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정세아는 민우의 짝으로 절대 생각할 수 없었다.

민우를 어떤 수모를 겪으며, 힘들게 키워 그 자리에 올렸는데.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 천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이 어디를 끼겠다고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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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안 한 게 무슨 범죄야? 같이 부부로 3년이나 살았잖아? 그럼 된 거지? 가족 앞에서 결혼식도 올렸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일부러 안 한 것도 아니고 바쁘면 잊어버릴 수도, 깜빡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무슨 그리 큰 죄라고 그런 난리를 부리는 건지.’

부글부글 끓는 화가 은지연을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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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잘난 남자한테 여자 한둘 있는 게 대수야? 자기가 남편한테 잘하고 내조 잘했으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겠냐고? 3년 동안 옛 여자 하나 지우지도 못한 게 뭘 잘했다고 어디서 생난리를 부리는 거야? 남들은 금방 생긴다는 아기도 못 만들고. 그러니 맘 약하고 순진한 민우가 첫 여자 못 잊고 저렇게 빠져 있겠지.’

결국, 은지연 이 계집애가 다 못나고 부덕해서 생긴 일들인데.

그런 거로 열 내더니 시어미한테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하물며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게, 여태껏 몰랐는데 아주 맹랑하고 독한 것이었다.

계집애가 고지식한데 독만 올라가자고는. 공부 잘해봤자 다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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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하는 우리 아들 앞에 초를 쳐도 유분수지.’

이 사달의 시작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생각지는 않고 지연에게만 화를 내는 강주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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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우 지금 지연이랑 잘 지내고 있어. 지연이가 엄청 오랫동안 민우 좋아해서 따라다녀서 결혼한 건 내가 말했지? 민우 말이라면 껌뻑 죽잖아. 이 목걸이랑 귀걸이 세트도 걔가 나한테 잘 어울리겠다고 이 브랜드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사서 나에게 준 거잖아. 나한테도 껌뻑 죽어지내.”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진아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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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서 이상하게 잘못 보고 들은 거 함부로 말 퍼트리지 마, 괜한 오해 될라. 혹시라도 이런 말 퍼지면 너라고 생각할 테니 알아서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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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언니가 아니라면 아니겠지 뭐.”

하지만 알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고진아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사건 또 하나 생기려나 보네’ 하는 흥미진진한 눈빛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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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오늘 김지원 여사님 오신다는데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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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갑자기 김지원이라니?

화들짝 놀란 주란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에메랄드 클럽에 참가한 이래 김지원은 한 번도 이 모임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C&C의 안주인처럼 행동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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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는 연락 안 했어요? 어제 클럽 회장님에게 연락 온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기대 중이잖아요.”

김지원과 강주란이 평소 연락할 사이가 전혀 아니란 걸 알면서 고진아가 일부러 신경을 긁었다.

고진아는 ‘언니와 함께 있는 그림 구경한다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참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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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여사님이 이 클럽 만들고 한창 활발하게 나오시다가 발길을 뚝 끊으신 거라면서요? 여기 마지막 참석하신 지 5년 넘었는데 아직 그분 팬도 많고, 친한 사람도 많아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했잖아요. 특히 B 전자 사모님이랑 T 제약 사모님은 그분 안 오신 지 오래됐는데도 종종 이야기하고. C&C 글로벌 계열사인 C&C 코퍼레이션 경영 참여하시기 전에는 그래도 종종 오셨다는데. 아무튼, 오늘 오시려나 봐요. 저도 다른 데서 멀리서만 보고 이렇게 가깝게 뵌 적이 없는데 기대되네요.”

주란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좌불안석이 되었다.

아무리 기 세고 얼굴에 철판을 깐 주란이었지만, 가족도 아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김지원과 함께 있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가는 고진아의 말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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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김지원 그 여자는 새삼스럽게 여기 왜 나온다는 거지? 여태껏 관심도 없었잖아? 매번 그렇게 바쁘다고 하더니만.’

주란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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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김지원 여사님 오셨어요! 그런데 옆에 누구시지? 클럽에서 처음 뵌 분인데?”

주란이 당황하며 퍼뜩 얼굴을 들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지원.

그리고 그 옆에 함께 들어온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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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누구신가 했더니 온유 제약 김고은 여사님이시네! 클럽에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서 긴가민가했네요. 언니네 사돈이 함께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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