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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진흙탕 싸움 (64/85)


64. 진흙탕 싸움
2023.03.09.



 
월요일,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회사에 출근한 지연은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회사가 웅성웅성 뭔가 술렁이는 느낌.

꽤 많은 사람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과장님~ 지연 과장님! 혹시 이거 보셨어요?”

주연 대리가 지연이 오기만을 기다린 듯 지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핸드폰을 지연 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뭔데요 대리님?”

“대박! 과장님 아직 못 보셨군요? 그럼 우리 빨리 카페 잠깐 가서 커피 사 오면서 이거 함께 봐요. 진짜 대박 콘텐츠가 어제 떴잖아요. 회사가 이것 때문에 지금 난리예요.”

주연 대리는 지연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회사 앞 카페로 끌고 갔다.

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연 대리가 X튜브 방송 하나를 보여주었다.


“어제, 유명 호텔에서 차민우 상무님 약혼식이 있었는데 거기에 전 여자친구가 와서 난리를 부렸나 보더라고요.”

‘전 여자친구……? 정세아?’

지연은 주연 대리의 말에 바로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X튜브 콘텐츠를 클릭했다.

[아기는 필요 없어, 전 여자친구 버리고 새 여자친구로 갈아탄 대기업 자제의 만행.]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제목도 참 자극적으로 지어 놓았다.


“안녕하십니까, 대중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여 드리는 쇼킹 얼라이브 시간입니다. 오늘은 미리 예고해드린 대로, 유명 대기업 자제이자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차모 씨가 임신한 여자친구를 버리고 약혼식을 하는 현장을 급습하였습니다.”

X튜브 라이브 영상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지연은 한눈에 정세아를 알아보았다.

화면 속 정세아는 울부짖다 쓰러져 출동한 119 대원들이 싣고 나갔고. 사람들은 화면에 안 나오려고 소리를 지르며 약혼식장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거기에 더해 강주란과 차민우의 장모 될 사람은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싸우고 있었다.

지연이 예상했던 정세아의 활약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대단했다.


“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얼굴 모두 나왔었는데, 그새 모자이크 처리를 했네요. 근데 뭐 그사이 100만 뷰가 넘었으니까……. 볼 사람은 다 봤겠죠.”

주연 대리는 지연에게 라이브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못 보여준 게 못내 아쉬운듯했다.


“아까 우연히 들었는데 차민우 상무님은 오늘부터 일주일간 해외 출장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해외 출장 가신 건 아닌 것 같고, 뭐 상황이 이러니 피신하신 거겠죠. 들어보니 회사에서도 공식 입장도 밝힐 듯하다고……. 비서팀 친구가 얘기해 줬어요. 그래야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괜히 불똥이 우리 회사에만 튀니까.”

“영상만 봐도 난리도 아니었네요. 댓글들도 엄청 많은데요?”

콘텐츠에 달린 댓글들이 어느새 1만 개가 넘어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막장으로 전 여자친구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와 새 출발 하려던 차민우를 욕하는 글들이었다.

정세아가 불쌍하다는 글들도 꽤 있었다.


“제가 계속 봤는데, 어제까지는 차민우 상무님 욕하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완전 많이 쏟아져 내렸고, 일부 댓글은 차 상무님 전 여자친구 불쌍하다는 얘기도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 또 보니까 새로운 종류의 댓글들도 많더라고요?”

“무슨 새로운 댓글이요?”

“우리나라 네티즌들, 네티즌 수사대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나 진상 파내는데 장난 아니잖아요. 그 사이에 차민우 상무님이랑 전 여자친구, 그리고 약혼녀 신상을 알아내서는 댓글 엄청나게 올렸더라고요. 그런데 그중에 전 여자친구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올라왔어요. 물론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지만.”

지연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주연 대리가 메신저로 전해 준 콘텐츠를 켰다.

지금도 영상 콘텐츠에 수많은 댓글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중 특이한 점은, 차민우 욕으로 일색이던 댓글 창에 점점 정세아에 대한 댓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거였다.

[이 여자 정세아 맞지? 저 남자 옛날에 세아에게 다이아몬드 반지 선물했다는 그 남자 맞는 거 같은데? 부자 남자 꾀었다고 엄청나게 자랑하더니만 결국 이렇게 버려진 거였어?]

[대박! 몇 달 전에 저 차모 씨가 우리 카페에 이 여자 만나러 왔었어요. 이 여자랑 저랑 같이 카페에 근무하던 때인데, 그때 이 여자 우리 카페 사장님이랑 사귀면서 함께 살고 있었거든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었는데. 그런데 가게 계산대에서 돈 빼돌린 거 나중에 알았음. 우리 카페 사장님 돈 날리고 마음 상처받고, 정말 불쌍했었는데.]

[헐! 내 친구가 얘랑 옛날에 사귀었다는데 완전 돈만 알고 못된 애라는데? 제 친구와 사귈 때 이 남자 만났다고 뻥~ 차 놓고는 그리웠니 어쩌니 하면서 몇 달 동안 찾아왔다고 함. 미친 X이네.]

[정세아 얘, 완전 남자 돈만 보고 만나는 여우임. 그런데 만나는 남자마다 양아치나 사기꾼 애들만 만나서 실속 없고 돈만 뜯겼음.]

[어머! 이분 오늘 우리 가게에서 메이크업이랑 헤어 받았어요. 우리 실장님이 메이크업하실 때 제가 옆에서 도왔는데, 이 분 분명 자기 약혼식 있다고 했는데? 전 남자친구 약혼식이었어? 진짜 대단하다.]


“오……. 댓글들이 차 상무님 욕도 많지만, 이제는 전 여자친구 얘기도 많아지네요? 어제 영상 보니 이분 엄청 이쁘더라고요. 그런데 전 남자친구 약혼식에 쇼킹 얼라이브 팀 데리고 가고, 엄청나게 꾸미고 온 거 보면…… 이 여자도 보통내기가 아닌 듯해요.”

“그래 보여요?”

“그럼요. 임신했다면서 숨쉬기도 어려워 보이는 꽉 끼는 레이스 드레스에 메이크업에 헤어까지 받고 가신 거 보면……. 단순히 화가 나서 간 거라기보다는 쇼를 만들려고 간 느낌이 큰 것 같아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커피를 홀짝이던 주연 대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지, 쇼하고 받아낼 게 있으니 철저히 계획적으로 간 거겠지. 그런데 정세아, 네가 인터넷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사람들은 가십(Gossip)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쇼를 재미있게 봤겠지만…… 더 자극적인 요소들을 찾아서 너와 차민우를 들춰내고 물어뜯을 거야. 어쩌면 내 이야기까지도 들춰낼지 모르지.’

지연은 어제 벌어진 이 쇼를 흥밋거리로만 보기가 어려웠다.

차민우와 정세아 그리고 자신이 복잡하게 엮여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들춰내고자 하면 자신의 이야기도 거론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일들에 대비해야 하니, 언니에게 관련해서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지연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온 지연은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임원들은 직원들과 다른 층의 주차구역을 쓰기 때문인지, 주차장에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강현과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해, 강현의 차로 함께 퇴근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잠깐이라도 마주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함께하는 회의도 거의 없었고, 강현이 다른 프로젝트들로 너무 바빠 얼굴을 보아도 멀리서 스치듯 보기 일쑤였다.

최근 일주일은 차승조, 차민우 조사하는 건도 각자 하면서 화상으로 모이다 보니 더욱 실제로 만나기가 어려웠다.

오늘만큼은 꼭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미리부터 강현이 약속을 정해두었다.

지연 역시 이강현 본부장님이 아닌 남자친구 이강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강현의 차가 보이자 지연은 그의 좌석 쪽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핸드폰으로 회사 메일을 읽고 있던 그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강현 씨?”

얼굴 한가득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득 담은 지연이 곧 그의 옆좌석에 앉았다.

차 안에서 강현 특유의 상쾌한 향기가 가득 나자 지연이 그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 향은 강현 씨한테 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지연이 향을 들이마시다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었다.

잠시 지연을 멍하니 쳐다보던 강현이,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어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지연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지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주차장 차 안이기는 했지만 아직 회사였다.


“하아……. 진짜 얼마 만인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지연 씨.”

강현이 지연의 입술 위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지 않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지연의 뒷머리를 감싸 끌어당기고는 좀 더 깊게 그녀의 입술 안을 침입했다.

깊숙이 들어와 어느새 그녀의 입안 곳곳을 훑는 그 때문에 지연의 입술에서 희미하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조금 놀란 지연이었지만, 곧 강현이 이끄는 대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의 목 뒤로 두 팔을 감아 자신도 그에게 매달렸다.

오랜만에 맛보는 그의 달콤함에 그녀 역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참을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강현을, 그의 가슴을 콩콩 때려 겨우 떼어내었다.


“강현 씨. 그만……. 여기 회사 주차장이에요. 우리 이제 집에 가야죠.”

어느새 끈적해진 차 안의 공기가 느껴져 지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깊은 한숨을 쉬던 강현이 무척이나 아쉽다는 듯이 지연에게서 떨어졌다.


“회사만 아니면……. 하아.”

‘회사만 아니면?’

강현이 무심결에 내뱉은 혼잣말에 지연의 가슴이 괜스레 쿵쾅대며 뛰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멀지도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빠르게 차를 모는 강현 덕에 금세 빌라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강현 씨, 우리 저녁 뭐 먹…….”

“미안해요. 내가 지금 은지연 에너지가 고갈돼서 단번에 채워야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녁은…… 잠시만 참아줘요.”

강현은 다급한 듯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시금 지연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그의 말과 달콤한 입맞춤이 둘 사이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달아오르게 했고, 지연 역시 강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강현의 큰 손이 지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얼굴의 위치를 바꿔 다시 입맞춤할 때였다.

꼬르륵-

안타깝게도 후끈 달아올라 거친 숨소리만 들리던 둘 사이에서 크게 울리는 꼬르륵 소리.

그 소리는 지연의 배 속에서 울렸다.


“아…… 저기, 이건 무시하고 계속해도…….”

꼬르륵- 꼬르르르륵-

무시할 수 없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당황한 지연이 분위기를 다시 잡아보려 했지만, 지연의 위장들은 그럴 수는 없다며, 당장 밥을 달라며 아우성치는 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하아…….”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던 강현이 곧 지연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피식 웃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미리 간식 좀 먹여둬야겠어요.”

“제가 오늘 일찍 나오려고 점심을 빵 하나 먹고 일했더니……. 하하하.”

“우리 은토끼 씨, 왜 이렇게 당황해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까지 빨개진 지연을 보던 강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나의 은토끼는 당황하면 눈을 더 동그랗게 떠서 너무 귀엽네. 자, 그럼 우리 맛있는 저녁부터 먹을까요?”

지연의 이마에 쪽- 하고 짧은 버드 키스를 한 강현이 냉장고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둘이 있을 때면 지연을 ‘은토끼’로 부르는 강현이었다.


“미트볼 스파게티 괜찮아요? 빠르게 해줄 수 있는데.”

“미트볼 너무 좋아요! 최고!”

무안함을 미소로 감춘 지연이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맛있는 냄새가 채워졌다.

강현은 정말 솜씨가 좋아서 빠르고 맛있게 음식들을 만들고는 했다.

금세 테이블 위로 근사한 미트볼 스파게티와 잘 구워진 마늘빵이 함께 올려졌다.


“아……. 너무 맛있겠다. 고마워요, 강현 씨. 잘 먹을게요.”

“별말씀을요. 우리 은토끼 씨 많이 먹어요. 이따가는 꼬르륵 소리가 나도 놓아줄 자신 없으니까. 알았죠?”

얼굴 한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담고는 지연을 바라보는 강현.

그를 마주 보는 지연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발그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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