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님 (66/85)


66.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님
2023.03.16.



 
차민우는 박민경과 함께 살려고 꾸며둔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야! 비디오 콘텐츠 하나 보고 뭘 믿는 거야? 다들 미친 거야!”

불이 난 듯 핸드폰이 계속 울려댔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네티즌들이 차민우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였다.

악담은 기본이었고, 협박성 메시지들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인생 살지 마라.]

[밤길 조심해라 이 자식아. 같은 남자인 게 창피하다.]

[이런 일 벌이고 얼굴 들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넌 쓰레기 중의 쓰레기야. 너 때문에 C&C 제품 사기도 싫다.]

끊임없이 밤낮으로 울려대는 통에 이제는 도저히 켜 둘 수가 없어서 핸드폰을 껐다.

다행히 민우에게는 회사 핸드폰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걸 사용하면 됐다.

앞으로 나아가도 될까 말까인데, 오늘 회사에서는 자신에게 ‘대기발령’이라는 결정을 통보했다.

자식보다도 회사를 우선하는 아버지 차승조 회장의 결정이었으리라.

차 회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주주총회 전까지 조용히 몸 사리며 지내고 있어. 지금 네가 만들어 놓은 이 똥구덩이를 어떻게든 치워야 하니. 부르면 재깍 달려 나오고.”

C&C 글로벌은 주요 미디어에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각종 미디어에서 제보되고 재생산된 콘텐츠는 회사 임원의 사생활 부분으로 C&C 글로벌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라도 이 콘텐츠와 C&C 글로벌을 연관 지어 언급하거나 회사에 손실을 가져오면 강경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C&C 글로벌의 공식 입장 이후, 바로 차민우의 법률 대리인 역시 공식 입장문을 미디어를 통해 내놓았다.


“차민우 씨의 법률 대리인 ‘법무법인 강아’입니다. 차민우 씨의 공식 입장을 전하겠습니다. 영상 속에서 언급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차민우 씨와 정모 씨는 과거 좋은 감정으로 만난 것은 맞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하여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만난 약혼녀와 좋은 감정으로 만나다 약혼식을 진행하였습니다. 모르던 중에 아이 소식을 전해와, 차민우 씨는 아이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그녀가 기거할 집과 생활비를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배 속의 아기를 빌미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여 이 부분은 수용할 수 없다고 하고, 조율이 필요하다고 전하였더니 정모 씨는 약혼식에 찾아와 이번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현재 차민우 씨와 약혼녀분, 그리고 가족분들은 이번 사태로 큰 충격에 빠졌으며 현재 관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들이 사실과 다르게 대중들에게 노출이 되어 근거 없는 비난이 차민우 씨와 가족분들에게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이 아니거나 말도 안 되는 루머 재생산을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강경한 법적 대응을 하겠습니다.”

[역시나 발뺌이네.]

[뭐만 하면 법적 대응이래.]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어디다 화풀이야.]

[전 여자친구 임신 3개월인데, 그사이 약혼녀를 만나서 약혼을 한다는 게 말이 돼? 뭐가 이리 속성이야.]

안 좋게 흘러가는 C&C의 이미지에 차민우의 공식 입장문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더욱 안 좋은 여론을 형성했다.

***

오랜만에 강현, 지연, 감사실장 김사헌 그리고 충식이 그들의 임시 사무실에 모였다.

이제 차승조 회장과 차민우 상무의 비리 자료는 어느 정도 모였고 정리 및 마무리 단계였다.

자료 중, 강지현 대리가 차민우의 사무실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 자료가 예상보다도 큰 건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자료가 내부 고발로 모여졌다.

김지원 사장의 두 아들, 차근우 그리고 차재우 부사장 두 사람도 조금이나마 연관들이 있었다.

예상하건대 차승조 회장의 지시가 있었을 거라 생각되었지만, 어쨌든 그들 역시 숫자 조작에 함께하였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주주총회에는 두 분 모두 참석하시나요?”

김사헌이 강현과 지연에게 물었다.


“네, 저는 주주로서 참석합니다. 회사에 사표는 내었고 현재 인수인계 중인데 금주 내로 마무리될 예정이고요.”

“저는 회사 전략을 발표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모은 이 자료들은 제가 발표하는 시간에 노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김사헌 실장님과 권충식 과장님 두 분도 제 서포터로 함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사헌과 충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료가 나오면 회사에서 시스템을 갑자기 막을 수가 있으니, 그 부분은 제가 미리 시스템 제어를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네가 있어서 무척 든든하다 충식아. 고마워.”

강현이 충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형이 고마울 게 뭐가 있어요. 제가 오히려 고마워요. 이렇게 함께할 수 있도록 해줘서요.”

충식이 대답을 하고는 지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 떴던 차민우 정세아 콘텐츠 관련해서. 제가 우선 ‘쇼킹 얼라이브’ 시스템 쪽에 프로그램 하나 깔아놨어요. X튜브 쪽에도요. 그 콘텐츠 관련해서 지연이 실명이 뜨거나 연관 검색어가 뜨면 블라인드 혹은 자동 삭제되도록 했어요. 물론 이 프로그램이 100% 커버하지는 못하겠지만 당분간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거예요.”

“고마워 충식아. 네 덕에 마음이 좀 안정이 되네. 혹시라도 내 실명이나 온유 제약과 연관해서 기사가 뜨거나 안 좋은 콘텐츠가 뜨면 바로 온유 제약에서 공식 입장을 내기로 했어. 나야 이름이 뜬다고 해서 힘들 것은 없는데, 다만 구구절절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싫기도 하고……. 괜히 온유 제약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까 봐 걱정인 거지.”

충식의 말에 지연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모든 네티즌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피해자의 힘듦과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자극적인 것만 파는 나쁜 놈들이 있어서 문제인 거지. 아무튼 그런 놈들 나와 내 시스템에 걸리면 내가 아주 다 폭파해 줄게. ‘어나니머X’ 옛 동료 몇 명도 이번에 함께 도와주기로 했어. 온라인의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 사건 대략 설명해 줬더니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고맙게도.”

“고맙다, 진짜.”

이제 모여진 이 거대한 자료들을 잘 전달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김지원 C&C 코퍼레이션 사장의 이혼 소장이 접수되었다는 뉴스가 뜬 것은 며칠 후, C&C의 주주총회가 약 1주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재계 30위 안에 드는 C&C 그룹, 창업자 김권중 회장의 외동딸이자 현 그룹 총괄 대표인 차승조 회장의 부인 김지원 C&C 코퍼레이션 사장이 최근 이혼 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김지원 사장이 제시한 재산 분할은 주식 외에 약 5천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어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혼 소장을 접수한 김지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물론 지연에게는 종종 연락하였지만, 매번 연락이 올 때마다 다른 번호였다.


“불편하게 만들어 미안하구나. 하지만, 차승조가 내 위치를 알면 분명 나를 데려가 어딘가에 가둘 수도 있어 조심하는 중이야. 못된 거로는 따를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 당분간은 이 방법이 최선일 것 같으니 이해해다오.”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라도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잘 계시고, 건강하게 주주총회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차승조 회장은 김지원의 이혼 소장 소식을 접하고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며 근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던졌다.


“김지원 어디 있어! 김지원! 이 여자가 이 중요한 때에 뭐에 미쳐서 이런 난동을 부리는 게야! 네 어미를 찾아와! 당장 내 눈앞에 데려오라고!”

아들들인 차근우, 차재우도 그들의 모친 김지원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약삭빠른 강주란은 이때부터 본가에 지내며 차승조 회장의 모든 성질을 받아주며 함께 지냈다.


“김지원, 이 여자가 아주 정신이 나갔네요. 여태껏 아무런 낌새 없이 잘 지내는 모양새더니만 이렇게 음흉하게 당신 물 먹이려고 몰래 이혼 소장을 접수하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요. 아니고서야 갑자기 이럴 리가 없어요. 어휴, 음흉해라.”

차승조를 위해주는 척하며 은근슬쩍 기름을 붓는 강주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당장 김지원을 찾으러 쫓아가고 싶었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차승조는 화를 꾹 참고 아들들을 데리고 주주총회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최근 무리한 투자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친인척을 주요 인사에 참여시켜 진행한 일들이 모두 좋지 않은 결과들을 내었다.

지난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숫자에 훨씬 못 미치는, 온통 빨간색의 마이너스 숫자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이것을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거기다 온유 제약 추가 투자까지 고려한 부분들도 이미 발생한 매출처럼 넣어 놓았는데, 아직도 그 부분은 확답을 받지도 못했다.


“도대체 이강현이는 뭘 하고 있는 게야! 일전에는 추가 투자를 거의 받은 것처럼 굴더니만! 그리고 총회에서 전략 발표를 이강현이 하잖아. 이 본부장에게 전화 걸어!”

차승조는 어제 이강현이 주주총회에서 발표하겠다며 보내준 자료를 보며 아들들에게 소리쳤고, 며칠 전부터 주란과 함께 본가에 와 있는 차민우가 이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 Rrrr-


-네, 이강현입니다.

“차민우입니다. 지금 차 회장님이 통화하시길 원합니다. 스피커폰으로 연결하죠.”

-네.

차민우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돌렸다.


“이강현! 넌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거야!”

차승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전략 발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차질 없이 준비 중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작년 순이익 수치는 12%였는데, 왜 네 자료에서는 2%인 거야! 이거 너무 약하잖나!”

-실제 수치와 조금씩 격차를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장님. 실제는 순이익 수치가 마이너스입니다. 당장은 높은 수치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 수치와의 격차가 너무 벌어졌기 때문에 위험이 큽니다. 언젠가는 주주들에게 실제 수치를 공개해야 할 텐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주주들의 이윤이 적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수치와 맞고 안 맞고가 뭐가 중요해! 주주라는 번드르르한 이름 달고 오는 놈들 모두 동태눈들을 하고서는 왜 수익이 떨어졌냐고 아우성쳐댈 게 뻔한데. 민우가 제시한 원안대로 12%로 다시 맞춰 놔! 숫자라고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무식쟁이들에게 실제 수치를 보여줘 봤자 욕만 얻어먹어!”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님.

“괜찮지 않으면! 내가 며칠 전에도 말했잖나! 이 짓도 20년 넘게 해서 너보다는 내가 더 전문가야! 다시 원안대로 바꿔서 발표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온유 제약 투자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될 것처럼 그럴싸하게 말만 해 놓고 왜 결론이 없어!”

“주주총회 끝나면 바로 추가 보고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주총에서 뵙겠습니다.”

이강현은 차승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 자식,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이야! 감히 상사가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전화를 먼저 끊고!”

차민우가 옆에서 둘의 통화를 듣다가 화를 내었다.


“됐다. 이놈도 우리 쪽에 발 담그고 하는 첫 번째 주주총회 전략 발표이니 신경이 아주 날카로울 거야. 그래도 이강현이 진행한 사업 쪽들은 모두 이윤이 많이 났고 미디어에 노출도 제일 많이 되었기 때문에 이 본부장이 발표하는 것이 제일 그럴듯해.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둬.”

민우는 이 와중에도 이강현의 편을 들어주는 차승조의 모습을 보자 기분이 나빠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