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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완벽하게 속으셨습니다 (67/85)


67. 완벽하게 속으셨습니다
2023.03.20.



 
아침 일찍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한 지연은 오늘 주주총회 장소인 삼성역에 있는 컨벤션 홀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였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떨리는 마음에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컨벤션 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 김지원은 보이지 않았다.

C&C 글로벌의 임원들은 컨벤션 홀 맨 앞쪽 분리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중 차민우도 차승조의 곁에 있는 것이 보였다.

지연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구석 쪽으로 자리해 앉았고, 오늘의 안건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았다.

1. 감사 및 영업 보고 및 승인

2. 전략 발표

3. 임원 인사 발령의 건

오늘 안건 중 1번 안건과 3번 안건은 주주들의 전자 투표를 진행하는 것으로 하여 참석자들에게 전자 투표를 할 수 있는 버튼을 나눠주었다.


‘임원 인사 발령?’

안건이 적혀 있는 내용 뒤쪽에는 오늘 발령이 되는 인사의 이력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또 자신의 친인척을 주요 인사에 꽂아 넣으려고? 진짜 질리지도 않고 해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이 사람들.’

곧 총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 설명이 나왔고, 정면 대형 스크린에서 C&C 글로벌의 상반기 하이라이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비트가 빠른 음악과 함께 약 5분 정도 영상이 나온 후 상반기 감사 보고 및 영업 보고가 이어졌다.

자료가 어떤 숫자들로 채워졌는지 그간 비리 자료들을 통해 보았던 지연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못해도 전년 대비 마이너스 10% 이상일 영업 수익이 모두 플러스로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수익으로 표시된 수치들 모두 작은 수치가 아닌 매우 큰 수치로 엄청난 수익 곡선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작은 회사도 아닌 곳에서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내세우는 거지?’

하지만 이 수치들을 근거할 자료들조차도 모두 허위로 제공되고 있으니…….

주주들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고, 발표된 보고 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1시간의 보고 후 진행된 전자 투표.

참석자 224명

승인 212, 기각 10, 기권 2.

지연은 화면에 뜬 결과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부디 강현의 발표를 보고 모든 것이 뒤집히기를.

곧 커다란 스크린 가득 이강현의 사진과 함께 그의 이력이 뜨며 전략 발표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앞쪽 스테이지에 강현이 인이어 마이크를 끼고 나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주주 여러분. 오늘 C&C 글로벌의 전략 발표를 하게 될 전략 기획실 이강현 전무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자료들을 통해 C&C 글로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명확하게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강현은 마치 실리콘밸리의 젊은 CEO처럼 캐주얼하고 편안한 세미 정장을 입고서, 앞서 발표된 자료들과 연관된 수치들이 기재된 파일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앞서 보여드렸다시피 C&C 글로벌은 무수히 많은 난관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갑니다. 특히 3년 전부터는 아주 가파르게 성장 곡선을 이루고 있죠. 이 표에서처럼요. 믿기시나요, 3년 전과 2년 전에는 해마다 무려 25% 이상의 영업 이익을 더해가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강현 뒤의 거대한 스크린에는 최근 C&C 글로벌의 영업 이익을 나타내는 가파른 그래프가 모션 그래픽으로 표현되어 주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저도 이곳에 몸담고 있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강현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일부 주주들이 만족스러움의 표현으로 손뼉을 쳤고, 곧 박수 소리는 컨벤션 홀을 가득 채웠다.

강현은 잘생긴 얼굴로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활짝 웃었다.

하지만 홀 내가 조용해진 순간, 순식간에 미소를 거두고 서늘한 눈빛을 한 채 주주들을 향해 대답했다.


“그런데, 주주 여러분! 여러분은 조금 전까지 완벽하게 속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강현의 말에 장내가 웅성거렸고 맨 앞쪽에 앉아 있던 차승조, 차민우 그외 임원들의 눈이 커졌다.


“이제부터 제가 보여드리는 자료를 통해 그동안 C&C 글로벌에서 어떻게 여러분을 속이고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새로운 그래프와 자료들이 나왔고, 스크린 한편으로 횡령 자료 및 조작된 자료들이 찍힌 사진들이 영상처럼 돌아가며 노출되었다.

강현은 스크린에 노출된 자료들이 어떤 자료들인지 설명하기 시작했고, 곧 어디에선가 나타난 30여 명의 인원들이 화면에 나오는 자료를 프린트한 파일을 자리에 앉아 있는 주주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은 지연이 미리 준비한 경호팀이었다.


“저희가 확인한 자료에서 보면, 최근 5년간 C&C 글로벌에서는 영업 순이익이 마이너스였습니다. 특히 3년 전부터는 마이너스 5%를 넘어갔고 작년에는 마이너스 11%를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C&C 글로벌의 무리한 건설 사업 투자 및 부동산 투자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사업 투자로만 보면 투자 대비 마이너스 30%에 가까운 손실을 내었는데, 전자와 화학 쪽의 이익으로 이 부분을 메꿔 그나마 마이너스 10%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확고하고도 강단 있는 강현의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는 회사 사업으로 포장되었으나 이중 약 20%는 차승조 회장의 개인 주머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근거 자료들은 프린트된 자료들과 앞쪽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장내는 크게 술렁였고 차승조와 차민우가 소리를 지르며 앞쪽 스테이지로 올라오려 했다.

그러나 아까 나타났던 30여 명의 경호원들이 둘을 가로막았다.


“이강현!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쓰레기를 모아서 선동해! 이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차승조가 발악하며 소리 지르는데 갑자기 컨벤션 홀 내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작년 순이익 수치는 12%였는데, 왜 네 자료에서는 2%인 거야! 이거 너무 약하잖나!”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주주들의 이윤이 적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수치와 맞고 안 맞고가 뭐가 중요해! 주주라는 번드르르한 이름 달고 오는 놈들 모두 동태눈들을 하고서는 왜 수익이 떨어졌냐고 아우성쳐댈 게 뻔한데. 민우가 제시한 원안대로 12%로 다시 맞춰 놔! 숫자라고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무식쟁이들에게 실제 수치를 보여줘 봤자 욕만 얻어먹어!”

 
며칠 전 강현과 통화를 하던 차승조의 목소리였다.


“차승조 회장과 차민우 상무가 주가 되어 횡령 배임으로 이득을 취한 금액만 현재 밝혀진 것이 약 500억에 달하며, 더 파보면 그 이상의 숫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에게 지급된 배당금 역시 또 어딘가의 구멍으로 남아 엉터리 숫자로 가려져 있을 겁니다. 이는 하나하나 쌓여 장기적으로 회사의 도산을 초래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강현의 말에 일부 주주들이 소리를 지르며 차승조와 차민우에게 달려들었다.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치고, 횡령 배임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최측근과 친인척을 임원으로 발령하려는 차승조 회장의 C&C 대표 해임안을 오늘 주주총회의 긴급 안건으로 제안합니다.”

카리스마 있는 강현의 목소리가 주주들에게 전해졌다.


“이강현 전무가 제안한 긴급 안건에 C&C 글로벌의 2대 주주인 저 김지원도 동의합니다.”

김지원의 등장에 컨벤션 홀의 시끄러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컨벤션 홀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선 김지원은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와 지연의 곁에 와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섯 명의 남자들이 컨벤션 홀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차승조와 차민우 앞에 섰다.


“중앙지검 형사7부 최철민 수사관입니다. 차승조, 차민우 씨. 두 사람을 횡령 배임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저희와 함께 가주시죠.”

 

***



“어딜 이렇게 막 들어와! 나가! 이 집에서 나가라고!”

집으로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주란이 두 팔 벌려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니, 그걸 왜 건드려! 아니 거기서 손 떼! 어디라고 이렇게 막 들어와서는! 야!”

“방금 보여드렸듯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정당하게 공무집행 중입니다. 비켜주십시오.”

수많은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막을 방법이 없자 주란이 입구 쪽에 누워 바둥거렸다.


“이놈들아! 나를 밟고 가! 나를 밟고 가라고! 아니면 당장 여기서 썩 꺼져버려!”

바닥에 추하게 누워서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강주란을 여성 공무원 3인이 쉽게 들어 올려 한쪽으로 옮겼고 그 뒤 재빠르게 사람들이 다 들어왔다.


“야! 이거 놔~ 어딜 만져! 이거 놓으라고! 이놈들이 나를 막 치네!”

주란이 발악을 하건 말건,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승조 회장의 방을 시작으로 집 안 곳곳 놓치지 않고 뒤지기 시작했다.

많은 서류와 의심 가는 물건들은 사진 찍히고 박스에 담겼다.

한참을 수색하던 검찰팀은, 주란도 몰랐던 차 회장의 방 깊숙한 곳.

커다란 그림 액자 뒤에 있는 작은 창고 방을 발견하였고,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파일들과 사진 자료들을 찾아내었다.

또한 그 옆에는 남자 서너 명이 들기에도 힘든 수많은 금괴가 함께 놓여 있었다.

같은 시간.

C&C 글로벌 본사에도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검찰이 들이닥쳤다.

차승조 회장 이하 모든 임원의 방과 감사팀, 영업팀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수많은 서류가 검찰에서 가져온 파란 상자에 마구 담기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직원들의 눈빛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이번 C&C 글로벌 사태에는 횡령 배임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긴급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중앙지법 김태곤 부장 판사는 ‘여러 과정에서 나타난 피의자들의 행태를 참작할 때 증거 변조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크다’라고 말하며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전했습니다.”

“C&C 글로벌의 차승조 회장과 차민우 상무가 횡령 배임 혐의로 긴급 구속된 데 이어 검찰에서는 C&C 글로벌 본사와 차승조 회장의 자택을 압수 수색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주주총회에서 C&C 글로벌 차승조 회장의 해임 안이 긴급 안건으로 제출되었는데요. 참석한 주주들의 만장일치에 더해 오늘 이사회 역시 차 회장의 해임 안에 동의한다는 결정을 내려 차승조 회장의 해임이 전격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C&C 글로벌 이사회는 회장 선임이 되기 전까지, 이번 횡령 배임의 건을 파헤친 이강현 본부장이 당분간 C&C 글로벌을 이끄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연일 미디어에서 C&C 글로벌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거기에 더한 흥미로운 뉴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례없는 5천억 원대의 재산 분할을 요구한 C&C 코퍼레이션 김지원 사장의 이혼 소송도 화제인데 이번에는 김지원 사장이 차민우 상무의 모친 강 모 씨와 연기자 장 모 씨에게 상간녀 위자료 소송을 하여 화제입니다. 현행법상 상간녀 위자료 소송은 외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해야 하므로 강 모 씨의 경우에는 실제 소송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원 사장 측은 이를 알고도 제기한 것일 텐데요, 현재 피바람이 불고 있는 C&C 글로벌의 사태에 더하여 대중들이 몰랐던 차승조 회장의 부정한 점을 제기하여 이번 기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또 다른 상간녀 위자료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장 모 씨의 경우, 대중에게 단아한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연기자인지라 충격을 더 해주고 있습니다. 소속사에서는 사실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발표한 상황이라 대중들의 궁금증은 커지고만 있습니다.”

지연과 강현, 그리고 협력자들이 주주총회에서 쏘아 올린 기업 비리라는 불꽃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복수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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