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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칼바람 뒤 꽃바람 (68/85)


68. 칼바람 뒤 꽃바람
2023.03.23.



“이번 C&C 사태에 많이 놀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C&C 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야 내부 비리를 밝히게 된 것에 사죄 말씀드립니다. 차승조 회장의 해임이 확정되어 그 자리를 이끌어 갈 적합한 인재를 새롭게 영입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분이 오실 때까지 제가 회사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께 조언 받으며 잘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다시 한번 회사를 대표하여, 이번 사태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 사과 말씀드립니다.”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된 강현의 인터뷰 영상은 SNS와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회사 임원이 이렇게 생겨도 되는 거야?]

[C&C 글로벌 다니는 사람들 매일 눈 호강하겠네.]

[30대의 일 잘하는 임원이라, 좋네.]

[내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C&C 글로벌 입사해서 이강현 본부장 비서실로 가야겠다.]

[저렇게 생겨서 능력은 또 최고라니, 다 가졌네.]

중장년층은 이번 C&C 글로벌 사태를 큰 위기로 보았고, 20대 30대들은 환호했다.

특히 C&C의 새로운 리더가 30대 초반의 능력 있는 젊은 인재라는 것은 2, 30대들에게 이 기업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고, 회사의 이미지를 좀 더 젊은 기업으로 인지하도록 했다.


“잘났네, 잘났어. 화면발은 또 왜 이렇게 잘 받니. 화면에 보이는 콧날에 종이가 베이겠다, 아주.”

지연의 언니 은지은이 TV를 켰다가 뉴스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강현의 인터뷰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C&C 글로벌 주주총회 며칠 후, 오랜만에 부모님의 집에서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지연아, 너 이강현 본부장 팀이었다고 했지? 자주 봤어?”

“본부장님과는 초반에 같이 프로젝트 해서 거의 매일 뵈었었지.”

“저렇게 생긴 상사가 옆에 있는데 일이 되던?”

지은이 놀리듯이 지연을 떠보았다.


“본부장님이…… 엄청난 워커홀릭이라, 프로젝트팀 모두 일할 때는 저분이 제일 무서웠어. 하도 일을 가져다주셔서. 거기다 꼼꼼하기는 세상 제일이야 언니.”

“그래, 소문은 들었어. 그리고 투자 건으로 저번에 가져온 자료들 봐도 그럴 것 같더라. 발표하는데, 대부분 항목을 다 꿰고 있더라고. 그리 일 잘하면 얼굴이 좀 못나도 멋져 보이는데. 아무튼, 뉘 집 아들인지 이 본부장 어머니가 아주 행복하겠어.”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똑같지 않을까? 우리 언니랑 오빠 같은 아들딸이 있는데?”

지연의 말에 가족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건 지연이가 맞는 말 했네. 이 엄마는 우리 아들이랑 딸들이 내 자식들이어서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해.”

모친 김고은 여사가 지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행복한 듯 말했다.


“나도 엄마 아빠 딸이라서, 울 언니 오빠 동생이라 너무 행복해요.”

환하게 웃던 지연이 웃음을 멈추더니 자못 심각한 표정을 하였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가족 모두가 지연의 조심스러운 말투에 궁금증을 가지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 지금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지연의 말에 지은을 제외한 모두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특히 부친 은주훈 회장이 가장 놀란듯했다.


“지은이 너는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알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한테 한마디 말도 안 해준 거야?”

모친 고은이 지은을 서운한 듯이 쳐다보자 그녀가 두 손을 들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 이런 뉴스는 본인한테 들어야죠. 그리고 저도 지연이가 가볍게 만나는 사람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가족에게 말할 정도로 깊은 사이인 건 지금 알았어요.”

“어떤 사람인데? 좋은 사람이야? 너 많이 예뻐해 주는 사람인 거야? 사람 딴 거 볼 거 없이 착하고 너 사랑만 해주면 돼. 응?”

차민우라는 최악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모친 고은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걱정스럽게 물으면서도, 내심 궁금한지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엄마. 선하고, 바른 사람이에요.”

지연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고은의 입에서 ‘그래야지, 외모나 능력은 그다음 문제지.’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아빠, 엄마. 오늘 그 사람 여기에 오라고 했어요.”

지연의 말에 가족 모두가 당황한 듯 커진 눈이 더욱 커졌다.


“뭐야?”

“지금?”

“뭐?”

“지연아!”

“아가씨~ 대박!”

마치 합창하듯 놀람을 표현하는 그녀의 가족들을 보며 지연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 사람이 빨리 인사드리고 싶대요.”

“아니, 지연이 너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초대하면 어떡해.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고은의 얼굴에 난감함이 스쳤다.


“오늘 가족들과 함께 저녁 먹는다고 말했더니…… 잠깐이라도 뵙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인사드리고 가서 야근하겠다면서. 원래 오늘은 회사에서 계속 일한다고 했었거든요.”

“누구와는 다른 그런 적극적인 자세, 나는 좋은데?”

지연의 오빠 지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자친구와 그녀의 가족에게 적극적인 자세는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게 했다.


“그럼 아까 얘기를 하지. 집에 대접할 게 별로 없는데 어쩌나.”

당황하던 고은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할 때였다.

대문 벨 소리가 울렸다.


“그 사람 도착했나 봐요.”

지연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 쪽으로 가서 확인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맞네요, 그 사람이에요.”

행복한 미소가 한가득 걸린 지연의 얼굴을 가족 모두가 보았다.

지연의 얼굴에 저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고, 지연이를 많이 아껴준다는 거겠지.

아직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그가 좋아지는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곧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는 가족 모두가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은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지연 씨와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이강현입니다. 늦은 시간인데 갑작스럽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강현은 아름다운 붉은색 튤립 꽃다발을 들고 등장했다.

넘쳐나는 일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다 왔을 텐데도, 그는 조금 전까지 화보를 찍다 온 모델처럼 눈부시게 멋지기만 하였다.


“들어오게,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반갑군.”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은주훈 회장이 앞으로 나아가 반갑게 강현을 맞아주었다.


“갑작스럽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좀 더 준비해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큰 프로젝트를 갑자기 맡게 되어……. 오늘이 아니면 너무 나중에 인사드리게 될 것 같아 제가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부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현이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그런 강현을 보던 지은의 입에서 모두를 웃게 할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무조건 찬성이다, 지연아. 뭐든 찬성이야.”

“갑자기 찾아뵈었는데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현을 가장 환영한 것은 지연의 언니 지은이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이강현 전무님.”

지은이 강현이 앉을 곳을 안내하며 해맑게 웃었다.


“편하게 이름 불러주십시오, 본부장님.”

강현이 씩 웃으며 지은에게 제안했다.


“뭐…… 그렇게 말하니,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이게 웬일이야. 우리 지연이 남자친구가 이 강현 씨라니. 난 그것도 모르고 강현 씨 여자친구 없으면 우리 지연이 소개해 주려고 했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그때 소개해 주신다는 분이 지연 씨였다니.”

“그때 강현 씨가 단칼에 ‘여자친구 있고 그 친구가 아주 예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이 사람 지금 눈에 콩깍지가 씌었네.’하고 혼자 생각했는데. 우리 지연이라면 그럴만했네요.”

고개를 젖히며 기분 좋게 웃던 지은이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언니, 미팅에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강현 씨는 나한테 그런 말 안 해서 몰랐네?”

“괜히 그런 말 하면 너 걱정할까 봐 그랬겠지. 아무튼, 이게 무슨 인연이야.”

지연이 놀랐다는 듯 말하자 지은이 지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강현이 자리에 앉자 고은이 바로 다과를 내왔고, 바로 지연의 가족 여섯 명은 강현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막내의 새로운 남자친구였다.

쓰레기 같던 이전 인연이 있었던지라,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연이 새로운 인연을 찾았다는 것에 들뜬 분위기가 더 컸다.

곧 다들 긴장감을 풀고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그들이었다.


“강현 군, 혹시 말이에요…….”

고민이 된다는 듯 모친 고은이 선뜻 말을 꺼내지를 못하고 머뭇거렸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혹시 말이야. 혹시…… 알고 있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걸까요?”

“우리 지연이, 결혼했었던 건…… 알고 있나요?”

모두가 웃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고은은 내내 이 부분이 걸린 듯 환하게 웃지를 못하고 어정쩡하게 강현을 보고 있었다.

결혼했다 이혼을 한 것은 전혀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 편견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다 보니 마음에 계속 걸린 것이리라.

혹시라도 강현이 이 사실을 아직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어 지연이가 다시 상처받는다면 어찌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지연 씨가 모두 말해 주었어요. 그리고 그 상대방이 차민우라는 것도요. 전 전혀 상관없는데, 그 이유로 지연 씨가 제 마음 받아주는데 시간이 좀 걸렸었죠.”

“우리 지연이가요?”

강현이 웃으면서 옆에 앉아 있던 지연의 손을 잡아끌더니 깍지를 끼며 꼭 잡았다.


“제가 먼저 지연 씨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자신이 결혼했었고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열기가 어렵다고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찌나 애가 타던지. 앞에서는 멋있는 척 쿨하게 ‘서로를 알아가며 시간을 갖자.’라고 했지만 사실 많이 걱정되었어요, 제 마음 안 받아 줄까 봐요.”

강현의 말에 지연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결국, 이렇게 제 마음을 받아주어서 다행이에요. 그때 안 받아줬더라도 제가 계속 쫓아다녔을 것 같지만요.”

고개를 돌려 지연을 쳐다보는 강현의 두 눈에는 다정함이 넘쳐흘렀고, 지연의 가족들은 모두 눈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은 업무를 하기 위해 강현이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기에, 10시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자 가족 모두가 아쉬움을 표했다.


“자주 와요, 강현 군.”

“네. 그러겠습니다, 어머님. 자주 오겠습니다. 오늘 대접해 주신 약식도 식혜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저 약식 좋아하는데 어떻게 아시고…….”

강현이 말한 어머님이라는 호칭에 모친 고은의 얼굴에 해사한 웃음이 걸렸다.


“어머, 그럼 내가 좀 싸줄 테니 집에 가져가서 좀 먹어요.”

그렇게 말하며 고은이 약식과 식혜를 담으러 갔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머님. 너무 맛있어서 도저히 거절의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오네요”

어느새 한가득 챙겨진 약식과 식혜가 고은의 두 팔 위에 가득 담겨 있었다.


“다 먹으면 또 와요. 내가 언제든지 해줄 테니. 알았지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미리 연락드리고 여유롭게 뵙겠습니다.”

강현이 머리를 깊게 숙여 가족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강현 씨 요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올게요.”

“그러렴, 잘 가요. 오늘 너무 반가웠어요.”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온 지연과 강현은 짐을 차에 실은 뒤, 잠시 집 앞을 걷기로 했다.


“우리 가족들이 강현 씨 너무 좋아하는데요?”

“아까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괜히 고집 부려 오늘 왔나 싶었는데. 부디 좋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강현 씨가 아까 엄마에게 ‘어머님.’이라고 했더니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 보셨죠? 아까 약식 싸주신 것 좀 보세요.”

차에 두고 온 고은 여사의 전매특허 약식과 식혜가 한가득이었다.

아마 해두신 것을 다 싸주신 듯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맛있더라고요. 지연 씨 음식 솜씨가 어머님을 닮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와줘서. 우리 가족이 너무 좋아했어요.”

“고집 부렸는데 들어줘서 고마워요 지연 씨.”

강현이 지연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지연의 이마에 버드키스를 했다.


“아~ 우리 강현 씨랑 더 같이 있고 싶다.”

지연이 칭얼대며 강현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간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본 터라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니 보내기가 아쉬웠다.


“하……. 우리 은토끼, 밤새 꼭 껴안고 놔주지 않고 싶네. 다음에 만날 땐 내 품에서 종일 못 나갈 줄 알아요. 알았어요?”

지연이 강현의 허리를 더욱 세게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서로를 꼭 안은 채 잠시간 서 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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