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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끝도 없는 추락의 시작 (70/85)


70. 끝도 없는 추락의 시작
2023.03.30.


오늘 오후 지은에게 방문해 그동안 정리해 둔 자신의 계획을 보여줄 생각에 지연은 조금 들떠 있었다.


‘언니는 유능한 사업가니까 나에게 냉철한 피드백을 주겠지. 부디 내 뜻을 잘 이해해 주면 좋을 텐데. 뭐…… 예상외의 조언을 준다 해도 참고해서 다시 계획하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어느새 러닝 크루들과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한 것이다.

모인 사람들로는 정회원 10명에 더하여, 지연과 같이 경험해 보고 싶어 참여한 초보자 5명 정도가 있었다.

지연이 몇 번 경험한 아침 모임의 경우에는 10명 내외가 모이고는 했는데 오늘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것 같았다.


‘오늘은 몇 명 정도 왔으려나?’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다 그중 한 명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강지현 대리가 있었던 것이다.


“강지현 대리님!”

“어머! 지연 과장님.”

“여기 웬일이세요!”

“전 여기 정회원이에요. 한동안 못 나오다가 오늘 오랜만에 나온 거거든요. 과장님은 언제부터 여기 참여하신 거예요?”

“그래요? 전 여기 며칠 전부터 참여하고 있어요. 제대로 뛰고 싶은데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도움 받고 있어요.”

“이렇게 만나다니, 우리 정말 인연이네요.”

지연과 강지현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그간 C&C의 일들을 이야기하였고, 이야기가 길어져 러닝 후 지연의 집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자며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가워요. 제 집이 여기서 멀지 않아요. 대리님 시간 괜찮으면 저희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눠요.”

“초대 고마워요! 저 시간 충분해요.”

지연과 강지현은 약 5km의 러닝 코스를 함께 뛰고 난 뒤 천천히 걸어 지연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시원한 공기와 함께 동네 곳곳의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향이 코를 스쳤다.


“초보자에게 5km도 꽤나 힘드네요. 나중엔 숨차서 걷고 싶었다니까요. 대리님은 어쩜 그렇게 하나도 안 힘들어 보여요?”

“한 3개월 꾸준히 하시면 돼요. 어느새 5km를 넘어서 10km도 거뜬해지고, 나중에는 마라톤 참여한다고 경기를 찾게 된다니까요. 성취감이 큰 운동이에요.”

“부디 저도 이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될 거예요! 제가 이따 러닝할 때 유용한 앱도 알려드릴게요. 동기 부여에 확실히 도움이 돼요.”

“고마워요, 대리님. 아, 맞다. 출근은…… 아직 안 하신 거죠?”

“네, 아직이요. 다음 주부터 출근이에요.”

강지현은 지연의 소개로 온유 바이오 쪽에 자리를 잡게 되어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면접을 너무 잘 보셨다면서요. 궁금해서 오빠에게 물어봤더니, 면접관님 피드백이 엄청 좋았다고 하던데요?”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네요.”

지연과 강지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연의 집 어귀 골목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까만색 승용차 한 대가 굉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지연과 강지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뭐야 저 차! 골목길에서 왜 이렇게 빨리…… 대리님!”

옆으로 비켜 서려고 했지만, 워낙 빠르게 돌진하는 차를 지연과 강지현은 완벽하게 피하기가 어려웠다.

강지현이 순간적으로 지연을 벽 쪽으로 밀었지만 차는 그대로 돌진하여 사람을 치고서야 멈추어 섰다.


“으윽.”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아픔에 지연의 눈이 서서히 떠졌고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으음…….”

하지만 곧 눈앞의 하얀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고, 이어 구토감이 밀려들었다.


“지연 씨!”

힘겹게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다시 뜨자, 시야에 강현이 들어왔다.


“강현 씨……. 아야!”

지연은 일어나 앉으려 했지만 온몸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일어나지 말고 누워 있어요. 당분간 조심해야 해요. 부러진 곳은 다행히 없지만, 곳곳에 찰과상을 입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아…… 맞다. 아까 강 대리님과 우리 집 쪽으로 걷고 있는데 어떤 차가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왔어요.”

“맞아요. 차 사고가 있었고, 지연 씨와 강 대리님이 다쳤어요.”

둘을 향해 돌진하던 검은색 승용차가 번뜩 생각난 지연에게 다시금 두통이 찾아왔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자 머리에 감겨 있는 붕대가 느껴졌다.


“단순한 사고가 아닌 것 같아요, 강현 씨. 그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돌진해왔어요.”

강현이 지연을 다시 침대로 눕혔다.


“맞아요. 의도적으로 보여요. 운전자가…… 정세아였거든요.”

“정세아요?”

“마침 주변에 제가 고용한 경호원이 있었는데 좀 멀리서 지켜보게 한지라 바로 조치가 어려웠었어요. 차가 지연 씨와 강 대리님을 덮치려고 할 때, 강 대리님이 지연 씨를 벽으로 밀어서 지연 씨는 차에 치이지 않았지만, 대리님이 차에 치였어요. 다행히 골절상은 없지만 차에 치여 튕겨 나가면서 몇 곳이 찢어졌어요. 골목길이라 그나마 차가 더 속도를 못 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뉴스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이런 일들이 자신과 지인에게 일어난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강현의 이야기에 말문이 막힌 지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넘어지면서 지연 씨는 뇌진탕으로 기절해서 지금 깨어난 거예요. 경호원들이 도망치려던 정세아를 잡았고요.”

“강 대리님은…….”

“지금 옆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정세아. 이 미친 여자, 지금 어디 있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몸을 떨던 지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연행해 갔어요. 바로 수사에 들어갈 겁니다. 지연 씨는 우선 안정을 취하고 치료에 집중해요.”

그때 병실의 문의 열리고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지은이 들어왔다.


“지연아! 이게 무슨 일이야!”

웬만한 일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지은이었는데 지연이 다쳤다는 말에 너무 놀란 탓이었다.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강현 씨, 이게 무슨 일인지. 우선 부모님께는 말씀 안 드리고 왔어요.”

“네, 잠시 나가서 제가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연 씨. 눈 감고 쉬고 있어요. 본부장님과 이야기 나누고 금방 올게요.”

강현이 지연을 위해 지은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지연은 정세아가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미치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거야, 정세아?’

그 시각 경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여자 때문에 경찰서가 떠들썩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세아였다.


“이건 다 제가 운전이 미숙해서 발생한 일이라고요! 제가 왜 사람을 치려고 그랬겠어요! 아니라니까요.”

“정세아 씨, 어디서 발뺌이야! 당신이 두 사람을 향해 급발진하는 CCTV가 증거로 다 있는데. 못된 맘 먹고 그런 거잖아! 이거 완전 계획적이었구만, 이 여자?”

“난 그냥 은지연 그 여자와 잠깐 만나서 얘기하려던 것뿐이라고요! 그러다가 발견해서 가까이 가려던 것인데 차가 갑자기 급발진한 거라니까요! 왜 제 말을 안 믿어요! 왜!”

“믿을 말을 해야 믿지! 정세아 씨,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경찰이 이래도 돼? 왜 서민의 말은 안 듣고 재벌 집 딸내미만 위하냐고! 난 그저 운전 미숙으로 실수를 한 거라고! 배 속에 아기까지 있는 내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웠다는 거야! 왜 내 말을 안 믿어!”

“조사하면 다 밝혀질 거짓말을 계속하면 당신에게만 불리한 거 알지?”

“아아악! 변호사 불러! 변호사 불러달라고! 내가 아니라는데 니들이 뭔데 나를 범죄자 취급이야! 내가 변호사 만나서 다 말할 거야! 이건 나를 감옥에 보내려는 음모라고!”

 

***

변호사와 면담을 하면 할수록, 차민우는 더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도 문제가 심각했고, 고소된 여러 가지 내용 중에는 자신도 잘 모르는 일들도 있었다.

아버지 차승조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진행했던 일들의 화살이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경악스러웠다.


“좀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차민우 상무님. 이대로라면 징역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형의 기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요.”

이번 건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싶어 참여한 법무법인 소나무의 대표 변호사 윤민호.

더없이 차분한 말투의 그가 민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말도 안 돼요! 내가 도대체 형을 살 정도의 나쁜 짓을 한 게 뭐가 있다는 겁니까! 배임 횡령?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들은 부풀려진 거예요.”

“모든 걸 숨기지 않고 말씀해 주셔야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건을 파면 팔수록 대부분의 증거들이 차 상무님이 직접 계획과 실행을 했다는 정황에 힘을 실어주고만 있습니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던 윤민호 변호사는 차민우를 채근했다.


“현재 차승조 회장님은 전혀 협조를 안 하고 계십니다. 면담을 해도 화만 내시고, 자신이 진행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만 하시면서 차 상무님과 대화를 나누라는데……. 도대체 진실을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어요.”

“하아……. 아버지가 지금 그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가요?”

“결국, 두 분 중 한 분은 좀 더 무거운 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해서 이득을 취한 사람.”

변호사의 말에 차민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게 누구일까요? 잘 생각해 보세요 차민우 상무님.”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은 버려진 패 같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언제나 그랬지.

아버지가 어떤 더러운 일들을 시작할 때면 항상 끌어들이는 것은 자신이었다.


“네가 앞으로를 생각하면 좀 더 분발해야 하지 않겠느냐. 두 형들 근우와 재우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

 
김지원 여사의 자식들.

차근우와 차재우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자신은 뒷전이었다.

고상하고 좋은 일은 언제나 그들의 몫, 더럽고 힘든 일은 언제나 자신의 몫.

이번 일에서도 둘은 교묘히 빠져나갔을 것만 같아 억울하기만 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업계에서 대부분 꺼리는 건이었다.

차승조, 차민우의 비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명확한 정황과 증거가 가득했고 거기에 언론과 대중도 이들에게 등을 돌려 상황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패소가 명확히 예견되는 재계 30위 안에 들어가는 C&C 글로벌의 비리 소송.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법무법인들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변호사 윤민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누가 봐도 패소할 수밖에 없는 건이기 때문에, 오히려 패소해도 괜찮았다.

오히려 판이 좀 더 커지게, 좀 더 자극적이게 대중과 기업들에게 이 사건이 노출되기를 원했다.

이번 기회는, 작은 일들만 간간이 진행하며 점점 기울고 있는 ‘법무법인 소나무’의 이름을 큰물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차민우 상무님. 숨기고 있는 것, 혼자 알고 계신 것을 꺼내 놓으세요. 내놓지 않고 꽁꽁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똥 되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

윤민호의 목소리가 소름 돋도록 냉랭하게 들렸다.


“차승조 회장님. 몇십 년간 하실 만큼 하셨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무님은 앞이 창창하신데 한창의 나이에 모든 걸 뒤집어쓰고 어두운 감옥에서 몇 년이나 썩고 계시려고요? 그것도 본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위해서요? 자신의 손으로는 한 푼도 만져보지 못한 돈이라면서요?”

마치 에덴동산의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된다고 유혹하던 뱀처럼, 윤민호는 차민우를 유혹하고 재촉했다.


“차민우 상무님, 시간이 얼마 없으니 더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윤민호의 눈이 먹이를 앞에 둔 뱀처럼 빛났다.


“버려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버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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