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 죄와 벌 (74/85)


74. 죄와 벌
2023.04.13.



 


“어떻게 배 속에 소중한 자식을 품고 있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지? 미친 거 아니야?”

“제정신이었으면 그런 영상도 안 만들고 남의 가정 파탄도 안 냈겠죠.”

“와……. 주변에 이런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 멀쩡한 척하면서 사는 거 아니야?”

정세아의 범행과 재판 일정이 쇼킹 얼라이브에 의해 방송되면서 삽시간에 많은 커뮤니티로 공유되었고, 특히 지역 맘 카페들에서 난리가 났다.

맘 카페에서는 시위를 위해 인원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고, 1인 시위라도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녀의 범행도 끔찍했지만, 아기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계획하고 벌였다는 것에 사람들은 더한 충격을 받았고 울분을 토해냈다.


[오늘은 SNS 화제의 영상으로 유명한 정모 씨에 대한 공개 재판이 있는 날입니다. 재판정 앞에는 그녀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모여들어 시위하는 상황입니다. 시민 한 분을 모셔 인터뷰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여기 오신 이유가 있으시다면 짧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정모 씨에 대한 엄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되어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도덕관념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SNS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도 모자라 임신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아기는 뒷전이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려 몸을 던진 사람입니다. 절대 사회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아기가 태어나면 그녀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방금 인터뷰하셨던 분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 분들이 나와 정모 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KNN 뉴스, 장하리였습니다.]

정세아가 경찰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자 모여 있던 인파가 우르르 그녀 쪽으로 모여들었다.


“범행을 인정하십니까?”

“계획범죄라고 하던데 언제부터 계획하셨습니까?”

“피해자에게 미안하지는 않으십니까?”

가까이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취재진과 사람들의 야유 소리에 세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세아가 벌인 일도 큰 이슈였지만, C&C 글로벌 차민우 상무의 내연녀. 거기에 SNS 최고 화제의 콘텐츠의 주인공인지라 다양한 매체의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쇼킹 얼라이브 팀도 있었다.


“정세아 씨! 저희 쇼킹 얼라이브에 제보하실 때 거짓말을 하신 걸 텐데요.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쇼킹 얼라이브라는 소리에 정세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곧이어 소리가 나는 쪽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야! 이 나쁜 자식들아! 너희가 나를 이용했어! 나를! 이건 다 너희 때문이야!”

하지만 경찰들에게 양팔을 잡혀 있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수많은 매체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앞서 제출한 증거 자료에서 보셨듯이 정세아는 피해자 은지연 씨를 찾아가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였고, 은지연 씨의 소재를 파악하자 바로 차량을 렌트하여 찾아갔습니다.”

세아의 범죄를 조목조목 나열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재판정 안에 울렸다.


“정 씨가 주장하는 차량 급발진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차량 전문가에게 차량과 블랙박스 영상, 그리고 주변 CCTV를 검토하여 본 결과 정 씨는 액셀러레이터만을 밟았을 뿐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차량 결함도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출되었지만, 결정적 증거가 될 블랙박스 영상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곧 검찰 측의 증거 영상이 앞쪽에 준비된 디지털 스크린에 나왔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분명히 매주 이 시간에 어디선가 뛰다 온다고 했는데…….]

정세아의 초조한 목소리와 함께 이제 막 동이 터오고 있는 차량 밖의 풍경이 화면에 보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울리는 벨 소리에 정세아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응, 응. 나야 잘 있지 뭐. 내가 지난번에 메시지 보낸 것처럼 이번 주에 집에 좀 내려가려고. 응, 이번에 가면 6개월 정도 있으려고 해. 내가 저번에 말한 방 구해놨지? 응, 돈은 내가 내려가면 줄게. 알았어. 이따 다시 전화할게.]

짧게 통화를 끝내고는 한동안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은지연 집안에서 돈을 써서 날 죽이려는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일 리 없지. 은지연이 문제야 항상.]

이렇게 말하던 순간이었다.


[은지연……. X발! 넌 내 평생의 원수지.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그렇게 말하는 세아의 목소리와 함께 급하게 출발한 차가 정면에서 걸어오던 두 사람을 곧 덮쳤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지현이 붕 떴다가 떨어지는 모습이 영상에 보였다.


“영상에서 보셨겠지만, 피고 정세아는 계획적으로 은지연 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고 은지연 씨와 함께 있던 강지현 씨를 치어 전치 6주에 해당하는 상해를 입혔습니다. 만약 강지현 씨가 기민하게 행동하지 않으셨다면 사망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이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할 목적으로 모친에게 지방에 방을 구해두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검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을 찌르는 것 같이 느껴지자 세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그저 화가 잠시 났던 것뿐이라고!’

“피고인은 모든 증거 자료가 명백한데도 범행에 대해 부인하며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본 검찰은 피고인 정세아에게 계획 살인미수로 징역 15년을 구형합니다.”

“말도 안 돼!”

검찰의 구형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는 정세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녀의 변호사가 세아를 자리에 다시 앉혔다.


“피고인 측, 마지막 변론하시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찰 측 변론에 많은 부분 동감하는 바입니다. 정세아 씨는 계획적으로 은지연 씨를 찾아내었고 찾아가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검찰 측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계획적인 살인을 꾀한 것이 아닌 은지연 씨와의 대화를 위해 방문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그녀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순간적인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나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계획된 일이 아닌 우발적인 일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웃기고 있네! 이런 게 계획이 아니면 뭐가 계획이라는 거야.”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고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판사가 엄숙하게 장내 방청객에게 말하였다.

정세아는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 아닌 꿈만 같았다.


‘이건……이건 꿈이야. 내가 징역을 산다고?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은지연 그년 때문에?’

“사건번호 20XX123XX에 대한 판결하겠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읊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방청객들이 조용해졌다.


“피고 정세아는 피해자의 신변을 알아내려 사람을 고용하고, 범죄 이후 도주의 목적으로 집을 알아 놓는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자신이 벌인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으며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 임신한 상태로 불안정한 감정의 기복으로 인한 순간적인 판단을 잘못한 점도 인정된다. 하여 본 법정은 피고인 정세아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다.”

방청객에게서 술렁임이 일더니 어느새 야유 소리로 변했다.


“누가 봐도 계획적인 살인미수인데 징역 7년이 뭐람. 법이 왜 이래!”

정세아는 믿을 수 없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7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니.


“변호사님, 7년이라니. 이건 잘못되었어요. 그렇잖아요. 무슨 차 한번 잘못 몰았는데 이렇게 나와. 빨리…… 빨리 잘못됐다고 뭐라고 좀 해봐요. 항소도 해야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던 세아의 고갯짓이 점점 더 거칠고 격해졌다.

이건 말이 안 되었다.


‘감옥이라니, 내가 감옥이라니!’

벌벌 떨리는 손을 뻗어 변호사의 팔을 거세게 붙잡았다.

변호사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붙잡힌 팔을 떼어냈다.


“정세아 님, 요즘에는 항소심에서 더한 구형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세아 님처럼 명백한 증거들이 넘쳐나는 이 상황에 항소는 제 살 깎아 먹는 일이라고 할까요. 만약 항소심을 원하신다면 다른 변호사와 준비하세요. 저는 오늘 최소 10년 이상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7년이라. 잘 나온 것 같은데요. 이 이상은 무리예요.”

세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변호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제발 마음 곱게 쓰시고, 안에 계시는 동안 변화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정세아 씨 변호를 맡았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못되게 살면 안 돼요. 안에 있으면서 좋은 마음으로 살고 계시면 가석방의 기회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변호사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재판정 입구로 향했다.

변호사의 대답에 절망한 세아가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이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잠시 후, 옆쪽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세아의 양팔을 포박하듯 붙잡자, 퍼뜩 정신을 차린 세아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건 잘못됐어. 잘못됐다고! 난 못 가. 난 못 간다고!”

세아는 눈물을 쏟아내며 주저앉아 어떡해서든 버티려고 했지만, 양팔을 잡은 사람들의 힘은 당해내기 힘들었다.

그녀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재판정에서 사라졌다.


 
방청석 구석 끝 쪽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던 지연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사고의 트라우마가 심한 듯, 강지현은 이 과정을 보고 싶지 않다며 참석하지 않았기에 지연 혼자 참석했다.

지연의 가족은 그런 지현에게 온유 제약 계열 병원에서 전문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그녀의 치유를 돕기로 했다.

7년, 예상했던 것만큼 형이 나왔다.

아니, 뭐가 적정한지 모르겠다.

부디 그 시간 동안 그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막 끝났어요, 강현 씨.”

지연은 재판정을 나서며 강현에게 전화하였다.

강현이 함께 오겠다고 했지만, 지연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함께 갈 걸 그랬어요, 지연 씨.

“아니에요, 혼자 오길 잘한 거 같아요. 기분 좋은 일도 아니고.”

-정세아는 합당한 벌을 받았나요?

“저도 법은 잘 모르겠지만. 재판장님께서 합당하게 벌을 내리셨다고 믿고 싶어요. 그녀가 충분히 교화될 수 있는 시간을 구형하셨다고…… 바랄 뿐이에요.”

-그러셨을 거예요. 저도 그러길 바랄게요. 자, 그럼 이제 어디로 가나요 지연 씨는?

“음…… 모르겠어요.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 다 벌을 받았다고 생각되는데 마음이 왜 이렇게 헛헛한지.”

-그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 대한 벌을 받은 거예요. 괜한 죄책감 느끼지 말아요, 지연 씨.

알고 있었다.

차승조, 차민우 그리고 정세아.

모두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일들을 벌였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은 것임을.

하지만 그 과정에 계속 자신이 함께했다고 생각하니 씁쓸함과 답답함이 가슴을 채웠다.

이제는 끊긴 인연이었지만, 수년간 함께하거나 알아 왔던 이들이 구속되고 몇 년씩 감옥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를 괴로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오늘은 지연 씨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금 집으로 가요. 저도 바로 퇴근해서 지연 씨 집으로 갈게요.

“강현 씨,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런데 당신 많이 바쁘잖아요.”

차마 강현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지연이었다.


-당연히 그래도 돼요. 이러려고 평소에 밤새워가며 일하는걸요. 그제도 새벽 4시까지 일했어요. 그동안 차곡차곡 열심히 비축해뒀으니 오늘 몇 시간쯤 일찍 나가도 됩니다, 은토끼 씨. 그러니 집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요!

“알겠어요, 강현 씨. 기다릴게요.”

강현의 따뜻한 말에 한시름 놓은 지연이었다.

오늘만큼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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