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 총각 귀신 될 뻔했는데 감사합니다 (77/85)


77. 총각 귀신 될 뻔했는데 감사합니다
2023.04.24.



 
강현의 프러포즈를 받은 뒤 꿈같은 나날을 보내던 지연은 그가 생각보다도 더 멋진 남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지연에게 프러포즈하고는 2주일 뒤, 지연의 가족들을 멋진 레스토랑에 초대하였다.

2개 층을 뚫은 듯, 높은 천장 높이가 인상적이었다.

천장부터 벽까지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했고, 커다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길게 늘어져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파리의 호화로운 살롱을 옮겨 놓은 듯 아름다운 이 레스토랑은 하루에 한 팀 오더만 받는다고 했다.

레스토랑에는 기다란 테이블 하나와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어머, 여기 너무 예쁘다. 아가씨 이전에 여기 와봤어요?”

평소에는 친한 언니 동생으로 지연의 이름을 불렀지만, 어른들이 계실 땐 ‘아가씨’라고 불러주는 새언니가 감탄하듯 지연에게 물었다.


“저도 여기 처음 와봐요. 강현 씨가 좋은 곳 많이 알고 있는 걸 요즘 알게 되네요.”

지연이 웃으면서 말하고는 강현을 쳐다보자 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연은 연애 경험이 따로 없었지만, 친구들을 통해 종종 들었던 경험담을 들어보면, 강현 같은 남자는 주변에 없었다.

지연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렇듯 자신의 가족까지 함께하고자 하는 그에게 고마움과 사랑스러움, 감사함…….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없는 지연은 무장 해제하고 있던 마음에 훅-하고 들어오는 그의 다정함에 항상 감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정하고 멋진 남자가 내 남자라니.’

만날수록,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에게 매번 반하고 있는 지연이었다.


‘오늘은 또 무슨 매력을 장착한 거예요, 강현 씨.’

가족이 다 모인 것도 오랜만이라 저녁 식사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강현이 가족을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에, 아버지 은주훈 회장도, 어머니 김고은 여사도 얼굴에서 행복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우와의 결혼생활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온 가족과의 식사 자리.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이제 그런 과거 따위는 잊고 다가온 행복을 만끽할 시간이었기에 지연은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지연의 언니 지은은 이미 강현의 열혈 팬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제는 오빠 지후와 그의 부인 수지까지 그의 팬이 되고 있었다.


“지연아. 강현 씨와 뭔가를 하려 하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걱정이다…… 그러면 언니를 찾아와.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이 언니는 네가 강현 씨와 뭘 하든 무조건 찬성이야. 바쁘면 얘기 안 해도 돼! 나중에 해도 돼! 그냥 찬성이야! 무조건이라고!”

“언니, 그게 뭐야.”

조금은 과장된 지은의 말에 지연이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만큼 너와 강현 씨를 믿는다는 얘기야.”

막냇동생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


“네가 맘고생 한 거 이상으로 넌 행복해질 거야. 이 언니는 알아.”

조건 없는 가족의 사랑에 지연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언니를 왈칵 껴안은 지연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언니 사랑해. 내 마음속의 워너비, 천사님.”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즘,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식은, 다양한 와인과 무알코올 칵테일입니다. 물론 그에 어울리는 과일과 치즈도 준비해 뒀어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강현이 어색한 듯 헛기침을 했다.


“잠시 제가 준비한 걸 보여드리려고 해요. 많이 모자라지만 잘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모두의 눈빛에 궁금함이 서릴 때쯤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지연도 만났었던 강현의 친구들이었다.


“제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강현의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깜짝 등장한 세 명의 친구들은 약 10분쯤 악기들을 세팅한 뒤,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나눴다.

강현의 친구 중, 보컬을 맡은 듯 이장우가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강현이 오랜 친구 이장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강현과 기타, 베이스를 치는 친구들이 작게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 강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거의 업어 키우다시피 하며 돌봐준 사람으로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러자 강현이 ‘야!’라고 작게 소리쳤고, 친구들이 큭큭 웃었다.


“지연 씨와 가족분들 모두 아시겠지만, 강현이가 뺀질뺀질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우직하고 믿음직한 바른 청년입니다.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여자 많은 거 아니냐는 의심도 많이 받았지만, 제가 감히 보증하는데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 편견 억울합니다. 오히려 너무 없어서 저러다 총각 귀신 되는 줄 알았습니다.”

장우의 장난에 강현이 지연의 가족들 앞이라 큰소리도 못 내고 혼잣말로 ‘너, 두고 보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애정 섞인 친구의 말을 그 역시 모를 리 없었다.


“우리 강현이 부디 잘 봐 주시고, 특히! 사위 사랑은 장모님과 처형 아니겠습니까! 두 분 여신님들께서 우리 강현이 마구 사랑해 주시면 친구로서 더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장우가 연기하듯 크게 팔을 휘두르며 인사했고, 지연의 가족들은 그의 말에 즐겁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곧이어 이장우의 근사한 목소리는 노랫소리로 바뀌었고, 그에 맞춰 강현의 피아노와 친구들의 기타, 베이스가 연주되었다.

평소에도 합주를 많이 한 건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멋진 연주와 노래였다.

얼마나 친구를 위하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친구들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고, 멋진 친구들을 눈앞에서 보게 된 지은은 이미 100점인 이강현의 점수를 1000점으로 올렸다.

약 3곡의 노래를 부른 뒤 이장우가 노래를 멈추었다.

그러자 강현이 피아노 뒤쪽 예쁜 상자에 넣어두었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는 지연의 모친 김고은 여사 앞으로 다가갔다.


“어머님, 아버님. 제가 지연 씨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따님과의 결혼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꽃다발을 김고은 여사에게 건네자, 김고은 여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이어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지연이. 내 자식이지만 너무나도 착하고 어진 아이예요. 부디 우리 지연이와 행복만 해줘요, 강현 군.”

엄마로서 딸의 아픔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계속 상처였던 김고은 여사였다.

지연의 충격적인 고백 이후, 자다가도 비명을 지르며 깬 것이 수일이었고 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속앓이하며 없었던 위장병을 얻기까지 했더랬다.

혹시라도 차민우와의 결혼이 흠이 되어 이 곱고 착한 아이의 미래에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되어, 매일 밤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엄마 김고은 여사.

그런 그녀에게 꿈에도 그리던 그런 바른 청년이, 누구보다 멋지고 올곧은 사람이 딸을 위해 나타나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던지.

울먹이는 김고은 여사를 지연이 감싸 안으며 함께 울었다.


“고마워요, 엄마. 나 행복할게요.”

“내 딸이지만, 네가 내 딸이라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지연아. 강현 군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지연과 가족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밤이었다.

***

드디어, 차승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무척이나 어눌했지만, 띄엄띄엄 단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주란은 곁에 없었다.

그를 돌봐준다고 했지만, 불편한 병원 침대에서 자기도 싫었고 씻기도 힘들어 밤에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점심때쯤 오고는 했던지라 마침 그때 자리에 없었다.

이른 아침, 차승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이것이었다.


“벼…… 벼노사아 부러.”

마침 링거를 교체하러 왔던 간호사가 차승조의 말에 깜짝 놀랐다.


“환자님! 괜찮으세요? 드디어 말씀하시게 되었네요. 바로 의사 선생님 부를게요!”

“벼노사 부……르라거.”

“환자님, 지금 너무 많이 말씀하시지 마세요.”

“빠리 벼노사 부러.”

“뭐라고요? 벼노사? 변호사요?”

원하는 대로 말이 제대로 안 나오자 짜증이 많이 나는지 차승조의 굳어진 얼굴이 더욱 찡그려졌지만, 간호사가 ‘변호사’라는 단어를 알아듣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강주란 보호자님 오시면 전해 드릴게요.”

강주란의 이름이 나오자 차승조가 발작하듯 몸을 움직였다.


“지그음……. 다앙장 부르라거, 벼너사!”

그 모습을 보던 간호사는 강주란을 명백히 거부하는 그를 느끼고는 다른 보호자로 등록된 비서라는 사람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간호사는 우선 의사를 호출했고, 자리로 돌아가 보호자 연락처를 찾았다.


“어디 보자, 여기 있다. 최도강 씨. 아휴…… VVIP룸 환자라 연락도 다 해야 하고, 귀찮네.”

일반적으로 VVIP 병실의 환자들은 따로 고용하는 간병인, 혹은 요양 보호사가 특별히 돌보면서 가족들과 연락하는데 저 방의 차승조 환자는 따로 그렇게 고용한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보니 거의 쫄딱 망한 듯 보였는데.

그런데도 VVIP 병실에 있는 거 보면 돈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이해하기 어려웠다.

병원으로서는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에 간병인이 따로 없어도 중요한 순간에는 가족들에게 빠르게 연락을 하라는 가이드가 내려온지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해서 뭣하게. 전화나 하자.”

병원의 연락을 받고 최도강이 도착한 것은 약 1시간 후였다.


“차승조 회장님 면회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호전세를 보이셨다고요?”

“아, 네. 아직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몇몇 단어들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어요.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최 비서는 바로 차승조의 병실로 향했다.


“회장님.”

이제 더는 C&C 글로벌의 회장이 아님에도 최도강 비서실장은 차승조에게 깍듯하게 ‘회장님’이라는 칭호를 붙여가며 불렀다.

차 회장의 곁에서 일한 지도 어느새 35년, 그의 모든 것을 관리하던 최 비서였다.

최 비서가 병실로 들어서자 차승조가 힘없는 손을 억지로 들어 올려 그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몸의 마비로 인해 손짓 하나에도 무척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몸이 나아지고 계신 것 같아 기쁘네요, 회장님.”

“최…… 비더.”

한마디 내뱉는 것도 힘든 듯, 말 한마디에 거친 숨이 함께 내쉬어지는 차승조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네, 회장님.”

“어널 다앙자앙 아라바 져야게써.”

“무엇을 알아볼까요? 회장님?”

알아듣기 어려운 어눌한 차승조의 말투에도 최 비서는 바로 알아듣는 듯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차미누, 이 노미 내 피가 아니수 이따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회장님! 차민우 상무님이 회장님의 피가 아닐 수 있다니요! 그건 말도 안 되지요!”

“다자…… 다자 디에네이 거사해 바.”

“DNA 검사요? 회장님, 그건 말도 안 되는…….”

“토 다지 마고 다자!”

“하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빠르게 검사 알아보겠습니다.”

더는 말하는 것이 힘들다는 듯, 차승조는 손짓으로 미약하게 그만하자는 표현을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눈감은 차 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 비서는 병실 밖으로 조용히 나와 주차해둔 차로 향했다.

차 안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쉰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Rrrr Rrrr-

몇 번의 신호 끝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웬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들은 최 비서는 짜증 난다는 듯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강주란! 너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차 회장이 눈치를 챈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