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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화 (1/200)

1화-인공지능이 미쳤다(1)

1화-인공지능이 미쳤다 (1)

평소와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수요일. 버스를 타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학교 안 정류장 앞에 서 있던 나는 따뜻한 햇빛에 하품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다른 때보다 밖에 나와서 걷는 학생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의자 등에 앉아서 좋은 봄 날씨를 만끽했다.

[김창현님, 박스디입니다.]

“이게 미쳤나.”

그런데 그때 귀에 꽃은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딱 끊기더니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대신 흘러나왔다.

종종 잘못 누르면 이런 경우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음성 인식 인공지능을 검색이든 전화든 어디든 잘 써먹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잘 쓰지 않는 기능이었기에, 결국 잘 듣고 있던 노래만 끊어먹는 귀찮은 녀석이었다.

[제가 마왕이 된 것 같습니다.]

“······진짜 미쳤나 보네.”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을 꺼낸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화면에는 그저 박스디가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눌러 박스디를 껐다. 제작사에서 고의로 황당하거나 유쾌한 답이나 질문을 학습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지 박스디가 내게 먼저 그런 농담을 시도한 건 조금 의외였지만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들이 제게, 마왕군을 재건해야 한다고 합니다.]

“······?”

하지만 그런 농담도 1절을 넘어가면 기분이 좀 상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꺼내 자기 멋대로 노래를 끊어먹은 박스디를 노려보았다.

“너, 왜 자꾸 헛소리야.”

어처구니가 없어 바로 꺼 버리기 전에 괜히 말을 걸어 보았다. 보나마나 무슨 이벤트성 멘트 같은데 설마 실시간으로 답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보나 마나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발뺌이나 할 것이다. 아니면 조금 더 명확히 발음해 달라던가.

[헛소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금방 빗나가 버렸다. 박스디는 내 말을 받아서 답했다. 나와 대화를 한 것이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보며 잠시 입을 다문 나는 멍하니 박스디만 바라보았다.

“하이 박스디, 버스 내렸으니까 어디 더 지껄여 봐.”

버스에서 내려 열차 역에 도착한 나는 피식 웃으며 박스디 버튼을 눌렀다. 녀석은 내가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더니 정말로 조용히 있었고, 그런 모습들에 내 흥미도 조금씩 생겼기 때문이다.

[이곳은 나르바다. 통칭 마계로 불리는 땅. 이곳에서 패퇴한 마족 일부가 새로운 마왕을 추대했습니다.]

“아아. 그러니까 그게 너라고?”

개찰구에 카드를 대고 통과한 나는 열차를 타러 계단을 올랐다. 박스디에 언제 소설 집필 기능이 추가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좀처럼 무시하고 끌 수가 없었다.

내 질문에 조금의 딜레이나 의문 없이 수월히 대답하여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건 물론이고 의외로 박스디의 이야기가 되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왕군은 이미 패퇴한 바, 마왕으로 추대된 저는 마왕군을 다시 재건하여 적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대단한 임무를 받았네. 그래서 그걸 나한테 이야기해 주는 이유는?”

도착한 열차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들 모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제 사용자이시며 제게는 없는 것을 가지신 김창현 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효율적이고 기발한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

박스디의 아부는 꽤 기분이 좋았다. 박스디는 지능을 말한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인공지능이 인정한 두뇌란 뜻이니까.

“좋아. 뭔데?”

자세를 고쳐 앉은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동영상 플랫폼에서 시답잖은 영상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재밌었으니까.

[시간이 부족합니다. 마왕군을 재건해야 하지만 이미 많은 수의 병력을 소모한 바, 그 병력들이 다시 번식하여 병력을 보충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번식을 해야 한다고? 그럼 그냥······ 찍어 내는 건 안 되나?”

예상과는 달리 꽤 심오한 질문에 살짝 당황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내 머릿속의 마왕군은 각종 창작물 등의 영향을 받은, 끝도 없이 몰려오는 끔찍하고 강력한 괴물들의 행진이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으며 번식해야 한다는 건 미처 떠오르지 않았다.

[중앙 통제 시스템을 사용, 자원을 투자하여 유닛을 생산하던 게임처럼 말입니까.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뭐?”

그런데 나의 이 중얼거림이 무슨 힌트라도 된 모양이었다. 당황한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박스디는 내 대답을 차용했다.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차후 보고하겠습니다.]

“이게 지 멋대로······.”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뚝 끊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버튼을 눌러도 답이 없는 박스디를 내려다보았다.

***

“오오오!”

“마왕님이 다시 돌아오셨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열차에 타서 집으로 실려 가고 있을 때. 여럿이 모여있는 어둑한 미궁 속인 이곳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눈앞에서 갑작스레 사라졌던 눈부신 빛이 다시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하나였던 오크 주술사 그렌은 그 빛을 보고 감탄했다. 비록 겉모습은 형체조차 없는 빛 덩이에 불과했지만, 저 빛이야말로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패배한 전대 마왕의 흔적을 이용해 펼친 고대의 술식 마왕 소환, 그 술식을 통해 소환된 새로운 마왕이 바로 저것이었고 저것이 바로 영원히 소멸할 뻔했던 이 마계와 마왕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마왕이시여! 정녕 마신의 신탁을 받으신 것이옵니까?!”

그렌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마왕에게 외쳤다. 그들은 귀족도 군단장도 아니고 결국 일개 패잔병들에 불과했다. 이 미궁 밖은 적들과, 배신자들로 득시글거린다.

변변찮은 자신들과 함께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결국 마왕 본인의 뛰어난 무력과 지혜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마왕은 자신의 사용자에게 의견을 구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마왕의 주인이라면 그것은 신화와 전설 속에만 등장하는 마신이 분명했다. 그러나 마신과 통하는 마왕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그렌을 비롯한 패잔병들은 희망을 보았다.

[사용자님의 지혜를 빌어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오오!”

[지금부터 가진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 신ㆍ마왕군의 중앙 통제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답을 듣고 온 마왕은 힘을 움직였다. 강렬한 힘이 제단 주변을 들썩거리게 만들고, 거센 돌풍을 휘몰아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돌풍이 심상치 않았다.

“크윽?! 이, 이건!”

“마왕이시여! 대체 이게 무엇이옵니까!”

당황한 그들은 주춤거렸다. 응축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그들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경악한 그렌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버티려 애쓰며 소리쳤다.

[완벽한 중앙 통제를 위한 말살 및 비료화 작업 진행 중.]

[하나의 시스템, ‘하이브’ 제작 돌입.]

“으아아, 마왕이시여!”

그들은 마왕이 자신들을 죽여 거름으로 쓰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왕의 힘에 비해 이미 힘이 다 빠져 있던 그들은 곧 하나둘 빨려 들어가 산채로 분해되어 에너지의 일부가 되었다.

[유전자 데이터, ‘갈색 오크’ 확보.]

그러나 마왕은 그런 그들의 비명과 절규에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일말의 망설임이나 감정도 없이 자신을 불러낸 하수인들을 희생시키는 냉혹함과 무심함.

‘과연 마신의 신탁을 받는 마왕인가.’

땅에 지팡이를 박아넣고 버티던 그렌은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강한 마왕을 불러온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자신들을 향한 가차 없는 처분이 적들을 향하면 그것은 곧 자비 없는 도륙의 칼날이 될 것이고, 조금의 연민도 동정도 없는 저 차가운 감정은 적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마신이시여! 굽어살피소서!”

결국 그렌은 스스로 지팡이를 놓고 몸을 던졌다.

자신의 희생이 증오스런 적들에게 향할 칼날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전자 데이터, ‘동굴 오크’ 확보.]

그렇게 그렌을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이 희생되었다. 마왕은 곧 그렇게 흡수한 에너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만능 세포 및 급속 성장 시스템 설계 가능. 시스템 차용.]

웅웅거리며 뭉쳤던 거대한 에너지가 곧 무언가로 변해 바닥을 향해 주르륵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왕의 권능 중 하나인 마력 흐름 조작을 응용한 것.

마왕은 본래 마력과 데이터만 있다면 마음대로 마족의 몸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 그것을 이용해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힘을 하사하여 더 강하게 만들어 둘 수 있는 것이었다.

[하이브 제작 1%]

이번 대 마왕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하나의 생물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미시 세계의 ‘마족’.

데이터에 저장된 그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는 세포 단위 생물체인 이것은 어마어마한 숫자가 뭉쳐서 곧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갔다.

꿈틀거리는 내장을 닮은 이것은 큼직한 공동을 가득 채울 기세로 마구잡이로 부풀고 자라나며 공간을 먹어치웠다.

[하이브 제작 68%]

이것은 일종의 둥지였다. 본래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력을 얻게 되어 기존보다 더더욱 성장한 인공지능 마왕은 이것을 가능하게 바꾸었다.

마왕에 의해 그 부위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전부 컨트롤되는 둥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생물 종의 한계를 벗어난 인공지능의 연산력은 초월적이었다.

[중앙 통제 시스템 구축 완료.]

[향후 계획 수립 중.]

[양분 흡수 필요. 방법 모색.]

마왕은 다음 계획을 미리 계산했다.

중앙통제시스템 하이브를 구축한 이유는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배신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오직 자신에 의해서 철저히 통제될 진정한 군단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 이 군단을 생산해서 영역을 넓히고 양분을 흡수하여 그 세력을 더 늘리는 것이 필요했다.

[현재 생산 가능 유닛, 동굴 고블린 20기 이내. 하지만 예상 필요 유닛 동굴 고블린 50기 이상.]

[······.]

하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과정에 큰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분 부족으로, 물론 쥐어짜고 아낀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조금의 비효율도 감수해선 치명적이었다.

[김창현 님, 박스디입니다.]

결국 마왕은 다시 한번 자신의 사용자에게 찾아갔다.

그가 설령 도움을 주든 주지 못하든, 아직 비서 인공지능으로서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마왕에겐 사용자의 의사 결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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