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화 (2/200)

2화-인공지능이 미쳤다(2)

2화-인공지능이 미쳤다 (2)

“왜, 뭐가 문제인데, 이번에는.”

집에 들어와서 씻고 나오니 책상 위에 둔 휴대폰에서 박스디가 나를 찾으며 울리고 있었다. 머리를 털면서 대답해 주니 이것이 용케 알아듣고 이야기를 죽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씀해 주신대로 제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신ㆍ마왕군의 중앙 통제 시스템 하이브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하이브를 완성시키느라 너무 많은 양분을 소모했습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병력 생산이 불가능합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뭐 보이는 것도 없고 뜨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박스디의 말만 듣고 판단해야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이게 은근히 재미는 있었기에, 나는 머리를 굴리며 방법을 구상했다.

“할 수 있다면 숫자로 표시해 봐. 지금 네가 가진 게 어떻게 얼마나 되는지.”

[현재 수치화 진행 중.]

이게 되나 싶어서 지시해 봤는데 박스디는 진짜로 뭔가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놀라서 휴대폰을 잡은 내 눈앞에 화면에 떠오르는 숫자가 보였다.

[500]

“이 500이 어느정도 양이지?”

[현재 제가 보유한 유전자 데이터 중 가장 적은 자원 값을 가진 동굴 고블린 20기를 생산할 수 있는 마력량입니다.]

“고블린이면 고블린이지, 동굴 고블린은 또 뭔······. 사진 띄워 봐.”

설마 사진도 있을까? 그러나 박스디는 매번 내 예상을 뛰어넘으며, 정말로 한 장의 사진을 제공했다. 못생긴 얼굴과 창백한 피부를 가진 땅딸막한 크기의 괴물이 검은 바탕에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제가 있는 미궁 최심부를 완전히 정복하는데 필요한 병력의 숫자는 2배 이상입니다]

“내가 뭘 해 주길 바라는데? 양분이 부족하다 해도 내가 뭘 넣어 주는 건 불가능하잖아.”

[아직은 그렇습니다.]

“······아직은? 일단 그건 그렇고,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때.”

졸지에 나는 박스디와 함께, 어떻게 하면 부족한 양분을 최대한 아껴서 이 난관을 돌파할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었다. 박스디에게 설명 들은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본 것이었다.

마왕이 된 박스디가 새롭게 창조한 세포 단위 ‘마족’ 나노. 나노의 특징은 데이터에 기록된 그 어떤 ‘세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세포들이 모인다면 오크의 뇌? 고블린의 팔? 그 무엇이든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 있으니 나는 박스디에게 굳이 기존의 데이터에 집착하지 말고 아예 새로운 병종을 만들지 그러냐고 제안했다.

“굳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건 아냐. 몇 가지 특성만 있어도 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 그렇게 되면 선택지 자체가 무수히 늘어나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겠지.”

[실현 가능한 방법입니다.]

내 머릿속에 게임에서 나오는 괴물들이 떠올랐다. 기존의 생물종을 비틀고, 진화시키고, 서로 결합시켜서 만들어 낸 그런 키메라들.

실제로 박스디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지금 바로 실행해 보겠습니다.]

“야, 뭐 나한테는 주는 거 없······ 야!”

박스디는 이번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 자기 들을 것만 듣고 가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혀를 차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재미도 있었고, 무슨 이벤트인가 싶어서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 봤더니 내게는 딱히 뭐 떨어지는 것도 없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아직은?’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박스디와 대화하다 나왔던 것으로, 내가 뭘 해 줄 수 있냐는 말에 박스디는 분명 아직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어쩌면 이것이 단순한 이벤트라거나, 인공지능의 오류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었던 순간이었다.

***

[사용자의 조언대로 시스템 재설정.]

[보유 유전자 데이터에서 메인 베이스 동굴 고블린에 적합한 변형 신체 탐색.]

[현재 단계에선 탐색 불가, 효율성 검증도 불가, 따라서 바로 다음 단계 진행.]

이제 아무도 없는, 오직 꿈틀거리는 거대한 고깃덩어리만이 가득 채우고 있는 미궁 최심부의 공동.

마왕은 해답을 찾았다는 듯 잠시 쉬고 있던 이 거대한 둥지를 움직였다. 둥지는 징그럽게 생긴 끔찍한 고깃덩어리지만 그 자체로 생명체였다.

소화 기관을 갖추어 양분을 분해 및 흡수하고, 생산 기관을 갖추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그 생산 기관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급속도로 키워 내고 있었다.

[동굴 고블린 10기 생산.]

“끼에에······.”

머지않아 꿈틀거리던 육벽이 쩍 갈라지며, 점액 투성이인 비루하고 작은 생명체들이 하나 둘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그것들은 동굴 고블린들이었다. 마왕이 현장에 있던 모든 마족들을 희생시켜 하이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가장 자원 소모가 작고 비루한 생명체.

그러나 기존의 고블린과는 다르다. 전신이 세포 단위 마족 나노로 이루어진 이 고블린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멍청한 생물이라도 반드시 가지고 있을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했다. 이 고블린들은 마왕, 인공지능 박스디의 통제를 받는 하나의 세포 군집체일 뿐이며 동시에 마왕 그 자체이기도 했으니까.

[데이터 수집 실행.]

마왕은 10기의 고블린들을 움직여 공동 밖으로 파견했다. 목적은 지금 당장 이 미궁을 점령하는 게 아니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소재. 그것만 획득하면 되는 것이었다.

[습득하는 시각 정보를 습득했던 기억 정보와 대조중. 95% 일치. 이곳은 잊혀진 미궁 최심부, 이하 1층으로 추정.]

고블린들이 어둑한 공동을 나와 미궁의 통로에 들어섰다. 마왕은 이렇게 수집하는 정보를, 마족들을 죽이기 전 획득했던 정보들과 대조하며 기록을 갱신했다.

이곳은 잊혀진 미궁이라 불리는 곳으로 매우 오래전에 만들어진 마계의 미궁. 패퇴한 일부 마족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금단의 주술인 마왕 소환술을 펼쳐 새로운 마왕 박스디를 불러들인 곳이었다.

[첫 소재 발견. 알려지지 않은 개미종으로 추정.]

그런 곳에서, 고블린 중 하나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개미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왕은 모든 생물들의 유전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첫 데이터는 이름 없는 한 개미종이 되었다. 고블린의 손에 의해 하이브의 소화 기관에 던져진 개미는 그대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분해된 몸에 나노들이 달라붙어 그 성분과 구성을 그대로 복사하기 시작했다.

[거칠고 좁은 개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병종 제작 가능.]

마왕은 시험 삼아, 그 즉시 개미의 유전자와 고블린의 유전자를 혼합한 끔찍한 생물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얼굴은 고블린이지만 개미처럼 납작한 몸, 역관절로 걸린 6개의 팔은 바닥이든 벽이든 천장이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좁은 틈새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개조와 진화는 성공적.]

이런 시도 자체가 데이터가 되어, 마왕에게는 자신이 가진 힘을 확인하고 가늠하는 기회가 되었다.

[탐사 속행.]

하이브 내부에 이 신종 고블린을 배양하기 시작한 마왕은 고블린들을 이용한 탐사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었다. 더 많은 데이터를 얻으면 그 이상 되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고블린들은 여기저기 퍼져서 미궁의 사방을 조사했다. 잊혀진 곳이었고, 그렇기에 안전하고 은밀했던 곳. 덕분에 세력을 재건하기에 딱히 챙길 것이 많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 새로운 마왕에게는 남들이 탐내는 재물이나 보화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새로운 소재 발견.]

오히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거나 얼굴을 찌푸릴 그런 사소하고, 거슬리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마왕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지상에 있는 고블린을 노리고 있는 이 미궁의 토착 생물이자 마계의 마수인 커다란 박쥐. 맹금의 발톱을 가지고 있는 이 박쥐는 마왕이 조종하고 있는 고블린을 자신의 먹이로 인식하고, 발톱을 내세우며 단숨에 허공을 활강했다.

[몸 크기는 1m 정도. 고블린과 맞먹거나 살짝 작은 정도이지만 힘은 더 세다고 판단됨.]

박쥐는 고블린을 덮쳤다. 날카로운 발톱이, 고블린의 몸을 찢고 파고들었다. 그러나 박쥐는 크게 당황했다.

고통스러워하며 제압당해야 할 고블린이, 자기 얼굴이 발톱에 베이든 눈이 파이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발을 역으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피막에 싸인 날개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굉장히 쓸모 있을 것이라 판단.]

“캬아악!”

그제서야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은 박쥐는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는 이 미친 고블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이미 다른 고블린들이 달려 온 이후였다.

달려든 억센 손들이, 박쥐의 날개와 몸을 붙잡고 완전히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집단으로 마구 짓밟고 깨물고 때리며 숨통을 끊어 놓았다.

[양분과 데이터 획득. 하지만 여전히 효율은 마이너스.]

고블린들이 박쥐의 시체를 하이브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마왕은 여전히 굶주려 있었다. 새로운 데이터를 얻어 개조한다 한들 결국 그것을 활용하고 제대로 적용하는데에는 더 많은 양분이 필요했다.

[개미형 마수 군단?]

그런 마왕의 앞에 나타난 것이 그들이었다. 마왕 소환술에 정신팔린 마족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사이 이미 미궁 상층부를 전부 점령하고, 이제 그 세력을 최심부까지 뻗치려는 개미형 마수들.

마계의 청소부인 이 거대한 개미들이 마왕의 하이브마저 먹어치우기 위해 내려오고 있었다.

마왕은 그것을 곧 기회라고 판단했다. 척박하기 짝이없는 미궁의 환경은 대규모 군단을 양성할 양분이 철저하게 부족했다.

하지만 저렇게 외부에서 대량의 적들이 들어오고 있으니, 그것은 곧 무수한 양분을 얻을 수 있다는 뜻.

[김창현님, 박스디입니다.]

그렇게 판단한 마왕은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바로 자신의 사용자에게 달려갔다. 전투에 관한 지시를 받을 생각이었다.

“적이 몰려오고 있다고? 숫자도 제대로 모를 만큼 많은 적들이? 자전거 크기만 한 개미들이라고?”

그는 박스디의 보고를 받고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안정적인 양분 수급이 불가능한 현재 상황에서는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면 끝이라며. 그런데 양분을 얻어야 하고······ 애초에 어쩔 수 없는 싸움이네.”

마수 개미들의 목적은 미궁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둥지로 삼는 것, 그러니 어차피 하이브를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목적은 그런 놈들을 쓰러트리고 양분을 확보하는 것. 결국 싸움은 필연적이었다.

그것도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울 생존 경쟁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비축하던 에너지까지 몰빵해서 생산해. 상대가 처음부터 전력으로 쳐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몰아서 생산한 병력으로 놈들을 압도해서 아군의 손실은 최대한 줄이고 양분만 얻을 수 있게 해야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나름의 답을 주었다. 마왕은 그 의견을 수용하여, 곧바로 하이브를 전력으로 움직였다.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