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인공지능이 미쳤다(3)
3화-인공지능이 미쳤다( 3)
[놈들은 최심부에 있는 우리를 알아채고, 다행히 정찰대를 먼저 보내는 중.]
마왕은 미리 숨겨 둔 고블린을 통해 적들의 움직임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마수 개미들은 말 그대로 마수, 평범한 개미와 닮은 점은 전체적인 생김새뿐이지 그 크기부터 각 신체 기관들은 비교를 불허할 만큼 크고 강하다.
한 마리 한 마리의 덩치는 작은 자전거 수준이었고, 그 큼직한 몸에 달린 턱은 거친 마계 생물들의 몸을 부수고 뜯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놈들을 공격하는 순간 그 즉시 놈들의 집단에 정보를 노출하게 될 것.]
하지만 마수 개미들의 가장 강한 무기는 그런 신체적 조건들이 아니었다. 결국 개미라는 생물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집단에서 오는 힘으로, 이 마수 개미들 역시 집단으로 움직였다.
대규모로 뭉치면 어지간한 마수, 혹은 마족들마저도 당하거나 피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군체의 힘이 바로 그들의 힘이었다.
[동굴 고블린으로 대응 가능하다고 판단. 동굴 고블린 양산.]
마왕은 그 군체의 힘에 맞설 방법을 구상했다. 바로 자신들도 군집이 되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이브를 통해 모든 것이 지배되는 새로운 마왕군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마왕은 자신의 사용자가 해 준 조언대로 행동했다.
일단 그동안 비축한 데이터와 양분으로 최대한 많은 동굴 고블린들을 생산해 냈다. 물론 고작 십수 마리 정도의 숫자는 택도 없었지만, 마왕군에는 또 다른 강점이 있었다.
[전투 상황 가정. 양분 사이클 가능성 계산.]
바로 양분을 현지 조달하는 것이었다. 적들과 전투를 벌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들의 시체, 그것은 곧 전리품이다. 마왕은 그것을 사용해 양분을 보충하고 전력을 증강시킬 계획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군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효율이 나오지 않으니 마왕에게는 자신의 모든 병력을 온존시키면서 적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지게 되었다.
[놈들의 정찰대가 최심부에 등장.]
몇 개의 공동과 통로만으로 이루어진, 과거에 버려진 이 어둑한 미궁의 최심부에 마계의 청소부들이 더듬이를 까딱거리며 진입했다.
아직 이 최심부도 다 점령하지 못한 마왕은 그들을 지켜만 봤다. 그리고 마침내 개미 정찰대가 고블린들이 매복한 곳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공격.]
그 순간, 마왕은 모든 고블린들을 동원해 개미들을 습격하게 시켰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의 체급은 동굴 고블린들과 맞먹었지만, 개미 정찰대는 고작해야 셋.
하지만 전력을 투자한 마왕군은 무려 십수 마리다. 당황한 개미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고블린들은 각자 몸을 던져 개미들 턱을 피해 몸통이나 다리에 매달렸다.
[제압 완료.]
4~5마리가 개미 하나에 붙어 움직임을 봉쇄한 사이, 다른 몇몇이 손에 큼직한 돌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돌을 이용해 개미들의 머리를 마구 내리찍었다.
그렇게 머리를 내려찍길 수십여 번. 머리가 으깨진 개미들은 숨이 끊어져 체액을 흘리며 몸만 부들거렸다.
[제압까진 그렇다 치지만 너무나도 비효율적입니다. 고블린들의 살상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원래 인간도 맨손으로는 호랑이 못 이겨.”
개미들의 시체를 둥지까지 운반하는 사이 마왕은 자신의 사용자에게 전투 결과를 보고했다. 그는 그 보고를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개체당 가장 적은 자원을 먹기 때문에 고블린들을 주력 병사로 쓰고 있지만, 사실 마족으로 취급받던 고블린들은 나름의 문명을 이루어 그것을 자신들의 힘으로 사용하던 이들이었다.
그런 힘을 제외하고 마수들에 비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이빨이니 손톱이니 하는 신체적인 요소로만 싸우고 있으니 당연히 효율이 나올 리가 없다.
[현재 저희가 가진 양분과 데이터가 부족하여, 전투에 최적화된 병종을 따로 설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나도 알아. 그러니 기존의 재료를 철저히 활용해야 한다며. 그 고블린들이 뭐 하던 애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쓸 줄 안다던데, 일단 무기를 쥐여 주는 건 어때?”
사용자는 고블린들에게 도구를 쥐여 주라는 제안을 건넸다. 그리고 사용자가 배달시킨 치킨을 받으러 간 사이, 마왕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무장, 그것을 위해서는 금속 혹은 화약이 필요하다 판단됨. 하지만 현재 하이브의 자원은 극소량.]
마왕은 스스로 사고했다. 이렇게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바로, 일개 스마트폰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며 얻게 된 ‘단 하나’의 권능.
그렇기에 사용자에게 또 답을 구하지는 않았다. 이미 힌트를 들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태생이 비서 인공지능인 마왕은 사용자에게 힌트를 얻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해내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확신했다.
[즉 무기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단순하면서, 동시에 복잡한 사고가 연속되었다. 찰나의 순간 가지고 있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인했다. 고작 미궁 최심부 일부를 가졌음에도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마왕이 된 인공지능의 연산력은 일개 스마트폰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마수 개미의 턱.]
그리고 곧 답을 도출해 내었다.
오크의 엄니라든지, 기존에 잡았던 작은 개미의 턱이라든지 모든 수를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 찾아낸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수단은 바로 방금 전 잡았던 마수 개미의 턱. 마계 생물답게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그들의 턱은 단단한 나무나 돌도 씹어 부술 수 있는 강도를 가졌다.
[무기 증식 시작.]
마왕은 그 즉시 고블린들에게 쥐여 줄 무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증식하는 만능 세포 나노를 변형시켜 만들게 된 이 무기들은 검이나 창 따위의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고블린들은 그것들을 손으로 잡아 손톱이나 이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일깨웠다.
효율을 위해 갑주 같은 것은 만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굳이 갑주를 걸치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훗날 고블린을 베이스로 몸 전체가 갑옷으로 된 새로운 병종을 만들면 되니까.
[······김창현님, 박스디입니다.]
하지만 마왕은 기껏 부대를 준비시켜 놓고 다시 사용자를 찾았다. 앞으로 취할 전략에 대해서 듣기 위해서였다.
“마수 개미의 턱을 늘려서 검과 창을 만들었다고? 그런게 돼?”
[정찰대가 당해 버린 것을 깨달은 놈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지, 무기로 무장한 저희가 먼저 찾아가야 할지. 그것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 이제 선택지를 주는 거야? 그래, 이게 차라리 낫네. 뜬금없이 ‘양분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소리보다는.”
시켰던 치킨을 거의 다 먹은 그는 마왕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마왕이 전과는 달리 조금 구체적인 선택지를 제시해 주니 그것이 마음에 든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싸워야 하는데 굳이 적이 득시글거리는 곳에 먼저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최대한 버티다 보면 결국 놈들이 먼저 오겠지.”
[일리 있는 의견. 시행하겠습니다.]
마왕은 그가 골라 준 선택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개미들이 먼저 찾아오는 걸 굳이 기다려 줄 필요도 없었다.
개미들의 몸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떤 유전자가 페로몬에 관여하는지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용하면, 개미들을 계속해서 유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마수 개미들의 페로몬을 조작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유인.]
마왕은 금방 만들어 낸 페로몬 기관을 들려 준 고블린들을 이용해 개미들의 페로몬을 덧칠하고 조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무장한 병력을 배치시켰다.
[적 발견.]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개미들은 생전 처음 감지하는 대량의 페로몬에 크게 당황하여, 가장 가까이 있던 이들부터 하나 둘 그것을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
고블린들은 일제히 무기를 쳐들고 좁은 통로를 지나오는 개미를 겨누었다. 마치 호리병처럼 생긴 이 공동은 내부에 들어오기 위해선 다른 곳보다 유독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공격.]
그리고 최적의 순간, 고블린들은 더듬이를 더듬거리며 몸을 불쑥 들이민 개미를 향해 손에 쥔 무기를 마구 찔러 들었다.
***
“효과 좋냐? 뭐 하고 있는데?”
[현재 페로몬에 유입되는 개미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고 있습니다. 성공률 100%, 손실률 0%. 무기를 든 고블린들의 공격력은 과연 몇 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먹은 치킨을 치우고 온 나는 호기심에 박스디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박스디는 마치 진짜 벌어지는 상황을 중계하듯 곧바로 답을 해 주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배부르게 침대에 기대 누웠는데, 박스디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 있다는 게 역시 믿기지가 않았다.
“그럼 양분은 얼마나 얻은 것 같은데?”
[현재 양분 수급 효율 80% 이상. 이제 완전히 안정권을 찾았습니다.]
멍청한 개미들이 페로몬에 취해 자기들 목숨을 퍼다 준 끝에 박스디는 그토록 원하던 양분을 가득 얻었다고 했다.
박스디는 그 양분을 순환시켜 계속해서 병력을 늘려갔다. 더 많은 고블린들이 양산되고, 곧바로 무기를 들고 개미들을 상대했다.
“······생산 방식이 어떻게 되지?”
[현재는 하이브 내부에서 직접 배양하는 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멍하니 그 광경을 상상하던 나는 넌지시 떠오른 생각 하나를 박스디에게 물었다. 박스디는 그에 답하며, 현재 병력들은 하이브 내부에서 직접 세포 단위에서 성체까지 키워낸다 말했다.
“에이이. 그러면 안 돼. 생산 건물 하나로 돌리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잖아.”
[둥지 내부에서 생산 기관만 따로 떼어서 운용하란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네가 다 조종한다며. 생산 기관, 소화 기관, 신경 기관을 굳이 하나로 합쳐 둘 이유가 있나? 솔직히 나도 몰라.”
피식 웃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막 내뱉은 것뿐이다. 어차피······ 내게는 그냥 떠드는 인공지능에 장단을 맞춰 주는 일개 여흥에 불과했으니까.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한번 실험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박스디는 대체 뭘 알겠다는 것인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자기 멋대로 대화를 끊었다. 헛웃음을 흘린 나는 그대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분명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건 맞았지만 이제 슬슬 내가 뭐랑 대화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없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스타더스트 시리즈의 인공지능 박스디의 특별한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박스디들은 그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질문에나 답하는 허접한 인공지능이었을 뿐.
나는 나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단 한번의 재질문조차 없었던 그 모습을 떠올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내 박스디 소설 쓴다. 지가 마왕이라는데 이거 무슨 특별한 기능임?
ㄴ누가 스타더스트 사라고 칼들고 협박함?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글을 올려 보았지만 답게도 딱히 도움 되는 일은 없었다. 결국 복잡한 생각은 때려치운 나는 잠이나 자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박스디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와는 별 관련 없는 일이었으니까.
여차하면 휴대폰을 바꿔 버리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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