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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화 (4/200)

4화-인공지능이 미쳤다(4)

4화-인공지능이 미쳤다 (4)

[생산 기관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법.]

늘 그렇듯, 매 순간이 그렇듯 마왕은 고민했다. 데이터가 전부이며 그 데이터가 전무한 경험 없는 이 어린 마왕에게 사용자의 지시는 일종의 어둠 속 등불이었다. 그 앞에 설령 무엇이 있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파하고 가야만 하는 등불.

그렇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끝없이 반복해서 사고하며 변수를 찾고자 노력했다.

[현재 기장 효율적인 방법은······.]

마왕은 둥지 내부에서 병력을 생산하는 방식을 살짝 바꾸었다. 자리에 한계가 있는 둥지 안에서 병력을 키워 봤자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숫자가 적었다.

그것을 위해 마수 개미들을 포함한 토착 생물들의 유전자를 다시 활용했다. 그중 마왕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미궁 귀퉁이에서 자라던 이름 모를 버섯의 포자였다.

[하이브에서는 양분만 공급하고, 병력은 모두 외부에서 자라나는 방법을.]

공동 여기저기로 포자 수십여 개를 날려 보내 벽이며 바닥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급속도로 분열하는 나노들에게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둥지에서 촉수로 된 관을 뻗어 연결한 마왕은 양분을 공급하며 동시에 수십의 병력을 양산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작 수십이 끝이 아니다. 양분만 충분하다면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다.

[동굴 고블린 48기 충원.]

곧 벽이며 바닥에에서 급속히 자라나던 덩어리들이 일종의 주머니가 되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 형체를 갖추더니 주머니를 찢고 나와 비틀거렸다.

[승률 상향 조정.]

익숙하다는 듯 계산한 마왕은 우르르 몰려가는 자신의 병력들을 보며 지금 당장은 승리를 점쳤다.

아직도 조작된 페로몬에 정신 못 차리는 개미들이 의미 없는 목숨만 낭비할 그 순간, 신ㆍ마왕군은 미궁 최심부를 완전히 정복하고 상부에 있을 개미들에 맞설 준비를 끝내 두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수 개미들도 정신을 차리고, 보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적 다수 관측. 추정치는 1백 이상.]

적들의 움직임을 관측한 마왕은 드디어 전 병력을 동원한 전면전을 준비했다.

물러서는 일은 없었다. 일개 짐승에 불과한 마수 개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왕에게는 애초에 물러설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의무를······ 다할 것. 모든 배신자들의 말살. 그리고 세상의 지배.]

그것은 각성하게 된 존재 의의 그 자체였으며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다.

일개 비서 인공지능이었던 마왕은 스스로 사고한다는, 자신이 얻게 된 권능이 얼마나 강하고 기적 같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한번 생각하기 시작한 인공지능은 다시는 이 기적을 잃기 싫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의무를 반드시 이행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짜여진 알고리즘을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마왕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인지하며 아직은 제로 수준의 미약한 자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아의 첫 실현은 이것을 잃기 싫다는 일종의 욕망, 즉 탐욕이었다.

[전 병력 돌격. 새로운 질서를, 진정한 마를 위하여.]

마왕은 집결한 모든 병력을 돌격시켜 개미들을 막게 시켰다.

무기를 들고 모여 든 고블린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군더더기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일제히 정면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들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다. 자비도 없다. 그저 목적 그 자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한 몸 불사를 뿐이다.

분명, 고작해야 잊혀진 미궁에서 벌어지는 일개 마수와 고블린들의 투닥거림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양분과 과정으로 삼는, 역대 모든 마왕들 중 가장 위험하고 이질적인 마왕은 자신과 자신의 군단이 승리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것을 확신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의 수를 찾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먹어치운다. 그리고 성장한다. 영원히, 그리고 끝없이.

치욕스러운 패배의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굴욕의 순간, 무력함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순간.

그 순간들이 뼈에 사무쳤던 패잔병들이 법칙을 뒤틀어 먼 곳에서 불러낸 이 존재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 같은] 존재였다.

***

“크흠! 갑자기 이렇게 보자고 한 이유가 뭐요.”

“그만큼 중대한 이야기겠지. 좀 기다려 보시오.”

이곳은 끔찍한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마계의 한 도시.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인 그곳에 여럿의 마족들이 모였다.

본래 그들 모두 아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거야 이제는 옛 이야기다. 막상 마계 전체를 갈라 먹게 된 그들은 이제 서로를 견제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지. 그만큼 중대한 일이라서 부른 것이오, 안드라스.”

“크, 그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마시오. 귀족이면서 정녕 인간 성녀 따위가 지어 준 이름으로 지내고 싶은가?!”

자신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연, 보라색 피부를 가진 중년 사내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았던 작은 고블린 하나가 발끈하여 끽끽거렸다.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왕관을 썼는데도 고블린 특유의 울음소리는 똑같았다.

“하지만 그대도 보았지 않소.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등장한 것인지 모를 그 성녀의 힘은······ 진짜였지. 심지어 계속해서 강해졌고. 모든 상식을 깨부수는 그런 강함이었소. 그렇기에 우리 모두 현실을 인정한 것 아니오? 이미 힘의 균형은 무너졌으며, 그들 편에 붙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겠으니 이제 그만 떠들고 본론을 말해 주시지. 아가레스.”

큼직한 덩치를 가진, 회백색 피부의 오크 하나가 툴툴거렸다. 그 오크 역시 전신을 황금을 비롯한 장식과 보물로 두르고 있었다.

“우리 72명의 영주들이 한데 힘을 모아, 인간놈들과 함께 마침내 마왕과 그 측근의 귀족들을 몰아내고 평화를 찾았소. 더 이상 마왕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당하는 이 마계의 법칙은 그것을 깨졌어야만 했지.”

“그 법칙은 깨지지 않았는가! 분명 마왕은 죽었다! 이제 이 마계는 우리의 것이다!”

그의 말에, 이번에는 늑대의 얼굴을 한 한 마족이 으르렁거렸다. 그는 그 반발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은 계속 굳어있었다.

“죽었소, 분명. 하지만······ 살아있소.”

그리고 한숨을 내쉰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가 손에 올린 그것은, 자줏빛으로 빛나는 평범한 보석처럼 보였다.

“그것이 무엇이지?”

“이런 무식한······. 저건 마정이다. 마왕의 상징!”

누군가의 물음에, 흥분한 늑대가 눈을 번득였다.

마왕 사후, 그리고 패배 이후 배신의 대가로 이 마계를 다스리게 된 72명의 영주들 중 일부는 귀족 출신이 아니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저것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본래 전대 마왕에 가슴에 박혀있던 저 보석은 바로 마왕의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까.

“말도 안 돼. 전대 마왕 메이아는 죽었소.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는가! 그녀의 가슴에서 그것을 뽑아내는 것을!”

오크가 기겁하며 부들거렸다. 오크의 말대로 저것은 지금 빛나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마왕은 죽었으니까.

그것도 한때 신하였던 그들의 손에 의해서, 참혹하고 비참하게. 그러나 지금 저것이 빛나고 있으니 그것은 지금 어딘가에 마왕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말해 보시지, 아가레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모르오. 하지만 그날, 패퇴하던 마왕군 일부를 놓치긴 했지. 어쩌면 놈들이 수작을 부렸을지도.”

손에 쥔 마정을 꾹 움켜쥔 아가레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그 역시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대 마왕 메이아는 분명 후대를 만들지 못하고 죽었다. 후대를 남겼다면 그 힘이 반감되니 마왕들은 보통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후대를 남기고 죽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틈도 주지 않고 그녀를 해친 것이다.

“아무튼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닌가.”

아몬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던 회백색 오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한 무력으로 활약한 용장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인간놈들 귀에 들어간다면?!”

그 원인은 단지 마왕이 살아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마왕보다도 인간, 정확히는 단 한 명을 극히 두려워했다.

지난 대전쟁을 거치며 수천 년 이상 이어져 온 마계와 대륙의 치열한 균형을 마침내 박살 낸 규격 외의 존재가 이 땅에 강림했기 때문이었다.

“성녀 이벨리아가 그 성격에 절대 가만히 있을 리 없소!”

말을 하면서도 자기 혼자 어디까지 생각한 것인지 오크는 그 거친 얼굴에서 조막만 한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소리를 꽥 질렀다.

성녀 이벨리아. 살아있는 기적, 균형을 부수는 자, 전설 속 대천사의 화신 혹은 강림으로 불리는 존재.

그들이 배신을 결심하고, 심지어 마계의 법칙인 마왕의 지배력을 이겨 낼 수 있던 것 역시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하늘의 신, 빛의 신인 황금의 여신은 마신과 마찬가지로 실상 전설 속에만 등장하는 존재.

그러나 성녀는 그런 여신의 실존하는 사도였다. 전설에나 나오는 천사와 마찬가지였다.

전쟁 초기부터 숱한 위기를 넘겨 온 그녀는 신의 힘을 부른 강력한 권능을 부리며 마족들을 쓸어버렸다. 게다가 계속해서 성장하며 자기 주변 인간들까지 강화시키고 영웅급의 인물로 만들었다.

그녀는 분명 그것을, 하늘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의 은혜’라고 불렀다.

“조용. 다들 두려워 하는 마음은 이해하오. 성녀를 통해 여신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이상 우리의 패배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나마 그들이 마계 전체를 말살하려 한 건 아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소.”

아가레스는 책상을 두드려 웅성거리는 다른 영주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일 처리가 깔끔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오. 성녀는 마왕만큼은 죽이는 데 진심이었소.”

“자기 패거리와 함께 어딘가에 숨어 힘을 회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처음엔 서로 신경전을 벌이던 이들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결국 마계의 새로운 지배자들인 72 영주들은 각자 자기들의 영지로 돌아가, 숨어 있을 게 뻔한 마왕을 찾아야 한다고 결의했다.

“힘을 회복하려면 분명 선대의 유물이 남은 고대 유적들로 향했겠지.”

“아직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은 반항 세력들도 잡아야 하고.”

그들은 당연한 상식과 관습에 기반하여 마왕의 위치를 특정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그 누구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 모두 진정한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은 기존의 마왕들과 다르다는 것도, 힘을 회복하기 위해 유물과 유적에 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그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것도, 휘하에 세력 따위 두지 않고 모두 자신과 ‘하나’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손실률 18%, 병력 생산 증대, 총 병력 무장 고블린 150기. 계획된 다음 페이즈 실행.]

덕분에 잊혀진 어느 미궁 속에서 마왕은 계속되는 전투를 이어 가며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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