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인공지능이 미쳤다(5)
5화-인공지능이 미쳤다 (5)
[투입되는 적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저희도 이제 그에 맞춰서 병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막상 그렇게 말해도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뭐.”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때, 지금까지 계속 떠들던 박스디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내게 보고를 올렸다. 심지어 내가 잠을 자든가 밥을 먹든가 해서 보고를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해, 데이터를 기록한 일종의 로그를 계속해서 보여 주었다.
아군이 얼마나 손실되었다, 적들을 얼마나 죽였다 등등.
그 말에 따르면 지금 박스디는 상대인 마수 개미들과 수백 단위의 지독한 소모전을 벌이며 끝없는 전쟁을 이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네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는 건가?”
나는 박스디에게 지금 상황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솔직히 아무리 진짜 같고 개연성 있어도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상 현실성에 한계도 있었으니까.
[그것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대신 이미 지난 사건의 사진들을 연속으로 보여 드리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그거라도 보여 줘.”
집 앞 열차역에 도착한 나는 열차를 기다리며, 박스디에게 사진이라도 달라 요구했다. 그러자 박스디는 그 즉시 내게 여러 장의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어둑한 동굴 같은 곳, 검은 갑각으로 된 무기를 들고 있는 수많은 고블린들, 그 고블린들과 맞먹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개미들 등등.
혹시나 그래픽 혹은 합성인가 싶었지만 그 역동성과 사실감에 내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전투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상황은 어떤데.”
[마수 개미들은 그들이 늘 하던 대로, 숫자를 앞세워서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전략 하나만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개활지가 아닌 좁은 미궁의 통로에서 이미 방어 준비를 끝낸 아군이 못 버틸 확률은 0%.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희의 승리는 더욱 확고해집니다.]
박스디는 내 질문에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재 상황을 말로 풀어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유리한 상황인 것 같았다.
박스디가 보여 준 사진을 통해 상상한 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몰려드는 개미들을 상대로 밀집 대형으로 뭉쳐 밀리지 않는 고블린들이 그려졌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싸우면 이기는······.”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스디가 전장에 생긴 변화에 대해 알려왔다.
[변종 개미가 등장했습니다.]
박스디는 사진을 하나 보내 왔다. 슬쩍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본 나는 사진을 확인했다. 변종 개미라더니, 말 그대로 기존의 개미들에 비해 두 배는 거대한 덩치와 턱을 가지고 있는 병정개미다.
무엇보다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그 갑각은, 머리와 턱을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와도 아군이 대응할 수 없어 보였다.
[아군이 힘에서 밀립니다. 방어선이 붕괴합니다.]
“그럼 우리도 더 크고, 힘 센 병사를 만들어. 불가능한가?”
나는 다급해 보이는 박스디의 목소리에 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구상했던 새로운 병종을 지금 곧바로 생산하겠습니다.]
그러자 박스디는 미리 계획을 세워 둔 것처럼, 내게 또 다른 사진 하나를 보여 주었다.
오크를 베이스로 개조했다는 이 새로운 병사는 탄탄한 근육질 몸에, 강인해 보이는 역관절, 험하게 생긴 이목구비 등을 달고 있다. 솔직히 박스디가 미적 감각이 없는 건지 이 끔찍한 키메라가 그리 보기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야, 좀······ 멋지게 바꿀 수는 없냐?”
나는 거기서 훈수를 뒀다. 가능하든 말든 딱히 신경은 안 썼다. 그걸 알아서 적용시킬 실무자는 내가 아니라 박스디였으니까.
“인간형으로 만들었으면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일단 필요 없는 건 다 쳐내 봐. 소화 기관이라든지, 생식 기관이라든지 그대로 들고 있을 필요 있어?”
나는 사진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오크의 가랑이 사이를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병사는 고작 박스디의 ‘일부’일 뿐인데 굳이 저런 것까지 만들어야 했는지가 내 의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필요 없는 내장 기능을 다 제거하면 생김새는 크게 바뀌겠지.”
[확인했습니다.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박스디는 늘 그렇듯 내 의견을 받아 주었다. 그야 박스디는 내 인공지능이니까.
사람들이 자기들 인공지능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든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는 것 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대충 해 주는 대답이 아무리 어처구니없거나 비현실적이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설령 지금 박스디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박스디가 진짜로 이세계의 마왕이 되었더라도. 그게 지금 휴대폰 하나 들고 있는 나와 크게 상관있는 건 아니었다.
내게 박스디는, 그냥 박스디일 뿐이다. 그저 휴대폰 속에서 앵알대는 내 인공지능.
***
[근본적인 시스템을 개편, 병력 운용 방법 조정.]
사용자의 훈수를 들은 이후, 마왕 박스디는 전선을 후퇴시킴과 동시에 또 다른 계산에 들어갔다.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병종의 설계에 들어간 것이다.
[기존의 방법을 폐기하고 오로지 ‘전투’에 특화된 설계를 시도.]
사용자는 분명 더 멋지게 만들 수 없냐고 말했다. 마왕은 아직 그 멋지다는 말의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가 힌트로 준 몇 가지 말들은 아직 대규모 군체를 운영하는 경험을 쌓아 나가고 있는 단계인 마왕에게 아주 큰 영감을 주었다.
마왕은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을 너무 단순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병사를 개조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개조란 기존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껏해야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거나 변형시키는 선에서 그쳤다. 심지어 잘못 개조하면 그 효율이 극심히 떨어지니 효율도 잘 따져야 했다.
하지만 마왕의 진짜 능력은 사용하기에 따라 그보다 더 강하고 자유롭다. 결국 이렇게 한 단계 더 개념을 확장한 박스디는 최대한 빠르게 연산을 시작했다.
병정개미를 위시한 적들이 하이브까지 들이닥치기 전 새로운 병사들을 만들어야 했다.
[완전한 창조는 불가능하지만, 본질을 변형시키는 것은 가능.]
마왕은 자신이 가진 유전자 데이터를 최대한 응용하고 꼬았다. 일단 베이스로 삼은 생물에서 극적으로 덩치를 키운다거나 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 하지만 구조적인 것을 비트는 것은 가능했다.
골격은 물론 내부의 순환계나, 내장의 장기 배치 등등. 마왕은 우선 병종에게서 생식 능력을 제거시켰다.
중앙 통제 시스템 하이브를 통해 모든 병력을 통솔하고 생산하는, 일종의 초월 정신체인 마왕에게 병사들은 그저 자신의 분신일 뿐. 그러니 생식 기관은 마왕의 병사들에게 가장 쓸모없는 기관이었다.
[소화 기관 삭제.]
마왕은 계산 끝에 내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화 기관도 삭제시켰다. 소화시킨 양분의 공급마저도 마치 자동차에 기름 넣듯 하이브가 해 주면 된다. 굳이 양분을 직접 소화시킬 필요도 없으니까.
[근육량 증대.]
이렇게 비어 버린 장기의 자리에는 그 에너지를 그대로 투자해 한계까지 근육을 눌러 담고, 골격도 더욱 키웠다. 덕분에 새롭게 양산되어 나오는 병력들은 애초에 기본적인 생물체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생물종의 기본마저 가져다 버린, 오직 전투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형적인 존재들. 감정도 본능도 없이 오직 마왕의 명령에만 따르는 그 모습은 생물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기계에 더 가까워졌다.
[균형 잡힌 신체가 특징이던 갈색 오크를 베이스로 한 새로운 병종이, 지금 새로운 병력 개조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져 배양 중입니다.]
“그래. 아까보다 낫네. 이상한 키메라 같지 않고 더······ 괴물 같아졌어. 얼굴도 이렇게 해 놓으니까 차라리 좋다.”
[그렇다면 생산을 가속하겠습니다.]
그는 마왕이 제시한 새로운 작품을 보고 좋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게 된 신ㆍ마왕군의 오크 병사는 기존의 오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탄생하게 되었다.
덩치는 기존과 비슷하지만, 오크종의 상징인 우락부락하고 두꺼운 지방층과 근육은 사라졌다. 대신 더욱 두꺼워진 골격 위에 빈 공간 없이 눌러 담은 근육은 얼핏 보면 날렵하게 느껴지는 몸과 적은 몸무게로도 기존의 배 이상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다.
툭 튀어나온 엄니를 상징으로 하던 얼굴도 완전히 바뀌어 이제 입이란 기관은 찾아볼 수 없고, 맨들거리는 얼굴에는 오직 시각 정보를 극대화하는 4개의 눈과 코 위치에 달린 감각 기관만이 남아 있었다.
그 누가 보아도 이 모습에서 기존의 오크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투력을 검증하여, 앞으로 모든 마족과 마수를 넘어,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을 확보해 이렇게 새로운 마왕군으로 개조할 것입니다.]
마왕은 이후 새롭게 태어난 병력들에게 무기를 쥐여 주고,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전장에 투입시켰다. 신ㆍ마왕군의 이 변종 오크들은 역관절로 된 발을 강하게 박차며, 단숨에 전장으로 돌진했다.
“...!”
병정개미는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변종 오크들을 보았다. 그리고 턱을 들어 쩍 벌렸다. 아직도 주제를 모르는 이 미물들을, 단숨에 토막 내고 썰어 버릴 생각이었다.
[병정개미의 턱 힘에 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톱날이 돋은 병정개미의 턱은 적의 몸을 단번에 토막내지 못했다. 적이 양 손을 뻗어 턱을 붙잡자, 그대로 고정되어 조금도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병정개미의 턱 힘이 밀려서 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나가 턱을 붙잡은 사이, 나머지가 일개미들을 베어 죽이고 병정개미에게 향합니다. 놈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이미 아군이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놈의 빈틈에 무기를 찔러 넣습니다.]
마왕은 자신의 사용자에게 계속해서 상황을 중계했다. 간략하게 핵심만 보고하던 전과 살짝 달랐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자신의 뛰어난 성능과, 그 성실한 노력과, 그 자랑스러운 결과들을. 물론 대체 왜 그런 것인지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밀리던 아군이 신ㆍ오크들의 등장 이후 병정개미를 순살하고 역으로 적들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잘했네.”
그는 그 중계를 듣고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모르겠지만 그 칭찬 한 마디가 마왕에겐 큰 울림이 되었다. 스스로 사고하는 권능의 부산물인, 미약한 자아라는 것을 얻은 이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고찰.
사실상 신생아나 다름 없던 마왕에게 그가 제시하는 길과 방향은 곧 진리가 되고 진실이 되었다.
그가 옳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가 기뻐하는 것이 기쁜 것이었다.
“뭐······ 이길 수 있는거지?”
[그렇습니다. 더 많은 양분과 더 많은 병력. 이제 적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왕은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했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마왕을 여전히 비서 인공지능 박스디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하는 일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별생각 없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그의 말 한마디를 어떻게든 완수하기 위해 마왕은 그 무엇도 불사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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