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신ㆍ마왕군(1)
6화-신ㆍ마왕군 (1)
[이제 반격할 때라고 판단합니다.]
“그래? 준비는 다 끝난 거야?”
불 꺼진 방의 침대 위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내게, 박스디가 익숙하다는 듯 대뜸 말을 걸었다. 준비가 끝냤나는 내 물음에 녀석은 그렇다고 답했다.
[재정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병사를 개조하는 데 적용할 보다 새롭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 박스디는, 병정개미를 동원한 적들이 공세를 막아 낸 이후 내부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에 생산했던 병사들인, 동굴 고블린들을 폐기하는 일이었다.
동굴 고블린들은 박스디가 새롭게 정립한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가장 적은 자원을 투자하기 위해 기존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생산되어 무기만 들고 싸우던 이들.
자신의 힘으로 기존의 모든 법칙과 상식에서 벗어나겠다고 내게 선언한 박스디는, 그들을 모두 폐기 처분하여 양분으로 환원했다.
이거 듣다 보니 꽤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분해자의 힘을 가진 박스디의 둥지는 적은 물론 아군의 시체마저 양분으로 환원시키니, 그 효율은 적과 비교할 수 없으니까.
[대신 잡일을 담당할 새로운 병사들을 생산합니다.]
“······개미들이네.”
그리고 양분을 옮기거나 둥지 근처를 정리하거나, 미지의 공간을 탐사할 수 있는 새로운 병종을 만들어 생산했다.
잡일을 담당할 그들은 오크나 고블린 같은 마족을 베이스로 한 것이 아닌 마수에 속하는 이 마수 개미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박스디는 자신의 경험이 쌓여 갈수록,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의 조합이나 범위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
나는 박스디와 통화가 그렇게 끝난 이후, 박스디가 현장을 다시 중계할 때까지 인터넷을 뒤적였다. 현재 내가 찾고 있는 건 게임이나 만화 등 각종 창작물 속에 나오는 크리쳐들의 외형이나 설정 등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당연히 현실에는 실존하지 않는 창작물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혹시 이런 아이디어들이 그 거친 미궁에서 한창 성장해 가는 박스디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찾아보는 것들이었다.
동시에 헛웃음이 슬쩍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따로 시간까지 투자할 정도로 박스디가 해 주는 이야기에 빠져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빠져들지 않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부쩍 말이 늘어난 박스디는 점점 더 길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현실을 보고하고 분석하는 걸 넘어서 미래를 예측하고 꿈꾸는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설령 박스디가 하는 모든 말이 허상이고 거짓이라도, 내 박스디가 다른 휴대폰들에 탑재된 박스디들과 명백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대한 오류인지, 회사의 업데이트에 포함된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분명 희노애락 같은 격한 감정을 가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바라는 건 있어 보였다. 그것은 곧 탐욕이라는 욕망을 가졌다는 것.
마치 자라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과 호기심에 나는 아직까지는 이 이상한 인공지능을 버리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
[새롭게 정비한 마족형 전투 병사 오크ㆍ프로토 100기. 이것으로 이제 방어를 거두고 적들의 영역을 공격할 것입니다.]
미리 보고한 대로 마왕은 병력을 움직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마수 개미를 베이스로 삼은 일꾼들이 흩어진 시체 조각들을 하이브의 소화 기관에 보급하여, 양분을 회수하고 있다.
지난 전투들로 족히 수백에 달하는 마수 개미들을 죽여 양분으로 삼았으며 그 여파로 미궁을 점령한 마수 개미 군체는 그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마수 개미들이 아무리 빠른 번식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번식에는 일정한 사이클이 필요하다. 신ㆍ마왕군처럼 양분을 투입하여 성장을 가속시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병력이 부족해져 오히려 자기들 먹고 살 식량을 구하는 것도 힘들어질 정도였다.
반면 신ㆍ마왕군은 아무리 많은 병력이 죽어도 그것을 재활용할 방법을 갖추고 있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최적의 생산 방식을 찾아내어 생물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번식도 가능했다.
[정찰병을 투입하고, 그 뒤 본대가 진격합니다.]
정찰병 삼은 일꾼 몇이 출발하여 마침내 마수 개미들이 점령한 미궁 상층부에 발을 디뎠다. 이미 마수 개미들의 완전한 둥지가 된 그곳들에는 여전히 다수의 개미들이 남아, 알과 애벌레등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최소 적 200기 이상.]
“가능해?”
[충분합니다.]
마왕은 선공을 당해 당황한 개미들에게 자신의 병사들을 돌진시켰다. 기존의 오크들에 비해 전반적인 덩치는 얇아졌어도 그 근력은 훨씬 강해진 키 2m 짜리의 병사들은 박쥐에게서 가져 온, 어둑한 어둠을 꿰뚫는 4개의 눈을 번득이며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분명 적들이 더 많았지만 순식간에 결판이 날 정도로 일반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병정개미까지 등판해도, 이미 개미들을 상대하는 충분한 경험을 쌓은 마왕군은 조금의 오차 없는 움직임으로 병정개미도 도륙했다.
[일꾼들을 동원하여 시체를 포함한 양분들을 수거하고 있습니다. 하이브의 과부하가 예상되니 하이브의 확장 혹은 분할 역시 필요합니다]
마왕은 동시에 하이브 역시 변화를 주었다. 최심부,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현재의 하이브에는 자신의 정수가 담긴 통제시스템. 즉 뇌를 남겨 두었다.
그 대신 소화 기관을 따로 떼어 상층부로 향하는 곳에 새롭게 배양하고, 그 모든 것들을 살아서 꿈틀거리는 촉수로 연결했다.
덕분에 병력들은 더 가까운 곳에서 소화시킨 양분을 보급받았고, 더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어 곧바로 전장으로 충원되었다.
“그럼 무난히 이기는 그림이네.”
그는 마왕의 중계를 듣고 승리를 확신했다. 계속되는 전투로 급격히 성장한 마왕군은 그 목숨을 위협하던 마수 개미 군체를 역으로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신종 개미 출현.]
물론 마수 개미들 역시 만만하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마계에서 당당히 살아남고 있는 포식자이자 집단적인 사냥꾼인 그들은 종족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이제 막 자라나는 신생 포식자를 찍어 누르고자 했다.
“뭔······ 진딧물 같이 생겼는데?”
그는 마왕이 보내 준 신종 개미의 사진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병정개미에 맞먹는 덩치를 가진 그 개미들은 유독 큼직한 배를 가지고 있었다.
몸 크기 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 배 덕분에 개미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그 배는 은은한 초록색 빛을 비추고 있어 그 내부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현재 다른 개미들과 함께 아군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육중한 몸 덕분에 움직임이 둔중하여 위협이 될 것 같진 않지만, 자세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에 그 뿌리를 둔 마왕은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 대해 유독 경계심을 품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데이터를 수집하고자 하는 성향을 보였다.
[데이터 수집을 위한 선제 공격 시도.]
마왕은 5기의 병력을 선별해 적을 향해 선제 공격을 시도했다. 단숨에 뛰쳐나가기 시작한 병사들이, 손에 든 무기를 겨누고 달려드는 일개미들을 일격에 쳐죽였다.
이대로라면 단숨에 적에게 닿아 저 거대한 배를 터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적이 체액을 분사했습니다.]
“뭐?”
[입을 통해 체액을 분사했습니다. 그것은 강한 산성을 가진 독으로, 분사된 체액에 노출된 병력들의 신체가 독가스와 함께 빠르게 녹아내립니다.]
마왕은 덤덤하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했다. 정작 멍하니 보고를 받던 그가 더 놀랄 정도였다.
“산성 체액? 무슨 에일X언이야?”
[현재 아군이 가진 저항력 0. 이대로라면 전멸할 수 있기에, 병력을 후퇴시키겠습니다.]
마왕은 미련 없이 병력을 후퇴시켰다. 하지만 계속해서 후퇴하며 시간을 벌던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
빠른 양분 보충과 생산을 위해 새롭게 마련한 소화장과 생산장이 바로 뒤였다. 거기까지 밀린다면 피해를 크게 입을 것이다.
[무기, 즉 마수 개미들의 외갑은 저 산성 체액에 저항성을 가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병사들에게 같은 재질의 외갑을 입힌다면 저항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충분하고?”
[······생산장과 소화장을 내주겠습니다]
마왕은 초월적인 연산력으로 최선의 해답을 내놓았다. 계산 결과 일단 병력을 온존시켜 후퇴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비록 손실이 크게 발생하겠지만, 데이터가 없는 적과 싸웠으니 손실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판단했다.
“아니야. 아깝잖아. 듣자하니 사거리가 그리 길어 보이지 않던데.”
하지만 그는 달랐다. 마왕의 자세한 보고와 증언을 들은 그는 조금 다른 방향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원거리 공격을 해.”
[하지만 현재 획득한 유전 데이터 중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데이터가 뭐가 필요해. 네가 만들 병사들은 손을 쓴다고. 뭐라도 집어 던져!”
그는 자꾸만 데이터 위주로 사고하려는 마왕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마왕은 병사들이 손에 쥐고 있는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시도하겠습니다.]
최선두의 병사 하나가 손에 쥔 검은 창을 쳐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투창 자세로 겨누고, 반동을 주기 위해 한계의 한계까지 근육 운동을 시작했다.
[투척.]
그리고 그것을 당당하게 다가오는 개미들에게 쏘아 보냈다. 엄청난 힘으로 던져진 창은 허공을 찢으며 가로질렀고, 이내 굉음과 함께 충격파를 터트렸다.
비록 빗나가서 일개미 하나를 관통하고 충격파로 근처에 조금 타격을 주었을 뿐이다. 버티지 못한 창은 박살이 났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근육 미세 조정.]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제 그것을 계속해서 시도하여 오차를 줄이고 명중률을 높인다. 당황한 개미들이 달려오려는 순간.
조금의 오차 없이 동일하고 같은 속도로 일제히 무기를 쳐든 마왕군이, 마찬가지로 약간의 어긋남 없이 수십 발의 투창을 빼곡하게 쏘아내며 통로로 진입하려던 개미들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적 제압 완료.]
사나운 마수지만 완전무결한 생물도 아닌 일개 짐승에 불과하다. 강력한 산성 체액을 분사하여 상대를 녹여 버리는 변종 개미도, 결국 멀리서 날아드는 도구를 이기지는 못했다.
[새로운 데이터 확보. 무기를 사용하는 전술에 대하여.]
또한 마왕은 그 광경을 보고 무언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승전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여 전체적인 승률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분명 그게 전부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음. 데이터 부족.]
스스로 생각했지만 명확한 답을 내기 힘들었다. 과정을 통해 승리라는 결과값이 도출되었는데, 어째서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하는지 아무리 고뇌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느낌은 분명 이전에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김창현 님?]
그래서 마왕은 이번에도 자신의 사용자를 찾았다.
“효율적으로 이겨서 기쁘냐?”
그리고 그는 이것을 기쁨의 감정이 아니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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