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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7화 (7/200)

7화-신ㆍ마왕군(2)

7화-신ㆍ마왕군(2)

“캬악! 빠르게 움직여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키, 키이······.”

슬슬 해가 져가고 마계 특유의 붉은 달이 떠오르고 있는 시점. 거친 마계의 황무지를 회색 갈기의 늑대를 탄 초록색 피부의 고블린 몇 마리가 빠르게 가로질렀다.

그들 중 다른 이들을 재촉하는, 가운데에 있던 고블린은 척 보아도 높은 계급으로 보였다.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든 로브를 걸치고 있던 놈이 지팡이를 들고 있던 손을 움직이자 손목에 건 금팔찌가 짤랑거렸다.

“왕께서는 조금의 틈도 없이 철저하게 수색하라 하셨다. 하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 패잔병 놈들이 자리를 잡았을 리가.”

잠시 늑대들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이 우두머리, 고블린 주술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들이 하달받은 명령은 수색. 분명 살아있는 마왕이 어딘가에서 잔당들과 함께 힘을 회복하려 시도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각 영주들은 최대한의 병력을 풀어 사방을 이 잡듯이 뒤졌다.

‘설령 이런 수색을 운 좋게 피하더라도 마왕은 대체 어떻게 이길 생각인 것이지? 이미 모든 마계는 우리들 손에 떨어졌거늘.’

사실 고블린 주술사는 이 수색 작전 자체도 회의적이었다. 마왕이 아무리 힘을 숨기고 어느 정도 회복한다 쳐도 어차피 언젠가는 행동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마계의 72 영주는 마왕을 즉시 집중 공격하여 마무리 지을 것이니, 애초부터 마왕에게 승기는 없는 셈이다. 아무리 기적 같은 통솔력을 보여 주어도, 자신들이 이미 한 번 배신하여 마계의 법칙을 부순 이상 그 어떤 마족들도 이미 힘을 잃은 마왕에게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북쪽으로 조금 더 가 보고 수색을 마무리 짓는다.”

코웃음을 친 고블린 주술사는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생각은 생각이고 일단 명령은 받았으니 따라야했으니까.

“키잇?!”

“흐음. 개미놈들인가?”

한참을 달리던 그들 앞에, 무언가 나타갔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당황하여 주술사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개미들로, 병정개미 등은 그들이 타고 있는 늑대와 맞먹거나 더 큰 괴물들.

무리 지어 다닌다면 어지간한 마수나 마족들도 피해 다녀야 한다는 마계의 청소부들이며, 먹이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악한 짐승들이었다.

“뭘 그렇게 겁을 내느냐. 자랑스러운 우리가 저런 하찮은 미물들과 목숨을 건 전쟁과 사투를 벌이던 것은 이제 부끄러운 옛적의 이야기다!”

그러나 주술사는 두려워하는 부하들을 다그치며 손에 든 지팡이를 쳐들었다. 오히려 히죽 웃었다.

자신들은 성장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최하층의 마족이 아니니까. 이것이 바로 마왕을 배신하고 기존의 질서를 벗어난 대가였다.

“뒤집어져라!”

다가오는 수백의 개미들에게 지팡이를 겨눈 주술사가 외쳤다. 그러자 일대가 진동했다. 다른 부하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환호했다.

진동하던 땅이 마치 수면이 출렁이듯 파문을 만들며 부채꼴로 퍼져 나갔다. 마구 비틀리고 으깨지는 지면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던 개미들의 발을 짓이기고 끊어 버렷다. 일격에 단숨에 수십 이상이 당해 버렸다.

“쳐라!”

이어서 무력화된 개미 집단에 늑대를 탄 고블린들이 검을 비껴들고 달려들었다.

‘됐다. 우리가 이겼다.’

강력한 주술을 앞세워 일격에 다수의 개미들을 분쇄한 고블린들은 잘 벼린 강철 검 등을 활용해 나머지 개미들도 손쉽게 베어 죽였다. 훨씬 덩치 큰 적들도 손쉽게 쓰러트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고블린들의 강함. 주술사는 그 광경을 보고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이 근방에 놈들의 둥지가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패잔병들 수준으로 놈들을 당해 냈을 리가 없다. 어차피 이 주변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미궁 몇 개가 전부이니 이대로 마을로 돌아간다. 그게 더 중요하니까.”

주술사는 다시 부하들을 정비시켜 기수를 돌렸다. 온갖 마수들만 가득한, 척박한 이 일대는 도저히 새로운 세력을 일으킬 만한 곳이 아니다. 그렇게 확신한 놈은 주변 마을이나 단속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

[놈들의 숫자가 비정상적입니다. 분명 종이 가진 번식 한계점을 벗어났는데도 계속해서 병력이 충원되고 있으니, 이는 곧 외부에서 놈들의 병력이 증원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하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면 애초에 근처 어딘가 또 다른 둥지가 있다는 뜻이겠지. 지구의 개미와 똑같진 않겠지만, 여왕 여럿이 여러 개의 둥지를 만들고 거대한 군체를 이루어 사는 애들도 있다던데.”

[하지만 계산 결과 감당 가능합니다. 이대로 진격하겠습니다.]

잊혀진 미궁 내부. 고블린 주술사가 미처 살피지도, 아니 생각조차 못하고 지나친 곳. 그곳에서 계속해서 자라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부수는, 기존의 법칙은 완전히 무시하는 이들이다. 분명 그들에게 고블린 주술사의 주술 같은 강력한 한 방은 아직 없다. 고블린 전사들의 질 좋은 강철 검 같은 무기도 없다.

덕분에 마수 개미들과 직접 뒤엉키며 마치 과거의 고블린들 같이 명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잠깐일 뿐이다.

[완성되었습니다. 오크종을 베이스로 한 오크ㆍ알파입니다.]

생산장이 있는 더 깊은 지하에서, 성장이 끝난 새로운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크를 베이스로 철저히 전투에 집중시킨 마왕의 개조가 더해진 이들은 프로토 타입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진화했다.

얼굴을 덮은 검은 투구의 사이에서 붉게 번득이는 4개의 눈이 빛난다. 산성 체액을 뿜는 적의 공격에 면역을 갖추고, 방어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병정개미의 단단한 갑주를 차용해 전신을 둘렀다.

그 육중한 모습은 중갑의 기사를 닮았으나, 갑옷과 일체화한 몸은 그만큼 날렵하다.

“설마 또 이상한 변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는 마왕에게 일제히 진군하기 시작하는 병력들의 모습을 전해듣고 피식 웃었다. 기껏 기세 좋게 몰아치다가 주춤거리는 게 병정개미와 산성 체액으로 벌써 두 번째였으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저희는 이길 수 있습니다.]

마왕은 이제 자신감을 가졌다. 설령 데이터가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사용자는 그런 상황에서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이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여 최상의 결과만을 만들어 낸다.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마왕은 그만큼 강해졌다.

[돌격.]

이제 수백으로 불어난 마왕군이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 오크ㆍ알파들을 앞세워 개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힘의 균형이 무너져 내렸다. 마수 개미들은 튼튼하고 힘센 병정개미에게도,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산성 체액에도 단숨에 적응하고 진화한 마왕군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기분이 좋습니다.]

“······승리해서 기분이 좋다는 거지?”

[모든 것이 좋습니다.]

마왕은 최근에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써먹으며 자신의 감정을 어필했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솔직하고 거침없다.

그는 평소와 다름 없는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로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휴대폰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마수 개미들을 모두 쫓아내었습니다. 추격해야 하지만, 일단은 미궁의 입구에서 멈췄습니다.]

“내부 정리 하려고?”

[그렇습니다. 또한 목적을 이루었으니 새로운 전략 역시 필요합니다.]

마수 개미들이 점령했던 미궁은 이제 완전히 마왕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마왕은 이 미궁 밖으로는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너무 급격하게 몰아치느라 아직 내부에 남아있는 적들도 있었고, 정리해야 할 다른 생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동안 병력만 생산하던 생산장에서는 마수 개미들을 베이스로 한 일개미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일개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미궁 내부의 전리품을 가져와 소화장에 던져넣고,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을 죽여 마찬가지로 생산장에 넣었다.

[미궁 탐사 완료. 전 미궁 둥지화 작업 착수.]

마왕은 미궁 내부에 빈 공간을 두지 않으려 했다. 모든 곳에 둥지를 만들어 생산과 소화, 통솔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이것 봐. 게임에 나오는 크리쳐지. 이 괴물은 자기 몸 속에 점액을 넣고 다녀. 이 점액을 쏟아내서 자신들의 영토를 만드는 괴물이야.”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역시 몇 가지 도움을 주었다. 마왕이 현재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들은 그는 머리를 굴려, 어쩌면 마왕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념이나 예시를 들어 주었다.

그렇게 되면 마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산에 착수해 그의 명령을 실현시켰다.

[마수 개미를 베이스로 한 두 번째 병종, 마수 개미ㆍ베타.]

다름 아닌 산성 체액을 가득 머금고 그것을 분사하던 뚱뚱한 개미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거대한 배 안에 산성 체액 대신 세포 단위 마족이자 마왕군의 근간인 만능 세포 나노를 가득 담은 이 새로운 병사는 생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들을 토해내며 빠르게 둥지화 작업을 가속시켰다.

‘······진짜 이 기세면 뭐든 만들 수 있겠는데.’

그리고 그는 마왕이 자랑스럽게 찍어 보내 준 사진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한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이 세포 단위까지 모든 것을 통솔할 수 있는 신ㆍ마왕군의 성장력은 그가 보아도 너무 사기적이었다.

조금만 응용해도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쌓아가는 데이터가 늘어나면 그 증가 폭은 제곱 이상으로 불어날 정도니까.

“네가 획득한 유전 데이터 중에 동굴 박쥐 같은 다른 생물들도 있었어. 그것들을 베이스로 하거나 데이터로 쓰지는 않는 건가?”

[데이터를 축적해 온 결과 현재로서는 일정 수준을 넘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거나 비효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새삼 마왕의 능력에 감탄한 그는 마왕에게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만으로도 더 많은 병종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물었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 성장한 마왕은 그것을 부정했다.

[너무 작고 하찮은 생물들은 쓸 수 없습니다. 적어도 마수라고 부를 만큼 강인해야 조합이나 개조가 가능합니다. 현재 베이스가 될 수 있는 소체는 마수 개미 포함 마족 6종, 마수 1종이며 조합할 데이터가 될 수 있는 소체는 마족 6종, 마수 1종입니다]

“······그리 많은 건 아니네.”

6종의 마족은 마왕을 현현시킨 패잔병들을 통해 얻은 오크, 고블린 등의 마족들. 그리고 1종의 마수는 지금 승리한 마수 개미들이니 사실상 이 이상의 개조는 힘들 다 봐야 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밖으로 나가야 함은 필연적입니다.]

차후 계획을 묻는 그의 말에 마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래. 내가 들은 대로라면 네 약점은 바로 그거야.”

그는 그럴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 또한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

그것은 바로 양분이었다.

마왕군은 집단이지만 동시에 집단이 아니니 그 집단 전체가 곧 하나의 포식자였다. 그들은 생산 작용을 하지 못한다. 식물이나 버섯처럼 태양 빛과 무기물을 양분으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끝없이 먹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집단 전체의 덩치가 커지고 강해지면 요구하는 양분의 값은 더욱 상승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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