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신ㆍ마왕군(4)
9화-신ㆍ마왕군(4)
“야, 너 오늘도 그냥 집에 가게?”
“당분간은.”
나는 동기의 말에 쓰게 웃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쁜 4학년이라 하더라도 친구들과 술 한 잔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것을 거절했다. 요즘 재미를 붙인 새로운 취미 때문이었다. 거창하고 중요한 취미는 아니었지만, 신경은 계속 써야 했다.
“어쩔 수 없지. 요즘 좀 바쁜가 보네···.”
친구는 그대로 가 버렸다. 사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의를 듣던 바로 직전에도 그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마수 개미 둥지 함락.]
[나르고돈 사냥 성공.]
[정찰 범위 확대.]
휴대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림이 울리고 있다. 모두 박스디가 보내 오는 메시지들이었다. 내 요구를 따라 박스디는 내가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메시지의 형식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보내 오는 사진들 역시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그 현실감 넘치는 사진들은 ‘비서 인공지능이 경영하는 마왕군 구경’이라는 이 이상한 취미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제 말로 해도 돼. 강의 끝났거든.”
[현재 새로운 병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설계도를 보여 드린 그것입니다.]
이어폰을 꽂은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향하며 말을 걸었다. 박스디는 곧바로 답하며 현재 상황을 보고해 주었다.
“이거? 달빛삼눈늑대ㆍ알파?”
[그렇습니다.]
사진 속에는 몸길이가 소형 자동차만 한 네발짐승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놈들은 박스디가 사냥한 마수 중 하나로, 그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예상대로 기존의 오크 베이스보다 효율이 좋습니다.]
“······그렇겠지. 짐승이잖아. 무기도 필요 없고.”
전체적인 형태는 늑대를 하고 있지만 박스디식 개조를 거친 늑대는 결과적으로 늑대라고 할 수 없는 새로운 생물이 되었다.
소화 기관 같은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운동 능력을 극대화시켰으며, 전신을 병정개미의 외갑을 베이스로 한 갑주로 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병사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였다. 박스디는 기존의 오크 베이스 하나를 만들 양분으로 이 늑대 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신체 구조에서부터 효율 차이가 난다던가.
[새로운 병사들까지 추가로 생산해 가며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 갈 것입니다.]
박스디는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둥지로 삼은 미궁을 중심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나가며 그 덩치를 불리는 것.
나는 몇 가지 사진을 더 받아 보았다. 박스디가 부리는 일꾼들에 의해 초토화되고 있는 미궁 인근 환경들이 가장 먼저 눈에 보였다. 각종 생물들의 소화 기관 데이터를 얻은 박스디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없다. 나무든, 풀이든, 생명체든 모조리 잡혀서 둥지 안 소화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먹어치웠다가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만약에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지는 순간에는.”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은 우선 순위상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박스디는 지금은 훗날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입을 다물었다. 분명 지금의 박스디는 아직 자리를 잡아 가는 중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 박스디가 모든 위기를 이겨 내고 더욱 성장한다면. 그렇게 성장해서 마침내 모든 적을 잡아먹고 세상의 정점에 오른다면. 과연 그 상황에서도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박스디가 멀쩡히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동남쪽으로 뻗어 가던 정찰병들이 고블린들로 추정되는 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박스디가 사진 하나를 추가로 보내 왔다.
하늘을 나는 박쥐형 정찰병을 통해 관측한 사진이었다.
***
[초록색 피부, 무리 짓는 습성 등등. 본래 숲고블린이라고 불리던 고블린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왕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이곳에 와 마왕이 된 이유는, 곧 저 고블린들과 같은 배신자들을 절멸시키고 그 피와 살을 양분 삼아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마왕군을 재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놈들이 있다고 듣기는 했지. 그럼 어쩔 생각이지? 사진을 보니까 숫자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지금 당장은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마왕은 늘 그렇듯 신중하게 행동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것이 곧 마왕의 강점 중 하나였다.
[제가 가진 데이터에 따르면 고블린들 같은 최하층의 마족들은 마왕이 가진 지배력이 사라지며 그 힘을 재분배받아 강해졌다고 합니다.]
소환 직후 얻은 정보에는 마왕과 마족, 마계의 특수성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었다.
마계의 생물들은, 특히 마족들은 대륙의 이종족들과는 전혀 다른 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왕에 의한 지배력으로, 마왕은 모든 마족의 주인이며 대표였다. 마왕의 의지에 따라 마족들의 생사가 결정되고 허락 받은 힘이 달라진다. 그러니 마왕의 지배력이 굳건하다면 고블린들은 영원히 진화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하급의 마족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잠깐. 그 말이 사실이면 대체 어떻게 전대 마왕이 배신을 당한건데?”
[외부의 조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성녀 이벨리아. 그녀는 배신자들에게 마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했으며 배신자들은 마계의 법칙에서 벗어나 전대 마왕을 죽였습니다.]
“별게······ 다 있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멍하니 탄식했다.
[지금 당장은 경계만 하겠습니다. 계산 결과 이 깊은 숲을 전부 먹어치운 이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마왕은 숲 고블린 부락에 대해서는 일단 지켜보자며 넘기려 했다. 굳이 그들과 충돌하지 않고도 무난하게 영역을 넓혀 가며 양분을 얻어 가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이 일대를 모조리 먹어치우게 되면 결국 정면으로 충돌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다.
기존의 정보는 너무 간략하고 마왕의 지배에서 벗어난 마족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글쎄. 그게 맞는 걸까 싶은데.”
하지만 그는 다른 의견을 내었다. 마왕은 예상치 못한 반론에 행동을 멈추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상황을 쭉 들어 보니까, 지금 굉장히 불리한 상황인데. 사방에 적밖에 없잖아. 네가 마왕이라는 걸 알면 눈을 뒤집고 덤벼들 적들.”
[그렇습니다.]
“네 계획은 끝까지 힘을 응축했다가 한번에 모습을 드러내며 터트리자는 거지. 하지만 설령 이 일대의 모든 양분을 먹어치우고 그만큼의 덩치를 만들어도 네가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계산······ 불가능. 데이터가 너무 적습니다.]
움찔한 박스디는 반사적으로 계산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적들에 대한 데이터가 너무 적은 탓이었다.
“강적이 한번에 나타나면 놈들은 뭉칠 수밖에 없겠지. 너는 이 변방 구석의 자투리 땅 하나 가지고 연합한 마계 전체와 싸워야 해. 하지만 만약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어떨까.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던 그 배신자들이, 섣부르게 서로 손을 잡을까? 경쟁 상대를 견제할 수 있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그는 묘수를 하나 내었다. 오히려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그들과 싸우며 데이터를 습득하고, 그들에게 정체를 보여 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ㆍ마왕군에 익숙해진 적들은, 신ㆍ마왕군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경쟁자가 잡아먹히는 걸 방관할 수도 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들은 덤이고, 양분도 대량으로 얻을 수 있겠지. 놈들은 집단으로 사니까.”
[계산중입니다.]
마왕은 서둘러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그의 말이 일리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적들이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고 가정했을 때. 충분히 위장하고 연기할 수 있었다.
[오늘 밤. 고블린들을 공격하겠습니다.]
“좋아.”
결국 마왕은 결단을 내렸다. 이번에 찾게 된 가장 고블린 부락을 습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키고 양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활동하고 있는 병력들을 불러들여 양분을 보충하게 하고 대기하게 만들었다. 정찰병 역할을 하는 박쥐며 개미 등이 인근에 몸을 숨기고 적나라하게 살피는데도 고블린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들 할 일이나 하고 있었다.
[더 자세한 관측을 위해 접근하겠습니다.]
마왕은 박쥐를 움직여 부락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 족히 100마리 이상의 고블린들이 모여 사는 부락에서, 고블린들은 무기를 손질하거나 옷을 만드는 등 나름의 일을 하고 있었다.
[······약초 혹은 독초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말리는 것으로 추정].
그리고 마왕은 그들이 부락 한가운데에 펼쳐놓은 뭔지 모를 풀들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당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닥에서 쏘아진 화살 하나가 지켜보던 정찰병의 몸을 일격에 꿰뚫어 버렸다.
“······뭐지?”
“떠 있어서, 쐈다, 마침.”
부락에 있던 고블린 족장은 화살을 맞고 바닥에 추락한 박쥐를 보고 고개를 갸웃버렸다. 정작 문답 무용으로 화살을 쏴 버린 고블린 전사는 어눌한 목소리로 답하더니 저벅저벅 걸어가서 꿰여 죽은 박쥐를 들고 왔다.
“식량.”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씹어먹기 시작했다. 족장은 그 모습을 혀를 차며 지켜보았다. 분명 마왕의 지배가 풀린 이후 고블린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빠르게 진화하고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개체는 소수에 불과했다.
“헛짓거리 하지 말고 사냥이나 떠나라.”
족장은 전사들을 소집해 숲으로 사냥을 갈 것을 지시했다. 이제 그들도 농사를 짓고, 마약에 가까운 독초를 재배해 파는 등 상행까지 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근본은 수렵과 채집이었다.
“캬아악!”
고블린 다수가 각자 번쩍이는 금속 무기들을 챙겨 숲으로 향했다. 그들 수준으로는 결코 만들지 못할 이 강철 무기들은 전쟁의 여파로 풀린 것들이다. 이런 변방의 부락에도 적지않게 흘러들 만큼 대전쟁의 여파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적들이 먼저 우리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으니, 놈들을 먼저 제압하고 이후 부락을 공격하겠습니다.]
그런 그들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고블린들은 감히 나무에 몸을 숨긴 마수 개미 따위가 자신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은 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병력을 움직였다. 이렇게 된 이상 고블린들이 숲으로 보낸 사냥조를 전멸시키고 그 기세 그대로 부락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달빛삼눈늑대ㆍ알파 30기 이동.]
마왕이 이번에 동원한 병력은 이번에 새롭게 태어난 종류의 병사들. 그 실전 테스트를 지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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