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신ㆍ마왕군(5)
10화-신ㆍ마왕군(5)
“이,쪽.”
사냥조를 이끄는 고블린은 경험 많은 전사였다. 비록 그들이 속한 부족은 대전쟁에 직접적으로 동원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같은 마족들도 신경쓰지 않던 이 척박한 땅에서 온갖 마수들과 싸우며 꿋꿋하게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게다가 이제 지배가 풀려 더 강하고 똑똑한 후대가 태어난다. 대전쟁의 여파로 흘러든 무기나 무구들도 그들에겐 큰 힘이 되었다.
“······짐, 승?”
그런 그들에게 평범한 마수들은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리를 이끌던 고블린 전사는 바닥에 찍힌 흔적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톱 자국이 선명한, 분명한 짐승의 발자국이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곧 고블린 전사의 지휘에 따라 무기를 들고 천천히 흔적을 추격했다.
[놈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보다 확실한 처리를 위한 누군가의 계략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고블린 사냥조는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향하며 부락과 멀어지게 되었다.
[기습 시작.]
그것이 곧 신호탄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걷던 고블린들은 곧,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적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적, 적······이다!”
당황한 고블린 전사는 사방에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 짐승들을 보고 검을 뽑아 겨누었다.
나름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냄새도 생소하여 알아차리지 못했다. 애초에 생김새부터가 낯설었다.
그만큼 자신들을 습격한 적들은 어딘가 기괴하고 뒤틀려 있었다.
“늑, 늑대······?”
고블린 전사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고 그나마 유사한 종족을 떠올렸다. 하지만 의미 있지는 않았다. 세상 그 어느 늑대도 전신을 털이 아닌 딱딱한 갑옷으로 두르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얼굴까지 전부 덮고 있는 그 갑각의 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무심하게 빛나는 그 안광에서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일개 짐승도 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포식자라면 응당 가져야 할 투지나 살의조차 없다. 마치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눈은 그저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에 불과했다.
“싸, 워!”
그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고블린 전사는 이를 악물고 투지를 끌올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겁먹은 부하들을 다그쳐 움직이게 만들었다.
“캬아악!”
지능이 낮은만큼 단순한 고블린들은 곧 고블린 전사의 재촉에 공포를 떨치고 괴성을 지르며 자신들을 포위한 적들을 향해 역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동시에 저 검은 괴물들도 이를 드러내고 앞으로 달렸다. 나름 진영을 잡아보려고 서로 뭉쳤던 고블린들은 질량을 이용해 그냥 밀고 들어오는 괴물 늑대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비틀거렸다.
“괴, 물······!”
고블린 전사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외갑을 부순 검에 머리가 꿰뚫린 늑대 하나를 바닥에 쓰러트렸지만, 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검에 머리를 관통당하고서도 끝까지 밀어 대던 늑대는 마치 고통이나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태도였다.
[적 진영 붕괴. 난전 유도.]
그러거나 말거나 마왕은 계속해서 병력을 지휘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육탄 돌격에 난전 상태에 빠져, 허점이 많이 노출되기 시작한 고블린들을 마구잡이로 물어 죽이고 짓밟아 죽였다.
“키, 키잇······.”
그러자 휘몰아치는 폭풍이 지나간 듯, 어느새 자리에는 쓰러져 바닥을 구르는 처참한 시체들만 남게 되었다. 외갑이 부서진 늑대 괴물들 역시 피해를 좀 보긴 했지만, 바닥엔 짓이겨진 고블린들의 시체가 더 많았다.
결국 홀로 남은 고블린 전사는 검을 휘적거리며 자신을 포위한 괴물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사방에서 덮치는 기습을 허용한 순간수터 이미 결말은 정해진 상태.
사방을 에워싼 수십 마리 늑대들이 이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겁한 고블린 전사를 향해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캬······ 까아아악!!”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혼자서 다수를 당해 내긴 힘든 법. 심지어 이 괴물들은 고통과 죽음도 불사하고 오직 적의 척살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고블린 전사는 자기보다 더 거대한 짐승들 다수에게 뒤덮여 산채로 물어뜯기고 조각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참혹하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계산대로 10% 이하의 손실로 제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 잘됐네.”
[적들의 전력 20% 이상을 처치했으니 이제 본진을 공격하겠습니다.]
처참하고 잔혹한 싸움의 끝. 양분으로 삼을 시체들을 둥지로 옮기고, 싸움에 참가했던 병력들 역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철수시키며 마왕은 동시에 다음 공격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고 받는 그는 마왕이 보고해 주는 내용만을 토대로 상황을 판단했다. 덕분에 그는 거침없이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지시로 마왕이 전쟁을 선택했지만, 어차피 자신은 직접 보는 것도 불가능한 다른 세상 이야기였으니까. 사냥당한 고블린 전사가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든, 고블린들의 부락이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되든 그에게는 그저 적이 죽었다고 보고 될 뿐이다.
[오크ㆍ알파 20기, 달빛삼눈늑대ㆍ알파 50기. 총 70기의 병력으로 확인된 적 158기를 공격합니다. 만약 부족할 경우 후속으로 준비한 나머지 70기를 추가로 투입합니다.]
마왕은 전력을 쏟아붓지 않았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효율. 그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며 항상 최적의 병력을 구성했다. 그렇다고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 마왕은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그럼 최대한 빨리 공격하는 게 좋을걸? 낮에 사냥을 나갔던 일행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의심할 테니까.”
[그렇습니다. 전 군단, 지금 바로 진격.]
머리를 감으면서, 세면대에 세워 둔 휴대폰을 향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말에 맞추어 꽤 규모 있는 집단이 숲을 가로지르며 한점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
“······.”
“족, 장.”
“바람이 좋지 않다. 사냥을 나간 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느냐?”
망루에 올라 높게 뜬 붉은 달을 바라보던 고블린 족장. 족장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작 곁에 있던 고블린은 멍청하게 꾸륵거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정말 옳은 판단이었나?’
족장의 눈이 가라앉았다. 하루 전 이 마을을 들렀다간 왕의 부하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등으로 치장한 왕의 부하들. 그들은 고블린 왕을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마왕을 배신하고 싸웠던 이들이다.
배신의 대가로 성녀에게 무언가 받았다던가. 그래서인지 그 강함은 지배의 저주가 풀린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 솔직히 같은 고블린종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제 와서 후회하기엔 늦어 버렸지.’
족장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직접 싸우지 않았다 뿐이지 결국 기존의 질서와 마왕을 배신한 건 본인들도 마찬가지다. 딱히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 수혜는 자신들도 보고 있었으니까. 약자는 도태되어 죽는다. 그것은 당연한 세상의 법칙.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곧 강함이라 생각하기에 족장은 마왕은 그저 약해서 졌을 뿐이라 생각했다.
“적, 이다.”
“뭐라?”
그런데 그때. 망루를 내려가려던 족장에게 곁에 있던 고블린의 멍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족장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저것은 대체.”
족장의 누런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 커졌다. 정말로 부락을 향해 적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심지어 적들은 이질적이고 괴이했다. 숲을 빠져나와 월광을 받으며 이곳으로 천천히 행진하고 있는 적들은 단순한 짐승이 아닌 것 같았다.
“비상······ 비상! 전부 전투를 준비해라!!”
어둠 속에서 무수히 빛나는 붉은 점들을 본 족장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쳐 모든 병력을 소집시켰다.
‘······마왕, 아니 마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족장은 점점 근접해 오는 저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들의 신을 찾았다.
물론 그렇게 빌어 놓고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배신자 주제에 이제 와서 신을 부르짖는 것도 웃길 노릇이었다.
“화살을 쏴라!”
족장의 지시에 강철 화살촉을 단 화살들이 아낌 없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화살들은 단숨에 적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병정개미의 외갑을 차용한 갑주는 강철을 이기기에는 부족했다.
“이놈들······.”
하지만 저항 없이 화살을 다 맞아 준 적들을 보면서 족장은 이를 갈았다. 무슨 나무에 화살이 박힌 것처럼 적들은 조금의 멈칫거림도 망설임도 없이 그저 전진할 뿐이다.
“계속 쏴라!”
[거리 도달. 전력 돌진.]
전신에 돋은 소름을 무시하고 악다구니를 쓰는 족장이 소리침과 동시에 이 검은 괴물들도 일제히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밤에 벌어진 수백 규모의 전투. 거칠고 포악한 마계의 마수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름 단단히 만든 목책은 분명 튼튼했지만, 미친 듯이 내달린 마왕군은 정교하고 일체화된 움직임으로 자신들의 몸을 일종의 디딤대로 만들어 후속 부대를 목책 너머로 뛰어들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조금의 저지력도 없이, 믿었던 목책이 돌파당하자 족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황할 틈도 없다. 족장은 무장한 부하들에 돌진 명령을 내렸다.
[백병전을 시작합니다.]
이제 순수한 힘의 싸움이 되었다. 창과 검을 든 고블린들은 족장의 지휘에 맞춰 서로 뭉쳤고, 밀고들어오는 적을 향해 마구 창을 내지르고 검을 찔러 넣었다.
“이길 수 있다. 자리를 지켜라!”
족장은 일순간 저지시킨 상대의 움직임에 가능성을 보았다. 짐승을 상대하는 법은 나름 익히고 있었다. 분명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지만 연달아 찔러 들어오는 여러 개의 창대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이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족장은 날뛰고 있는 오크 베이스의 마왕군들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마치 자신들처럼 이족 보행을 하며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우는 그들의 일격에 고블린들이 짚단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족장은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들었다.
“뿜어져라!”
그리고 자신의 마력을 발현시켰다. 족장이 다른 고블린들과 태생적으로 다른 이유. 지금 그 증거가 강한 주술의 형태로 뿜어져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이것이 마족의 주술. 덕분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뾰족한 돌조각들을 사방에 흩뿌렸다. 외갑의 방어력을 벗어난 위력에 일격에 수십의 마왕군이 쓰러졌다.
마왕은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듣기만 했었던 마족의 진짜 힘을 직접 본 순간이었다.
[후속 부대를 보냅니다.]
물론 이미 마법이나 주술 등 특수한 힘들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에 이 정도의 변수는 계산 안이었다. 새롭게 습득한 데이터에 대해 만족한 마왕은 곧바로 대기하던 수십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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