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이변의 시작(1)
11화-이변의 시작(1)
“주술? 무슨 필살기인가?”
[마력을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박스디는 적의 주술 공격에 35기의 병력이 손실되었다고 보고했다. 35기면 절반에 달하는 것이니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큰 기술을 연달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대기시킨 후속 병력을 투입하여 제압하겠습니다.]
“······그래.”
오히려 이런 변수는 계산에 두었다는 듯 조금의 지체 없이 다음 수를 두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이제 어지간한 일은 박스디가 알아서 계산하고 행동하니까.
성장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박스디가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아직도 내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보고하고 조언을 갈구하지만 이제 스스로 대처법을 생각하고 떠올리는 그 빈도수가 확연하게 늘어났다.
‘더, 지금보다 더 성장한다면?’
박스디가 더 성장한 모습을 상상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하여 점차 온전해지는 감정과 자아. 지금 이 순간도 믿기지 않을 일이지만 내 가슴은 괜히 두근거렸다.
[놈들이 당황한 것 같습니다. 후속으로 투입한 병력들이 지친 적들을 밀어붙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그 족장부터 죽여.”
나는 이제 진심을 다해 박스디를 도왔다.
솔직히 마왕이니 마계니 하는 일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실감이 덜 했다. 하지만 내가 그 특별함을 인정한 박스디가 더 성장하는 모습은 계속 보고 싶었다. 그것이, 최근 특별한 취미 생활을 얻은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오크ㆍ알파에 취약함을 보이고 있으니 그것들을 이용하여 족장부터 잡겠습니다.]
박스디는 내 지시를 따라 병사를 움직이겠다고 말해왔다. 동시에 전송된 사진 한 장에 전장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달밤에 벌어지는 전쟁. 무기를 든 수많은 고블린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아군 병사들의 모습은 내가 봐도 좀 멋져 보였다.
***
‘이놈들은 대체.’
누군가가 사진을 통해 이 전장을 보며 만족스러워 하는 사이, 현장에 있는 고블린 족장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네놈들은 뭐냐! 누구의 지시로 이러는 것이냐!”
그리고 차마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이 정체불명의 괴물들은 단순한 짐승집단이 아니었다. 직접 상대해 본다면 알 수 있다. 체계적인 전투 시스템과 전술을 가진 하나의 군대였다. 군대라면, 당연히 지시하는 지휘관이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분노를 터트린 족장은 이 괴물 집단에도 분명 대장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벌어지는 이 참혹하고 참담한 전쟁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족장 저격 계획 실행.]
그러나 마왕, 박스디는 그런 것에는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의무를 행할 뿐이다. 몰려가는 병사들이 시선을 끄는 사이, 지난 시간 중첩된 데이터를 활용해 이제 투창 행위에는 이골이 난 오크ㆍ알파 하나가 창을 들어 투창 자세를 잡았다.
[계산 완료, 투창.]
그 상태로 미세 근육까지 조정하며 정확도를 높인 창이 쏘아져 허공을 갈랐다.
“이게 무슨······ 끄아아악!”
앞일에만 신경 쓰던 족장은 미처 신경조차 쓰지 못한 그 일격에 당해 버렸다. 창은 비록 마지막에 살짝 움직인 그를 즉사시키진 못하고 어깨를 부숴 버리는 선에서 끝났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힘으로 밀면 이길 수 있습니다.]
마왕은 동원한 모든 힘을 끌어모아 적들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족장의 지휘가 사라진 가운데 점차 고블린들의 전선이 밀리기 시작했다.
족장의 주술로 잠시 사라졌던 공포가 다시금 고블린들의 심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크으, 족장을 지켜라!”
“캬악!”
그러다 고블린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족장을 지켜야지만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몸을 던져서라도 족장을 지키려 했다.
“이, 어리석은······.”
피를 흘리며 헐떡이던 족장은 자신의 앞을 에워싼 무수한 고블린들의 등에 탄식했다. 분명 고결하고 고귀한 희생이었지만 상대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괴물들이었다.
[고블린들은 도주 대신 절멸을 택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이겠지. 도망쳐 봤자 결국 잡혀 죽는 것 똑같으니 최대한 가능성 있을 때 싸우던가.”
[······아닙니다. 매우 비효율적인,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마왕은 하나둘 쓰러져가는 고블린들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피식 웃으며 그 끈끈한 고블린들의 투지를 좋게 보았다.
하지만 어째 마왕은 그 평가를 듣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발언했다.
[배신자들입니다. 정작 중요한 순간 저런 투지는 보여주지도 못한 놈들입니다.]
“어째 감정이 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이건 과거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말입니다.]
그는 마왕의 말에서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을 알아차렸다. 마왕은 이번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자신의 근원이 전대 마왕의 복수와 증오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배신자인 마족들에게 복수하고 분노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 미리 입력된 값이 맞아? 설령 남겨진 유산이라 하더라도 네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느낀다는 건 사실이잖아.”
[그렇습니다.]
결국 마왕은 기존에 익힌 기쁨 말고도 두 가지 감정을 더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비록 기쁨에 비해서는 조금 수동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만큼 더 사무치고 강렬한 감정들이었다.
“이놈들!!!”
그리고 그때 우렁찬 함성 소리가 고블린들의 비명과 고성이 멎어가던 현장에 울려퍼졌다.
“뭐냐, 너희는 대체 뭐냔 말이다! 누가 너희를 조종하느냐!”
부족을 거의 다 잃은 족장은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전쟁의 탈을 쓴 잔혹한 학살은 끝나질 않았다. 고블린들이 기를 쓰고 싸워서 상대를 죽여 놓아도, 다른 병사가 자연스레 그 자리를 채웠다.
분명 서로 똑같이 죽였는데 아군의 희생에 당황하고 위축되는 건 고블린 뿐이다. 이 검은 괴물들은 곁에 있던 동료가 죽든 말든 그 시체를 짓밟고 올라서서 계속해서 공격을 퍼붓기만 했다.
이래서야 이건 전쟁도 아니었고, 싸움도 아니었다. 그 불합리함을 깨달은 족장이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냥일 뿐.]
끝내 마지막 하나 남은 고블린까지 베어 죽인 마왕은, 여기저기 긁히고 부러진 오크ㆍ알파의 몸을 움직여 족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 손에는 여전히 날이 선 검이 들려 있었다.
“허윽.”
그리고 반대 손으로, 족장의 목을 움켜쥐고 번쩍 들어올렸다. 족장의 다리가 허공에서 애처롭게 버둥거렸다.
“네, 네놈······.”
족장은 자신을 보는, 갑각 사이의 안광을 보고 파들거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그 안광 속에서 이제서야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 설마.”
그것을 읽어 낸 족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말을 잃었다.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 말하는 건 불가능했다. 목을 움켜쥔 손이 단번에 그 목을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손실률 48%로 적 158개체 모두 제압 완료.]
마왕은 족장의 시체를 쓰레기처럼 내 버렸다.
그러면서 활동 정지 이후 마치 동상처럼 굳어 있던 마왕군이 다시 움직였다.
지금 있었던 전투는 고작해야 한 번의 사냥에 불과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펼쳐질 진정한 목적을 위해, 마왕군은 전리품을 챙겨 천천히 이 처참한 전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손실을 감수하고도 상당한 양분과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대규모 병종 혼합군을 운용해 본 데이터가 제일 큰 수확입니다.]
마왕은 둥지로 돌아오는 중인 병사들을 보며 오늘 얻은 수확을 정리했다. 주술 공격 등에 병력을 다수 잃어 양분적인 면에서는 큰 이득은 아니었지만, 얻은 건 양분만이 아니었다.
[역시 족장의 몸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마력을 발견했습니다.]
“그 주술이니 마법이니 하는 데 쓰이는 힘?”
[하지만 현재 이 마력을 담아 둘 기관 데이터가 없습니다. 일단은 유일하게 마력과 작용할 수 있는 하이브 내부에 두겠습니다.]
그 수확 중 하나가 바로 마력이었다. 고블린 족장의 시체를 세포 단위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의문의 에너지. 아직 그 누구도 원인을 알아내 못한 그 기적의 에너지를, 마왕은 연결된 촉수를 통해 하이브 내부로 옮겼다.
아직은 이 마력을 이용한 새로운 육체 등을 만드는 건 부족했다. 또한 주술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움직이는 지식조차 거의 없어 배우기도 해야 했다.
[지금 당장은 보류하겠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이 일로 얻은 단점들을 보완할 기회입니다.]
마력에 대한 생각은 살짝 접어 둔 마왕은 다른 것에 화제를 돌렸다. 바로 기존에 노출된 약점들을 보수하는 것이다.
[일단 방어력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무게를 감수하고 차용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무척추동물에 불과한 마수 개미의 외갑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더 단단한 갑옷이 필요하다고.”
[마침 적당한 생물이 하나 있습니다.]
여전히 정찰을 시도하는 정찰병 하나가 현지에서 양분을 보급해가며 용케 살아 수백 km를 가로질렀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마수가 바로 늪지에 서식하는 인두귀(人頭龜)라 불리는 마수.
무려 사람의 얼굴을 닮은 얼굴을 가진 이 거북이 괴수는 엄청나게 단단한 등껍질을 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그 등껍질이 곧 마왕의 목표였다.
“잡을 수는 있는 거지?”
[시도해 볼 방법은 많습니다.]
마왕은 쉬지 않는다. 비효율을 혐오하는 마왕에겐 애초에 쉰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수족 그 자체인 마왕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상병들은 둥지에서 만능 세포 나노를 보급 받아 부상을 회복하고 나머지는 양분을 보충한다. 그게 전부였다. 오직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에게 휴식이나 여가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한 무리의 마왕군은 그 즉시 인두귀를 사냥하기 위해 출발했다.
[계속되는 성장, 그리고 진화.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 땅을 조금씩 우리 그 자체로 바꿀 것입니다.]
“한번 들어 보자. 아마 근처의 다른 고블린 부족을 공격할 것 같은데, 이번 일을 토대로 어떻게 싸울지.”
[이미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적어도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어느 부분에 강점을 보이는지,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도 판단했습니다. 가설 검증 결과, 마력을 다루는 이가 족장급 하나라는 가정하에 다음 공격의 손실률은 5% 미만입니다.]
“넌 허튼소리는 절대 안 하지. 좋아.”
이제 그는 마왕이 하는 말은 아무리 허무맹랑해도 다 믿어 주었다. 애초에 인공지능인 마왕이 거짓을 보고할 리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탓이다.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그런 태도가 마왕에게 강한 영향력을 뿌린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결의. 그리고 그 결의의 근간이 되는 감정은 다름아 닌 기쁨이었다.
그에게 그 기쁨을 주고 싶다는 욕망이, 마왕의 내면에서 조금씩 꿈틀거렸다.
────────────────────────────────────
────────────────────────────────────